자동차의 엔진은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차가움이고, 나머지 하나는 뜨거움이다. 이렇게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갖는 이유는 금속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으로부터 시작된 엔진의 역사이래, 인류는 항상 금속으로 엔진을 만들어 왔다. 최근에는 재료역학의 발달로 인해, 금속 외의 다른 합성 재료를 사용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상의 모든 엔진의 주류는 금속이다. 강철과 알루미늄 등의 금속은 엔진이 잠에서 깨어난 시점부터 가동 시간 내내 발생하는 고열과 마찰 등의 모든 부담을 감당할 수 있으며, 대량생산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자동차의 심장, 엔진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본 기사에서 다룰 수많은 자동차의 엔진들 중 아홉 번째 이야기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 현대자동차의 첫 독자개발 엔진인 알파(α)엔진에 대한 이야기다.
대한민국 첫 독자개발 엔진, 현대 알파 엔진
현대 알파 엔진은 1991년 상용화된 현대자동차의 독자 개발 엔진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자동차 업계 최초의 독자개발 엔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은 아니었다. 이 엔진의 기초 설계는 영국의 리카르도 plc(Ricardo plc)가 맡았다. 리카르도 plc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자동차 관련 설계/제작사로, 수많은 자동차용 엔진은 물론, 전차(戰車)용의 엔진도 설계하는 ‘엔진 전문가’로 유명하다. 지난 기사에서 다루었던 맥라렌 오토모티브의 M838T 엔진이 바로 이들의 작품 중 하나다.
리카르도 plc의 기초설계를 바탕으로 한, 배기량 1.5리터의 알파 엔진은 현대자동차의 마북리 연구소에서 개량 및 시험을 거치게 된다. 1985년에 리카르도 plc의 설계를 기반으로 한 첫 시제품이 만들어졌고, 이내 수많은 시험 운전과 개량 작업에 들어갔다. 시운전 시간만 2만 시간 이상, 총 주행거리 420만km의 테스트를 거치며 데이터를 모으고 개량을 가했다. 그리고 7년여가 지난 1991년, 알파 엔진의 최종 개발이 완료되었다. 현대자동차의 90년대 소형차 라인업을 책임지게 될 엔진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알파 엔진은 국내 최초의 독자 개발 엔진이면서도 선진적인 측면도 꽤나 존재했다. 멀티 포인트 인젝션(Multi Point Injection, MPi, 다점 연료분사방식)의 채용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GM에서 근무하다 현대자동차로 넘어 온 이현순 전 부회장의 혜안이 작용한 것이었다. MPi 방식은 종래의 기화기(카뷰레터) 방식에 비해 외부 요인에 의한 연소효율 및 폭발력 변동이 적어, 보다 안정적인 작동을 보장했다.
알파 엔진은 개발 당시부터 과급기의 사용까지 고려한 엔진이기도 하다. 초기 알파 엔진은 1.5리터의 배기량에 기통 당 3밸브 SOHC 자연흡배기 사양과 기통 당 4밸브 DOHC 터보 사양의 두 가지로 제작되었다. SOHC 사양은 102마력의 최고출력과 14.5kg.m의 최대토크를, DOHC 터보 사양은 129마력의 최고출력과 18.3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했다.
현대자동차는 자사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개발한 신형 엔진을 자사의 첫 스포츠카라 주장하는 스쿠프(Scoupe)에 처음으로 탑재했다. 현대 스쿠프는 대한민국 최초로 만들어진 스페셜티카로서, 당대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통했던 차였다. 판매량이 많은 주력 볼륨 모델에 전혀 새로운 엔진을 도입한다는 것은 현대자동차에게 있어 상당한 위험 부담이 따랐기 때문이다.
초기형 스쿠프는 미쓰비시의 오리온 엔진을 사용하였으나, 1년 뒤인 1991년형 스쿠프부터는 알파 엔진을 얹게 되었다. 당시 스쿠프에 탑재되었던 미쓰비시 오리온 엔진의 97마력에 비해, 알파 엔진은 102마력의 최고출력을 냈다. 이 덕분에 0-100km/h 가속 시간이 오리온 엔진 버전에 비해 1초 가량 단축되었다. 알파 엔진을 얹은 스쿠프는 ‘스쿠프 알파’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스쿠프에 탑재된 자연흡배기 사양의 알파 엔진이 우수한 성능을 보여준 데에서 고무된 현대자동차 연구진은 알파 엔진을 바탕으로 한 터보 엔진도 스쿠프에 채용했다. 이 엔진이 탑재된 스쿠프는 ‘스쿠프 터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또한 국산차 최초의 ‘(가솔린)터보 엔진 탑재 차량’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강력한 성능의 알파 터보 엔진을 얹은 스쿠프는 200km/h를 넘는 최고속도와 9.18초에 불과한 0-100km/h 가속 시간을 자랑했다.
스쿠프를 통해 성능이 검증된 알파 엔진은 이내 현대자동차의 소형~준중형차 모델들에 차례차례 도입되기 시작했다. 스쿠프 이후 처음으로 알파 엔진을 얹은 차는 엑셀의 후속으로 개발된 현대자동차 최초의 독자개발 소형 승용차, 엑센트다. 엑센트가 출시될 즈음에는 배기량을 줄인 1.3리터 버전도 만들어져, 함께 사용되었다. 이후로도 이 엔진은 초대 엑센트의 후속 모델인 베르나에도 사용되었다.
알파 엔진은 오늘날의 현대자동차를 대표하는 모델, ‘아반떼(Avante)’의 초대모델부터 탑재되었다. 1995년 출시된 아반떼는 출시 첫 날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준중형차 시장을 장악했다. 아반떼에 탑재된 알파 엔진은 107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1.5리터 DOHC 자연흡배기 사양으로, 아반떼 판매량의 대부분이 이 엔진을 실은 모델이었다.
아반떼의 2세대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아반떼 XD에도 알파 엔진이 실렸다. 하지만 아반떼 XD로 넘어오면서 차체가 커지고, 중량도 크게 증가함에 따라, 출력 부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2003년에 출시한 페이스리프트 모델부터 한 단계 진보된 알파 엔진이 실리며 출력 부족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2003년형 아반떼 XD에 실린 알파-II 엔진은 가변밸브타이밍 기구(Variable Valve Timing, VVT)를 채용하면서 출력을 향상시켰고, 2004년형부터는 자동차 세제의 변화에 따라 배기량이 1.6리터로 증가하면서 110마력까지 최고출력이 높아졌다. 1.5리터 사양의 알파-II 엔진은 아반떼 외에도 2세대 베르나와 기아자동차의 2세대 프라이드, 쎄라토 등에도 사용되었다.
현대자동차 알파 엔진에는 국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린번(Lean Burn, 희박연소방식) 방식이 적용되기도 했다. 린번은 일반적인 엔진에 비해 모다 적은 연료를 보다 많은 공기로 연소시키는 개념의 엔진으로, 일반적인 엔진에 비해 약 11~12% 가량의 연비 향상과 안정적인 공회전을 기대할 수 있다. 연비를 극도로 높이기 위한 린번엔진은 IMF 시절을 전후하여 등장한 아반떼 린번으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엔진은 아반떼 외에도 베르나(베르나 린번) 등에 사용되었다. 하지만 부족한 출력과 함께, 공인 연비와 실주행 연비의 차이가 커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알파 엔진을 얹은 또 다른 차종으로는 현대자동차가 유럽 시장을 겨냥하고 개발한 라비타(Lavita)와 클릭(Click)에도 사용되었다. 라비타는 처음부터 유럽식 소형 MPV로서 개발한 모델로, 2001년 처음 출시되어 2007년에 단종되었다. 라비타에 실린 알파 엔진은 103마력의 최고출력과 14.1kg.m의 최대토크를 냈다. 현대자동차가 유럽형 B세그먼트 해치백으로서 야심 차게 개발한 클릭은 유럽식의 가볍고 탄탄한 차체구조설계와 강력한 알파 엔진을 탑재한 클릭은 주요 타겟인 유럽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후에는 ‘클릭 스피드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의 원메이크 레이스가 신설되면서 모터스포츠 저변 확대에도 기여했다.
1991년 도입되어 2000년대까지 현대자동차를 이끌어 온 알파 엔진은 2세대 프라이드의 단종을 끝으로, 주력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오늘날 알파 엔진의 역할은 카파 엔진과 감마 엔진이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