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년 고도 경주에 있는 천마총에는 박정희가 정권을 미화하기 위해 추진한 천마총 사적기가 버젓이 놓여 있다.
ⓒ2004 박신용철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를 방문하면 석굴암, 불국사, 첨성대 이외에 천마총도 내외국인들로 북적인다. 경주시 황남동 일대 대릉원 내에 위치한 천마총은 황남대총과 지척이다.
30여 기의 고분이 산재해 있는 대릉원은 1973년과 1975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박정희 자신의 정통성을 선전하기 위해 군사문화유적 발굴을 진행한 것과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국보 207호인 천마총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축조된 고분으로 추정되며 금관, 금허리띠, 말다래 등 다수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천마총 사적기, 쿠데타 세력 정통성 선전하기 위해 세워"
김성한 전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활동가는 "구미 출신인 박정희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황남동에 산재한 무덤들 중 '가장 큰 능을 발굴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문제는 당시 발굴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황남대총을 발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는 무덤을 '시범적으로' 발굴했는데 그 능이 '천마총'이었다"고 말했다.
▲ 박정희 정권을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천마총 사적기'
ⓒ2004 박신용철
천마총 앞에 서면 박정희 쿠데타 세력이 정권의 정통성을 선전하기 위해 세운 '박비어천가(천마총 사적기)'가 눈에 띈다.
문화연대와 '신라사람들'은 지난달 30일부터 8월 1일까지 진행한 '경주 과학문화재 탐방' 과정에서 경주 대원릉에 들렀다. 이 과정에서 천마총 앞에 세워진 '찬마총 사적기'를 발견했다. 당시 김성한씨도 수 차례 천마총을 방문했지만 박정희 정권 시기의 표석이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확인했다고 한다.
김성한씨는 "천마총은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논리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천마총 사적기를) 버젓이 문화유산 옆에 세워둘 것이 아니라 철거해서 군사독재 잔재들을 한데 모아 비뚤어진 한국 현대사를 후세들에게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경주시 문화재과 정복교 주사는 "철거를 마음대로 못한다. 문화재지정 구역 내 시설물 설치 및 철거는 문화재청 협의를 거쳐야한다"면서도 "(문화재청에 철거 신청은) 굳이 요청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천마총 사적기도) 하나의 기록이고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 사적과 한 관계자는 "단지 표석일 따름이다"라며 "학계 의견을 모아서 해야지 그런 내용이 나왔다고 함부로 철거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문화재청은 문화유산에 남아 있는 친일, 군사독재 청산에 대한 입장이 없다고 했다.
천마총에 왠 '박비어천가?'
'천마총 사적기' 전문
이곳은 국토통일의 기상이 넘치고 민족문화가 찬란하게 꽃 핀 신라의 천년 고도 서라벌의 옛터다.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신라의 통일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고 찬란한 민족문화를 기리 보존하기 위하여 경주지구 개발의 대영단을 내리셨다.
그 사업의 하나로 1973년 4월부터 10월까지 7개월에 걸쳐 천마총 발굴조사가 실시되었으며 대능원이 정화되었다. 5세기말부터 6세기 초의 신라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이 천마총을 발굴조사가 끝난 뒤 원형대로 복원했으며 그 내부만을 후세의 교육을 위해 위하여 공개하기로 하였다.
세계문화사에 찬연히 빛나고 있는 우리 민족문화의 전통을 발전 한국의 위대한 기상 속에 재현코져 하는 그 드높은 뜻을 여기 새겨서 기리 전하고져 한다.
1876년 10월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과 세움
"전국 문화유산에 독재 잔재 남아 있어"
김성한씨는 "서울을 중심으로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세력의 독재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고 전국적으로 문화유산, 항일유적지 등에도 박정희의 역사 왜곡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3·1운동 발상지인 서울 종로 탑골공원 현판인 '삼일문'이 친일파였던 박정희의 친필임이 알려지자 시민단체들이 강제 철거에 나서는가 하면, 경찰청에는 전두환 친필휘호가 보존되어 있어 독재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또한, 박정희 정권의 흔적은 어린이대공원에도 남아있다. 박정희 휘호가 버젓이 서있는 것.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는 1970년 12월 4일 이 나라의 앞날을 짊어지고 나갈 어린이들이 슬기롭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이곳 서울칸트리 구락부골프장에 어린이를 위한 자연공원을 마련하라고 말씀하셨다.'
어린이대공원은 순명황후(순종황제비) 민씨의 능역(陵域)으로 1926년 순종께서 세상을 뜨자 민씨의 능을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로 이장한다. 이곳도 천마총과 비슷한 시기인 1972년 11월 3일 기공해 1973년 어린이날 개장했다.
서울 광화문 세종로에는 '세종대왕'이 없고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 이는 1968년 4월 27일 충무공 탄신일(4월 28일)을 기념하여 박정희가 글씨를 쓰고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와 서울신문사가 공동 건립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청년연합회 '궁궐길라잡이(문화유산 전문해설가)'도 "1960년대 들어서서 박정희는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충무공을 구국의 영웅이자 군인정신의 표상으로 삼아 충무공 탄신일 행사를 적극 추진하는 한편, 1968년 서울 광화문에 충무공 동상을 세우고 현충사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는 등 충무공 현양 및 추모사업에 적극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서울 남산의 안중근 기념관 앞에는 박정희 기념석이, 서울 영등포 문래동 문래공원에는 박정희 흉상이 남아있고, 박정희의 지시로 세워진 국립 현충원에는 여전히 박정희 무덤이 남아있는 등 곳곳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독재 부패시대 기념물과 조형물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는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천기원 간사는 "아직까지 독재시대 잔재가 국가기관, 공공기관에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독재 잔재가)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먼저 극복되어야할 과제임에도 오히려 얽매여 있다"고 지적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 관계자도 "두 권이었던 국사교과서가 개편되어 한 권으로 묶였고 수업시간도 고등학교 1학년 때만 배우는 실정이니 역사가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성한씨는 "민족을 팔아먹던 친일파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독립운동가들을 유린하는 것은 역사를 두 번 죽이는 꼴"이라며 "역사정기회복을 위해서도 친일, 독재잔재를 일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