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오색등이 가득한 마당에서 野草 海山, 牛步, 樂山의 모습...09:55:19
대승사의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현재 남아있는 6점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부처와 보살상의 표현은 물론 작품 전체의 격이 높으며 도상의 수도 많아 다른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들의 모본으로 볼 수 있기에 그 가치가 인정되어, 1973년12월31일 보물575호로 지정되었고, 2017년8월31일 국보 제321호로 승격(44년걸림)되었다.
대승사 大雄殿 법당에 들어서면 신도들의 불심으로 정성을 모아 금년에 개금불사(改金佛事)를 마친 석가여래를 주불로 좌우측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과 그 뒤쪽에는 화려한 금박을 입힌 목각 후불탱의 아름다움이 눈길을 끈다. ... 검색해서 가져온 글 (2024.05.14.촬영 野草)
樂山의 수고로 윤필암과 대승사 삼거리에 주차 후 대승사를 향하여 올라간다...09:12:37
"나무아미타불" 바위를 돌아서 소나무 숲 속의 도로를 오른다....09:17:46
*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아미타불에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으로, 염불할 때 외는 소리.
"사불산대승사"의 유래를 적은 비석이 간결하게 서있는 조용한 숲 속으로 걸어간다....09:22:16
개울물 소리가 들리는 건너편 너른 바위는 옛길로 오를 때 쉼터였다....09:24:17
청결한 "상적암"에서 길 가장자리로 오색등을 달아서 봉축행사를 축하하고, 암자 가는 길은 곡선을 그린다....09:26:34
상적암 입구의 "산불감시초소"와 아래의 무지게색 담장의 "해후소" 그리고 멋진 소나무가 자랑스럽다...09:27:56
대승사 일주문에서 樂山, 海山, 牛步, 野草의 모습....09:37:50
四佛山大乘寺 退耕 權相老 書 (퇴경 : 벼슬을 내놓고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음)
# 일주문 천정에 걸린 "일주문 보수 공덕문"과 일주문 해체 복원 불사 백일기도 발원자명) #
*일주문 보수 공덕문 : 대승사는 태백산과 소백산의 永脈으로 이어진 1400년의 역사를 지닌 신라고찰로서 삼국유사에 의하면 천상으로부터 10척(1자=1척≒30.3cm) 크기의 대서에 사불이 조각되어 홍포에 쌓여 내려왔다는 소문이 장안에 퍼져 진평왕이 친히 이곳에 내려와 무수히 절한 후 왕명으로 절을 건립케 해 오늘에 이른 천하명찰로서 당시 고승이신 의상 원효대사가 주석하였으며 고려에 와서는 나옹 무학대사 그 후에도 함허, 동봉선사 등 수많은 선지식이 법통을 이어 오면서 많은 영험을 남긴 대가람으로 한스럽게도 유구한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이 황폐되어 옛 성지의 모습을 잃어가는 중에 불심이 지극한 김보명화 불자님, 유대덕월 불자님의 원덕으로 쓰러져가는 일주문 보수에 적극 후원한 신덕임 불자님을 위시해 이문상, 배동환, 신보현성, 홍청정화, 박묘련화, 김정각화, 이용우, 권기성, 강대광명 불자께 이 불사에 동참한 이차 인연 공덕으로 심중소구 소망이 여의 원만 성취되옵길 기원 드리며 감사한 마음으로 이 공덕문을 남기는 바이다.
불기 2531년 10월 주지 오월달 대중일동 합장 (불기2531- 543=서기1988년)
*대승사 일주문 해체 복원 불사 백일기도 발원자명.. 명단은 생략
문경79명, 서울10명, 부산9명, 마산10명, 대구1명 김해1명 예천1명 경기도2명, 충주2명, 상주4명 계119명
"마음의 평화 행복한 세상" 현수막이 멋진 전나무와 함께 맞이하는 대승사의 아침....09:39:32
대승사 전각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 오며, 개화된 건축술이 간결하고 친근해 보인다...09:40:43
작년에(2023.11.07) 반기며 앞장 섰던 황구 2마리가 일정 거리를 두고 엎드려 있어 반가웠다....09:41:09
대승사 배치도 .....09:42:00
대승사 배치도의 전각명과 전각에 있는 문화재 소장 설명....09:42:03
사불산 대승사의 유래 안내....09:42:09
대형 보리수 나무 그늘을 지나 백련당으로 오른다....09:42:20
"만세루(대한불교조계종 사불산 대승사 종무소)" 돌계단을 올라서 이층 마당으로 오른다...09:43:59
만세루에서 계단을 통하여 3층 마당으로 오르니 대웅전 마당에 오색등이 가득하게 차 있다....09:46:10
대승사를 뒤로하고 윤필암가는 포행길을 올라간다...09:57:23
희미해진 "有無有" 글씨를 짐작한다.....10:22:47
*有無有 :
有有無有滅盡無(유유무유멸진무) 있다가 없다가 멸진하여 없어지면
非有非無顯出現(비유비무현출현) 비유비무가 뚜렷하게 나타나도다.
一相三現亦一相(일상삼현역일상) 하나의 상은 세 가지로 나마타지만 그 역시 하나의 상이니
一相滅盡眞空觀(일상멸진진공관) 그 하나의 상을 별진하면 진공을 보게 되리라.
법희해금강경 제십사 離相寂滅(이상적멸) 중에서... 검색해서 가져온 글.
산속의 포행길은 많이 다녀서 돌이 닦여서 빛이난다....10:04:07
큰 바위 아래 장군수(우물)에 지붕을 하여 관리를 잘하고 있다....10:09:12
대승사의 가장 중심이되는 사불암의 유래....10:09:52
* 일연의 삼국유사 권2, 탑상재4, “사불산·굴불산·만불산 조”에 의하면 “죽령 동쪽 백리쯤 되는 곳에 우뚝 솟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 9년(587년) 갑신(甲申)에 갑자기 사면이 한 길이나 되는 큰 돌이 나타났다. 거기에는 사방 여래의 불상을 새기고 모두 붉은 비단으로 싸여 있었는데 하늘에서 그 산마루에 떨어진 것이다. 왕(진평왕)이 이 말을 듣고 그 곳으로 가서 그 돌을 보고 나서 드디어 그 바위 곁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대승사라 했다. 여기에 이름은 전하지 않으나 연경(妙法蓮華經, 또는 法華經)을 외는 중을 청해 이 절을 맡겨 공석을 깨끗이 쓸고 향화를 끊이지 않게 했다. 그 산을 역덕산(亦德山)이라 하고 혹은 사불산(四佛山)이라고도 한다. 그 절의 중이 죽어 장사를 지냈더니 무덤 위에 연꽃이 피었다.” 고 되어 있다. 대승사 사면석불은 삼국유사의 기록처럼 현재 사불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러한 특이한 형태의 불상은 경주 불굴사지 사면석불과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이 있다. 석불의 높이는 3.4m. 폭은 2.3m에 이르며, 동과 서는 좌상, 남과 북은 입상의 형태를 띠고 있다. 또한 동쪽은 약사여래를, 서쪽은 아미타여래를, 남쪽은 석가여래를, 북쪽은 미륵여래를 새김으로서 부처님 눈으로 보이는 사방의 땅이 모두 불국토 임을 알려주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
* 공덕산의 능선 모양이 E 와 같이 생겨서 가운데 능선 끝에 사불암이 자리를하고 있다.... 검색해서 가져온 글
*우부도(牛浮屠) ...10:11:19
절을 처음 지을 때 어디서 왔는지 소가 한 필 와서 아무리 무거운 짐을 실어 날라도 지치지 않았으며, 사람이 이끌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가고 했다. 그리고 역사(役事)를 마친 후 소는 스스로 죽었다. 사람들은 이상히 여겨 이를 기념하기 위해 부도를 조성하고 牛浮屠라 일렀다. 마치 봉화 청량산의 청량사 삼각우총(三角牛塚)에 얽힌 사연과 비슷하다.
*청량사 삼각우총(三角牛塚) : 원효대사가 청량사 창건을 위해 힘을 쏟고 있을 때 하루는 절 아랫마을에 내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논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논에서 일하는 농부를 만난다. 마침 농부가 소를 데리고 논을 갈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소의 뿔이 셋이나 달려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 소는 무슨 영문인지 농부의 말을 듣지 않고 제 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원효대사가 농무에게 이 소를 절에 시주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였다. 농부는 흔쾌히 뿔이 셋 달린 소를 시주하여 소를 받아 절로 돌아왔는데 신기하게도 절에 온 후로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들었다. 소는 청량사를 짓는데 필요한 재목과 여러 물건들을 밤낮없이 운반하고는 준공 하루 남겨 놓고 생을 마쳤다. 이 소는 “지장보살”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원효스님은 이 소를 지금의 삼각우송 자리에 묻었는데 그곳에서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라고 후세 사람들이 이 나무를 ‘삼각우송’, 이 소의 무덤을 ‘삼각우총’이라 불렀다.
... 검색해서 가져온 글
한 시간만에 시원한 포행길 그늘에서 자리를 잡고 간식을 즐기며 추억의 담소를 나누었다....10:15:23
* 문경시청에서 새롭게 디자인한 이정표를 요소 마다 세워서 매우 만족하다.
숲 속에서 윤필암가는 길에 멀리 운달산의 능선과 건너편의 마당바위 능선의 끝 부분이 보인다....10:16:11
가파른 내리막 포행길은 바위 투성이어서 천천히 땅을 보며 내려온다....10:36:05
신록이 우거진 암벽 아래 아담하고 깔끔한 윤필암이 사랑스럽다....10:37:51
윤필암에 활짝 핀 메발톱 꽃의 군락이 새 색시처럼 다소곳하게 피어서 주변을 아름답게한다...10:39:05
사불전에서 독경 소리가 청아하게 들리고, 아름다운 정원에 쉬면서 주변을 살펴본다...10:41:10
윤필암을 하산하며 진입로에서 올려 본 전경이 예사롭지 않은 고즈늑한 풍경이다...11:15:04
윤필암과 묘적암 삼거리 주차장에 차량이 주차되어 있고, 짙은 그늘 속으로 하산한다....11:15::59
* 윤필암에서 나옹화상(懶翁和尙)의 부도 :
부부바위에서 15분 정도 바위 사이를 더듬어가며 내려가서 마지막 봉우리가 보이는 직전에 왼편으로 갈림길이 있다. 길이 희미해서 무심코 지나가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왼편 희미한 길은 계곡을 따라 편안하게 내려가서 묘적암 부도밭을 지나 묘적암에 이르는 길이다. 처음 만나는 부도가 나옹화상(懶翁和尙)의 부도이다. 명승들은 열반을 하면 다비를 해서 사리를 연고지에 분산해서 부도로 모시기도 했다. 나옹화상은 양주 회암사(檜巖寺)와 인연이 깊어 거기에 부도가 있고, 여기는 출가한 연고지라서 여기에도 부도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옹화상이 입적한 여주 신륵사(神勒寺)에도 부도가 있다. ... 검색해서 가져온 글
삼거리 주차장으로 내리가며, 주변의 나무들이 운치있게 어울리고 마음의 평화에 감사한다...11:20:46
주차장 삼거리에 곧고 높게 자란 소나무가 방문객을 멀리까지 배웅한다....11:29:29
차량으로 이동하여 산행을 마무리한다...11:44:33
중식은 "심가네 설렁탕"에서 선지국과 설렁탕으로....
첫댓글 四月初八日 前日을 기하여 聞慶 最古寺刹인 大乘寺를 찾았다.前처럼 功德池 駐車場에서 古道를 거슬러 가고 싶은데 잦은 雨天으로 풀잎의 이슬이 싫어서 潤筆庵 駐車場에서 鋪裝道路를 따라서 大乘寺로 가는데 가파름이나 步行感이 좋지않아서 쉽게 疲勞感을 느낀다.初八日 行事準備로 路邊은 淸潔하게 除草가 되어서 信徒를 맞이할 滿盤의 準備를 갖추었다.入口에 凜凜한 菩提樹의 威勢를 보면서 뒤돌아보니 그 많던 전나무를 開發이란 美名下에 除去한 것이 너무나 큰 損失로 다가와서 아까운 생각만 든다.콘크리트 白蓮堂을 傳統樣式으로 改替한건 讚辭받아 마땅하고 大雄殿 앞은 五色燃燈이 가득하여 부지런한 菩薩님들은 佛供 올리기에 분주하다.牛步,海山,野草님은 반갑게 大雄殿에 入場하여 主佛님께 多情佛心을 表現하는 모습이 아름답다.이젠 匍行路를 따라 尹弼庵 길로 들어서니 新綠의 싱그러움이 콧잔등을 어루만지는데 不請客인 날파리가 눈 앞에서 戲弄하니 적잖게 신경쓰인다.四佛庵 前 將軍水는 변함없고 사시사철 花壇처럼 丹粧된 尹弼庵은 女僧들의 搖籃처럼 華麗하고 行事準備에 餘念이 없다.駐車場 巖盤에서 休息하고 妙寂庵을 돌아보니 지쳐서 쉽게 抛棄하고 原點回歸를 서둘러 沈家네에서 終了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