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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황학동, 황학동 사람들 세월의 그림자에 묻혀가는 애환의 거리 불항에 청계천 재개발 공사로 엎친데 덮친격
복개 공사로 속살이 드러나는 청계천로를 따라 재개발이 한창인 청계 7, 8가 안쪽 골목에 위치한 중고품 시장 황학동 골목. 이곳엔 11월 중순이 한겨울이다. 청계천 복개 공사와 왕십리 재개발 사업 등으로 언제 생활의 터전을 잃어버릴 지 모르는 불안감, 그리고 오랜 불황의 여파로 멍이 들 만큼 들어 버린 이곳의 체감 온도는 벌써 한 겨울의 복판이다. 모든 것이 발가 벗겨지는 청계천로는 그들 삶의 전주곡이었는가. 황학동 사람들이 견뎌 내야 하는 2003년 11월의 한파는 여느 해와 달라, 그들은 유난히 시리다. 워낙에 부평초 같은 삶에다 이제는 처거 바람까지 겹쳐, 관할 동사무소에서 조차도 "어림 잡아 300여 세대"라고만 알고 있는 이들 '도시 비공식 부문'의 겨울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리어커에 긴 판자를 얹고 수첩과 빗 등 간단한 생활용품을 팔고 있는 최성덕(65)씨는 황학동에서만 30년간 노점상을 해 온 터줏대감이다. 청계천로와 한빛길을 가로질러 곱창골목으로 이어지는 황학동 2300번지 ‘맛나 곱창집’. 번지 딸린 포장마차 옆 두어 평 남짓한 공간에 최씨가 자리를 틀고 장사를 시작한지 올해로 어언 10년이 넘었다. 곱창 골목 이곳 저곳을 배회하며 장사를 하다 결국 정착한 생존 공간이다. 지난해 애환 섞인 그의 삶의 얘기가 한 TV 공중파 방송을 타면서, 이 동네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만큼 유명해 졌다. 그러나 방송을 한 번 탔다고 그의 생활이 나아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더러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알아 보고 딱한 심정에 물건이라도 한 점 사주는 예의(?)를 갖추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것도 한 때일 뿐, 그의 일상생활은 변한 것이라곤 없다. "저…혹시 TV에 나왔던 분 아닌가요?" 귀에 익은 질문이란 듯, 씨익 웃어 보인다. 사람은 무표정하게 웃어 보일 수도 있었다. "이 수첩 얼마인가요?" 리어커에서 물건을 하나 들어 보며 물어 봤다. 그는 대답대신 손가락 2개를 꼽아 보였다. 2,000원이라는 얘기다. 혹시 오랜 시간 혼자 지내다 보니 말을 잊은 것은 아닐까. 아니, 그보다는 말하기 조차 싫다는 표정이다. 최씨의 삶의 모습은 극히 단순해 보인다. 하루에 2~3명의 고객이 그의 리러커 앞에와서 물건을 만지작 거리다 가는 것이 고작이다. 그는 그저 고개를 숙인채 손님의 발길을 기다릴 뿐이다. 옆 곱창 집 주인 아주머니는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최씨가 딱해 보여서 였던지 선심을 썼다. 얼마 전 천막 지붕을 설치하며 두 어평 남짓한 최 씨의 리어커 공간 위까지 천막을 쳐 주었던 것이다. “10여년 정도 항상 옆에 붙어 장사를 하다 보니 최 씨에게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다”고 그 아주머니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는 최씨를 가리켜 “세상 실정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속에 구렁이가 몇 마리 들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딱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세월이 흘러 청계천로의 모습이 바뀌고 노점상들이 복계 공사를 반대하며 연일 데모하는 격한 목소리가 난무하다. 그러나 싸움터 같은 황학동 속, 아주머니의 말에는 헛헛한 인심이 살아 있었다.
그러나 여기는 불황의 여파가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 “장사하기가 죽기보다 어렵다”는 목소리는 황학동 골목 안으로 깊이 들어 갈수록 더 높게 들린다. 재개발이 한 창인 청계천 삼일아파트 단지에서 300m 정도 깊이 들어간 한 골목 귀퉁이에 자리잡은 황학동 74의 5 ‘통신만물상’. 주인 최영호(53)씨는 황학동에서 생활의 터전을 일군 지 30여년이 됐다. 한 때는 통신장비 부품 나까마(중간업자)로 뛰다가 조그마한 가게를 낸 후 다시 이리로 이사 온 지 10여년이 됐다. 3평 남짓한 그의 가게에는 각종 통신 장비 부품만 2,000여 가지가 넘는다. 반도체 실리콘 부품에서부터 콘덴서까지 없는 것 없는, 말 그대로 만물상이다. 어떤 제품이 어디에 있는지 최 씨 말고는 아무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빼곡하게 쌓여 있다.
최 씨는 대뜸 말했다. “새 부품을 수출하지만, 스스로는 중고 부품을 또 쓰는 일본 사람들에게 우리가 배울 게 아직 너무 많아요”라고. 그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는 중고품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토양 위에선 턱도 없는 소리”라고 혀를 찬다. 재개발로 생활의 터전마저 위협 받는 황학동에서 4남매 자녀를 모두 키워 결혼까지 시킨 그는 “더 이상 황학동에 미련이 없다”고 내뱉듯 말했다. 그러나 이내 “생활은 어려웠지만 인정미 넘치던 황학동이 세월의 그림자 속에 그 모습을 점차 잃어 간다”며 한 자락 아쉬움을 감추지 못 하는 눈치다. 이곳의 겨울을 가장 먼저 느끼는 데는 중고 난로를 판매하는 황학동 난방기구 상점 골목가다. 그러나 올해의 찬서리가 여기라고 비껴갈 리 없다. 추위가 시작되는 11월 이맘때면 전체 물량의 3분의 2정도가 이미 팔렸어야 하는데 요즘은 5분의 1도 채 못 나갔다는 것이 난방기구 상가들의 볼멘 목소리가 불황의 바닥을 훑는다. 연쇄 부도-공장 폐문-경기 추락이라는 현실의 한파를 고스란히 겪고 있는 이곳에서 난방기구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20여년간 중고 난방기구를 팔아 온 청계종합상사의 한운용(51)ㆍ이영희(49)씨 부부는 “종업원 2명을 모두 집으로 돌려 보낼 정도로 경기가 죽은 상황”이라며 “이 골목 상점 치고 올들어 누적 적자가 2,000만~3,000만원 안 되는 곳은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난로의 계절인 겨울이 왔으니 즐거워야 될 시기에 오히려 겨울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답답할 뿐”이라는것이다. 부부는 음식값이라도 줄여보려 4평 남짓한 가게에서 복닥대며 직접 밥을 해먹고 있다. 한파를 견뎌내는 데는 내핍이 최고라는 사실을 그들은 본능으로 아는 것일까. 황학동의 11월은 살얼음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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