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음식을 서서히 장만하려 두부부터 냉장고에서 꺼냈더니 쉰내가 약간 났다. 날짜를 보지 않고 덥석 들고 온 것이다. 고사리도 영 좋질 않았다. 두부 하나만 쉬었으면 바꿔 달라지 않고 그냥 다시 살 생각이었는데 고사리까지 그러니 안되겠다 싶었다. 마트 직원은 선선히 바꿔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하니 아무래도 까르프를 한번 다녀와야겠구나 싶었다. 기왕 나선 길에 19000원하는 옅은 청빛 내 운동화도 한 켤레 샀다.
꿈지럭꿈지럭... 한 너덧 시간을 나물 다듬어 무치기, 밀가루 부침 부치기, 두부 부침, 청소, 제기 꺼내놓기 등을 하던 중, 여섯시에 수원 손아랫 동서가 왔다.
나보다 일곱살이 아래인 동서 정숙희는 말이 없고 착하고 얌전하며 소박하다.
제사 시간인 여덟시에 맞춰 아주버님 내외께서 오셨다. 아주버님께서 오실 줄은 몰랐다.
제사를 무사히 마치고 저녁 식사, 밥상에 일품 요리인 버섯볶음 깜박 잊고 놓지 않아 아쉽기 짝이 없었으나, 아주버님은 무장아찌와 양파 오이 피클을 좋아하셨다. 오이지 무침이 없는지도 물었다. 아, 무치려다 너무 힘이 들어 그만 두었는데... 어느 날, 시간이 좀 날 때 오이지를 무쳐 가져다 드려야겠다 싶다. 값이 비싸지도 않고 그다지 일스럽지도 않은 걸... (어제는 제사 준비 때문에 엄두도 낼 수없었다)
저녁 무렵에는 아무래도 제삿상이 소찬으로 쓸쓸하지 않을까 싶어 수박 한 통을 사러 나가 배달 시켰는데, 무식하게도 크다란 수박! 제삿상이 무너질 것 같아 상에는 올려놓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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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르게 비다.
작은 딸애가 2박 3일 휴가차 제주에 다녀오기로 하고 오늘 길을 나선다.
나는 내놓은 그릇들과 남은 음식들을 챙긴 뒤, 빗발을 내다보며 뜨건 둥글레차나 마실 듯 하다.
언제나 그리운 것은 조용.
고양이가 좁은 자리를 비집고 눕느라 자판을 앞발로 건드려 5555555555555...가 끝도 없이 떠 지웠다. 바람이 산들산들 좀 썬썬하다.
첫댓글 혼자서 다 하시느라 많이 힘드시져...
그의 몫까지.... 살아있는 대가로 보자면 지나치게 싸지, 싶었다우. 너무 타산적인가?
너머 겸손하셔여
오늘이었군요. 비 내리는 날이네요
살아 있다는 댓가. 가끔씩 달아 오르는 매운 간장.
집안 내에선 더없이 다소곳한 여인네의 풍모가 느껴져 신선합니다.
선생님이 나물도 무치고, 오이지도 무치고...... 머릿속에서 그림이 잘 안 그려지는데요.(어쩌나!)
애썼네...
빨강밥, 간장이 아니고 '긴장' 이야. 맞을래? 모다덜 염려해 주어서 고마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