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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상트페테르부르크 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열시이나 아직 해가 넘어가지 않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북위 60도에 위치하고 동경 30도에 위치하며 서울보다는 7시간이나 늦게 가는 곳이다.
숙소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쪽으로 30여키로 정도 떨어진 푸시킨 시 근처에 있는 숲속에 있는 호텔이라고 한다.
공항도 외곽에 있고 숙소도 외곽에 있어서 숙소로 가는 길을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데 들판에 엷은 안개가 끼어 있어서 주변의 풍경이 아스라하게 느껴진다.
페테르부르그 공항에서 본 노을
숙소로 가는 길...안개가 엷게 끼어 있어서 몽환적이다.
숙소는 말 그대로 앞에는 끝이 없는 넓은 들판이고 뒤쪽은 숲으로 우거진 곳으로 숙소에 도착하니 11시로 아직 환하지만 주변을 들러보는 것은 내일 아침으로 미루고 우선 짐을 풀고 잠자리에 들어가는데 우리 일행 중에 두 사람이 배탈이 난 사람과 컨디션 저하로 아프다고 한다.
이제 여행이 시작하는데 이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밀려온다. 다행히 아침이 되니 배탈도 가라앉고 컨디션도 회복이 되어서 다행이다.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서 2시나 3시가 되면 잠이 깨게 되는데 그 시간이 한국시간으로 8시 9시가 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어서 뒤쪽 숲속으로 가니 자작나무와 붉은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그 아래로 길이 나있으며 연못과 작은 도랑들이 있으며 아래는 이름 모를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숙소 뒤편에 있는 정원과 숲들
아파트 같은 호텔의 이름이 포템킨이라고...포펨킨이라는 이름은 러시아 장군의 이름이며 같은 이름의 전함도 있었고 영화도 만들어졌다.
호텔 뒤편의 모습이다.
나는 여행을 가면 도심을 가든 어디를 가든 잠을 자는 숙소의 주변을 새벽에 둘러보는 습관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일행들에게 숙소 뒤쪽이 너무 아름다우니 구경하러 가자고 하여 관광을 출발하기 전에 30여분 동안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좋아 한다.
이번 여행에서 이 호텔에서만 유일하게 이틀 밤을 자게 되는데 이곳에서 하루를 관광을 하고 내일 새벽 핀란드로 떠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침에 나설 때 가방을 싸지 않아도 된다. 여행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가방을 그대로 두고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이 덜어지는지를 알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관광은 하루로 오전에는 여름궁전을 보고 오후에는 아르미티쥐 박물관과 카잔 성당, 넵스키 대로, 네바 강에서 유람선을 타는 것으로 일정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200여년 동안 러시아의 수도였던 만큼 볼 것도 많아서 사실 이삼일 머물면서 구경을 하여도 다 못할 정도로 볼거리가 많은 도시이나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지가 노르웨이 이므로 그냥 지나가는 길에 경유하는 코스일 뿐이다.
페테르 부르그 동영상 유투브로 보면 큰 동영상을 볼 수 있음
사실 우리가 러시아에 대해서 그리 아는 바가 없다가 보니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레닌그라드였다는 정도만 알뿐 자세한 것은 잘 모르기 때문에 이전에서도 언급했지만 비행기가 지나가기 때문에 들르는 곳으로만 생각했지만 여행을 끝내고 인터넷을 통해서 자료를 찾다가 보니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만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01년 러시아의 제정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大帝)가 도시의 건설을 발표하여 1703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712년 러시아의 수도로 삼게 되었는데 이 땅은 원래 8~9세기부터 러시아의 노브로고드라는 공국(公國)의 땅이었으나 1611년에 스웨덴에게 빼앗겼다가 표도르 대제가 북방전쟁을 통해서 확보하고 이곳을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으로 만들기로 결심하여 수도까지 삼게 되었는데 이곳은 본래 척박한 늪지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많은 운하를 파서 물을 빼면서 다리를 놓아가면서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이 도시를 건설할 때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죽은 사람의 시신을 땅에 그대로 묻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도시를 뼈 위에 세운 도시라고 하며 이 도시는 돌이 귀하기 때문에 이 도시로 들어오는 사람이나 배들은 무조건 돌을 가져오게 하여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도시의 운하가 400여개라고 한다
모스크바의 바실리 성당처럼 생긴 이 성당은 피의 성당으로 정식 명칭은 피 흘리신 구세주 교회로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테러로 숨진 자리에 아들인 알렉산드르 3세가 세운 교회로 바실리 성당을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사진은 나무백과)
이 도시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는 10살에 왕위에 올랐으며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표트르 대제는 권력 다툼으로 가족과 친척들이 서로 살육을 하는 것을 모스크바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고 한다.
왕위를 계승한 지 15년이 지난 1697년, 표트르 대제는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절단을 이끌고 유럽 방문 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표트르 대제의 유럽 방문은 사절단의 규모도 컸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유럽에 머문 기간이었다고 한다.
열 살에 왕위에 올랐던 표트르는 키가 201 센티미터였다고 하며 그 당시 러시아 남성의 평균키가 155 센티미터니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귀족들이나 외교사절들에게 술을 강제로 먹이기로 유명해서 술을 먹다가 도망을 가면 잡아오는 근위병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러시아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황제가 이 황제이고 그 다음이 예카트리나 여제이다.
표트르 대제와 사절단은 18개월 동안이나 유럽에 머물렀는데 표트르 대제는 유럽의 선진 문화를 둘러보며 노동자로 분장을 하여 노동 현장에서 노동일을 하고 조선소에서 배를 만드는 일이나 무기를 만드는 일 그리고 심지어는 의술 쪽에도 관심이 있어서 수술이나 치과(齒科)의 일도 배웠다고 하며 러시아로 돌아와서 귀족들의 이빨도 빼 주기도 했다고 한다.
러시아로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복장을 유럽식으로 부꾸고 남성은 턱수염을 기르지 못하도록 했다고 하며 러시아를 선진화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러시아는 선진화된 유럽과는 많이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표트르 대제는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핀란드 만에다 도시를 세우고 아예 이곳을 수도로 삼았는데 처음에는 귀족들이 이곳으로 오는 것을 반대했으나 강제로 이주시키면서 도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바 강변에 있는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로 이 도시의 수호성인이 베드로와 바울이기 때문에 두 이름을 합하여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고...
이 도시는 수많은 운하와 400여 개를 넘는 다리가 있는 이 도시는 ‘북쪽의 베네치아’라고 불려지는데 이 도시의 모델은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도시는 운하로 따로 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수많은 섬들이 운하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인 셈이다.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수도를 옮긴 표트르 대제는 도시 건설에 무척 열정적으로 매달렸으며 도메니코 트레치니라는 건축가를 통해서 나무로 되어 있던 요새들을 돌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으로 수많은 건축물을 지었다고 한다.
오전에 우리가 가는 여름궁전도 표트르 대제에 의하여 지어진 건물인데 유일하게 화려하게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표트르 대제는 이 도시를 건설할 때 공사현장이 잘 보이는 곳에 오두막을 짓고 거기에서 생활을 할 정도로 검소한 생활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인데 이렇게 화려한 건물을 짓게 한 것은
유럽을 방문했을 때 베르사유 궁전을 둘러본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 왕가의 위용을 과시할 목적으로 유럽에서 가장 크고 호화스러웠던 베르사유 궁전보다 더 넓은 궁전을 건설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름궁전은 핀란드 만이 보이는 곳에 있는데 7층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폭포, 64개의 분수, 금으로 도금한 조각과 장식품으로 꾸며 놓은 궁전은 그 면적이 800만m2가 넘는다고 한다.
여름 궁전은 규모는 물론이고 건물과 조형물, 산책로 등 대부분이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과 비슷하다고 한다.
여름궁전에는 분수가 유명한데 겨울이 길다가 보니 분수를 가동하는 시간도 물이 얼지 않는 기간이 짧아서 러시아를 여행하려면 겨울보다는 여름이 더 낳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여름궁전 개념도
우리는 건물 아래만 보았는데 그것도 한시간 정도.. 위에도 이런 정원이 있는 줄도 모르고...
이 도시 이야기를 너무 길게 했는데 이 도시와 더불어 또 한 사람 예카트리나 여제이야기가 있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여행을 다녀와서 러시아 역사를 읽어보았는데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질곡 속에 살았으며 목숨이 파리목숨 같았는지, 그리고 몽고의 칭기즈칸이 유럽을 얼마나 잔인하게 유린하였으며 특히 러시아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받았는지...
누구나 지금까지의 인류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를 보게 되면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과 현대에 태어난 것에 감사를 하게 될 것이다.
숙소에서 여름궁전까지는 한 시간 정도의 거리로 넒은 초원을 가로질러 가는데 주변에 보이는 풍경은 뉴질랜드 같은 초원들과 초원에 피어 있는 노란 꽃들이 이곳이 북위 60도의 추운 곳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인데 파란 담장 너머는 공동묘지로 오늘은 꽃을 바치는 날이라고 한다.
여름 정원 주변에 보이는 모습
오래된 도시 답게 나무들이 무척 크다 그리고 도로도 넓고...
가이드가 입장권을 사는 동안...늦으면 입장권을 사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숙소에서 여름궁전에 가는 길...가이드가 이 도시의 역사에 대해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중의 하나는 현지 가이드나 메인 가이드나 성실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는 것이다.
여름궁전에 도착하니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고 안에 들어가니 화려한 건물이 있고 그 계단 아래 분수대와 아름다운 정원들이 펼쳐져 있어서 저절로 탄성이 나오게 된다.
궁전의 뜰에서 면 아래 있는 분수대와 정원들 그리고 핀란드 만이 보이는데 여름 궁전 중앙에 있는 메인 분수대는 아직 물이 나오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물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오전 11시가 되어야 물이 나온다고 한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구경을 하고 모이라고 하는데 한 눈으로 둘러보는 것도 시간이 모자라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보이는 계단식 정원들과 분수들...정원의 형식은 프랑스식과 이탈리아식이 혼합되어 있다.(조경에 조금 관심이 있어서 정원의 형태에 대해서 조금 알다가 보니 아는 척)
들어가는 입구에서 아래쪽으로 분수들이 있지만 궁전 뒤쪽으로도 바다쪽 정원보다 더 큰 정원이 있지만 앞에 있는 정원만 보게 되는데 참으로 아쉽다.
중앙에 있는 분수대는 삼손이 사자의 입을 찟는 황금동상이 있는데 사자는 스웨덴을 의미하는데 스웨덴 왕가의 상징이 사자이기 때문이다.
아직 분수가 나오지 않아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열한 시에 나온다고
여러 종류의 분수들이 곳곳에 많이 있고 이름도 다르며 모양도 다 다르다.
이 곳에는 용의 입을 찢고 있는 동상이 있다.
체스 분수라고 하며 수리 중이라고...여름궁전도 2차대전 때 독일군이 쳐들어와서 궁전의 금과 보석들을 다 뜯어갔는데 이 석상들은 지금 파여진 곳에 묻어 두어서 약탈을 면했다고 한다.
작은 미니기차를 타고 이 곳을 볼 수 있다고 ...넓다는 이야기
여러가지 분수들과 기하학적으로 만들어진 정원들
이 동상은 표트르 대제의 동상이라고
이 뒤가 핀란드 만으로 바다이다.
건너 편에 초고층 건물이 신축되고 있는 중으로 발전하고 있는 러시아의 모습을 상징하는데 롯데빌딩 만큼이나 높은 건물이라고...
삼손분수..사자의 입을 찢고 있다.
감상할 시간도 없이 이곳저곳 다니다가 보니 시간이 다 되어서 출구 앞에 모여서 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정말 아쉽다.
언제 다시 이곳에 또 오겠는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노르웨이 일정을 줄이든가 여행일정을 늘려서라도 러시아에서의 일정이 더 많아서 좀더 많은 것을 보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궁전 밖에는 이런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있는데...만국 공통이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인형인 마트로시카 인형 수천만원에서 몇 천원까지로 이런 곳에서 파는 것은 불량품이라고 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중으로 우리 뿐만 아니고 한국관광객들도 많이 보인다....
북유럽이 대세라고 하더니
호텔 뒤편의 모습이다.
숙소에서 여름궁전에 가는 길...가이드가 이 도시의 역사에 대해서 강의를 하고 있다.
감상할 시간도 없이 이곳저곳 다니다가 보니
첫댓글 숲길이 단아하고 호젓하게 보입니다. 멋집니다.
영국 프랑스 이태리등. 그당시 선진사회를 모방한 도시라고 들었습니다.
전부 새건물 새동상. 이쁘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 이름. 레닌그라드. 1917 년 레닌의 볼세비키 공산주의 혁명. 시월혁명이 일어난 곳 입니다. 반대파숙청. 재벌철폐. 국토의 국유화 로 이어지는 사회주의 혁명입니다.
히틀러와 싸울때 900일간의 포위작전으로. 굶주림등 엄청나게 고생했고 포격으로 완전 파괴된 도시로 알고 있습니다.
아주 멋진 곳이지요.
사진과 설명도 아주 잘 해주셔서 잘보앗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볼만한 곳으로 생각됩니다.
몇년전 전 큰 벤을 빌려 15명이 북구여행을 햇습니다.
Saint Peter's burg. 레닌그라드 피터대제로 울들에겐 더 익숙한 것같습니다.
9척장신 다재다능 피터대제가 50대 초반에 충신이 전쟁중 물에 빠져 건져내고
감기에 걸려 폐렴이 되어 생을 마감햇다합니다.
그 분이 더 살아계셧다면 레닌그라드가 훨씬 더 발전햇을텐데
거기서 머무르게 되엇다고 들엇습니다.
소련 입국절차가 아주 복잡해서 근 3시간을 국경에서 기다렷던 것
또한 공산주의의 융통성없음에
놀랏습니다.
유럽 다른나라는 국경을 통과하는지도 모르게 지나간 것에 비하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