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학교에서 9회경기를 봤습니다.
점심시간 시작하면서 리베라가 워밍업하기에 포기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둘러 밥을 먹고 교실로 돌아가니깐 9회말이 막 시작되어서 그레이스가 1루에 진루해 있더군요..다음타자 데미안 밀러(였나?)의 번트를 놀라운 수비력을 가지고 있다는 리베라가 재빨리 잡아서 2루를 향해 던지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데릭 지터의 글러브를 지나 중견수앞까지 데굴데굴 굴러가면서 교실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수능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서 야구만 보면 TV끄라고 뭐라고 하던 여학생들도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제이 벨의 안타까운 번트 실패 때문에 모두들 탄식하고 다음 타자 워맥이 들어섰을 때, 기도하는 마음으로 응원했습니다. 워맥의 타구가 1루수 키를 넘겨서 우익선상에 떨어지는 순간 학교가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 들었습니다. 모두들 끌어안고 감격에 겨워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귀여운 럭키보이 카운셀이 데드볼로 만루를 채우고 다음 타석에 BK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곤잘레스가 들어섰을때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곤잘레스의 방망이가 도는 순간, 아! 빗맞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같으면 유격수 라인드라이브에 이은 병살 코스였기 때문이죠...하지만 신의 가호 덕분인지 데릭 지터와 NY내야진이 전진 수비를 펼치고 있었기에 그대로 그라운드로 떨어졌지요...
우리 모두 팔짝팔짝 뛰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작은 거인 BK를 화면에서 찾고자 애를 썼지요..우리의 영웅에게 카메라는 다가가지 않았고, 모두들 안타까워하는 순간, 진정한 MVP BK에게 끝내기 안타의 주인공 곤잘레스가 다가가 힘차게 끌어안아주었지요..실력과 연봉만으로 그 선수의 모든 것을 평가해버리는 살벌하기 그지 없는, LA 다저스의 이기적인 클럽 하우스 분위기 때문에 무심하게만 느껴지던 메이저리그를 인간미 넘치는 곳으로 다시 보게 한 애리조나선수들..그들도 처음부터 그렇게 끈끈한 정을 갖지는 못했겠지요..사이영상에 빛나는 최고 좌완 랜디 존슨과, 줄곧 에이스 역할을 해온 커트 실링, 오랜 시간 커브스의 프랜차이즈 타자였던 마크 그레이스와 골든 글러브 수상자 맷 윌리엄스와 스티브 핀리등..모두 한다 하는 선수들이 모였기에 보이지 않는 경쟁심과 질투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10여년이 넘는 선수 생활을 하며 최고라고 자부하는 그들 속에 머나먼 이국 땅에서 영어도 잘 하지 못해 고독해 하는 BK를 보며 모두들 신인 시절, 마이너리그에서 고생하던 날들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선발이 아닌, 고독하기 그지 없고 잘해야 본전, 못하면 역적이 되는 마무리로 뛰면서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어디서나 잠에 빠지는 귀여운 'baby'를 보면서 모두들 하나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그 'baby'는 마치 마술과도 같은 피칭을 거듭하면서 주전 마무리 맨타이와 대체 요원이었던 프린츠가 빠진 뒷문을 단속하면서 소사와 같은 강타자들을 계속 삼진으로 잡아내는 것을 보면서, 스카우팅 북의 자료도 거들떠 보지 않고 오로지 정면승부를 거는 그 놀라운 배짱을 보면서 루키 시절의 패기와 열정을 떠올렸습니다. 마침내 애리조나는 창단 이후 최단기간만에 지구 우승을 차지했고, 포스트 시즌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맥과이어로 대표되는 세인트 루이스의 강타선을 만나서도, 치퍼 존스가 이끄는 브레이브스를 만나서도 원투펀치 실링과 존슨은 여전했고, 선수들의 끈끈함은 여전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애리조나의 선수들을 단결시킨 것은 막내 BK의 역투였습니다. 22살의 어린 선수가 무려 3세이브를 따내면서 든든한 소방수 역할을 해낸 것이었지요. 월드시리즈에서도 그가 활약할 것을 의심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1차전 대승과 2차전 존슨의 완봉승으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한 BK가 4차전 실링의 뒤를 이어 2점의 리드를 안은 채 양키 스타디움에 그 모습을 드러 냈을 때, 아니 8회 세 타자 모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을 때, 9회 첫 타자 노블럭도 잡아 냈을 때, 막내의 기적은 계속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폴 오닐의 빚맞은 안타에 이어 티노 마르티네즈의 홈런, 그리고 데릭 지터의 끝내기 홈런에 BK는 무릎 꿇었습니다. 하지만, 애리조나 선수들은 막내에게 위로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5차전에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김병현은 다시 등판했습니다. 투 아웃을 잡아낼때까지만 해도 어제의 수모를 갚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의 사나이' 브로셔스에게 통한의 동점 홈런을 허용하는 순간, BK는 주저 앉고 말았지요. 하지만, 애리조나의 노장들은 그들의 'baby'에게 다가가 그를 끌어 안고 무사 3루에서 점수를 뽑지 못했던 자신들의 부진을 미안해하며 그를 격려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 배팅볼 투수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김진웅에게 가해진 비난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FOX TV에서는 최악의 마무리 중의 한명에 BK의 이름을 올렸고, 많은 뉴욕 팬들은 BK를 MVP후보로 거론하면서 비아냥 거렸습니다. 하지만 모든 애리조나의 선수들은 상처 입은 'baby'를 감쌌고, 더욱 하나가 되었습니다. 무려 22안타를 쳐내면서 15점을 올리며 뉴욕의 마운드를 초토화시키면서 BK의 설욕을 해주었고, 마지막 경기에서도 끈끈한 단결을 과시하면서 넘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마리아노 리베라의 벽마저 넘었습니다. 선수도, 브렌리 감독도, 구단도, 그리고 애리조나의 많은 홈팬과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하나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그 중심에는 2패를 기록하긴 했어도 팀을 결속시킨 김병현이 있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