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자랑, 성심당
기자명 김용복 주필
승인 2021.07.26 15:59
대전에는 이엘치과를 비롯하여, 계룡건설, 맥키스컴퍼니, 주)비센, 금성백조, 삼진정밀, 키다리식품 등 자랑할만한 기업들이 수없이 많다.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성심당은 대전에 뿌리를 내린 지 65년 이상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과 함께 애환을 겪어 오면서 대전지역에 기여한 바가 큰 기업인 것이다.
제2대 창업주 임영진 대표께서는 인사말을 통해
『그동안 가톨릭 나눔의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며 살아온 것이 저희 성심당의 전부입니다. 사랑해 주시는 고객들의 이미지에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지내온 날들이 이렇게나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초심을 잊지 않고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매일같이 기도하며 우리 성심당을 이끌어 왔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본에 충실하며 고객을 가장 먼저 사랑하고 사원들을 사랑하며 그리고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 한결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고 하면서
"그동안 제과 사업에 최선을 다한 결과 이제는 우리 성심당이 단일 윈도우 베이커리로는 전국 최대의 규모로 성장 하였다" 고 회고 하면서 다양한 제품을 연구하고 도전한 결과 어느 곳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기술력과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성심당!
대표이신 임영진 요셉과 그의 반려자 김미진 아녜스 부부께서 이끌어 가고 있는 성심당은 대전만의 기업이 아니요, 대한민국의 대표브랜드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그동안 어려운 이웃의 외롭고 서글픈 마음을 어루만지기 몇 년이며, 대흥동 본점을 비롯해 대전역, 롯데백화점, 대전 컨벤션센터 등 네 곳을 운영하며 수많은 일자리 창출은 그 또한 얼마이고, 국가적으로 세수(稅收)는 얼마이며, 노숙자를 비롯해 어려운 이웃을 도운 일 또한 얼마인가를 생각해 보면 머리 숙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보자, 성심당이 걸어온 발자취를
70년 전 해방 당시 함경도 함주에서 과수원을 하던 임길순(암브로시오)씨는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종교 탄압이 갈수록 심해진 데다가 6.25 전쟁이 터졌다. 그러다가 1ㆍ4후퇴 때 임씨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가기로 작정했다 한다. 그래서 피난 보따리를 꾸리고 아내와 어린 네 자녀를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던 것이다. 도처에 미군들이 검문하고 있었지만 천주교 신자임을 증명해주는 묵주를 보여주고 어렵사리 흥남 부두에 도착해 배를 탈 수 있었다 한다. 교우들만 탄 배였다. 임씨는 ‘가족과 함께 무사히 살아난다면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그 다짐을 예수 성심께 봉헌했다는 것이다.
전쟁 후 인근 진해에서 한동안 지내던 임씨는 먹고 살길을 찾아 서울로 가기로 결심했다가 도중에 마음이 바뀌었던 것이다. 서울에 간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정착한 곳이 대전이었다. 임씨는 대전역 앞에서 노점상처럼 천막을 치고 찐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그해가 1956년이었다. 임씨는 예수 성심(聖心)을 기린다는 뜻에서 빵집 이름을 ‘성심당’이라고 지었다.
그로부터 6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성심당은 대전을 대표하는 향토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빵으로, 건강한 기업 문화를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공유 경제로,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사랑과 나눔으로, 그리고 그것은 실천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보자, 그 사랑나눔의 실천을.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찾았던 곳이며, 대전 대학생들이 ‘대전 최고의 브랜드’로 선정한 곳이 바로 성심당인 것이다.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왜 대전까지 내려와서 성심당을 찾았을까? 천주교 교우로서 천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56년 대전역 앞에 천막을 치고 찐빵을 만들어 팔던 노점 찐빵집이 어떻게 점포를 네 곳이나 세우고 400여 명의 직원을 둔 대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게 됐을까?
그 배경에는 기업주의 확실한 신념인, 경쟁이 아닌 상생을, 독점이 아닌 나눔의 경영을 실천하고, 끝없는 제품 개발과 업계를 선도한 마케팅 전략, 이웃과 상생하고 함께 성장하고자 한 남다른 경영철학이 오늘날의 성심당을 만들게 됐던 것이다.
오 헨리의 작품에는 공원이나 광장, 노숙자 등이 많이 등장하는데 공원이나 광장은 만남과 소통의 장소이고, 노숙자는 인류애를 실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대전역 광장에서 천막을 치고 빵을 구워팔던 창업주 임길순(암브로시오)씨나, 그 아들 임영진 (요셉)대표는 광장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들의 생활 모습이 어떠한가를 가슴 아프게 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무사히 살아난다면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한 결심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 뒤를 이어받은 아들 임영진 대표 역시 아버지의 이런 결심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 가슴 아픔. 그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축복받는 실천으로 옮겨지게 돼 오늘에 이르게 됐던 것이다.
아 축복이어라, 성심당이여! 그리고 광장에 모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천주님, 이렇게 아름다운 기업에 그 크신 축복을 한없이 내려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대전의 자랑, 성심당 < 김용복주필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투데이플러스 - http://www.today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189
첫댓글 창업주 임길순씨는 여름이면 늘 성심당 모퉁이에서 아이스케키를 팔았죠.....
어머나, 기억하시는군요!
팥빙수 먹고싶네요.한여름 밥맛없을때 팥빙수 사먹었거든요.
대전가면 꼭 찾아보겠습니다.^^
대전 자주 오시는군요.
대전역사에도 성심당 분점 있어요^^
@♡리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