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맹학교라는 학교가 있습니다.
학생들 모두가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교입니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 몇 분만 앞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오래 전에 이 학교에 가서 3일 동안 사경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전에서 서울을 오가면서 사경회를 인도했습니다.
처음엔 두려웠습니다.
‘어떻게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강당 안에 중고등부 학생들 60여명이 앉아 있는데, 찬양하는 순간, 저는 그냥 은혜 가운데 빠져 버렸습니다.
그때 그 학생들이 불렀던 찬양을 잊지 못합니다.
‘나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저는 그 찬양 소리를 들으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울었습니다.
앞을 못 보는 데, 나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그 찬양 소리는 진동하는 것 같았습니다.
목이 터져라 찬양하는데, 지금도 생생합니다.
모든 학생들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이었습니다.
피아노 치는 학생도 역시 시각 장애인이었는데, 악보도 없어요.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치는데,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그냥 이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대로,
앞을 볼 수 없는 이대로 만족합니다라는 찬양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오늘 말씀을 깨닫고 체험했어요.
그렇구나, 앞을 볼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지만, 맹인이라는 가시가 얼마나 저들을 찔렀을까요? 그러나 이제 그 가시가 간절하고 강한 믿음의 사람들로 만들었어요.
상처는 훈장이 되고 가시는 은혜와 축복이 되어버렸어요.
우리나라 목사님 중에 신구약 주석책을 다 쓴 분이 계십니다. 이상근 목사님이십니다.
그 분의 간증입니다. 어려서부터 발 뒤꿈치가 뜨끔거려서 나가서 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책상 앞에서 책을 읽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나중에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발 뒤꿈치에 영 점 몇 미리, 눈에 보일까 말까한 쇠 까시가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 가시 때문에, 그 가시가 나로 하여금 책상 앞에 앉아 있게 했고, 그 가시가 나로 하여금 주석책을 쓸만큼 강하게 만들었다고 간증하시는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약점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나 문제가 있고 상처를 갖고 있지요.
그러나 오늘 말씀을 붙잡고 그 약점과 문제와 상처를 뒤집어 보면, 그 가시는 곧 은혜가 되고, 곧 강함이 되고 곧 축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바울 사도는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눈병인지 간질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를 위해서 결삭적으로 3번 기도했습니다.
어떤 성서학자는 40일 씩 3번 기도했다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만,
그 문제 때문에, 그 상처와 약함 때문에 기도할 수 있다면 이미 그 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갔으니 그것은 축복이지요.
바울 사도는 그 가시를 사랑하고 자랑해야할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첫 째가 자신이 교만해지지 않기 위해서였음을 깨닫지요. 너무 많은 역사를 가져온 바울 사도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교만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가시가 콱 찌르면 그는 쓰러졌고 겸손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둘 째, 그러니 그는 그 가시 때문에 주님 앞에 가까이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약함이나 문제나 상처를 만나면 확인할 것은 이것입니다.
“이건 무슨 뜻이 있는 게 확실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까요.
우리가 만난 곤고한 일 속에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무슨 뜻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믿음으로 버틸 수 있겠지요.
우리의 약함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이유도 그 약함 때문에 주님 앞에 더 가까이 가게 되고, 그 약함 때문에 더 겸손해지게 되는 것임을 고백하며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