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과의 전쟁
이병옥
집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남짓 달려가면,
남편 고향에 조상님께 물려받은 손바닥만 한 우리 밭이 있다.
농사짓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계속 묵혀두었더니
잡초가 우거져 마치 산처럼 보이던 곳이었다.
몇 년 전, 그 땅에다 평소 꿈꾸어오던 주말 농장을
만든다고 포크레인으로 갈아엎는 대공사를 감행하였다.
우리 부부는 돌을 골라내고 이랑을 만들고 그 동네에사는
바쁜 형님을 쫓아다니며 씨앗 심는 방법 등을 배웠다.
형님께서는 묵밭이라 도저히 풀 감당을 못할 거라고,
빈 밭에는 먼저 제초제를 뿌리고 심으라며 약통을
내어주셨다. 하지만 이를 마다하고 강낭콩, 옥수수를
비롯하여 각종 씨앗을 구해다가 그냥 한두 고량씩 심었다.
고구마, 고추, 부추, 토마토 싹도 심었고 밭둑에는 단호박,
맷돌호박도 심었다.
모종하는 날은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정성스럽게 심었다.
힘든 만큼의 보람과 기쁨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벌레구멍 숭숭하고 까칠해도 비료나 농약은 일레 사용하지 않고
신토불이 유기농 농사를 지으리라 야무진 다 짐도 했다.
가까운 이웃들을 만나면 농사짓느라고 바쁘다고,
따지고 보면 교통비도 안 나온다고 엄살을 떨며 은근슬쩍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들과 나누어 먹을 생각을 하니 마냥 신나고 즐거웠다.
포크레인으로 뒤엎어 놓은 땅은 생각보다 돌맹이가 많아서
그 돌을 모아다 둑을 만들었다.
하루 종일 밭에서 돌만 주워내는 것을 보고, 연세 지긋한 동네
아주머니께서 한마디 하신다.
놔두면 돌이 오줌을 싸서 농사가 더 잘된다고
이리저리 돌려놓으며 심으란다.
말씀이 재미있어서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호미 끝에
자꾸 거리는 게 신경이 쓰인다.
도저히 못 본 척 두고 넘어갈 수가 없다.
씨앗을 뿌릴 때는 물론이려니와 모종하고 풀 뽑을 때도
돌 주워내기 작업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정성으로 심어놓은 집으로 왔다가 며칠 후에
다시 밭에 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였다.
자라야 할 작물은 신통치 않고 계속되는 가뭄에도 손톱이
안 들어갈 정도로 풀만 가득 나와 있었다.
그후로는 주말마다 밭으로가서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씨 심으랴 김매랴,돌 고르랴 고춧대 세우랴,
잠시도 쉴 틈 없이 일을 했다.
장갑을 끼었는데도 손바닥은 물집이 생기고, 집에 오면
어깨, 팔다리 안 아픈 곳 없이 한 이틀 동안은 끙끙
생몸살을 앓아야 했다.
간혹 주말에 바쁜 일이 있거나 날씨가 궂거나 해서
한두 주간을 건너뛰면 그때는 온통 풀밭이 되어버린다.
혼자 농약을 안 치니까, 고랑에다 비닐을 씌우고 심은
고구마와 참깨 외엔 제대로 된 게 없다.
매주 와서 풀밭만 매는 우리 부부가 신기한지 밭 가운데
들어와서 구경하는 마을 할머니꺼서 웃으신다.
“미친× 엉덩짝만 한 땅에다가 심기는 많이도 심었구먼.”
하시며 아무튼 거름 안주고 농약 안치면 아무것도 안 되니까,
비료도 농약도 줘야 된다고 친절하게 당부당부하신다.
하는 수 없이 농협에서 계분과 복합비료를 사다가 한 움큼씩
주었다.
그런데 그 거름조차 극성스런 잡초가 다 먹어 치우는지
여전히 풀만 무성하다.
이번 주는 이쪽 고랑을 메고, 다음 주는 저쪽 고랑을 맨다.
또 다시 이쪽저쪽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김매기작전을
나는‘풀과의 전쟁’이라고 불렀다.
쑥, 바랭이, 쇠뜨기, 삑삑이, 며느리밑씻개, 망초, 비듬,
애기똥풀, 논쟁이, 쇠비름 등 이름조차 다 헤아릴 수 없다.
처음에 형님이 제초제를 뿌리고 심으라고 할 때
못 이기는 척 말을 들을걸, 공연히 고집을 피웠나 솔직히
후회도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드디어 첫 고추를 땄다.
바구니에 담긴 빨간 고추가 대견스럽다.
그러나 말리는 작업 또한 만만치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우리가 고추만 따오면 다음날부터
비가 왔다.
옥상으로 들여놓고 내놓고 하며 물렁물렁한 것을 골라
버리는 일이 썩은 고추 이상 속상하다.
고민 끝에 전기장판을 구입했다.
계속되는 장마에도 고추는 따끈따끈 장판 위에서 잘
말릴 수 있었다.
나중에 여름내 말린 고추 값보다도 더 비싼 전기요금을 내고
웃었지만....
이번엔 폭우가 쏟아지고 태풍 피해로 TV뉴스마다 떠들썩하다..
그래도 남의 동네 얘긴 줄 알았다.
밭에 물이 찼다고 시골서 연락이 왔을 때만 해도 심각성을
못 느꼈다. 그러나 날이 갠 뒤에가본 나는 맥이 탁 풀려버렸다.
그동안 애써 가꾼 들깨, 참깨, 고추가 절반 이상 쓰러졌고
그나마 서 있는 것도 시들시들해져버렸다.
원래 다랑논이었던 것을 포크레인으로 파서 밭을 만들었으니
물 빼기를 해주어야 된다는 걸 전혀 몰랐던 것이다.
며칠 동안 물에 잠겨 있다가 불볕더위가 내리쬐니 농작물은
다 죽어가고 있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가슴도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옛말에 모든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더니,
농사는 근처에 살면서 어린아이처럼 항상 관심으로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 해, 머릿속으로 그리던 주말농장의 꿈은 처참히 무너졌다.
그러나 돌아보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지금은 시장에 팔러 나온 시골 아낙네들의 채소 보따리를 바라볼
때면 버릇처럼 값부터 알아본다.
비싸다, 싸다 가격을 따지려는 게 아니라, 땀 흘려 농사짓는
농민들이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그들에게 호박 하나, 옥수수 몇 이삭을 얻어도 진심으로
고마워할 줄 알게 되었다.
또한 농약 안치고 농사짓는다는 게 힘들다는 걸 실제로
경험했기에 100% 유기농 농산물도 별로 안 찾는다.
그저 상추 한 잎, 감자 한 개, 파 한 뿌리에도 누군가의
땀과 정성이 깃들었다는 걸 떠올리며 우리 식탁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감사할 뿐이다.
가끔 숨이 치받히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의 김매기작전,
바로 풀과의 전쟁이 떠올려질 때면 혼자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농사는 아무나 짓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