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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해석 마당 착종등뇌화풍괘 이효 뇌천대장괘
통변(通便)이대론(李臺論)추천 조회 2014년.09월.05 일01:19글 0
뇌화풍괘 이효 뇌천대장괘 뇌화풍괘 이효 임금이 政事를 등한시 하고 미희들과 술래잡기 놀이를 하다보면 의심스러운 병을 얻는다하는 것 손으로 더듬는 행위 고마고마 이래 못보고 알아 맞추는 의심스런 행위 술래잡기 놀이를 한다는 거, 그러다 보면 나라가 망한다고 有孚發若 어서 깨우쳐 나오시라고 충신의 간언을 듣게 된다는 것 六二. 豊其蔀 日中見斗. 往得疑疾 有孚發若. 吉. 象曰. 有孚發若 信以發志也 육이. 풍기부 일중견두. 왕득의질 유부발약. 길. 상왈. 유부발약 신이발지야 豊其蔀 日中見斗= 구중궁궐에서 임금이 눈을 수건으로 가리고 술래 잡기를 한다 往得疑疾=추진하여 가선 의질 더듬거려선 어느 미희인가 지분 냄새를 맡아본다 有孚發若=옳다 사로 잡았다 어느 미희인지 발약 너 누구인지 알맞춘다 깨닫는다 너약자로도 해석이 되는 글자인지라 이현령비현령 해석할 탓이다 有孚發若=충신이 간언하는 말도 되고 ... 미혹하는데 빠져들어선 포로된데서 어서 깨우치고선 탈출 하소소 하는 말도 되고 ... 중독현상일으키는데서 탈출해선 국정을돌봐선 옥좌가 무너 지지 않는다 하는 것 내면 환괘 사람써는 기구 도마이니 어서 빨라 도망가라 이러는 것 미희가 따지고보면 그렇찮아 경성경국이라 하는 말이 있잖아 일신을 망추고 옥좌가 무너지고 나라가 망하는 것,그러니 사람잡아 썰어 재키는 도마위라 할수 밖에 ... 말희 포사 달기 초선이 서시 왕소군이 양귀비 조비련이 장려화 남당의 후주 이욱의 대주후大周后와 소주후小周后 주아황 周娥皇 周女英 인가 다 그 나라를 망추는 것 , * 동함 대장괘 연장이 꼿꼿해서만 미희와 놀기가 좋다하는 것, 九二. 貞吉. 象曰. 九二貞吉 以中也 구이. 정길. 상왈. 구이정길 이중야 배경은 그렇게 환괘 황음(荒淫)놀이 손씻지 않음 옥좌가 무너진다는 것 , 또는 미희는 편히 기대어 쉴수 있는 침상인데 그런 것이 술래잡기 놀이 동원 숨느라고 도망질 친다하는 것 九二. 渙奔其 . 悔亡. 象曰. 渙奔其 得願也 구이. 환분기궤. 회망. 상왈. 환분기궤 득원야 동함 규관(闚觀) 사내 마음을 읽는 행위를 한다는 것 훔쳐보고 속셈을 알아채는 간특한 행위를 한다하는 것 그래선 악녀 추접하게 된다 그런 여성 가문(家門)파과 경국경성(傾國傾城) 된다 여럿 망춘다 하는 것 이런 작용이 일어난다 그러니깐 진숙보와 장려화 대칭 이다 六二. 闚觀. 利女貞. 象曰 闚觀女貞 亦可醜也 육이. 규관. 이녀정. 상왈. 규관녀정 역가추야 자신 이런 운명이라선 단점일 것 같으면 [그걸 나는 이러 이러 해서 알아 맞추는 재주가 있다 으스대고 뽐내고 자랑할 것 아니라] 수련(修練)교양(敎養)을 잘 쌓아선 [컴프러치] 가리기를 잘한다면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이라 내 속셈 들키지 않음 타인에게 밉상받지 않게 되고 그런 간특한 밉상 받는 행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진정 영리 한 자는 자신과 주위 환경이 함께 덕있고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만드는 것이지 사익(私益) 잇권에 얽메여 나중이라도 비난 지탄 받는 행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데 이런 운명이면 그런 간특한 재주를 부리라고 주위가 들꼬이는 것이 부추기는 시정잡배만 모여들기 쉽다는 것, 그래 이런 주위 소인배들을 멀리 하는 것 쉬운 것 아니다, 다 수양(修養)에 있는 것이다 전복 여괘 오효 눈부시다는 취지 사치일시망 종이 예명이라하는 여괘(旅卦) 아주 화려한 꿩색의 모습이다 六五. 射雉一矢亡. 終以譽命. 象曰. 終以譽命 上逮也 육오. 사치일시망. 종이예명. 상왈. 종이예명 상체야 동함 아름다운 피그미 =꽃돼지 가둔 자리이다, 임괘에선 인물좋은 역량이 이쪽으로 임한 것이라면 둔괘(遯卦)에선 인물 좋은 장려화 이옥련 돼지가 도망을 간다는 것이다, 九五. 嘉遯. 貞吉. 象曰. 嘉遯貞吉 以正志也 구오. 가둔. 정길. 상왈. 가둔정길 이정지야 배경 다가오는 것 감절이다 달콤한 마디이다 달콤한 절약생활이다 절약의 마디라하는 것 대략 쓰거운 것인데 달콤하다하는 것은 제속에 들은 지식(智識)역량을 달게 사무(事務)에 적용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남을 그렇게 달다고 유혹하거니 또 자신이 달다고 으스대다간 자칫 방심할 틈이 생긴다 하는 것, 절약이라하는 것은 가득찬 것 넘치는 것 오히려 들은 지식보다 그릇이 작은 것을 말하는 것, 찰랑 찰랑 담은 것은 자연 넘쳐 흐르게 마련인 것 자칫하다간 덕의 손상을 받을수 있음으로 매우 조심해야 한다하는 것, 잘 그런 단마디를 좋은데 사용해선 허실하지 말아야 한다 할 것이다, 가진 지식이 많고 좋다고 오만하게 나댄다면 되려 덕의 손상을 가져올 것 이러지 않도록 매사 조심하라는 것이다 발 한번 잘못 띰으로 인해선, 줄을 잘못 선택함으로 인해선, 가면 갈수록 거리가 점점 오차(誤差) 분도기 벌어지듯 천리가 틀려지게 된디는 것, 오차(誤差)없는 삶 행위를 하라 이런 취지이다, 九五. 甘節吉. 往有尙. 象曰. 甘節之吉 居位中也 구오. 감절길. 왕유상. 상왈. 감절지길 거위중야 동함 지택임괘 오효 六五. 知臨. 大君之宜. 吉. 象曰. 大君之宜 行中之謂也 육오. 지림. 대군지의. 길. 상왈. 대군지의 행중지위야 육오는 지식 지혜로움으로 임하려 하는 것이니 큰 군자의 마땅 함이다 좋다 상에 말하데 마땅한 것 덕 화목한 것이 커졌다하는 것은 중간 맞춤을 행함으로서 그렇게되는 것을 말함이다 소이 적격 심사에 통과된 것을 말한다, 학위 수여 받은 것 지식에 대해 덕목 쌓은데 대해 인정 받은 것을 말한다, 많은 봉접(蜂蝶)류 중에 제일 화려한 것 인물 문장이 뛰어난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군계일학(群鷄一鶴)으로 임한다는 것 앞에 두 음효를 두어선 양기로운 효기들과 거리가 멀어지고 삼등 세 번째 탐화(探花)식(式)되는 것 그러지 않음 경쟁 상대자들을 따돌리고선 그 메달과 같은 꽃에 앉아볼 기회가 멀어진 것을 말한다 앞에 두 음효를 물리치고 선택을 받는다 하는 것은 그만큼 지식(智識)성향 인물이 잘 난 것을 말한다 자신이 선택 임하는 것도 그렇치만 남이 자신에게 임하는 선택받는 것이 그렇다는 것이다 교체 첸지 六五. 噬乾肉 得黃金. 貞厲无咎. 象曰. 貞厲无咎 得當也 육오. 서건육 득황금. 정여무구. 상왈. 정여무구 득당야 육오는 마른 육포(肉脯)를 씹다간 임금님이 사냥 하실적 사냥감에 모르게 박힌 황금 화살촉 부스러기를 얻었다 곧더라도 우려스러운 모습이나 허물을 잘 벗어 없앤다 소이(所以) 거가 속으로 정괘(井卦)정상(頂上) 입으로 우물우물 해선 쇠를 발려 낸다는 말씀 .. [어째 말뜻이 다통하잖는가 말이다..] 상에 말하데 곧더라도 우려스러운데 허물 잘벗긴다 함은 마땅한 것을 얻은 것이다 동함 약(藥)질 윤활유 안쳐도 잘 달리는 수레는 약질하면 헐거워선 동테 빠진다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 약질 시험하질 말라하는 것, 자연적인 병들음 절로 낳게 마련인데 왜 덧보태기 치유제를 쓰느냐 이런 가르침이다 그저 물렁한 금부스러기 씹은 정도의 아픔이란 참음 조금 지남 금방 가실 것이라는 것이다 서합(噬嗑)은 인위적인 씹는 행위 물렁 황금 병(病) 씹은 병난 것 이지만, 무망(无妄)은 자연적은 병 약 안친다 이래 대칭이다 九五. 无妄之疾 勿藥有喜. 象曰. 无妄之藥 不可試也 구오. 무망지질 물약유희. 상왈. 무망지약 부가시야 * 아마도 황금 부스러기를 씹음 열이 나는가 보다 배경이 시원한 냉수 물먹으라 하는 것 보니 정렬한천식(井冽寒泉食) 자리이다, 아 그넘 육포 씹다 못먹을 것을 씹으니 쌤통이다 속 시원하다 이렇게 본다는 것, 九五. 井冽. 寒泉食. 象曰. 寒泉之食 中正也 구오. 정렬. 한천식. 상왈. 한천지식 중정야 동함 열기가 멀리 퍼지지 못하는 것 향기로움이 멀리 안퍼지는 지난 업적 높이 쌓은 곳에서 제사(祭祀)향연을 펼친다, 늙어 쇠락 해지면서 내외 제사행위는 이팔청춘 젊은애들만 못하다 하는 것이다 응효(應爻) 이효 녹음(綠陰)속 이팔청춘들 사랑제사 향연 배짱이 악기 연주하는 모습의 대칭 행위니 멀리 음악 향기 퍼질이가 없다는 것이다 六五. 貞吉升階. 象曰. 貞吉升階 大得志也 육오. 정길승계. 상왈. 정길승계 대득지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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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後主 이욱李煜의 황후 대주후大周后와 소주후小周后
중국 문화 산책 ・ 2023. 7. 19. 14:01
주아황周娥皇은 남당南唐의 세가世家(여러 대에 걸쳐 국가의 요직에 있거나 특권을 누리는 집안) 출신으로, 그녀의 부친 주종周宗은 일찍이 이욱李煜의 부친 이경李璟을 따라 사방에 정벌전쟁을 나가서, 원훈공신元勳功臣이라고 불릴만했다.
그래서 가세家世의 지위가 높고 귀한 집에 태어난 주아황은 어려서부터 좋은 교육을 받아 고귀하고 전아典雅한 기질을 배양하여, 남들에 비해 뛰어나게 청아하고 수려했다. 그녀는 비파琵琶에 조예가 깊어, 그녀의 비파 소리를 들은 이경은 연신 칭찬하며 자기가 아끼는 소조燒槽 비파를 그녀에게 선물했다.
954년에 18 살이 된 주아황은 그녀보다 1 살 아래인 황자皇子 이욱李煜에게 시집을 갔다. 두 사람은 취미가 서로 맞아서 더욱 행복해 하며, 서로 의지하며 날마다 함께 즐겼다.
주아황이 이욱을 위해 『요취무파邀醉舞破』 곡曲을 창작했는데, 이욱도 주아황을 위해 감동적인 시사詩詞를 많이 썼다. 두 사람은 한 사람은 작곡하고, 또 한 사람은 사詞를 써넣으며, 언제나 온화한 정취를 누리며 생활했다.
이 당시에 후주後周 왕조는 시영柴榮의 치국 아래 날로 강대해져서, 부단하게 군대를 동원해서 남당南唐을 공격했는데, 바로 주아황과 이욱이 함께 향락을 누리던 그때였고, 남당은 연속적으로 영토를 뺏겼다. 눈앞에 위기가 다가오자, 이경은 황급히 이욱을 태자로 책립한 뒤에 남창南昌으로 달아나 피난했다.
961년에 이경이 붕어하여 남당후주南唐後主로 즉위한 이욱은 주아황을 황후로 책립했다. 그러나 즉위한 이경은 군대를 인솔하여 나라를 지키지 않고, 후주後周에 칭신稱臣하고, 북송北宋에는 공물을 바쳤다.
주아황은 그 중간에서 이욱에게 권고도 하지 않고, 도리어 오로지 시를 짓고 사詞를 써넣어 가무를 즐기는 생활에 깊이 빠져 지냈다. 그녀는 현명한 황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어떤 정무에도 공적을 세운 적이 없이, 오히려 극도로 사치하게 생활했는데, 이욱은 주아황을 총애했기 때문에, 언제나 온갖 방법으로 그녀가 애호하는 것을 만족시키려고 했다.
964년의 걸교절乞巧節, 즉 칠석날 밤에 주아황과 이욱은 함께 칠석을 경축하며 흉금을 털어놓고 마음껏 마시다가 날이 밝을 때에야 주연을 파했다. 축하연에서 과음하고, 궁으로 돌아온 그녀는 곧 감기에 걸려 병이 나고 말았다.
주아황에 대한 총애가 대단한 이욱이 곧 주후周后의 가족에게 입궁하라는 영을 내리자, 주후의 부친이 여동생 소주小周씨 여영女英을 데리고 병문안을 왔는데, 소주씨 여영에게 궁중에 남아 언니 시중을 들게 했다.
그때, 14 살 난 소주씨는 이미 유연하고 아름다운 자태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용모가 젊었을 때의 언니 아황과 아주 닮았는데, 다만 언니보다 14 살이나 어리고 성격도 활달했다. 이러한 모습에 눈앞이 환해진 이욱은 즉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오후에 몰래 소주씨의 거처로 간 이욱은 그녀의 잠든 모습을 보고, 얼이 빠진 것처럼 계속 보고 있었다. 잠에서 깬 소주씨는 언니의 남편이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 얼른 일어나 예를 차렸지만, 멋쩍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나 마음속에 이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이욱은 순舜임금이 아황娥皇과 여영女英 자매를 아내로 삼아 행복한 생활을 한 전고典故로 화제를 이끌어서, 계면쩍어하면서도 자기가 부러워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소주씨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대단히 총명해서, 이욱의 말속에 다른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일순간 놀랍고도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했다.
자신이 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한 이욱은 자기 거처로 돌아와 소주씨에게 사詞 한 수를 써서 마음을 완곡하게 표현하여 보내고, 나중에 또 소주씨에게 몰래 편지를 보내 야밤에 따로 만나자고 했다. 소주씨는 흥분되기도 하고 긴장도 되었지만 여러 가지를 가늠하여 생각해본 다음에, 밤중에 약속한 장소로 나갔다. 밤에 두 사람은 작은 정자에서 밀회하며 잊지 못할 밤을 보냈다.
남당후주 이욱의 황후 대주후와소주후
소주씨를 얻은 뒤로 이욱이 다른 비빈들을 냉대하게 되자, 비빈들의 마음에는 원한이 생겼다. 그리하여 그녀들은 대주후大周后의 처소로 병문안을 갔을 때, 이욱과 소주씨가 사통한 사정을 대주후에게 알려주고, 이욱이 소주씨에게 쓴 연애시까지 증거로 내보였다.
대주후는 자기 몸에 중병이 있어 이욱과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자기가 가장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할 때, 오히려 이욱은 자기 친여동생과 분별없이 지내고 있는 것에 상심이 되어 몸의 통증이 더욱 가중되었다.
주아황은 일생동안 이욱에게 아들 둘을 낳아주었는데, 즉 이중우李仲寓와 이중선李仲宣이다. 어느 날, 겨우 4 살 난 이중선이 불상 앞에서 놀고 있을 때, 커다란 고양이가 갑자기 뛰어오르다가 유리등을 넘어뜨렸는데, 그때 너무나 놀란 나머지 중선은 얼마 뒤에 병으로 죽었다.
원래 병이 위중했던 주아황은 또 사랑하는 아들이 돌연 죽은 데 타격을 받아, 병이 더욱 악화되어, 얼마 뒤에 죽었다. 아황이 죽은 뒤, 이욱은 대단히 고통스러워하며, 예전에 사랑하고 아낀 세월을 떠올리며 상심해마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바람에 소주씨는 자연히 궁중에 남게 되었고, 언제나 이욱 옆을 지켰다. 대주후가 죽은 이듬해에 이욱의 생모 종鐘씨도 세상을 떠났다.
아황이 세상을 떠난 지 4년째인 968년에 이욱은 소주씨와 정식으로 혼례를 거행했다. 혼인을 치른 뒤로 이욱은 정사를 더욱 돌보지 않고, 거의 모든 시간을 소주후小周后와 향락하는 생활에 소비했다. 용모가 점점 더 예뻐진 소주후는 음률에도 뛰어나고, 향료를 만드는데 흥취가 넘쳐흘러서, 이욱은 그녀와 동석하여 하루 종일 향료와 화초를 연구했다.
이때의 남당은 바로 내우외환의 정치적 형세에 처해 있어서, 응대하기 어려운 국사國事에 시달린 이욱은 곧 하루 종일 부드럽고 살뜰한 마음씨를 지닌 소주후에게 탐닉하며, 지나치게 사치를 향락했는데, 이것은 남당의 멸망을 상당히 가속화시켰다.
969년에 송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이 거듭거듭 사람을 파견해 이욱에게 항복을 권했으나 모두 거절당하자, 몇 번을 물러났다가 사람을 보내 화친和親을 요구했다. 이욱은 화친이 두 나라 국교에 미칠 중요성을 알고 있었으나, 그는 소주후를 너무 아낀 나머지 그녀가 당할 억울함을 참을 수가 없어서, 조광윤의 화친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975년에 북송北宋의 대군이 남당을 공격하자, 남당은 대적하지 못하고, 이욱은 송군宋軍의 포로가 되어 망국노亡國奴가 되었다. 조광윤은 이욱의 재기才氣를 칭찬하며, 그를 위명후違命侯, 소주후는 정국부인鄭國夫人에 봉하고, 그들에게 저택을 주어 거주하게 하고, 생활도 예전대로 누리도록 우대했다. 그러나 그 해에 조광윤이 세상을 떠나고, 그 뒤를 이어 즉위한 동생 조광의趙光義는 이욱을 농서군공隴西郡公으로 강등시켰다.
978년의 원소절原宵節에 조광의는 정국부인에게 입궁하여 경축하라는 영을 내렸다. 조광의는 입궁한 소주후의 뛰어난 용모와 풍격에 한눈에 반하여, 절차切磋(학문 따위를 서로 토론하고 연구하다)하는 여공女工이라는 명분을 주어 그녀를 황후의 거처에 남아 있게 했다. 소주후는 궁중에 며칠 동안 얽매여서 조광의에게 모욕을 당하다가 돌아올 수 있었다.
연유를 알게 난 이욱은 상심해마지 않았다. 궁중에서 능욕을 당한 소주후가 이욱이 치국治國을 돌보지 않고 오직 향락만 추구하여 지금의 이런 국면을 초래했다고 질책하는데도, 이욱은 그저 자책하며 말 한마디도 못했다.
조광의가 이욱을 우대한 것은 전부 소주후에 대한 그의 야심에서 나온 것인데, 그는 기념일이나 경축일에 소주후를 만날 수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식에 벗어난 요구를 궁정화가에게 했는데, 자신이 소주후를 총애하는 장면을 그리게 하고, 자기가 보고 싶을 때면 그런 그림을 감상했다.
평소 소주후는 이욱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조광의에게 굴복했으나, 그녀는 돌연 여러 명의 화가가 옆에서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나마 누르고 있던 자존감이 순간적으로 폭발하고 말았는데, 그리하여 구석에 숨어서 조광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조광의가 다시금 소주후에게 강제로 능욕을 했을 때, 화가들은 그 옆에서 그 전 과정을 그렸는데, 바로 이것이 『조릉행소주후도照陵幸小周后圖』이다.
이욱은 분노와 원한에 사무쳤지만, 그저 사詞 한 수를 쓰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뿐이었다. 그의 이러한 거동은 조광의에게 살기殺氣를 일으키게 했다. 이욱은 42 살의 생일축하연에서 심경이 더욱더 처량해져 절필사絶筆詞 『우미인虞美人』을 지었다. 이를 알고 난 조광의는 벌컥 화를 내며, 독이 든 술을 이욱에게 보냈다. 살피지도 않고 술을 마신 이욱은 얼마 뒤에 경련을 일으키며 사지를 떨다가, 마지막에 소주후의 품에 안겨 죽었다.
이욱을 안장한 소주후가 전례대로 궁에 들어가 감사 인사를 올리자, 조광의는 또 궁중에 며칠 동안 억류시켰다가 풀어주었다. 소주후는 비명에 죽은 이욱을 그리워하며 매일같이 이욱 영전에 멍하니 앉아 지냈다. 조광의가 여러 번 불러도 거절했는데, 아무리 협박하고 이익을 내세워 회유해도, 그녀는 여전히 단호하게 거절했다. 소주후는 이욱의 상복을 입는 기간이 다 끝난 그 해에 자살하여 생을 끝냈다.
[출처] 후주後主 이욱李煜의 황후 대주후大周后와 소주후小周后|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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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 酒 色 錢 순서인데 늙어서는 주색은 빠지고 ,돈이 있어야 요양원 양로원 안가고 자식들 한테도 신세 덜진다 고령화인구절벽시대에 우리까지는 자식이 있지만 다음 세대들은 어떻게 마무릴 지을런지 그게 걱정이다 인조인간 로봇이라도 많이 만들어선 후사 없는 자들 잘 모시게 할른지... ,그 시대에도 돈과 재물은 필요할거다
효도관광가서 좋은 인연만나게 해준다 하는 연리지 있는데를 가라하니 이미 만난것만해도 좋다 하는데야 , 나쁜넘 만나는 것 보다 혼자 사는 것 좋다는데야 해볼도리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