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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오(正午).
뎅... 뎅... 뎅... 뎅!
태양이 중천에 떠오르자 패검성은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인을 제외하고 패검성의 전 제자들이 일제히 한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무려 이천의 수효를 헤아리는 전 제자들이 내성(內城)의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거대한 연무장에는 의식을 치르는 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른바 패검대(覇劍坮)였다. 대 위에는 태사의가 마련되어 있었고 제단과 여러 개의 상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것은 패검성이 봉성된 이후 처음 벌어지는 대의식이었다. 동시에 패검성으로서는 뼈아픈 의식이기도 했다.
바로 패검성의 전 성주인 검중검 수운빙을 죽은 사람이라 여기고 그를 사자(死者)의 명부에 올림과 동시에 그의 아들인 수검혼이 정식 성주가 되는 의식이었다.
하나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엄청난 음모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패검성도 중 천여 명에 달하고 있는 일원검주 수하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와 같은 반역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정오가 되자 모든 사람들이 패검대 앞에 운집했다.
패검대 위 제일 중심에는 태사의가 놓여있고, 금의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는 바로 수검혼이었는데 만면에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데 그의 왼손 식지에는 큼직한 쇠반지가 끼여져 있었다. 하나 아무도 그것을 주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밖에 그의 뒷자리에는 아홉 개의 의자가 있었다. 패검구장로의 자리였다. 그런데 네 개의 의자는 비어 있었고, 나머지 다섯 개의 자리만이 채워져 있었다.
둥... 둥......!
북소리가 둔중하게 울렸다. 이번에는 종소리가 아닌 북소리였다.
그것은 본격적인 의식이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였다.
연무장에 모인 이천여 중인들이 모두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시립하자, 부성주이자 패검구장로 중의 수석장로인 일원검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수검혼보다도 화려한 금의를 입고 있었다.
그는 성큼성큼 걷더니 제단 앞으로 가서 우뚝 섰다.
"......."
중인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일원검주는 제단의 향로에 불을 붙였다.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천지신명이시여! 본 패검성을 굽어살피소서."
그는 제단을 향해 절을 올렸다. 일원검주는 절을 마치고 난 후 선포했다.
"본성의 성주이신 검중검 수운빙 성주님께서 성을 떠나신 지 십 팔 년이 넘었소이다. 성주 자리가 공석으로 있은 지 십 팔 년, 이제 본성의 장로회의를 거쳐 새 성주를 제정하는 의식을 치르게 되었소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중인들의 눈은 일제히 태사의에 앉아 있는 수검혼을 바라보았다.
"......."
그는 눈길을 돌려 중인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수운빙의 성주직위 퇴위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무감각한 듯 멀뚱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머금어져 있었다.
수검혼은 이를 보면서 내심 중얼거렸다.
'옥과 돌을 함께 취급할 수는 없다.'
수검혼은 야릇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전에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의식은 계속되었다.
의식복을 입은 한 노인이 앞으로 나왔다. 의전각주인 창궁혈선검(蒼穹血仙劍)이었다. 그는 두 손에 금쟁반 하나를 받쳐들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자 모두 예의를 표했다.
금쟁반에는 하나의 금관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몹시 중요한 것으로, 바로 패검성주의 무상천위를 나타내는 성주관이었다. 그 금관을 쓰는 자가 곧 성주가 되는 것이다.
이때 자기 자리로 물러난 부성주 일원검주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자 수검혼의 귓가에 전음이 들려왔다.
"이제 하야(下野)를 말할 때요, 소성주."
그의 음성은 부드러운 듯싶었으나 위협이 어려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겁에 질려 벌벌 떨어댈 수검혼의 바보 같은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하나 기이한 일이었다. 수검혼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으며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일원검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몹시 생경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설마 저 바보 놈이 딴 마음을 먹었단 말인가?'
그가 이렇게 생각할 때 수검혼은 그의 심중을 꿰뚫어 보듯 기묘한 웃음을 짓더니 의전각주를 향해 말했다.
"잠깐! 난 지금 금관을 쓸 수 없소."
중인들은 술렁거렸다. 금관은 당연히 소성주인 수검혼에게 가야했다. 그런 그가 거절을 한 것이다.
일원검주의 얼굴에 희색이 어렸다. 수검혼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중인들을 향해 말했다.
"난 소성주의 자격으로 이 자리에서 장로회의(長老會議)의 개최를 명하오."
"장로회의를!"
중인들은 갑작스런 그의 말에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장로회의는 패검성에서 열리는 중요한 세 가지 행사 가운데 하나였다.
첫째는 검중검회(劍中劍會)다.
그것은 과거 수운빙이 주도하던 연회로 침묵을 도모하는 한편 검술에 대한 토론을 하는 자리였다. 검중검회를 통해 패검성의 검법이 크게 발전한 것은 물론이었다.
둘째는 장로회의(長老會議)였다.
장로회의는 패검성의 존망이 달린 일을 결정하는 자리였다.
패검성 성주의 자리는 실상 절대적인 지위라기보다는 일종의 검맹(劍盟)의 맹주와 같은 지위였다. 그러므로 큰 일이 생기면 스스로 결정하기보다는 장로회의를 개최하여 중론을 모아 결정했다.
그러므로 장로회의는 가히 절대적인 권위를 지녔다. 장로회의는 패검구장로가 모두 참석해야만 개최될 수 있었다.
셋째는 검종회의(劍鍾會議)였다.
그것은 누군가 검종(劍鍾)을 침으로써 이루어졌다.
패검성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검종을 칠 수가 있었다. 삼 장 높이의 검종을 쳐서 자신의 억울한 사연이나 제안을 직접 성주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였다. 패검성의 단결이 유난한 이유도 바로 이런 제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수검혼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장차 성주가 될 그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장로회의의 개최를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원검주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장로회의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구검주 중 비어있는 사검주가 필히 있어야했기 때문이었다.
'가두어 놓은 그 작자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내심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심중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듯 수검혼은 능청스럽게 말했다.
"부성주, 어서 폐관수련하고 있다는 양의, 사상, 육합, 팔괘검주를 대령시키시오. 이 일은 정말 중대한 일이오."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난 장로회의에서 내가 성주가 될 수 없는 사람임을 밝힐 예정이오."
그의 음성은 나직했다.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근처에 있는 오검주 뿐이었다.
일원검주는 얼굴이 환해졌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명령했다.
"사검주를 모셔오너라."
"넷!"
패검대 아래에 있던 일원검주의 수하들은 재빨리 어딘 가로 사라졌다.
잠시 후 사검주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계피학발의 노인들이었다. 한데 그들은 몹시 수척하고 파리한 모습으로 일원검주의 수하들에게 억지로 끌려나오다시피 했다.
그들이 없어진 수년 동안 패검성의 사람들은 그들이 절기를 수련하기 위해 폐관수련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
한데 수년 만에 모습을 나타낸 사검주의 퀭한 눈빛에는 괴이하게도 원한이 사무쳐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원한과 증오가 어린 눈빛으로 일원검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그들 중 입을 여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아혈을 제압 당했기 때문이었다.
사검주가 패검대 위에 마련된 구검주의 자리에 앉자 장로회의는 시작되었다.
장내에는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중인들의 시선은 일제히 수검혼에게로 쏠려 있었다.
한편 일원검주는 만면에 희색을 띤 채 내심 중얼거렸다.
'후흣... 사검주가 나왔지만 모두 제압된 상태다. 놈들은 단지 허수아비이니 일은 계획대로 될 것이다.'
수검혼은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의 왼손 식지에는 철반지가 하나 끼워져 있었다. 그곳에 새겨진 용(龍)의 무늬는 생생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었다. 하나 반지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내에는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특히 뇌옥에 갇혀 있다 나온 사검주는 만면에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만일 금제만 풀린다면 당장 일원검주를 비롯한 역신들의 음모를 밝혀야 했으나 그럴 수가 없는 것이 한이었다.
이때 수검혼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장로회의에서 한 가지 밝힐 것이 있소."
중인들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수검혼은 중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난 성주가 될 수 없는 사람이오."
"......!"
중인들은 크게 술렁거렸다.
일원검주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수검혼은 계속하여 입을 열었다.
"패검성의 성주는 숭고한 지위이오. 그러므로 성주자리는 아무나 할 수가 없소이다. 성주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전해져야 하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중인들은 모두 술렁거렸다. 서로의 얼굴을 둘러보며 그들은 크게 동요하는 표정을 지었다.
수검혼은 양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
폭풍전야의 정적이었다. 장내에는 찬바람이 감돌았다.
이윽고 수검혼은 내뱉듯이 말했다.
"성주자리는 검혼(劍魂) 소성주에게 돌아가야할 것이오!"
"......?"
중인들은 아연했다. 성주자리가 자신에게 가야 한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그의 말은 중인들을 얼떨떨하게 했다.
특히 일원검주의 얼굴은 징그럽게 일그러졌다. 그는 무슨 말인가를 할 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수검혼의 손가락이 활짝 펼쳐지며 그의 입에서 일갈이 터져 나왔다.
"녹옥비파지(綠玉琵琶指)!"
파팍... 파... 팍......!
녹옥광채가 줄기줄기 뻗어나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패검구장로 중 일원검주를 비롯한 사검주의 가슴에서 핏물이 튀었다. 그들은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하고 제압 당하고 만 것이다.
"저... 저럴 수가!"
중인들은 대경실색했다. 갑작스런 변괴였다. 연무장에는 때아닌 폭풍이 불었다. 패검성도들은 일제히 안색이 변했다.
수검혼은 태사의에서 일어섰다. 그는 다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뇌옥에서 나온 사검주는 제압되었던 혈도가 풀리는 것을 느끼며 크게 외쳤다.
"소성주님!"
"아아, 검혼 공자님!"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했다. 이제껏 그들이 바보라 생각했던 소성주 수검혼은 바보가 아니었다. 고강한 무공을 지닌 고수 중의 고수였던 것이다.
수검혼은 씁쓸히 웃었다.
실상 그는 수검혼이 아니었다. 그는 단몽경이었던 것이다. 그는 사검주를 구한 뒤 중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 소생은 수성주(水城主)가 아니오. 진짜 검혼성주는 패검지존전 안에 계시오."
"......!"
중인들은 다시 대경실색했다. 단몽경은 어리둥절해 하는 중인들에게 담담히 말했다.
"진짜 성주 곁으로 안내해 주겠소이다."
이어 그는 패검대를 내려왔다. 그러자 사검주는 서로 웅성거리다 그의 뒤를 따랐다. 단몽경은 곧바로 내성 안의 패검지존전으로 향했다.
"검혼성주에게 모든 것을 들으시오. 이제까지의 패검성의 음모는 결국 검혼성주가 해결한 것이오."
"......?"
사검주는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그들 모두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이윽고 그들은 패검지존전 안의 성주의 거처로 들어갔다.
넓은 방 안으로 들어선 단몽경은 지극히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사검주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몽경은 방 한쪽에 쳐져있는 병풍을 가리켰다.
"진짜 성주는 저 안에 있소이다."
"......!"
한데 병풍 뒤로 돌아간 단몽경은 그만 멍청히 굳어지고 말았다.
"아니... 없다니!"
아무도 없었다. 병풍 뒤는 텅 비어 있었다. 그 대신 바닥에는 흡사 어린애가 쓴 듯한 서투른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성주가 될 인물이 못 됩니다. 재주 좋은 팔불랑객께서 대신 성주가 되시어 저의 어머니를 잘 봉양해 주십시오. 그 신통한 무공절기로 패검성 고수들을 잘 이끌어 주시어 언젠가 있을 검혼사령지전(劍魂死靈之戰)에서 천사궁을 이겨 주십시오. 저는 성주감이 못 됩니다.>
"......!"
단몽경은 아연해짐을 금치 못했다.
우공자 수검혼이 병풍 뒤에서 궁리하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바보스러운 자신보다는 재주 좋고 역용에 능통하며 무공이 강한 팔불랑객에게 모든 것을 넘기는 것이 패검성을 위해서 훨씬 나으리라는 결심이었다.
'이럴 수가.......'
단몽경은 쪽지를 쥐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사검주가 병풍을 젖히고 들어왔다. 그들은 그들의 소성주가 공연히 뒤로 빼는 것이라 여겼다.
"성주님!"
"공연히 피하지 마십시오. 마침내 패검성은 새로이 재건될 것입니다."
"하늘이 도우셨습니다."
사검주는 단몽경을 진짜 수검혼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몹시 기뻐하고 있었다. 짓무른 눈으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실로 오랜만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첫댓글 잘~~~감상~~~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ㅈㄷㄳ
잘##읽었습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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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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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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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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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임자 에게로 왔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