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야기는 고교때 친구가 영원한 친구라고 말 한다. 너무 어려서 만난 친구나, 머리가 다 커서 만난 친구는 끈끈한 정이 좀 부족하나 보다. 나에게는 행복하게 그런 친구가 여러명 있다.전화를 하면 욕부터 나오고 남자끼리
"너 난 안보고 잡냐?"하고 물으며 그리고 너무 오래 만나면 나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그런 친구들.., 난, 이놈을 고1때짜궁으로 만나, 늘 붙어 다녔다. 오즉했으면 고1때, 담임선생님이 대학 교수로 계신 다는 소식을 듣고 수십년 만에 인사드리러 가서 뵈었는데,
"니 콤비는 지금 뭐하냐?" 이렇게 물을 정도로..,(애석하게도 먼저 가셨다) 난, 이놈 때문에 애 간장을 녹일 때가 참 많았다. 난 대위를 달고 있을 때, 하사관 학교에 있다는 편지가 왔다. 나는 소식 듣자 마자 달려가 면회 하였는 데, 그의 중대장이 마침 나와 절친한 차영식이란 동기였다.이 친구도 나와 같은 광주가 고향이고 광주 일고 출신이다. 이 친구는 깜짝 반가워 하며 거짓말 하기가 싫어 그냥 친한 친한 친구라고 하였더니, 어떻게 친구가 될수 있느냐고 의아해 했다. 그러면서 자기 중대장실을 비워 주고 나갔다. 그도그럴것이 그는 6살때 입학하여 나보다 2살이나 어리다. 나중에 부대 배치를 받을때, 내 같은 부대로 데려왔다. 이 녀석을 사격장 관리 책임 하사로 보내 놨더니, 만고강산 편안한 군대생활을 하고 있었다. 내무반 생활을 안하고 거기서 숙식을 하고 있으니, 부대 점호 한번 안 받고 밤이면 인근에 나가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녀
석이,하루는 토요일에 외박 나와 내 하숙방에서 같이 자고 놀다가 일요일 저녁 8시 까지 들어가야 되는 데, 안들어 가고 아침 일찍
들어 간다고 하더니만 다음날 새벽에 마침 비상이 걸려 들통이 나 버렸다.군대 영창에 보내야 될 처지가 되었다. 내가 ?아가 나와
같이 근무했던 인사주임에게 상의하니 병원에 입원 시키라고 하여 병원에 입원 시키고 알르바이 만들어 무마 시킨 경험도 있다. 한
번은 이 친구가 외대에 다닐 때, 하숙을 하다가 주변 술집에 외상값이 너무 늘어 가다보니까 갚을 길이 없자, 집에다 하숙 안하고
자취를 하겠다고 방을 얻는다고 시골에서 거금을 받아 외상값을 다 정리하고 나니, 이제는 하숙도 못하고 방도 못얻고 고민 고민
하기에, 별수 없이 방값을 내가 마련해서 자취하게된 경험도 있고., 한번은 그렇고 그런 여자를 데리고 왔다. 이미 했단다. 중절 수술비를 주면 무소식, 그래서 나중에는 직접 병원에 데리고 가면 병원에서 몰래 도망가 버리고.., 나에게는 미안하니, 다 끝났다고 하여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배가 남산만 그녀를 데리고 우리집으로 왔다. 아이가 꺼꾸로 되어 수술해야만 된다는데 돈이 한푼도 없 단다. 150만원 이라는 거금이 있을리 만무하지. 나보다 더 좋은 직장에 다니던 그였지만 하숙을 하고 또 술로 세월을 보내니, 당시 난, 우리나라 5대 기업인 기아그릅에 다닐때 였는데 봉급을 142,000원 받을때 였는데 거의 1년 봉급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아이 였다. 처음에는 딱 잡아 떼었다. 그러나 하도 사정하니 난 별수없이 흥정을 하기로 했다. 그때 마침 나의 여자 동창 친구가 홀트아동복지 근무를 할때여서, 이친구에게 미리 부탁하여 외국에 입양하기로 다 약속을 받아 놓고, 그 조건에 동의 한다면 지원해 주겠다고 최종 합의 하여, 수술비를 주었다. 그래서 개인 산부인과에 입원 시키고, 수술을 하여 예쁜 여자 아이를 낳았다. 엄마 아빠가 모두 미남 미녀라 아이가 참 예뻣다. 난,
원장님에게 모든 사정을 다 얘기 했더니, 그럴려면 3일 전에 아이를 보내어야 한다고 한다. 3일후 젖이 돌면 모성애가 들어 절대
안 줄려고 하니, 그러나, 만약 홀트아동복지 일이 잘 안되면 자기가 키우겠다고 하셨다. 아이가 참 예쁘다고 하시며, 이틀후 약속대로 홀트에서 사람들이 와서 아이를 달라고 하니 오리발이다. 자기가 키우겠다고 하면 어느 누구도 말을 못한다. 다음날 병원에 가보니, 아이도 잠들고 산모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살짝 몰래 들어가 아이를 안고 나올려고 했다. 그 당시 나의 심정은 이친구를 위해서라면 한 1년 정도는 감옥에 간다고 하더라도 꼭 이 일을 해결 해야 된다고 참으로 어리석고 무모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난 아이를 몰래 안고 문을 막 나서자마자 산모가 깨어 맨발로 ?아 나와, 죽도록 얻어 맞고 얼굴은 손톱으로 다 할퀴어 얼굴이 엉망이 되었다. 다른건 몰라도 얼굴의 손톱 자국은 속일수가 없다. 난, 내 아내에게 이실직고를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랬더니 그러면 그 아이를 내가 키울테니 데려오라고 한다. 나중에 좋은 여자 만나 이해를 한다면 주겠다고.., 참으로 존경스런 나의 마누라다.
결국 이일을 그의 어머니에게 말씀을 드리는게 최상의 방법으로 알고, 어머님께 전화드려 중요한 상의할이리 있으니 빨리 상경 하시라고 하였더니, 급히 올라 오셨다. 그래서 결론은 할머니가 키우기로 하시고 한참후 아이를 데리고 가 할머니가 키웠다. 이 아이는 할머니가 잘 키워, 지금 영어 교사를 하고 있다. 좋은데 시집을 가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데.., 아니면 내 며느리로 데려 오던지., 애가 초등학교때 난, 그 지역에 출장을 갈 때면 꼭 어머니집에 들리곤 하였는데, 3번이나 들렸으나 안계셨다. 낮에는 무슨 교회 전도 다니느라 집에 안계시기 때문이다. 갈때 마다 과일이나 고기근 뭐 좀 사기지고 가서 그냥 놓고 오곤 했는 데, 나중에 뵙게 되었다. 내 애기를 들으시더니,이제사 궁금증이 풀렸다고 반가워 하셨다. 누가 왔다 갔는지 아들, 딸 다 물어 봐도 아니라고 하여 궁금해 했다고 하시면서..,
그때 난,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안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수가 없었다. 나때문에.., 나때문에 .., 이 아이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구나. 참으로 이상한 아저씨다. 아빠 친구라고 하는 데, 왜 나를 안고 우시지?이렇게 생각 했을 것이다.
이제, 지나놓고 보니, 인간이 살면서 당시에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하던 일이 지나고 보면 그게 아니라는걸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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