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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아침 식사 잘하셨습니까?
네, 제가 첫날에 비해서 정말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떨리는 게 많이 좋아졌는데, 그 이유가 우리 성도님들께서 저를 보실 때마다 격려해 주시고, 왜 이렇게 떠냐고 떨지 말라고 해 주셔서 긴장이 많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사실 한국에 있을 때 저만의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제 젊은 날을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었는데,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젊은 날이 끝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 이제 그 계약이 좀 끝나가는 느낌이 드는데..." 제가 빠른 80년생이고 98학번이어서 한국 나이로 어느덧 이제 50살이 다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국에 와서 어제 정말 많은 격려를 받았는데, 그중에 한 분의 말씀이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를 딱 보시더니 격려를 해주시는 겁니다. "아우, 떨지 마시라고." 그런데 제 얼굴을 빤히 보시더니 "그거 참 귀엽네" 그러시는 거예요.
저 이제 50이 다 되어 가서 청년 사역을 은퇴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미국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갑니다. '아직은 귀여운 나이구나.'
또 제가 정말 열심히 말씀을 준비하거든요. 왜냐하면 정말 제 생각이 안 들어갔으면 좋겠어서 다시 보고 다시 보고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어제 사실 거의 잠을 못 잤는데, 제가 좋아하는 예언의 신 말씀 한 권을 다시 다 읽고 잤어요. 말씀 속에서 잘못 전하는 게 있을까 봐요.
다시 한번 부탁드리지만 저는 목사님도 아니고 성경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학자도 아니기 때문에, 제가 드리는 말씀이나 성경 구절은 오직 제가 만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해 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어제 정말 많은 분들이 저를 다독여 주시면서 똑같이 하시는 말씀이 있었어요. 말씀하신 다음에 "그 막내 누나는 어떻게 됐나?" 그러시는 거예요. "나 그 아버님은 그렇게 될 줄 알았어. 그런데 그 엄마 따라간 그 딸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전부 다 그걸 물어보시는 거예요.
제가 그건 준비를 안 했는데, 성도님들이 원하시면 준비해야지 싶어서 어제 내용을 다 수정해서 저희 막내 누나 얘기를 좀 들려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어제 잠깐 말씀드렸던 저희 가계도인데요. 저희 아빠를 따라간 첫째, 둘째 누나와 제가 있고, 저희 엄마만을 따라간 저희 막내 누나가 있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저희 막내 누나를 얼마나 핍박하고 구박했냐 하면, 용돈을 주지 않았어요. "엄마 따라가는 자식은 아빠 자식 아니"라며 용돈도 안 주고 정말 입에 담지 못할 말로 누나를 억압했어요. " 넌 내 자식 아니니까 아빠라 부르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저희 누나가 오직 하나님만을 알기를 바랐습니다. 부모님의 뜻을 모를 때 사람들은 큰 방황을 하고 슬퍼합니다. 부모님이 나이가 많아지셔서 그 뜻을 모르게 될 때를 굉장히 큰 슬픔이라고 표현한 책을 읽은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부모님의 뜻을 모를 수가 없어요.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저희 어머니의 뜻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네가 하나님만 알면 엄마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 저희 누나한테도 마찬가지였어요. 누나는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오직 삼육학교만 나왔습니다.
저희 집이 아무리 멀어도 삼육학교를 다녔어요. 저희가 부천 소사동이라는 곳에 살았는데, 거기서 한국삼육 중·고등학교로 가려면 소사역까지 20분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소사역에서 회기역까지 전철로 1시간 정도 걸리고, 회기역에서 다시 3, 40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했습니다. 순수 이동 시간만 2시간 정도이고, 차가 바로 오지 않으면 3시간 정도 걸렸어요. 거기를 늘 혼자 통학했습니다.
한번은 누나가 학교 다닐 때 기차가 영등포에서 탈선했다는 뉴스에 나왔어요. 난리가 났죠. 누나가 타는 전철이 탈선했는데 누나가 오지 않는 겁니다. 저희 아버님은 누나를 보러 가지 않고 알아서 오겠지 하며 기다렸어요. 저희 어머니만 애가 탔습니다. 누나는 어찌나 씩씩한지 비를 쫄딱 맞으면서 영등포에서 소사역까지 걸어왔어요. 그 정도로 핍박이 심했었습니다.
제가 약사가 되고 저희 아버님이 많이 아프기 시작할 때쯤이었습니다. 그 폭력성과 잔인함이 여전하셔서,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그 태도가 그대로 느껴지는 분이셨습니다. 아버님 앞에서 스스로 말씀하지 않으시면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게 굉장히 부담스러운 때였어요.
저랑 어머니랑 아빠랑 식사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굉장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여보, 할 말이 있는데..."
"뭔데?"
"미진이가..." 그 순간 아버님 인상이 굳어져요. "미진이가 왜?"
"미진이가 의과대학에 합격했어요."
저희 누나가 삼육초, 삼육중, 삼육고를 다녔는데, 하루 통학 시간만 두세 시간 걸리니 공부를 잘하기가 어려웠어요. 집에 오면 맨날 아빠가 구박하는데, 저희 어머니는 그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알기를 바라셨습니다.
누나가 삼육대학교 생물학과에 간 것도 기적이라고 했었어요. 어느 대학도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갔지요. 그런데 입학했을 때 누나가 엄마한테 "엄마, 나 의대 가고 싶어요" 하더랍니다. 성적이 하위권인데 생물학과 간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었는데 말이죠.
문제는 집에서 돈을 지원해 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버님 몰래 생활비를 아껴서 누나 학원비를 대주셨어요. 누나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엄마, 나 할 수 있을까?" 하고 물었을 때 저희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을까요?
"미진아,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며 나아가는 곳은 예수님께서 반드시 길을 내주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한번 그 길로 가보자. 최선을 다하렴."
저는 그때 약사였고 아버님 편에 있었기에, 미안하지만 누나를 많이 무시했었습니다. 그런데 누나는 그 상황에서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삼육대 생물학과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편입학원을 다니며 공부했던 거예요.
아버님은 아버님 편에 선 아이들이 의사가 되길 원하셨지만, 세상적인 욕심과 달리 아버님이 원하던 의사는 어머니를 따라간 딸이 되었습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버님이 아프실 때 약사인 저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는데 누나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아버님을 코치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아버님을 돌본 사람은 어머니이고요.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님, 당신 따라간다고 엄마를 선택한 이 딸이 아빠한테 저렇게 핍박받는데, 하나님 따라가는 것이 절대로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세요."
그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저희 누나는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남편을 만나 지금 제주도에서 병원을 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왈덴스 학교에 간증 요청을 받아서 갔는데, 거기에 막내 누나의 딸이 다니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저한테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의 자녀와 그 자손들까지 지켜주신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어제 잠을 못 잤더니 약간 멍한 느낌이 들어 물을 좀 마시겠습니다.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우수한 성적으로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졸업식 날 마음에 엄청난 허무함이 들었습니다. 4년을 되돌아보니 열심히는 했지만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거예요. 제 공부만 했거든요. 돌아보니 하나님을 위해 떳떳하게 한 게 없고, 친구들에게 야박했던 말과 행동들만 떠올랐습니다. 나 잘되려고 공부한 것밖에 없었던 것이죠.
의과대학을 마치면 원하는 병원과 과를 선택하기 위해 또다시 경쟁해야 합니다. "내가 쟤보다 좋은 곳에 갈 수 있을까? 쟤를 이길 수 있을까?" 저도 모르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에 회의감이 들어 우울해졌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나 고민이 있어."
"뭔데? 엄마한테 말해봐."
"엄마, 나 대학 졸업했는데 진짜 열심히 공부했거든? 그런데 친구가 한 명도 없어. 너무 야박하게 굴었나 봐. 하나님 위해서 산다고 왔는데 솔직히 나 잘되는 것만 고민하고 있어. 너무 허무해. 그런데 내가 이 4년 동안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
그때 아버님이 더 아파지셔서 돈도 못 버시고 집도 가난해졌고, 어머니는 아버님 간병에 매여 계셨습니다. 경제적 능력이 있는 아들은 부산에 가서 4년 동안 얼굴 한 번 못 비췄으니 너무 미안했습니다.
"엄마, 내가 깨달은 게 한 가지 있는데..."
"그게 뭔데? 빨리 말해봐."
"나는 하나님께서 진짜 살아 계신다는 걸 느꼈어. 매 순간 정말 제 옆에 살아 계셔. 그런데 이거 하나 깨달았다면 이 4년이 가치 있을까?"
어머니가 한동안 말을 못 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상이야, 그게 엄마 평생 기도야. 엄마는 그걸 위해서 평생 널 위해서 기도해 왔어. 네가 세상의 모든 것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을 믿는 게 더 가치 있는 거란다. 4년이 아니라 40년이 걸려도 그건 가치가 있는 거야."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저는 신앙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그 결과 저는 다시는 누구와 경쟁하거나 싸우지 말고, 이기려고 하지도 말자고 결정했습니다. 1등도 필요 없고, 나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병원을 선택할 때 내 뜻이 아니라 지경을 넓히라는 예언의 신 말씀을 읽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으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대학 때와 병원에 갔을 때 제가 붙들었던 말씀은 믿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말씀을 읽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첫 번째 신앙 원칙이었고, 무엇이든 믿으면 그대로 된다고 믿는 것이 두 번째 습관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점수를 얻고 교수님 마음에 들 궁리를 했지만, 저는 아침에 눈을 뜨면 말씀과 예언의 신을 읽고 그것을 실천하는 게 하루의 목표였습니다. 성경에서 "친절하라" 하면 친절에 도전하고, "성실하라" 하면 성실에 도전했습니다.
인턴 때 간호사들이 "선생님은 어떻게 이렇게 친절하고 성실하세요?" 하고 물어보곤 했습니다. 저는 해야 할 업무 이외에도 병동을 돌며 할 일을 미리 챙겨서 해주고, 기도 요청을 하시는 분들에게 찾아가 기도해 드리곤 했습니다.
처음으로 내과 병동에 가게 되었는데, 아산병원 VIP 병동에서 피를 뽑으라는 콜이 왔습니다. 저는 인턴 중 피를 가장 잘 뽑는 사람 중 하나였기에 자신 있게 갔습니다.
그런데 병실 분위기가 묘했습니다. 60대 초중반 여성 환자분이 누워 계시고 가족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두 아들이 저를 조심스럽게 보고 있었습니다.
자신 있게 바늘을 찌르는 순간, 환자분이 비명을 지르셨습니다. 너무 놀라 환자분을 안아드리며 사과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아프게 했나요? 이렇게 아프시면 채혈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말씀 잘 드릴 테니 피 뽑지 말까요?"
그때 남편분이 오셔서 "선생님, 놀라셨죠. 제 아내가 특이한 질병을 앓고 있어서 많이 아파합니다" 하셨습니다.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불치 판정을 받고 옮겨오신 간암 환자분인데, 신경통을 극심하게 느껴 건드리기만 해도 견딜 수 없어 하셨습니다.
"그럼 피 안 뽑겠습니다" 하니, 두 아들이 나와서 이불 하나도 조심스럽게 들며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참 다정하고 천사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수건으로 팔을 받쳐 준비해 준 뒤 "선생님, 지금 뽑으시면 됩니다" 하더군요.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피가 한 번에 나오게 해주세요.' 바늘을 찌르자 피가 한 번에 싹 나왔습니다. 간호사에게 가져다주니 "이 병동에서 피 뽑아 오신 분은 선생님이 처음이에요"라며 깜짝 놀라더군요.
며칠 뒤 그 간호사가 대량 관장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관장 기구를 들고 가보니 그 병실이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가족들이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두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준비를 해주어 기도를 하며 관장을 마쳤습니다.
남편분이 "선생님, 의사세요?" 하고 물으셨습니다.
"네, 인턴 된 지 한 달밖에 안 된 병아리 의사입니다."
그러자 옆에 계신 할아버지(남편의 아버지)에게 "아빠, 내가 뭐라고 했어? 의사 맞다고 했잖아" 하셨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아산병원 의료진이 너무 불친절해서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제가 너무 친절하니까 할아버지가 "그런 사람이 의사일 리 없다" 하셔서 내기를 하셨다는 겁니다.
어떻게 의사가 되었는지 물으시기에 "저는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 의사가 되고 싶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뒤로 오셔서 저를 꼭 안아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자를 쓰신다네. 하물며 자네처럼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귀한 청년을 왜 하나님께서 쓰지 않으시겠는가."
관장을 하다가 눈물이 펑펑 났습니다. 환자 보호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거든요. 남편분이 "선생님, 우리 아내 낳을 수 있을까요?" 하고 물으셨습니다. 한 달 된 인턴이 알 리 만무했고, 의사는 불확실한 정보를 말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아버님, 저는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인턴에 불과합니다."
"아니에요. 저희는 선생님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고민하다가 기도했던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아버님, 저는 서울아산병원 가운을 입고 있는 이상 팀원으로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가운을 벗고 그리스도인 의사로서 이야기할 기회를 주신다면,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남편분이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셨습니다.
"내가 목사입니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다가 아내가 병에 걸려 전 재산을 들여 고국에 왔는데, 한국 병원이 차가워 상처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 뒤로 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믿음 있고 선한 사람들이 고통받아야 합니까?' 매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분들 낫게 해주세요. 말씀 한마디면 되잖아요. 아니면 제 믿음이 없어서 그럽니까?'
제가 베드로 같은 믿음이 있으면 낫게 해주실 것 같아서, 어느 날 아침 병동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고 외치려 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차마 그 말이 안 나와서 "안녕하십니까" 하고 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매일 아침 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말씀(예언의 신)을 통해 응답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기도가 즉시 그리고 우리의 소원대로 응답되기를 바라며, 혹시 응답이 늦어지거나 바라지 않은 형태로 응답되면 용기가 꺾이는 시험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으로 현명하시고 선량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언제나 우리가 바라는 바로 그 시간에, 바라는 그대로의 형태로 응답해 주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보다 더 풍성하고 더 좋은 일을 우리를 위하여 주실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지혜와 사랑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뜻에 양보해 달라고 그분께 요구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분의 목적에 흡수되어 그 목적을 이루고자 노력해야 한다."
저는 내가 바라는 대로 실현시키는 것이 믿음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무한한 능력을 믿는 것이며, 그분이 선하시고 오직 사랑이시라는 것을 신뢰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이 진짜 믿음이었습니다.
이후로는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지 않고, 그분의 사랑을 닮은 말과 행동을 보여드리고자 노력했습니다.
어느 날 이 환자분이 치료가 어려워 다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하게 되었습니다. 구급차에 의사가 탑승해야 하는데, 갈 사람이 없어 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흔쾌히 구급차에 탑승하여 그분들과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이동했습니다.
서울대병원에 도착해 두 아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미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던 아들들이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길을 접고 의대 공부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저와 너무 닮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되실 거에요. 왜 우리 엄마가 아파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될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온전히 알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이 아픔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다른 이들에게 헌신하는 사람으로 쓰실지 모릅니다. 그러니 준비하십시오. 억울할지 모르지만, 아플지 모르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젊음을 드리신 청년의 삶을 어찌 쓰시지 않으실 것입니까!"
그렇게 아들들을 보내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외과 중환자실을 돌 때였습니다. 잠도 못 자고 하루 종일 피를 뽑고 드레싱을 하며 안식일도 못 지키니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내가 무슨 그리스도인 의사인가. 이게 무슨 재림청년의사인가요? 내 유익만 구하고 있잖아요.' 불평하고 있을 때 친한 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형, 아산병원에 장은성이라는 성도님이 간이식을 받고 상태가 안 좋으신데 기도 좀 해주라. 외과 중환자실에 계실 거야."
놀랍게도 제가 매일 불평하며 드레싱하고 피를 뽑던 환자가 바로 그 장은성 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모르는 순간에도 일하고 계셨습니다.
환자의 사모님을 만나 매일 인턴 방에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의식이 없고 선망 증상과 감염으로 힘든 상태였습니다.베드로를 순간이동도 해 주실수 있는데,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한 번에 이동시키지 않으시고 차근차근 걸어 나오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느끼게 하시려고 천천히 치료해 주시는 것이라고 사모님을 위로했습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의사로서, 저는 피를 하루에 3-5번 뽑아야 했어요. 뽑을 때마다 이식된 간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분을 창조하신 섭리대로 회복시켜 주옵소서. 그것이 당신의 뜻이라면요." 귀에 대고 "정은성 님, 혹시 들리시나요. 저는 하나님을 섬기는 의사인데요.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세요. 당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을 믿으셔야 합니다"라고 매일 이야기했습니다.
어느 날 들어가 보니 그분이 손가락을 움직이셨습니다. 보드판을 가져다드리니 떨리는 손으로 '계속 기도해 주세요'라고 적으셨습니다.
하지만 다시 패혈증 증세로 위험해졌습니다. 그때 한 선배 여의사가 찾아와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 여의사는 해맑게 "하나님, 이분 3일 안에 낫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달 동안 믿음에 대해 고민했던 저는 속으로 '어떻게 저런 무모한 기도를 하지?' 하며 당황했지만, 사모님은 그 기도에 큰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3일 뒤 제가 다른 병동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바쁜 와중에 차트를 확인해 보니 외과 중환자실에 그분의 이름이 없었습니다. 철렁한 마음에 달려가 보니, 거짓말처럼 3일째 되던 날 회복되어 일반 병실로 올라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벽 피 뽑기 일을 하다가 일반 병실에서 정은성 님과 사모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면도를 하고 깨끗해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은 "의식이 흐릿할 때 한 젊은 의사가 들어와 하나님을 믿으라고 기도해 주던 것이 너무나 큰 힘이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정은성 님은 건강을 회복하셔서 지금은 누구보다 교회를 잘 다니고 계십니다.
그리고 엉터리 같은 기도를 한다고 생각했던 그 선배 여의사는, 지금 제 아내가 되어 있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을 위해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은 늘 잘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제 가정을 이루는 기도에도 응답해 주셨습니다. 저는 "순종의 길을 걸어갈 때 그 길목에서 배우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옛날에 조원웅 목사님 가정의 건강한 삶이 담긴 책을 보시며, "내 아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여인을 허락해 달라"고 그 책을 품고 매일 기도하셨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책에 나왔던 당사자를 제 아내로 보내주셨습니다.
처음에 아내는 거칠고 정돈되지 않은 저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운 주머니에 항상 작은 성경책을 넣고 다니며 짬이 날 때마다 읽는 모습을 보고, "저 남자의 방향성이라면 함께해도 되겠다"고 마음을 열어주었습니다.
제 아내는 의대 시절 거의 항상 1등을 했던 우수한 인재였지만 자랑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아내의 기도가 없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가정의학과 의사가 되기 전, 재활의학과 전공의로 있을 때 첫 환자를 만났습니다. 군대에서 감기약을 잘못 먹었다가 간이 망가지고 뇌 손상(간성 뇌증)을 입은 20대 초반의 청년(박용)이었습니다.
간은 회복되었지만 뇌 손상으로 시야 장애와 사지 협응 장애가 와서 몸을 오징어처럼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의료진은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청년은 너무나 착했습니다. 원망 대신 어머니를 극진히 챙겼고, 몸도 못 가누면서 밤마다 저에게 와서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 일 없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왜 의사가 되셨어요?"라는 질문에, 저는 "세상에 의사는 많지만 그리스도인 의사는 부족하기에 그 길을 가고자 한다"고 전해주었습니다.
그 청년의 어머니가 "우리 아이 낳을 수 있을까요?" 물었을 때, 저는 또 대답하지 못하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착한 아이가 고통받아야 합니까?'
어느 날 밤, 청년에게 찾아가 말했습니다.
"용이야, 세상 사람들은 다 네가 안 낳을 거라고 해. 하지만 선생님이 기도하는 중에, 세상에서 딱 한 사람, 네가 낳을 거라고 믿는 사람을 발견했어. 그게 나야. 선생님이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고 노력할게."
태원할 때가 되었을 때, 저는 성경책과 시계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청년은 저를 보며 "선생님, 저도 의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용이야, 건강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정말 가야 할 방향이 맞다면 더디더라도 포기하지 마라. 반드시 할 수 있다."
얼마 후 제가 외래 진료실에서 정신없이 진료 기록을 적고 있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의 사랑하는 환자 용이입니다. 선생님, 잠깐 나와보세요. 기적을 보여드릴게요."
달려 나가 복도 끝 안과 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청년이 벽을 짚지도 않고 복도 한가운데 똑바로 서 있었습니다. 저를 보며 걸어와 안겼습니다.
"선생님, 저 다 낳았어요. 눈도 보이고 혼자 걸을 수 있어요!" 함께 껴안고 하나님께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 또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저 용이입니다. 저 의과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운동선수 출신에 문과 공부를 했던 아이가,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몇 년 동안 피나는 노력을 해서 의대에 합격한 것입니다.
그 청년은 서울대병원에서 인턴을 마치고, 지금은 자신이 입원했던 서울아산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믿음은 무한한 능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손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제 제 소망은 저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 제 원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세상의 것과 하나님의 것 중 매 순간 하나님의 것을 선택하게 하시고, 저를 놓지 말아 주시옵소서."
여러분,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같아 상처받거나 건강 때문에 속상할 때, 그 기도를 하나님의 음성에 맞춰보십시오. 상상하지 못할 큰 은혜가 함께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저희는 비록 연약하고 믿음이 없지만 당신을 붙드는 그 팔을 놓지 말아 주시옵소서. 우리 성도님들과 저의 기도가 오직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오직 순종을 소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 오직 주님의 나라가 임하옵시기를 사랑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핵심 요약 정리
막내 누나의 순종과 하나님의 은혜
부친의 심한 핍박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어머니의 신앙 교육에 따라 하나님을 우선시하며 자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의대에 편입·졸업하여 의사가 되었고, 가정과 자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신실한 축복과 보호하셨음을 증언함.
참된 믿음의 의미 깨달음 (서울아산병원 인턴 시절)
나의 뜻과 소망을 하나님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선하심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의 뜻에 내 삶을 맡기는 것이 진정한 믿음임을 깨달음.
가운을 입은 의사이기전에 '그리스도인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위로를 전함.
기적적인 치유와 소명의 역사
간이식 환자(장은성 성도):절망적인 상태였으나 끊임없는 기도와 순수한 중보기도를 통해 3일 만에 기적적으로 회복됨.
뇌 손상 청년 환자(박용):완치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중증 환자였으나, 포기하지 않는 기와 격려를 통해 온전히 회복되었고, 이후 영감을 받아 의대에 진학하여 현재 아산병원 의사로 사역함.
배우자와의 만남 및 기도의 응답
순종의 길에서 만난 배우자(여의사)는 어머니가 오랜 시간 책을 품고 드렸던 기도의 응답이었으며, 삶의 방향성이 하나님을 향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최선의 길로 인도하심을 확인함.
결론 및 메시지
내 욕심이나 뜻을 고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순종하는 삶을 결단함.
기도가 더디거나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지라도, 하나님의 음성에 기도를 맞출 때 상상할 수 없는 은혜와 축복이 임함을 강조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