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어버이날 단상
매년 어버이날이 되면 은근히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건강하게 계셨기 때문에 친구들도 부러워하였고, 나도 부러움을 사면서 어머니께 꽃을 사 드리거나 선물을 사 드리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러 해 동안 어버이날이 참 속상한 날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이 없어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1930-40년대에 신문기자셨는데 38세에 요절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건강이 나빠지셔서 48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병으로 고생하시며 변변히 치료도 못 받으시고, 자식들 때문에 고생하시다 그렇게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58세면 죽을 줄 알았습니다. 정말 나는 58 살 때 심장병으로 아주 어렵게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60대 중반에 암으로 다시 죽을 고비를 넘겨 벌써 80이 가까워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안에서는 지금 내가 제일 장수한 남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보다 앞서서 세상을 떠날까봐 내심 걱정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어버이날이 부끄럽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고아가 되었으니 부끄러운 날이 되었습니다.
외조부께서는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옥살이도 하셨고, 모진 고문도 받으셨지만 84세까지 사셨고, 큰 이모님도 96세까지 사셨는데 튼튼한 근골을 이어 받으신 어머니가 89세로 일찍 돌아가신 편이라서 우리 형제들은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한 것입니다. 어머니는 당신이 오래 동안 사시는 것보다 건강하게 사시다가 아름답게 운명하시기를 더 소망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길을 기도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에서 어머니를 모시는 것만 효도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품안에 계시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가장 행복할 것이니까요.
우리도 어머니 뒤를 곧 따라갈 테니까요.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따라갈 것이냐가 문제인 것이죠.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습니다. 이제 어버이날에는 아이들이 언제나처럼 우리에게 어버이로 대접을 하겠지요. 꽃도 달아준다고 하겠고, 선물을 사 준다고 하겠고, 먹고 싶은 것도 사 준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장 큰 선물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 주는 것입니다. 사실은 어버이날에 꽃을 달아 주고는 평소에는 속을 썩이는 자식은 차라리 꽃을 달아 주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평소에는 잘하지 못하면서 어버이날만 생색을 내는 자식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도 스승의 날에 제자들에게도 ‘평소에 잘 해라.’라고 언제나 그랬습니다. 지금도 내게 평소에 잘 대해주는 제자들을 보면서 나는 참 복이 많고, 제자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버이날에 꽃을 달고 다니는 것도 아직은 어색하고 부끄럽답니다. 아이들이 꽃을 달아주면 어머니 앞에서 슬그머니 꽃을 빼놓습니다.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나는 어린아이 같고, 손자가 있어도 아직도 어버이로 꽃을 달고 다닐 만큼 늙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른이 계시는데 나는 아직도 철이 덜 들고 불민(不敏)한 초등학생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른의 속뜻이 무슨 뜻인지, 무슨 말씀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그런지 전혀 모르는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처럼 지혜롭지도 못하고, 슬기롭지도 못해서 언제나 실수투성이로 살고 있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머니마저 제 곁을 떠나시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가슴에 꽃을 달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진리의 영을 잘 받아들이면 모든 것에 명오(明悟)가 열려 깨닫게 될 것입니다. 철이 들고, 슬기롭게 되어 사리를 분간할 줄 알고, 영민한 자녀가 되고, 지혜로운 부모가 되며 자상한 스승이 될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배우자가 되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넉넉한 품을 가지고 있는 너그러운 할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기도가 부족하고 믿음이 깊지 않아서 언제나 주님을 실망시켜 드렸지만 예수님께서 보내 주시는 성령을 잘 받아서 어버이날에 떳떳하게 꽃을 받을 수 있는 어버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면서 자식들을 키워주신 어버이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자식들이 섭섭하게 하더라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요즘 세상 살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세상 살다가 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잘 못 한다고 나무라지 마시고 잘못하는 자식들 위해서 기도라도 한 꼭지 더 하십시오. 나도 아버지 어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어려운 세상에 사느라고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또 오늘을 맞이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더 아름다운 꽃으로 축하를 받으십시오. 자녀들이 효성스럽게 올리는 꽃다발로 받으십시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