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처럼 꽃 구경이니 봄바람이니 하며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수고 안 해도 좋은 계절 가을이다
가을이면 창가에 턱 괴고 앉아 종일 상념에
잠기어도 달콤함 고독이 지루함을 채근하지
않으니 좋다
마지막 수분을 끌어 올리는 나무의 부지런함도
한낮 햇살에 가는 목을 한들거리는 과꽃과 코스모스
그들이
저녁 차가운 기운에 고개 숙이는 모양까지
가을은 얼마나 센치한 행복을 주는지
빈집 흙 마당 가 울타리 한쪽에 피어나던
재래종 빨간 국화 한 무더기
가을이면 으레 떠오르는 상념들
요새는 워낙 크고 화려한 꽃들이 대세라
작고 수수해 보여 눈에 띄지 않아
지나치는 재래 국화꽃
초겨울까지 양지바른 뜨락에서
피고 지고 하다가 첫서리에
잎은 마르고
가지는 앙상해져
그 생을 다하는 국화꽃
홀아비 따라 여기저기 다니다가
외딴곳 어느 집 곁방을 빌려
겨울만 나고 떠난다는 약조로 든 방
가구 수가 적은 산골동네
종일 어린 동생과 둘이서
가을 해 맞으며 놀았지
사금파리와 양철 조각 모아다
소꿉장난으로 하루 해를 보내던
어린 두 자매
그때 사금파리에 담겨서
떡도 되고 밥도 되고
고기도 되고 과자도 되었던
국화꽃 송이들
따도 따도 다음 날이면 또 새로운
꽃으로 피어나던 작은 꽃송이들
하얀 꽃은 쌀밥
붉은 것은 과일
붉은 잎 콩콩 찧어
먹고 싶은 김치도 담그고
외딴곳이라 동네랄 것도 없어
어른이 없으니 아이들은 더구나 볼 수 없던 동네
가을 한낮 따끈한 햇살은 자매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을 맺히게 하지만
산골의 저녁은 얼마나 급하게 마을로
내려오던지 순식간에 어둠의 적막강산이
어린 우리를 추위와 무서움에 떨게 했지
십리 길쯤이야
마실 댕기듯 걸어 다니던 시절이라도
어른들은 왜 그리 더디 오고 늦게
다니던지
낮에는 국화꽃과 가을 햇빛 속 낭자한
바람의 보살핌으로 시간을 잊고 외로움을
잊었지만
어둠이 잠식한 산골 밤은 호롱불에
의지해 다섯 살 동생과 견디기엔 너무나 무서운
시간이기도
알 수 없는 산짐승들이 내는 온갖
기괴한 소리들
허술한 울타리를 넘어
보잘것없은 문짝을 긁어 댈 것 같이
촉각을 곤두서게 하는 소리 없는 움직임들
방문 앞에서 들리는 걀걀 대는 소리에 문고리에
숟가락을 꽂아 놓고도 구석에 숨을 곳을 찾던
우리 자매
사람의 목소리를 그토록 애타도록 그리워하며
기다려 본적이 그때 이후로 또 있었던가 싶은
내가 가을이면 한 번은 꼭 써 보는
국화꽃 이야기
그 시절 어린 우리 자매의 서럽고 외롭고
춥고 무서웠던 그 집의 풍경은 언제나
어린 동생과 나 둘 뿐이던 기억
그리고
늦가을 햇살에 익은
빨간 국화꽃 무더기가 있고
눈물이 날 것 같이 넓고 휑한 흙 마당
아무도 없어 인적이 그립던
언제나 적막만 감돌던 동네
길고도 무서웠던 밤들
아픈 기억으로 남은 상처와
슬픔의 조각들
작고 동그란
붉은 색깔의 국화
가을이면
언제나 그때 빈집의 국화를 떠올리고
국화를 생각하노라면
소식도 없이 살아가는 막내가
그립다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가을이다
쓸쓸한 마음이 들수록 가슴은
점점 비워져 가는 듯하다
대지는 풍요롭고
자꾸만 비워내는 내 속이 혹시라도
저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이나
닮아갔으면 좋으련만
피케티 오랜 만이야 ~^^
요즘 애들은 소꿉놀이 안하지? 워낙 게임에 열중하는 세대라서 말야 우리 시대는 여자애들 놀이라곤 고무줄 공기 소꿉놀이가 전부지
그러니 어린 시절 추억은 너무 단순한가봐 피케티도 이 가을 행복하길 바래~
운선작가님의 가을국화 쓸쓸함도 이제 어느덧
아득한 옛추억인가 봅니다.
이 또한 다 자나간 세월이니.., 그러러니 한가 봅니다.
이제는 언제나 미소짓는 생각하면서 가끔은 멀리서나마
오매불망(寤寐不忘) 작가님 찐팬이라고 부르짖는 녀석도
있다하니 이 또한 작은 즐거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힘차게 첫번째로 추천(推薦) 드립니다.
PS:// 운선작가님, 함께 힘내요.
전 오늘도 열심히 회사일에 매진(邁進)하고 있답니다, 하하., ^&^
감사합니다 정다운 삼족오님ㅎㅎ 요즘 삼족오님 글 자주 접하니 삶방이 환해집니다
긍정적인 모습을 글에서 찾은 덕분이지요 늘 좋으신분 사랑꾼님~^^
소견다괴라 본 게 적고 경험이 얕으면 알지 못한다지만
개미만큼의 감성은 지닌지라 다른 분들과 같은 마음으로
저와 동향이실 어린 두 자매의 가을을 많이 안스러합니다
운선님 글을 대하며 드는 생각에, 세상이 이게 참 아름답지
않구나를 아는 순간 우리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고 그럼,
누가 진짜 어른이 되는가..는 자기 상처에 대한 아픔과 연민
을 품고도 다른 이의 상처를 보듬어줄 때가 아니랴 싶습니다
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가을에 참 괜찮게 늙으신 사람으로,
삶방에 향기로운 어른으로 계셔주셔서 고맙습니다
구봉님~ 웬 경사로 귀한 댓글까지 ㅎ 잘계시죠? 이렇게 만나니 너무 반갑습니다 그저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