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품은 평범한 작가의 일상에서 나온다
어두문학회 다음 역도 문학 녘 발문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나너 할 것 없이 책을 내려고 한다.”라고 하면서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에 서서 저서 발간을 통해서 표현 욕구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을 향해 경고를 날렸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작품을 쓴 작가들은 거의 모두가 ‘평범한 작가들’이었습니다. 무명의 작가들은 단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서러움을 겪지만 그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감사함과 세상에 작은 변화라도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노력합니다.
한일장신대학교 문학동아리 ‘어두문학회’가 작품집 『다음 역도 문학녘』을 출간하고자 합니다. 이 작품집은 작년에 이어 완주도시문화지원센터의 ‘공공 인 메이드’사업에 선정되어 창작지원금을 일부 지원 받아서 간행됩니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한일장신대 최재선 지도교수를 중심으로 유네스코부산 우수잡지로 선정된 계간 <에세이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 7명을 비롯해 등단의 꿈을 꾸는 예비 작가 11명을 포함하여 총 18명이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문학 녘에 실릴 70여 편의 작품이 큰 기대를 주는 건 무슨 연유일까요. 위대한 작품은 위대한 작가가 아니라 평범한 작가가 일상에서 체험한 아픔과 슬픔, 몸부림과 굶주림을 진솔하게 쓴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창작의 원료는 작가의 아픔과 슬픔입니다. 위대한 시작은 본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분명 때가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오늘도 좌절의 눈물을 원료로 글을 쓴 여러분들의 글이 진정한 의미에서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여러분들이 타고 달려가는 철로의 종착역이 문학 녘일 것입니다.
저는 88년도 <동양문학> 수필로 등단을 하여 90년도에 첫 수필집을 낸 이래로 지금까지 수필집 평론집 이론서 번역서 등 25권의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거의 2년에 한 권씩 책을 썼으니, 지인들은 저의 끈기와 열정에 놀라움을 표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고추 가루 서 말 먹고 물 속 삼십 리를 헤엄친다.’는 남해 사람의 DNA를 이야기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수생수사’, 수필에 살고 수필에 죽는다는 각오로 수필 오직 한 길을 걸어왔다고 말합니다. 수필을 쓰고, 수필이론을 계발하고, 수필 평론을 쓰고, 우리 수필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40여 년 간 줄곧 해왔습니다. 하지만 문학 활동이 마냥 즐거움만 안겨주는 건 아니었습니다. 마감기한이 다가오거나 글을 잘 안 써지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돈도 안 되고 밥도 안 되는 이런 일을 왜 하고 있나 하며 좌절하기도 하지만, 결코 펜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기는 힘들지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난 후의 성취감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이 어찌 저에게만 있었겠습니까, 여러분들에게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순간인들 왜 없었겠습니까. 글을 쓰고 나면 늘 부족하고 모자란 데가 보였기 때문에, 그걸 채우려고 쓰고 또 쓰고 하면서 역량을 키워나갔습니다.
어두문학회 회원들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의지 그리고 좀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 나가려는 작가정신은 어떤 문학회 회원들보다 더 클 것이라 여깁니다. 여러분들이 힘든 시간을 투자해서 만든 꿈의 목록이자 나눔의 목록인 『다음 역도 문학녘』을 읽을 때마다 무릎을 타닥 칠 정도로 그 효용성과 감동성에 감탄하고, 읽는 분들은 누구든지 새로운 울림을 느낄 수 있으리란 확신을 가져 봅니다. 왜냐하면 어두문학회의 작가정신은 인문학적 지식, 그리고 휴머니즘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각의 자동화로부터 대상을 해방시키고, 언어를 부리고, 이렇듯 변용의 기술로 사건이나 사태와 의미적 교합을 이루어 체험에서 울림을 창출합니다. 관계의 질이 차이를 결정합니다. 매 순간 관계를 맺고 책임을 진다는 인식과 관심의 공동체 속에서 피어나는 향기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다음 문학 녘을 향해 달려가는 여러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함께 나누는 가운데서 새로운 접점을 일으키는 객체들은 인식의 반전을 유도할 최적의 매개물로 변주될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우리 삶을 즐겁게 변주해 나가는 여러분들의 가슴 따뜻한 내면 풍경을 들여다보는 데 있을 것입니다. 애정을 가지고 읽어가면 누구나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찾게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문학의 존재 당위를 더욱 뚜렷이 해야 한다는 각오가 문맥 곳곳에 담겨있는 듯해서 기쁩니다. 무엇보다도 어두문학회 회원들이 내는 이 책은 부조리한 현실 상황에 대한 합리적인 사고의 바탕 위에서, 괄호 안에 감금당한 언어들을 구체적으로, 사실적으로 해방시키고 있는 높은 감성의 언어미학으로 빛난다는 점에서 여타 다른 동인지와는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다양한 읽을거리가 웅숭깊은 지성미를 통과하면서 서늘한 감동을 자아내기에 한마디로 여러분들의 글은 짓밟힌 역사의 트라우마를 발굴하고, 되찾는 고된 작업의 결과물로 요약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이 밥으로만 살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인생의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 놓치지 말아야 할 현대인의 필독서가 될 것입니다.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시도가 마음에 듭니다. 벌써 종착역이군요. 이제 내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