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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한님은
예수님의 마태복음 24장 말씀을 인용하시며
단지 13,14,15절만 언급하시네요.^^
16절에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라고
하셨죠. 문자적으로 이루어진 것 아세요?
예수님께선 분명, 예루살렘명망과 세상 끝에 대해 동시에 설명
하셨습니다.
그건 그렇고,
제가 이 카페에 70이레가 역사적으로 이미 성취되었다고 하니
속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요나한님도 그러시죠.
어떤분은 안식교니 어쩌고 하시면서....
과연 이 말씀이 안식교만 주장하고 있는지
확인해 드릴께요.
마틴로이드존슨 목사님 아니죠? (유명한 장로교 목사님이시죠)
물론, 이분 글을 읽고 이 사실을 주지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만,
우리가 제가 제수이트가 만들어 놓은
세대주의 해석에 의해
농락당하지 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분의 글을 올립니다.
저는 원래 유명한 목사님이 말씀하신다,
그래서 믿는다,
이런 것 싫어해서 잘 안 올리는데요.
가끔 필요하네요.
다니엘서 9:24-27의 70이레 해석
마틴 로이드 존스
1. 앞으로 다룰 내용
나의 해설이 유일하고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문제에 대해 흔히 나타나는 경솔함과 독단적 주장을
조금이나마 흔들어 놓을 수 있다면 그 이상 기쁜 일이 없겠다.
사람들이 이 문제를 새롭게 고찰할 징조가 나타난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그것은 교회 역사에서 축복의 시기의 전조가 될 것이다.
1) 연구의 대상이 될 성경 본문들
다니엘서 9장
마태복음 24장과 25장
살전 4장과 5장 일부
살후 몇 구절
요한계시록
2) 다양한 견해를 비교해 보아야 하는 이유
가능한 한 서로를 돕는 것이 가르침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하고 싶은 한 가지 해설만 제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다른 견해들도 제시하고 그것들을 평가해 볼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은 지침과 도움을 드린다.
2. 에드워드 어빙과 다비가 제시한 새로운 해석
1830년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해석학파-
무디는 다비의 가르침을 채택했고 즉시 유행하게 되었다.
스코필드 성경의 출간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복음주의 진영들이 이 견해를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3. 다니엘서 9장의 배경
단 9: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그후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싶어한다. 천사 가브리엘이 그에게 대답을 준다.
22-27절까지에 기록되어 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구약학자인 에드워드 영의 해설을 주로 따른다.
구약 전체에서 가장 어려운 본문 중 하나이다.
4. 일흔 이레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1) 일흔 이레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레”라고 언급된 기간이 있으며, 장차 그 특정한 “이레”가 일흔 번 있을 것이다.
일흔 이레는 490일을, 예언서의 하루는 1년이므로 490년을 의미한다는 사람도 있다.
2) 예언을 해석할 때는 ‘감추어진 명확성’에 주의해야 한다
“일흔”과 “이레”를 정확한 용어로 간주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예언에서는 숫자가 상징적인 것임을 말씀드리고 싶다.
그것은 정확한 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개념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세기의 가장 위대한 복음주의 주석가 헹스텐베르크의 말을 인용하려 한다.
그의 책을 만나게 되거든 무조건 사서 탐독하시라!
이 숫자들이 '감추어진 명확성'(concealed definiteness)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놀라운 문구다. 그 숫자들은 명확하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언제 시작하여 언제 끝나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는 의미의 명확성은 아니다.
일종의 확실함이 있지만 동시에 불확실함도 있다.
사람들이 명확성의 숨겨진 부분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석의 역사에 등장한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도출한 명확한 결론이
역사에 의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음이 드러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 때가 언제인지 하나님의 마음 속에서는 명확하다는 것,
우리 주님의 재림은 명확한 시간에 일어나리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과 저는 절대로 정확한 날짜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원하신다.
그 정확성이 우리에게는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사람들의
땅에 떨어진 명성의 파편들이 예언의 역사 위에 흩날리고 있다.
3) 일흔 이레는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성경에서 일곱은 언제나 완전한 수를 상징하며 열이라는 숫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칠 곱하기 십, 곧 일흔은 완전한 시대, 완전한 기간을 나타내며,
그것은 다시 일곱이라는 숫자가 나타내는 완전한 기간들로 나뉘어진다.
이 숫자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대신 상징적인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개념을 고수할 수록,
성경을 읽을 때 더 기쁨을 느낄 것이며,
오류에 빠져 예언 전체를 욕되게 할 위험이 더 적어진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다.
4) 일흔 이레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24절)
세 가지 소극적인 일.
① “허물이 그치며”- 허물을 치우다
② “죄가 끝나며”-
죄가 사함을 받으리라. 죄가 해결되어 끝날 것이다. 봉인될 것이다.
③ “죄악이 용서(화해)되며”-
그 결과이다. 죄악을 치워버려 사람과 하나님이 화해한다.
적극적인 일
①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의가 나타나야 한다.
②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이상과 예언이 끝날 것이다.
③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5) 이 일들은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25-27절)
25절,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영이 날 때부터”- 고레스 원년이면 주전 538년, 아닥사스다 왕 20년이며 주전 445년?
우리가 아는 것은 명령이 내려졌을 때 이 일이 시작했다는 것뿐이다.
가장 분명한 해석은 하나님이 고레스에게 처음으로 명령을 내리신 때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그 때 그 명령이 시행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날짜를 정하려 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스런 일인지요!
우리가 아는 것은 이에 대해 처음으로 말이 나온 때로부터 메시아 곧 왕이 오시기까지는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의 기간이 지나야 한다는 것뿐이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라는 말에 주목하라.
일흔 이레는 일곱 이레, 예순두 이레, 한 이레로 나누어진다.
처음 일곱 이레는 파괴된 예루살렘 성을 실제로 재건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다.
이어서 왕이신 메시야가 오시기까지 예순두 이레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강림.
26,27절에 대한 엇갈리는 해석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그에게 속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것.
그것은 메시아가 끊어지고 죽임을 당할 때 그분은 완전히 혼자라는 것을 시사한다.
모두가 그를 버린다.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전통적인 개신교와 개혁주의적 해설은 이것이 분명 주후 70년 디도 황제 치세 때
로마군이 예루살렘성을 멸망시킨 사건을 말한다고 한다.
26절에서 메시아가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 직후에 이 말이 나오는 것을 주목하라.
하지만 1830년에 시작된 새로운 학파에 의하면
이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한 언급이다.
27절,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여기서 시사하는 것은 언약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그가 그 언약을 굳게 하리라는 것이다.
그는 언약을 확증할 것이다. 그것을 효력있게 만들 것이다.
27절,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니라”
“미운 물건의 날개 위에” 혹은 “미운 물건의 꼭대기에”라는 말은
분명 성전의 파괴에 대한 언급이다.
제일 꼭대기로부터 시작해서 성전은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6) 논쟁의 핵심: 일흔 번째 이레
26절은 일흔 번째 이레에 일어날 사건을 묘사한 것인가?
“예순 두 이레 후에” 일어난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본문은 그 사건들이 일흔째 이레에 일어난다고 말하지도,
그 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본문이 말해 주는 것은 단지 그 일이 예순아홉 이레가 지나간 후에 발생한다는 것 뿐이다.
그것이 일흔 번째 이레를 의미할까? 중대한 질문이다.
27절의 “그”는 누구인가?
26절에 나오는 메시아인가, 아니면, 26절 후반부에 나오는 왕을 말하는가
7) 에드워드 어빙과 다비의 견해
유대인들이 특별한 지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견해다.
“이레는 한 주 더 정확히는 칠 년으로 구성된 한 주다.
즉, 각각 칠 년을 의미하는 이레가 일흔 번이라는 뜻이다.
이 이레들 안에 민족적 징계가 끝나고 나라는 영원한 의로 회복되어야 한다.”
즉시 의문이 생겨난다.
영원한 의 가운데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말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유대인들이 특별한 방법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유의 이론에서 보면
그렇게 도입할 수 밖에 없다.
“교회시대가 끝나고 일흔 번째 이레가 시작될 때 --”
이 말은 예순 아홉 이레의 끝과 일흔 이레의 시작 사이에
적어도 이천 년이라는 거대한 간격이 있다는 것.
“그 기간은 칠년이어야만 한다.”
그들은 27절의 “그”를 26절에 언급된 장차 올 왕이자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
“그의 백성인 로마가 주후 70년에 성전을 파괴했다.
그는 7장에 나오는 작은 뿔과 같은 인물이다.
그는 한 이레 동안 성전의 제사를 회복하기로 유대인들과 언약을 맺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간의 중간에 그는 언약을 어기고 단 12장과 살후 2장을 성취할 것이다.
메시아가 끊어진 예순아홉이레와
단 7장의 작은 뿔이 무시무시한 일을 진행할
일흔 번째 이레 사이에 교회 시대 전체가 들어간다.
27절은 일흔 번째 이레의 마지막 삼 년 반을 다루는데,
그것은 마 24장에 나오는 대환난, 단 12장에 나오는 환난의 때,
그리고 계 3장에 나오는 시험의 때와 동일한 기간이다.”
8) 일흔 이레 해석의 핵심 쟁점들
24절에 개략적으로 나와 있는 계획은 이미 수행되었는가?
26절에 나온 일들은 어떠한가?
27절 첫 머리에 나오는 “그”는 누구인가?
26절에 묘사된 사건들은 일흔 번째 이레에 일어났는가?
아니면 예순아홉 이레의 끝과 일흔 이레의 시작 사이의
간격이라고 추정되는 시기에 일어났는가?
예순아홉 이레와 일흔 이레의 시작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는가?
다비의 해석 체계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다가오는 천국에서 유대인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세워질 것과 피의 제사가 다시 한 번 도입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미래의 일로 간주하며
이것을 계시록에 대한 비슷한 해석과 연결시킨다.
다니엘서 9장의 결론과 휴거
1. 간격이론
1) 27장의 “그”는 누구인가
“그”가 26절에 나오는 왕이라고 말한다.
2) 27절은 미래의 사건인가
이 모든 것은 미래에 속한 일이며, 일흔 번째 이레 때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일흔 번째이레의 처음 삼 년 반 동안 이 왕은 하나님의 백성과 언약을 맺을 것이다.
그 때쯤에는 유대인들은 모두 팔레스타인에 돌아와 그들의 성전을 다 지었을 것이며,
짐승 제사를 재도입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왕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과 언약을 맺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레 중간에 갑자기 그는 자신의 말을 취소할 것이다.
끔찍하게 핍박할 것이며 삼년반 동안 계속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때 주님이 다시 오셔서 그 왕을 멸망시키고 그의 백성을 구해내며,
천년왕국으로 인도할 것이다.
3) 예순아홉 이레와 일흔 이레 사이에 긴 간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성경해석이 아니다.
성경은 간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라고 할 뿐이다.
예순아홉 번째 이레와 일흔 번째 이레가 나누어진 것과 똑같이
예순아홉 이레도 나누어져 있다.
그들도 예순두 이레가 일곱 이레 직후에 이어진다는 데에 동의하며,
그 일곱 이레는 아마도 예루살렘 재건을,
그리고 예순두 이레는 그 재건이 끝날 때부터
왕이신 메시야가 오실 때까지의 기간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갑자기 예순아홉 이레와 일흔 이레 사이에 간격이 있다고 말한다.
그 간격은 아미 거의 이천년이나 연장되어 왔는데 더 길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공정한 해석이라고 보이는가?
자연스레 도출되는 이론이라고 생각되는가?
고백하건대, 나로서는 그런 견해를 받아들이기가 극히 어렵다.
예순두 이레와 일곱 이레 사이의 관계는
예순아홉 이레와 마지막 일흔 번째 이레 사이의 관계와 똑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다니엘서 9장 24-27절에 대한 다른 해석
1) 24절의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이 해석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며 예언이 정확하다는 증거가 된다.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일흔 이레 후에 백성들과 성에 뭔가 절정에 이르는 일이 일어나리라고 한다.
첫째, “허물이 그치며”, “죄가 그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
이 모든 것을 신약에서 볼 수 있지 않은가?
“허물이 그치며”-
최종적인 심판이 주후 70년에 임하였다.
주님이 경고하신 그 심판이 이르렀다.
“네 백성과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백성과 성은 그 때 심판을 받았으며 그 이래 계속해서 심판을 받았다.
“죄가 끝나며”-
복되고 영광스러운 복음이 아닌가?
죄와 부정함을 씻는 샘이 갈보리 언덕에서 열렸다.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그 다른 견해는 이스라엘 나라의 의가 영원히 확증될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단지 영원한 의가 나타날 것이라고만 기록돼 있다.
그 영원한 의를 가져오신 분은 완전한 삶을 사시고,
자신을 죄를 위한 제물로 드리신 우리 주님이시다.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그리스도는 예언의 성취이다.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주님은 자신의 사역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나는 24절이 전적으로 메시아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온전하신 사역을 하러 오셨을 때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이다.
25절은 명확해서 문제가 없다.
2) 26절은 AD 70년의 예루살렘 파괴에 대한 예언이다
“예순 두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그 일이 정확하게 일어난 것을 안다.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 일은 문자적으로 일어났다.
그 왕의 이름은 디도였다.
요세푸스, “이 땅에 그와 같이 큰 파괴는 일찌기 없었다.
그 전쟁의 고통과 고난과 잔인성은 역사 가운데서도 두드러진 것이다.“
3) 27절의 “그”는 은혜의 언약을 확증하시고
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메시야가 그 일을 하셨다. “맺고” 가 아니고 “확증하겠고”로 이해해야 한다.
그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언약을 굳게 할 것이다.
은혜와 구원의 언약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를 뿌려 언약을 비준하셨다(히9장).
“그가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위대한 원형이 왔기 때문에 모형들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성전은 없으며 제사는 더 이상 드려지지 않는다.
한 번의 최종적인 제물이 영원히 단번에 드려진 것이다.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결과,
즉시 그들의 성이 공격을 당하고 완전히 황폐하게 되었다.
26절과 27절에는 유사점이 있다. 두 부분씩으로 되어 있다.
26절의 전반부에서 메시아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와 관련하여 끔찍한 홍수와 온통 황폐케 하는 전쟁이 나오는데
그것은 주후 70년에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27절에서도 똑같은 두 가지가 정확하게 반복된다.
우선, 메시아 자신이 언약을 확증하고 비준하며, 자기의 죽음으로 제사를 끝낸다.
이어지는 후반부에는 황폐와 전쟁과 파괴가 나타난다.
그 모든 일은 주후 70년에 문자적으로 일어났다.
4) 이 본문은 성취된 예언이며 예순아홉 이레와 일흔 이레 사이에는 간격이 없다
주의 깊게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다니엘서의 이 부분에서 오백 년 이상 지난 후에
문자적으로 성취된 놀라운 예언을 발견한다.
다니엘은 메시아와 영원한 의, 속죄, 화해, 그리고 구원의 모든 영광에 대해 듣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로서는 예순아홉 이레와 일흔 이레 사이에
간격이 있다고 볼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일흔 번째 이레는 예순아홉 이레 바로 다음에 이어진다.
이 일들은 이 본문에서 가르친 바로 그 순서대로 차례차례 일어났다.
3. 성도의 사전 휴거
1) 사전 휴거, 혹은 은밀한 휴거란 무엇인가 두 단계의 재림
이 가르침은 1830년 이전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파워스코트(다비의 친구) 예언집회”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주의 날”, “주님의 나타나심” “주님의 현현” 등의
주님의 나타타심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오심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한 것일 뿐,
세상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주님은 오직 성도들을 위해오실 것이다.
구약 성도들은 부활할 것이고, 이미 죽은 그리스도인 성도들 역시 부활할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 남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변화되어
다른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공중에서 주님을 만날 것이다.
교회가 사라지고 성령 역시 교회와 함께 떠나신 다음
유대의 남은 자들은 이 땅에 남을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다시 거룩한 땅으로 갈 것이고, 성전이 건축될 것이고, 제사가 드려질 것이다.
그 다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언약을 맺고, 그 모든 일을 행할 것이다.
이 일은 우리 주님이 성도들과 함께 다시 오시는 주님의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성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오시는 것이다.
주님은 적그리스도를 멸망시키고 위대한 천년왕국 시대를 여실 것이다.
주님의 재림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로 오직 성도들을 자기에게로 영접하기 위해 오신다. 은밀하게 오신다.
성도들 외에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한다.
두 번째로는 성도들을 거느리고, 적그리스도를 멸망시키고
천년왕국 기간을 시작하기 위해 오신다.
2) 이 가르침의 유래
플리머스 형제단에 속한 트레겔레스,
“우리 주님이 은밀하게 오실 때 교회의 은밀한 휴거가 일어나리라는 가르침이
어빙 씨의 교회에서 방언의 형태로 발표되고,
성령의 음성이라고 받아들여지기 이전에도 정말로 존재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계시로 간주된 어빙의 말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에드워드 어빙 목사- 스코틀렌드 출신의 뛰어난 설교자,
그의 인생사는 읽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재치 있는 지성을 지닌 위대한 연설가였으며,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토머스 차머스 박사의 동역자였다.
이후 런던으로 옮겨서 경이적인 사역을 하였으며,
그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설교자가 되었다.
놀라운 웅변술, 특이한 관점 때문에 사교계의 사람들과
기타 온갖 종류의 사람이 그의 설교를 들으러 몰려 들었다.
그러다가 가르침에 균형을 잃게 되었던 듯하다.
그는 자신이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으며
하나님이 자기에게 환상을 주셨다고 설교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도교회(Apostolic Church)라는 새 교회를 세웠다.
그 교회가 여전히 사도적이라고 주장했다.
사도직과 선지자직은 초대 교회가 끝난 후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존재하며,
그들은 지금도 계시를 받고 예언의 말을 하고, 환상을 보고,
방언을 하는 등의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추종자들을 자신들이 그런 모든 것을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 때문에 자신들을 가톨릭사도교회라고 불렀다.
그에게는 얼마 동안 많은 추종자가 있었으나,
점점 지지자들이 줄어들고 사라져 버렸다.
스스로 계시라고 주장하는 가르침의 위험성-
오늘날 몇몇 형태의 가르침들이
스스로 매우 영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으며,
그 가르침은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에게 주셨다고 추정되는 계시에 근거하고 있다.
제가 신약성경을 이해하는 바로는,
우리는 언제나 소위 ‘계시’라는 것에 기초한 가르침을 의심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제칠일 안식교의 기원은 제칠일 및 다른 여러가지에 대한 가르침이
엘렌지화이트 에게 계시로써 임한 것이다.
그것이 신약의 가르침과 맞는지 살펴보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자신들이 초대교회와 마찬가지로 영감을 받았으며,
하나님이 신약 정경 형성 이후에도 자신들에게 게시를 주셨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와 몽소승천 등을 가르칠 수 있다.
성경과는 별도로 계시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뉴턴이나 로버트 채프맨, 조지 뮐러는
어빙이 방언, 환상, 사도들 등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을 때 그와 완전히 관계를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거에 대한 가르침은 지속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
3) 이 가르침의 근거와 반론
살후 2: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그의 파루시아의 현현,
혹은 그의 오심의 나타남-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그들은 그의 “오심”과 “그의 나타나심” 사이에는 구분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죄인의 멸망과 영화가 함께 일어나는 1장 9절과 10절이 분명하게 답을 준다.
살후 2장1절은 파루시아를 주님의 오심과 동일시한다.
살전 4:15-17,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그들이 칠 년전에 이미 휴거되었다면 어떻게 준비되어 있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마 24:40-41,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 최후의 심판 때 분리가 있을 것임을 의미한다.
행 1:11, “본 그대로”-
그분이 육체적으로 눈에 보이게 오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고전 15:23, 52,
요 5:28-29
요 6:39-40
결론- 성경은 단 한 번의 재림만을 말한다.
부활도 단 한 번만 있다.
‘은밀한’ 혹은 ‘사전’ 휴거는 존재하지 않으며,
주님은 아무 때나 오시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일들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
4. 권고: 종말의 문제를 연구하는 동기를 점검하라
흥미 본위의 육적인 정신이 아니라
무릎으로 다시 말해 성령의 인도와 기름부음과 조명을 위해
기도하면서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주님의 나타나심을 고대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는 복된 소망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이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하고
밤과 어두움의 자녀와는 분명히 다른 빛의 자녀로 살아가길 추구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임을 분명히 하도록 하자.
- 로이드 존스, 교리강좌 3권, 「영광스러운 교회와 아름다운 종말」, pp 189-222

첫댓글 내일 천천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틴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청교도들을 소개하긴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의 중생론과 성령론이 정통주의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종말론도 마찬가지고요. 개혁주의에서 전천년주의 역사가 더 오래되었습니다.
긍휼사모님이 그분의 신학을 평가하기엔 좀 부족할 것 같은데요. 님을 무시하는게 아니라
적어도, 한 신학자이자 목사를 비판하려면, '~카더라'처럼 들리지 안으시려면,
그에 대한 올바른 연구를 한 후에나 가능할 것 같은데요.
@렘런트 저의 개인적인 평가가 아닙니다..
@긍휼사모 개인적인 평가가 아니라니 더 이상하네요. 존슨목사님에 대한 그런평가는 처음 들어보네요. 근거자료 있으면
좀 오픈해주시죠. 저도 그분에 대해 알만큼은 알거든요.
그 동안 비밀휴거의 근거를 찾아 보려고 애썼고,
이 비밀휴거에 대한 근거구절을 제시해 달라고 그렇게 애원했었는데.....
<플리머스 형제단에 속한 트레겔레스,
“우리 주님이 은밀하게 오실 때 교회의 은밀한 휴거가 일어나리라는 가르침이
어빙 씨의 교회에서 방언의 형태로 발표되고,
성령의 음성이라고 받아들여지기 이전에도 정말로 존재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계시로 간주된 어빙의 말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어빙의 계시가 그 근거였다니요....
기록된 말씀과 다르면 그것이 거짓임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환란전 휴거론의 근거가 어빙의 직통계시였다니...
완전 어이 상실입니다.... 충격!!!
저는 여기 카페분들 중 많은분들이 이 환란전 휴거설과
더불어 마지막때 사건들의 개요에 대한 잘못 가르침에 속아, 우리에게 있을 엄청난 환란을 준비하지 못하게
되는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오늘 마침 어떤분이
7년환란설을 얘기하시기에 아예 오후 시간
다 털며 매달렸네요. 정말 정신차려 개인적으로 연구하지 안으
면 성경에도 없는 설들에 속아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듯 하거든요.
아무리 집을 그럴듯하게 잘 지었어도 주인의 설계도대로 지어야지 , 자기 방식대로 지으면 비록 노고는 인정되나..., 오히려 시간을 허비한 종이라고 매를 맞게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서 마지막 가르침(마24장)을 주셨습니다. 아마 그분의 가르침중에 가장 엄하고 중요한 가르침이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3절에서와 같이 주의 재림과 세상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느냐고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 차원에서 주어졌습니다.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세상 끝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당시에는 미래의 산에서 교회시대의 골짜기를 볼 수 없었던 배경을 갖고 미래를 향하여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매를 맞을자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게 하는게 어떨까요?
하나님자리에 앉으려는 마음을 십자가앞에 내려놓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대답 가운데 3절에서 31절은 유대인에 해당이 되는 말씀이며, 32절이후는 이방인 우리에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3절에서 6절까지는 이미 이루어졌다고 볼수 있으며, 7절에서 14절은 진행형입니다. 15절에서 31절은 아직 안이루어졌지만 미래에 발생할 것입니다. 그 구절들은 장차 주님의 재림과 관련이 있음을 25절에서 28절까지를 읽어보면 자명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셨던 다니엘의 한이레는 15절에 포함이되고 이는 분명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인자가 오실때의 일입니다.
말씀을 굳게 붙잡는 사람들은 바위와 같습니다. 어떤 파도에도 요동이 없음.
주님의 한마디가 100명의 교사의 가르침보다 더 무겁습니
@렘런트 소중함이 담긴 금가락지를 우스꽝스러운 코걸이로 만들어버리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코걸이를 결혼의 추억이 담겼던 금반지로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들을 허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