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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부끄러울 때가 있고 창피할 때가 있다. 두 말은 비슷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이 다르다. 부끄러움은 내 마음에서 시작되고, 창피함은 남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잘못을 저지르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얼굴을 들기 어려운 것은 부끄러움이고, 사람들 앞에서 실수해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은 창피함이다.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밤새 마음이 불편하다면 부끄러움이고, 많은 사람 앞에서 넘어졌는데 다친 것보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이 신경 쓰인다면 창피함이다. 부끄러움은 혼자 있을 때도 찾아오지만, 창피함은 누군가 보고 있을 때 찾아온다. 부끄러움에는 양심이 있고, 창피함에는 시선이 있다.
누구나 실수한다. 중요한 것은 잘못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못했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다. 반대로 변명하고 책임을 남에게 돌린다면 자신의 잘못보다 세상의 시선을 더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특히 정치와 행정에서는 부끄러움이 더욱 중요한 덕목이다. 정치인은 국민의 선택으로 권한을 위임받았고, 공직자는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권한이 클수록 책임도 커야 한다.
정책의 결과가 예상과 달랐다면 설명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기보다 목소리를 높이고, 문제가 드러나면 상대방의 잘못을 들춰낸다. 국민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반복한다.
이쯤 되면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국민을 이기려는 권력이 더 무섭고, 시민을 속이려는 행정이 더 걱정스럽다. 국민은 정부를 이길 수 없고, 시민은 행정을 이길 수 없다. 권력과 조직은 개인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 큰 절제가 필요하다.
국민과 누가 옳은지를 겨루기보다 국민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시민이 항의하면 먼저 들어야 한다. 모든 국민의 요구가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권한을 가진 사람이 국민과 시민의 목소리를 귀찮은 것으로 여기기 시작하면 민주주의의 거리는 멀어진다.
정치는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지 국민을 이기는 일이 아니다. 행정은 시민을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살피는 일이다.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친구에게 잘못하고도 “네가 예민해서 그래”라고 말하고,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도 “그럴 뜻은 아니었다”며 자신의 말만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잘못보다 체면을 지키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실수한 사람보다 실수하고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한다. 넘어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넘어지고도 자신은 넘어지지 않았다고 우기는 모습은 사람을 더 초라하게 만든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정책이 실패할 수 있고 공약이 현실과 부딪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당시에는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이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모른다. 국민은 완벽한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솔직한 사람을 원한다. 실수하지 않는 정부보다 실수했을 때 숨기지 않고 바로잡는 정부를 신뢰한다.
부끄러움은 패배가 아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순간 사람은 자신의 잘못보다 커진다. 반대로 잘못을 감추려고 거짓말을 시작하면 작은 실수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그래서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은 체면이 아니라 양심이다. 창피함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부끄러움은 아무도 보지 않아도 마음속에 남는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아직 양심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권력은 오래가지 않지만 기록은 오래간다. 자리는 언젠가 내려놓지만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창피하지 않은 정치가 아니라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인지도 모른다.
국민을 이기려 하지 말고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시민을 속이려 하지 말고 사실을 말해야 한다. 잘못을 감추려 하지 말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국민의 질책인가. 아니면 내 자리와 체면이 무너질까 두려운 것인가. 전자를 두려워한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그러나 후자만 두려워한다면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사회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잘못했을 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양심. 어쩌면 그것이면 충분하다. 창피함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만, 부끄러움은 자신의 양심을 바라본다.
권력은 언젠가 내려놓고, 자리는 언젠가 비워야 한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의 태도는 오래도록 기억된다. 잘못하고도 끝까지 변명했던 사람으로 남을 것인지,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았던 사람으로 남을 것인지는 결국 자신의 선택이다.
그래서 오늘도 묻는다. 우리는 창피하지 않게 살고 있는가. 아니면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가. 창피함은 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지면 끝나지만, 부끄러움은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도 마음속에 남는다.
그러므로 정치도, 행정도, 사람의 삶도 마지막에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창피함을 피하는 사회보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가 건강하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마지막 자존심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