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만에 운전면허증을 반납하고 보니 약간은 서운하다. 자가용은 18년 탔고 사고 처리 한지 12년이 지났는데 면허증은 그대로 살려놓고 대중교통 시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면허증 취득 7년 후 차를 샀고 단종직전의 마지막 엘란트라 뽑아 8년 타다가 아들에게 주었고 다시 2000cc급 뉴EF소나타 중형차로 갈아타고 10년 후 제주도에서 자차 사고를 내고 처분해버렸다.
2008년 4월30일 서귀포에서 신산리로 가던 중 신흥리 앞 일주도로에서 깜박 졸음이 스치는 순간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정신을 차려보니 에어백이 터져있었다. 내가 사고를 당했구나 싶어 몸을 움직여 보니 별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운전석 문이 열리지 않았다. 반대쪽 조수석 문을 열고 나와서 보니 본 네트 카버가 약간 찌그러졌고 왼쪽 문이 약간 뒤틀려 안 열렸다. 순간 허리가 약간 뻐근한 것도 같으나 견딜만했다.
비닐봉지에 소지품 등을 대충 챙겨 담고 보험사를 통해 레카차를 불러 위치를 알려주고 건너편 길가에 기다렸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서귀포시로 가다 첫 번째 병원(열린병원)으로 가서 응급조치를 받고 입원을 하였다. 며칠 후 보험사에서 직원이 나와 진단서를 받아 가는데 8주가 나왔다. 견딜만해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며칠 후 퇴원하면 되겠지 했는데 8주라는 결과에 겁이 좀 나서 서울 막내 동생에게 전화하여 의논한 결과 거동이 가능하면 올라오라했다.
5월6일 수원 중앙병원으로 옮겨 수술 받고 치료는 무사히 끝났지만 차를 처분하는 과정에 고민을 좀 했다. 수리비 200만 원 정도에 폐차 처분할 경우 보험사 보상비 600만 원이라 하여 처분 쪽으로 결정했고 대중교통시대로 접어 들게 된다. 한 1년 정도는 매우 불편 하였으나 열차 이용을 주로 하는 대중교통 길들이기에 1년이 지나니 아무 불편이 없어졌다. 먼 거리는 열차로 가고 지하철 타고 급할 때는 택시 불러 타고 다니니 저축도 되고 좋은 점도 많았다.
1980년대 후반기 자가용 운전 붐이 한창일 때 직장에서 방과 후 남녀교사 십여 명이 자동차운전학원에 다니게 된다. 한 달 후 필기시험은 전원 합격하였으나 실기시험이 만만치 않았다. L자 T자 S자 등을 연습하는데 시험은 매월 끝 주 일요일에 1회씩이어서 불합격자는 다음 달에 또 다음 달로 연장된다. 나는 동료들보다 4일이나 늦게 합류했기 때문에 나만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하다가 시험이 있는 전주 일요에 아무도 모르게 면허시험장에 현장답사 가서 약도를 그려가지고 왔다. 잠자리에서까지 시뮬레이션 가상의 모의 운전연습을 열심 했다.
운전면허시험장은 광주시 변두리 딱 한곳에 있었고 자동차학원 실기연습장은 학원 안에 있기 때문에 시험장에 가서 필기시험을 보고 바로 채점결과가 나오고 이어서 합격자는 바로 실기시험에 들어간다. L자 T자 S자 등을 통과하고 정해진 시간 내에 한 바퀴 돌고 나면 파란불이 켜져야 최종합격인데 한 사람씩 돌고 와서 파란불이 빙글빙글 돌면 일제히 박수를 쳐주면서 축하를 해준다.
차들이 고물차가 많아 가급적 좋은 차를 받는 것도 운이지만 이날 십여명 교사들의 실기시험은 김성수 선생과 나 두 사람만 통과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다음 달 재수강에 걸렸다. 그날 나는 하늘을 오른 것 같은 들뜬 기분이었다. 김성수 선생은 나보다 십년 후배쯤 되는 젊은 교사였고 내 나이 는 45세쯤이었을 것 같다. 내가 전날 비어 있는 시험장을 미리 답사하여 잠자리에서까지 눈감고 계속 한 바퀴 도는 연습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1종 보통 면허증을 소지하고 이듬해(1988년) 서울 발령으로 직장을 옮겨 6년 후 서울 분당 새집에 입주하여 자가용을 구입하게 된다.
엘란트라 8년, 뉴EF소나타 10년 타고 해안가로만 도는 3박4일짜리 전국일주도 3회 했고 서울 거주 23년 동안 호남고속도 30회 이상 주파했고 해군에 간 아들 면회 갈 때 전 가족 태우고 구마고속도로 타 보았고 제주도에 한 5년 거주하면서 목포와 완도 항에서 카페리호도 몇 차례 탔던 추억이 남는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처음 한 6개월 정도는 매일 나 다니면서 제주도 구석구석 전역을 샅샅이 다녀보았는데 그 길들이 지금은 올레길이란 명칭으로 재탄생되어 있다.
지금 나는 대중교통 베테랑이다. 목적지에 가는 방법이 먼 곳은 열차로 가고 큰 도시는 지하철 다음에 시내버스 급할 땐 택시로 다닌다. 1~2km정도 어중간한 거리는 도보 속보로 다니며 가급적 자가용은 피한다. 그렇게 길들이다 보니 소형차 기피증이 좀 있다. 그래서 10년이 넘도록 운전면허증 소지할 일이 없었고 초기에 렌트카 딱 1회(제주서 이삿짐 싣고 나올 때) 탔고 영원히 보관해두고 싶었는데 보상금 10만원에 12년간 무사고 면허증을 오늘 반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