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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대성불패를 만나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타이거즈 팬임을 미리 밝혀 둡니다.)
후배 녀석에게 점심 때 쯤 문자가 왔습니다. 오늘 자기과에서 구대성 선수의 강연이 있는데
혹시 보러 올 생각 없냐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강연을 보러 갔습니다.
강연의 주제는 "야구는 9회말 부터" 였는데 사실 그냥 아무렇게나 붙인 것 같고 -_-
실제 내용은 구대성 선수 본인이 밝히는 야구 인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마무리 투수 경력도 훌륭한 구대성 선수의 강연에 야구는 9회말 부터 라는 제목을 붙이는 건
좀 넌센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과 교수님들이 그런 것 까지 신경쓰실 것 같지는 않고;;)
99년 한국시리즈 우승 순간과 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획득 순간 동영상으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장내의 롯데팬들 사이에서 아쉬움의 탄성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기억나는 내용을 짤막히 써보면
1. 구대성 선수가 야구를 시작한 계기는 친형이 야구를 해서 캐치볼 하고 놀던 중 재미를 느껴서라고
합니다. 집에서 두 아들이 모두 야구를 하는 것을 못 마땅히 여겨 동생인 구대성 선수에게
야구를 그만두게 하려고 했는데(정말 큰 일 날뻔 했죠;;) "야구 안시켜주면 집을 나가겠다"며
반항(?)한 끝에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네요.
(새벽까지 집에 안들어가고 동네를 배회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2. 구대성 선수가 처음 투수가 된 계기 역시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구대성 선수는 매우 체구가 작았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공을 세 손가락으로 쥐지 못하고
다섯 손가락을 이용해 던졌다고 합니다.
하루는 초등학교 감독님이 모든 야수들에게 한 번씩 공을 던져보라고 시켰는데 구대성 선수의
느리지만 이상하게 떨어지는 공을 타자들이 아무도 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투수를 하게 되었다고;;; (본능적으로 팜볼성 체인지업을 던진 것 같기도 하네요 -_-;)
3. 중학교 시절부터 구대성 선수는 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문제가 된 부위는 팔꿈치였다고 하는데 이 때 부상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팔을 완전히 펴지
못하시더군요.
중학생인데다 요즘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구대성 선수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저 운동을 통해 부상을 극복하는 것 뿐이었다고 합니다.
매일 러닝과 철봉 운동을 통해 스스로 부상을 극복했다네요.
4. 대학 시절 단국대와의 결승전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 주셨는데 결승전 선발 투수로 나서서
연장 12회까지 150개 정도의 공을 던졌다고 합니다. 근데 당시 대회 룰이 12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
다음 날 재경기(! 서스펜디드가 아니라 첨부터 다시 시작;;)를 치르도록 되어 있어
결국 다음 날 다시 선발로 등판, 9이닝 완투를 한 적이 있다고 하네요;;
5. 대학시절 혹사의 후유증으로 프로 입단 후 구대성 선수는 원래 좋지 않았던 팔꿈치 부상 재발과
설상 가상으로 어깨 근막 파열로 인해 선수 생명이 끝났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갓 대학을 졸입한 신인 투수가 어깨와 팔꿈치에 고질적인 부상을 안고 있었으니
사실 선수로서의 사형선고가 내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본인의 야구 인생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고 회상하셨습니다.
야구를 그만둘 생각도 많이 했고 야구를 계속 하자고 해도 딱히 방법이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주위에서 선수생명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하도 자주 듣다보니 오기가 생겨
"지금 하는 그 말을 스스로 주워담게 해주겠다"는 일념으로 재활에 매달려 결국 마운드에 다시 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96년 18승 40세이브포인트 평균자책 1.88 .857의 승률로 투수 4관왕을 차지한
국보급좌완, "대성불패"의 신화는 이렇게 쓰라린 역경을 딛고 일어선 결과이기에 더욱 값진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늘 강연 중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이었습니다.)
6. 구대성 선수의 커리어 중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158구 완투승을 거둔 장면일 것 입니다. 이 날 등판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사실 구대성 선수는 전날 열린 미국과의 4강전 아침에 잠을 잘못 자는 바람에 담이 결리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심각했느냐 하면.. 팔이 안올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숨 쉬기 조차 힘든 정도였다고 하네요;
게다가 미국과의 경기가 경기 중 우천으로 인해 지연되어 새벽에 끝났고 경기 후 실시하는 도핑테스트
대상으로 구대성 선수가 걸려 숙소에 새벽 네시가 되어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숙소에 와서도 담 증세를 치료하느라 2시간 정도 밖에 못자고 동메달 결정전에 나섰는데
당시 김응룡 감독이 "팔은 괜찮냐?"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럼 오늘 선발은 너다" 하고 그냥 돌아서서
나가버렸다고 하면서.. 많이 당황스러웠다고 합니다.
야구 팬 끼리 우스개소리로 하는 "합법적 병역 브로커"라는 이야기 비슷한 내용도 있었는데
경기 시작 전 모 선수가 "형 오늘 잘던지면 저희(병역 미필자)들이 3천불 씩 모아서 드릴게요"
라며 농담을 건내기도 했답니다.
컨디션도 그다지 좋지 않아서 그냥 가볍게 던지자는 마음으로 던지다 보니 5회쯤 가서
몸이 풀리기 -_- 시작했다는군요. 어? 이제 괜찮네 싶어서 전력 투구를 했더니 국내에서보다
오히려 더 높은 구속이 찍히는 걸 보고 본인도 놀랬다고 합니다.
(이닝을 거듭할 수록 오히려 빨라지던 직구의 비밀이..;;)
당시 상황에서 평소보다 오히려 더 빠른 직구를 던질 수 있었던데에 대해
"사람은 긴장한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고 말했는데
전 이 부분에서도 대투수 구대성 선수의 일면을 옅보았습니다.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스스로 무너지는 투수가 있는가하면 구대성 선수처럼 오히려 더욱 빼어난 활약을
하는 선수도 있는 법이지요.
우리는 전자를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고 또한 격려해 주겠지만 후자의 선수에게는 절대적인 믿음을 주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결코 배신당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것이 바로 여러 명의 투수 중 단 한 명만이 받을 수 있는 '에이스'라는 칭호의 근거가 되는 것일테지요.
그런 의미에서 국가대표팀 슈퍼에이스, 일본 잡는 귀신 구대성 선수가 더욱 대단해 보였습니다.
경기 후 구대성 선수는 전날에 이어 또 도핑대상자가 되어 경기장에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긴장한 탓에 소변이 나오지 않아 고생을 했다네요;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양말을 벗으려는데 투구판에 쓸린 살점이 떨어져 나가 피범벅이 된 양말이 벗겨지질 않더랍니다. (158구를 던졌으니 그럴만도;)
아픈 줄도 모르고 던졌는데 발을 다친 걸 보니 이제 정말 경기가 끝났구나 싶어서 긴장이 풀렸다고 하네요.
7. 이 후 일본 진출 시절 구대성 선수는 기후의 차이와 시스템의 차이 때문에 힘들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각종 테스트와 훈련들 때문에 고생했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당시 팀 전원을 대상으로 체지방율 검사를 했는데 구대성 선수가 팀내에서 체지방율이 가장 높아서
나도 열심히 운동하는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라고 느낀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올림픽 이후 미국이 아니라 일본을 진출하게 된 사정이 있다고 하는데.. 이부분에 대해서는
한참을 고민하다 말하면 안될 것 같다.. 며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습니다.)
8. 메이져 진출 이후 구대성 선수는 일본과는 또다른 미국의 야구 문화 때문에 또 다시 고생했던 기억을
이야기 했습니다. 타자들 덩치가 너무 커서 공 던질 곳이 안 보이는 난감함을 경험했다네요;;
부상으로 인해 마이너에 있을 때 경험한 메이져리거와 마이너리거의 차이는
기량차이가 아니라 정신자세, 특히 위기를 맞이했을 때 이에 대처하는 자세였다. 고 하셨습니다.
한국 야구와 가장 다른 점은 미국은 마이너 선수들이라도 정말 즐겁게 야구를 한다는 점 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9. 마지막으로 강연을 맺으며
"자신을 믿으십시오. 자신을 믿으면 세상에 못할 것이 없습니다." 는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고
구대성 선수의 강연은 끝이 났습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은 시간관계 상 3개의 질문 밖에 받지 못했는데
Q1. 한국시리즈 7차전 동점인 상황, 9회말 투 아웃 주자 만루, 2-3 풀카운트 상황에 코칭 스텝에서 유인구(=볼)를 던지라는 싸인이 나왔을 때 볼을 던질 자신이 있는가? 또 본인을 제외하고 한국 선수 중 가장 강심장을 가진 투수는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A1. 아무리 내가 강심장이라도 그 상황에서 볼은 못던질 것 같다. 그런 싸인이 났다고 해도 차라리 나는 모든 힘을 다해 한 가운데 직구로 정면 승부를 하겠다. 밀어내기로 한 점을 주나 홈런을 맞아 네 점을 주나 지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투수 중 강심장인 투수는 류현진 이라고 생각한다.
꼭 후배라서 그런게 아니라(이 부분에서 멋쩍은 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김광현, 류현진 중 나와 더 비슷한 스타일의 투수는 류현진이라고 생각한다.
Q2. 한미일 3개국의 야구를 거치며 가장 상대하기 싫었던 타자를 꼽아본다면?
A2. 한국에서는 김호x(이름을 기억 못하시더군요;;;)선수가 내 공을 유난히 잘쳤다. 일본 선수 중엔 오가사와라, 미국 선수 중에는 켄 그리피 주니어가 기억에 남는다.
참고로 내가 가장 존경하는 투수는 놀란 라이언이다.
Q3. 시즌 종료 후 한화의 코칭 스텝이 대대적으로 변화를 맞았는데 이것은 류현진을 제외한 투수진의 동반약화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인가?
A3. (사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습니다. 왜 이런 질문을 프론트도 아니고 구대성 선수에게 했는지 저도 좀 이해가 안가고;;)
한화의 투수진이 류현진을 제외하고 약해지고 있다는 부분은 사실 동감한다. 하지만 코칭스텝의 이동에 대해서는 선수인 내가 알 수 있는 부분이 없다. 감독님이나 프론트에서 내린 결정이고.. 내가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은 있지만 잘 모르겠다.
이상 세 개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듣는 것으로 한 시간에 걸친 강연은 끝이 났습니다.
사실 저는 구대성 선수와 관련된 악몽 같은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2006년 준PO 1차전 경기를 현장에서 봤는데 8회 동점 상황에서 구대성 선수가 등판하자 대전 구장을 가득 메운 그 수많은 이글스 팬들이 "대성불패"를 외치는 그 압도적인 느낌..
(동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오늘은 절대 이기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쓰린 기억이 오히려 구대성 선수를 더 좋아하고 존경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이글스 팬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야구팬으로서..
한국 야구사에서 가장 위대한 투수 중 한 명으로 기억 될 구대성 선수의 아름다운 모습을
내년 시즌에도.. 그리고 또 그 다음 시즌에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부상과 악조건 속에 이 자리까지 오른 그의 야구 인생처럼 올해는 잠시 쉬어가는 해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성불패의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PS1. 최대한 주관을 배제하고 들은 그대로 쓰려고 노력했는데.. 서두에 밝혔듯이 타이거즈 팬인지라 본의 아니게 이글스 팬들께 거슬리는 부분이 들어갔을지도 모릅니다;; 이 부분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PS2. 강연회에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적은 거라 별 문제 없을 것 같지만 혹시라도 문제되는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 주시길 바랍니다. 자진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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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글을 읽고 정말 구대성 선수가 대단한 선수라는걸 한번더 느꼈습니다...송진우선수, 구대성 선수, 정민철 선수처럼 이글스 젊은 투수들이 이들과 같은 위대한 투수가 되었으면 합니다...
일본진출에 관련된 내용은..당시 이적료를 받을 수 있는 일본으로 가는걸 구단이 원했던걸로 추측되네요 -> 카더라통신입니다
이런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꾸벅
구대성 선수가 더 좋아지네요~~ ㅎㅎ 글 감사합니다~
일본진출때는 오릭스와 한화그룹사이에서 제일화재였던가요?? 그것을 인수하는데 오릭스가 펀딩을 끌어줘서 그랬던것 아닌가요? 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아참 그런관계도 있었죠..양쪽 보험사의 관계..ㅎㅎ 오릭스도 보험업종을 보유하고 있어서 업무적인 협력관계도 있었죠..
달리 구대성 선수가 아니란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줍니다.
김호근 선수인듯하네여... 한국의 타자중 가장 잘쳤던 타자...
와~ 정말 멋지네요.. 구대성 선수에게 그런 부상이 있었을 줄이야... 진짜진짜 대단하세요.. 원래도 좋아했는데,, 더 좋아할 것 같앙~~~ 그리고... 부럽삼~!!! 그런 강연도 들으신 원글님....
예전 태평양, 현대 시절의 김인호 선수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스포츠 2.0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랬었고 자세한 기록은 찾아보진 않았으나 제 기억으로도 김인호 선수가 구대성 선수 공을 이상하게 잘 공략 했던거 같아요.
김인호 선수,,, 정민철선수 공도 상당히 잘쳤던걸로 기억하는데..
우오 ㅋㅋ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기억 나는군요. 김인호 선수. 구옹 나오면 항상 대타로 나오던 선수. 구옹상대로 장타도 곧잘 쳤지요.
역시 대성 형님 입니다. ㅎㅎ
대성형님,,멋지셩,,,
자기한테 강했던 타자면 기억에 강하게 남기도 할텐데 이름까지 잊어버리시는거 보면 정말 무덤덤한듯 대성형님 답네요 ㅎㅎㅎ
저도 예전에 어렴풋이 기억나는게.. 빙그레가 암흑기때 대졸 거물 둘이 2년 연속 들왔었는데 지연규 선수하구 구대성 선수하구.. 두 분다 부상으로 입단했단 말만 들었다는...
대전에 있는 국립대 K모 대학교 토목공학과에서 열린 강연이군요, 감명 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