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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5일(월) 고린도후서 1:12~22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찬송가 197장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오늘은 고린도후서 1:12~22 말씀을 중심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에 대하여 자신이 육체의 지혜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 것이 자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이 육체를 따라 행한 것이 아님을 밝히며, 그리스도는 ‘예’가 되는 데,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내에는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가려던 계획을 거듭 변경함으로 인해 그를 가리켜 ‘바울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야’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또한 연보로 인해 바울을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진실됨을 ‘양심의 증거’를 통해 확증합니다. 그것은 비난자들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고, 지도자로서 뿐 아니라 성도로서 가진 양심이 자신의 진실됨을 밝히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고린도 교인 앞에서 자랑은 바로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고 교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육체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행해야 합니다. 성도의 자랑은 육체의 지혜로 세상에서 성공하고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행해야 합니다. 당시 로마 세계에는 많은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지혜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효과적인 수사법을 익혔습니다. 이들의 웅변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효과가 있었고, 그 결과 인기와 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탁월한 웅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교사들과 바울을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부족한 바울의 웅변술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세상의 지혜를 의지하는 것은 사도에게 합당하지 않다고 일축하며 오직 은혜에 의지한 사역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는 것, 그것이 주께서 보내신 사역자의 참된 자랑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자신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육체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행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다는 것은 행위의 근거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며, 사람의 계획이나 노력이나 열심이나 지혜에 의한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 것이지 자기 자신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한 것이라는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 것을 자랑삼고 그것이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한 것’이라고 말했을까요? 바울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자신의 육체의 열심이나 지혜로 행한 것은 ‘복음의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 이전에는 자신의 종교적인 열심히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복음되신 예수님을 만난 후로 바울은 자신의 자랑은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이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행합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다는 고백은 그리스도를 믿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을 가지고 거듭난 이후부터는 자기가 스스로 행하려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열심, 자기 지혜로 행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과 부딪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행하려 하는 것은 결국 복음에서 벗어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6~18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육체의 지혜로 행하는 것이 바로 육체의 소욕대로 행하는 것이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행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에 대한 더 구체적인 것은 바로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대할 때 했던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는 거입니다. 교회 안에서 봉사할 때 뿐 아니라 세상에서 인간관계를 할 때도 중요한 거은 바로 거룩함과 진실함입니다. 세속적이고 거짓이 가득한 인간관계는 서로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거룩과 진실함이 함께 하는 인간관계가 모두를 복되게 하는 관계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으로 행했고, 세상 지혜를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성령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철저하게 따랐습니다. 예수 믿는 자 속에 있는 성령의 역사하심은 늘 정확하고 완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려면 성령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시고, 예수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시로, 시도 때도 없이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성령안에서 무시로 기도할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할 수 있고,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육체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행하되 바울처럼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것이 성도의 자랑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순간순간마다 나를 유혹해오는 육체의 소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성령안에 무시로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요즘 내가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내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서 조차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게 하시고 무시로 깨어서 성령안에 기도함으로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이런 성도들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