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페르시아 여행: 낙쉐 로스탐(Naghshe-Rostam)
무릎 꿇은 로마 황제
'영웅들의 조각'이란 뜻의 이곳은 페르세폴리스에서 조금 외곽에 있다.
거대한 암벽에 오른 쪽부터
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1세, 아르타 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2세의 순서로 암굴묘가 있다.
각 묘실의 입구는 십자형으로 뚫려 있고 아흐라 마즈다(조르아스타교의
최고신)와 묘비명이 새겨지고 아래에는 거대한 기마전투도가 부조되어 있다.
<로마 왕의 무릎꿇는 모습-로마 역사엔 없는 장면>
높이 7m에 이르는 기마전승도는 BC 260년 에데사에서 사로잡힌
동로마제국의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사산조 페르시아왕 샤프르 1세 앞에 무릎을 끓는 모습,
사산조 시대 왕들의 위풍을 보여주는 유적이라 한다.
이긴 자의 논리로 씌여진 세계사가
이곳에 오면 조금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
어느 것이 더 진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양면을 다 볼 뿐이다.
수리를 하느라고 그 모습이 온전히 보이지 않아서 답답했지만...
페르시아의 흥망 성쇠
페르세폴리스 근처를 보고난 기분은 착찹하였다.
제국의 멸망이 이리도 허망한 것인가?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수많은 전쟁을 치뤄야만 했을까?
그 흥망 성쇠의 끈을 이어 본다면
BC 8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르미아호로부터 자그로스 산맥을 가로질러 남하한 이란 민족의 한 지파가
수사 북동쪽 파르수마슈에 정착한 것을 기점으로
BC 700년에 아케메네스조의시조 아케메네스가 민족의 수장이 된다
그의 아들 테이스페스는 파르스지방을 영유하여
그의 현손 키루스 2세는 BC 550 년 메디아의
수도 에크바타나를 점령 페르시아제국을 일으킨다.
이어 바빌론을 무혈점령했고 이스라엘을 해방,
유대인들의 종교나 관습에 간섭하지 않으며 다양한 문명을 받아들였다.
그는 동방원정에서 전사했으며
아들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를 정복 시켰고 그의 원정 중에
가우마타가 동생 바르디아의 이름을 빌려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오다가 시리아에서 자살한다.
다리우스1세는 이 기회를 잡아 가우마타를 비롯한 세력을 평정한다.
(이 사실은 베이스툰의 다리우스 비문에 잘 나타나 있다)
왕의 귀와 왕의 눈을 두어 중앙과의 연락을 원활케 했으며
페르세 폴리스에 봄의 궁전, 수사에 겨울 궁전을 두어 힘을 과시했으며
2400km에 이르는 왕의 길을 건설하여 역마다 빠른 말을 바꿔타고
중앙 정부의 명령을 신속히 전달케 했다.
이 도로는 상품 교역로로도 이용되었다.
다리우스, 크세르크세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등 3대에 걸쳐
그리스와 전쟁을 시도했으나 크세르크세스는 궁정내의 음모로 살해,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2세도 제위 수십일 만에 암살 된다.
동생 다리우스 2세가 즉위하자 동생 키루스가 반란을 일으켜 실패하고 전사한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3세시대에는 이집트의 반란이 계속되었고
다리우스 3세에 이르러 알랙산더에게 유린당했다.
이렇게 대 제국 페르시아는 200년(BC550-330)을 주도하다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잡혀오는 로마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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