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51장]
3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딸 바벨론은 때가 이른 타작 마당과 같은지라 멀지 않아 추수 때가 이르리라 하시도다
34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하며 나를 빈 그릇이 되게 하며 큰 뱀 같이 나를 삼키며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으니
35 내가 받은 폭행과 내 육체에 대한 학대가 바벨론에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시온 주민이 말할 것이요 내 피 흘린 죄가 갈대아 주민에게로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예루살렘이 말하리라
3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네 송사를 듣고 너를 위하여 보복하여 그의 바다를 말리며 그의 샘을 말리리니
37 바벨론이 돌무더기가 되어서 승냥이의 거처와 혐오의 대상과 탄식거리가 되고 주민이 없으리라
38 그들이 다 젊은 사자 같이 소리지르며 새끼 사자 같이 으르렁거리며
39 열정이 일어날 때에 내가 연회를 베풀고 그들이 취하여 기뻐하다가 영원히 잠들어 깨지 못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0 내가 그들을 끌어내려서 어린 양과 숫양과 숫염소가 도살장으로 가는 것 같게 하리라
41 슬프다 세삭이 함락되었도다 온 세상의 칭찬 받는 성읍이 빼앗겼도다 슬프다 바벨론이 나라들 가운데에 황폐하였도다
42 바다가 바벨론에 넘침이여 그 노도 소리가 그 땅을 뒤덮었도다
43 그 성읍들은 황폐하여 마른 땅과 사막과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되었으니 그리로 지나가는 사람이 없도다
44 내가 벨을 바벨론에서 벌하고 그가 삼킨 것을 그의 입에서 끌어내리니 민족들이 다시는 그에게로 몰려가지 아니하겠고 바벨론 성벽은 무너졌도다
[설교]
오늘 본문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때를 ‘추수의 때’라고 부릅니다. 추수의 때란 곧 타작마당을 밟아 곡식을 터는 때를 가리킵니다. 이때 곡식을 털기 위해서는 반드시 땅을 평평하게 다져야 합니다. 발로 땅을 잘 밟아서, 땅을 평평하게 다지는 것이죠. 이러한 땅을 다지는 것을 모티브로 삼아, 하나님께서는 이제 바벨론을 밟고 타작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추수의 때가 곧 예루살렘에 대한 보복과 직접 관련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3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네 송사를 듣고 너를 위하여 보복하여 그의 바다를 말리며 그의 샘을 말리리니.”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추수의 때’는 상당부분 하나님의 보복하심과 관련됩니다. 이때 말하는 ‘보복’이란 단순히 하나님께서 복수극을 펼치신다?! 이런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서 말하는 ‘보복’이란 하나님께서 온갖 불의와 폭력으로 인해 신음하는 예루살렘을 신원하여주신다는 뜻을 갖습니다. 신원이란 아주 쉽게 말하면 ‘원통한 일을 풀어준다’는 뜻이죠. 그냥 단순히 하나님께서 보복심 때문에 일을 벌이시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예루살렘의 원통함을 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지금껏 내 백성, 이스라엘이 겪었던 수많은 고통에 대한 공의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본문을 보면 지금껏 예루살렘이 당했던 고통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본문 34~35절이 그러합니다. 여기서 바벨론은 아주 먹성 좋은 큰 뱀처럼 묘사됩니다. 본문 34절을 보면 바벨론을 일컬어 ‘큰 뱀’이라고 부르는데, 이때 ‘큰 뱀’은 히브리어로 ‘타닌’이라고 부르는 괴물입니다. 성경에서는 주로 리워야단과 같은 큰 바다짐승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사실상 성경 전반에 걸쳐 이 ‘큰 뱀’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훼방 놓고,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 놓는 존재로서 나타납니다. 그런 짐승의 무리의 대표격이 곧 바벨론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계속해서 폭행하고 학대하는 것을 일컬어 ‘먹는 것’, ‘삼키는 것’에 비유하는데, 그만큼 이 뱀은 잔혹한 짐승이라는 사실을 이 말씀이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큰 뱀조차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보복하시는 날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게 만드십니다. 본문 37절 이하가 바로 이에 관한 내용이죠. 본문 37절에서 바벨론은 돌무더기가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돌로 지어진 그들의 성곽이 모두 무너질 것을 암시하지요. 또한 무너진 성곽 안에는 승냥이 떼들이 가득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승냥이는 히브리어로 ‘타님’이라고 불리는데, 앞선 ‘큰 뱀’을 일컫는 말인 ‘타닌’과 아주 흡사합니다. 말하자면 이 승냥이 떼들은 앞선 큰 뱀처럼 매우 사납고 잔혹한 짐승입니다. 큰 짐승이 무너지자 더 큰 짐승이 들어선다?! 마치 오늘날도 버젓이 일어나는 세상의 이치와 같습니다. 악이 무너지면 그 자리엔 반드시 새로운 악이 들어선다 … 그리고 결국 그 무너진 성읍 안에는 탄식소리 밖에는 남지 않는다?! 정확히 세상의 이치입니다.
이어진 본문 38절도 보면 바벨론을 일컬어 또 다시 다른 짐승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본문 38절, “그들이 다 젊은 사자 같이 소리 지르며 새끼 사자 같이 으르렁거리며.” 여기서 바벨론은 또 다른 짐승인 ‘젊은 사자’에 비유됩니다. 젊은 사자가 소리를 지른다?! 이것은 마치 바벨론이 가진 위용과 기상을 뽐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때 바벨론이 가졌던 위상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 39절을 보면 이 젊은 사자는 결국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베푸신 연회에 참여하였다가, 그만 흠뻑 취하여 영원히 잠들게 됩니다. 술에 흠뻑 취하여 잠이 들었는데, 더 이상 깨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더 이상 잠에서 깨지 못하는 사자가 어찌 두려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러한 젊은 사자를 직접 끌어내어 도살장으로 끌고 가십니다. 본문 40절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 사자를 마치 어린 양과 숫양과 숫염소와 같이 도살장에서 하루아침에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복하시는 추수의 때는 이처럼 눈 깜짝 할세 모든 것이 일어납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젊은 사자처럼 소리 지르며, 새끼 사자처럼 으르렁거렸지만, 하나님께서 보복하시면 그야말로 모든 것은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 하나님께서 추수하시는 그때를 소망하시길 바랍니다. 결국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 땅의 모든 죄와 악을 심판하기 위하여, 그때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부터 최후 심판자가 되어, 우리의 모든 억울한 것, 원통한 것을 신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그 날을 기대하며, 오늘 하루도 언제나 우리 주님의 길로 걸어가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길 바랍니다. 지금은 비록 괴롭지만, 그러나 그 날에는 반드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기뻐 영접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다가올 추수의 때를 기억하며, 이 땅에서의 모든 삶을 언제나 주 앞에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