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민원에 '베테랑 교사'도 교단 떠나…'정신과 진료'는 예사
교사 명퇴 16년 만에 7.5배로…87%가 이직·사직 고민
26%는 정신과 진료…"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예민해져"
텅 빈 교실의 모습. /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A교사는 초등학교 저학년 담임교사를 도맡아 하던 수십년차 베테랑 교사였다. 학교에 갓 들어온 학생들의 생활습관, 사회적 관계 맺기의 틀을 처음부터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던 A교사는 지난해 명예퇴직을 했다. 일부 학부모가 아이의 세세한 학교생활은 물론 사소한 일에도 학교폭력을 당했다며 지속적으로 민원을 거니 점점 견디기가 힘들었다. 밤에는 잠을 설쳤고 피곤한 상태로 아이들을 보면 신경이 곤두서있는 경우도 꽤 있었다.
아이들이 눈에 밟혔지만 이대로 교직을 더 이어가다가는 문제가 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A교사는 교직을 내려놨다.
최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일어난 한 교사의 극단적인 선택이 '악성 민원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걸 본 A교사의 마음은 더 착잡해졌다.
23일 교육계에 따르면 A교사처럼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 등 교육활동 침해로 인해 교단 떠나려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신규 초등교사'라고 밝힌 한 이용자가 발령 5개월 만에 CPA(공인회계사시험)를 시작했다는 글을 올렸다. 작성자는 "사실 나는 떠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사람이 죽고 맞지 않냐"며 "같은 임용 스터디를 했던 친구는 로스쿨을 준비하고, 친한 과 동기는 메디컬로 수능을 다시 준비한다"고 적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네트워크의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의 교직 이탈 의도와 명예퇴직자 증감 추이' 통계보고서를 보면, 2005년 초·중등학교 교사 명예퇴직자 수는 879명이었지만 2021년 6594명으로 7.5배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교사의 명예퇴직은 특정 시기 선발된 교사 수와 연령분포 등에 따라 해마다 변동 폭이 크다. 그러나 최근의 교사 명예퇴직에는 교권침해 등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지난 5월 교원 1만13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7%가 최근 1년간 이직 또는 사직을 고민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교육활동 침해로 인해 정신과 진료, 상담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같은 설문에서 최근 5년 사이 교권침해로 인해 정신과 치료 또는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는 교사는 26.6%에 달했다.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를 맡고 있는 B교사도 최근 정신과를 찾았다. 원인은 역시 악성 민원이었다.
B교사는 "오늘도 그 아이 엄마의 눈치를 봤다"며 "하나하나 트집을 잡아 사진 하나도 맘대로 올리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B교사는 수업할 때도 가슴이 뛰어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 커피도 끊었다고 한다.
B교사는 "교사들이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보고 분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며 "(악성 민원은) 옆반에서도 우리 반에서도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더 비통하다"고 말했다.
한 중학교의 C교사 역시 "그런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보면 트라우마가 생긴다"며 "좀 괜찮아졌다 싶다가도 조금이라도 비슷한 느낌의 학생이나 상황을 맞닥뜨리면 일단 예민하게 보게 된다"고 말했다.
C교사는 "학교에는 좋은 학부모도 많고 예쁜 학생들이 더 많다"며 "하지만 극히 소수의 극성맞은 학부모, 학생 때문에 좋은 학생·학부모들에 대한 느낌까지 묻힌다는 게 정말 안타깝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