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p-G-oO3oOWc
그뢰닝게 미술관 - 벨기에 브뤼헤
그뢰닝게 미술관의 입구. 자료는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왔다.
어쨌던 중요한 미술관은 아니지만, 벨기에의 중세 도시 브뤼헤에는 이 도시의 메인 미술관이 있다. 그 이름은
그뢰닝게 미술관인데 사실 이 부분부터 잘 모르는 사실들이 있다. 우선 이 미술관의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잘 모른다. 네덜란드어로 추정되는 이 미술관의 원어 이름은 Groeningemuseum이다. 일단 모든 외국이름의
우리말 검색의 기준이 되는 네이버 검색을 찾아보면(네이버 검색에 나오는 이름이 꼭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한글로 인터넷 검색을 해서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나, 조직, 건물을 찾으려면 일단 검색이 되어야 하니, 맞던 틀리던, 네이버가 기준이 되는 것은 현재로서는 당연하다) 그루닝헤, 그로닌헤, 흐로닝어, 그뢰닝게, 그뢰닝까지 다양하다. 네덜란드어에서는 앞에 나오는 G를 '흐'로 발음을 하니, 아마 흐로닝어가 가장 비슷한 발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흐로닝어로 표기를 하면, 아무래도 검색이 제대로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이 블로그에서는
그뢰닝게 미술관이라는 표기를 써 왔다. 영어발음과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언제 한번 열심히 찾아볼 생각이긴
하지만, 사실 중요한 미술관은 아니므로 얼마나 노력을 들여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두번째로 그뢰닝게(발음이 이게 맞다고 쳐도) 미술관의 그뢰닝게라는 말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다. 사람 이름인지, 뭔지 자료를 찾기도
쉽지가 않다. 언제 갈 일이 있으면 미술관에 물어볼 일이다.
아무튼 여기까지는 사족이었고, 벨기에의 유명한 중세도시, 매력적인 도시,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 브뤼헤
(이 도시 이름도 발음은 만만치 않아보인다. 네덜란드어로는 브뤼헤 Brugge, 프랑스어로는 브루쥐 Bruges로
불리운다)에 있는 메인 미술관이다. 도시의 명성에 비해 그리 신경을 많이 쓴 미술관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옆의 도시이지만, 지명도가 떨어지는 비슷한 중세 도시인 헨트의 미술관은 그뢰닝게 미술관보다 훨씬 신경을 쓴
태가 난다. 또 사족이었다.
그뢰닝게 미술관 내부. 미술관 자료를 가져왔다.
이 미술관의 역사는 프랑스 혁명군의 약탈에서부터 시작된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생하고, 여차여차해서 나폴레옹이 혁명정부를 장악한 후에는 유럽 전역에서 전쟁이 벌어진다. 프랑스의 혁명이 유럽으로 번질 것을 경계한 유럽의
모든 왕정국가에서 프랑스 혁명정부를 전복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에는 불세출의 명장 나폴레옹이
있었고, 유럽은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거꾸로 프랑스 혁명군의 발 아래 놓이게 된다. 당시에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의 통치를 받던 벨기에는 프랑스의 이웃으로 첫번째 점령지역이었다. 정교분리를 선언한 프랑스
혁명정부는 카톨릭 지역인 벨기에에서 성당과 수도원들을 폐쇄하고 그 재산을 압류한다. 말이 압류이지, 프랑스가 점령군으로 약탈을 한 셈이다. 그중 미술품은 엄선해서 파리로 실어나른다.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이 이미
약탈품으로 넘쳐났기 때문이다. 브뤼헤에서 약탈 되었지만 파리로 실려가지 않은 미술품과, 나중에 나폴레옹이
패망한 후 파리에서 되찾아온 미술품들(교회와 수도원이 이미 폐쇄되었기에 돌아가지 못하는)이 모여 지금의
그뢰닝게 미술관의 첫번째 컬렉션이 되었다고 한다. 이 약탈 미술품들을 관리하던 브뤼헤의 미술 아카데미는
자신들의 회원들과 교수, 학생들로부터 수집한 미술품 컬렉션을 더해서 1892년 시립미술관을 시작했고,
이 미술관은 1930년 지금의 건물을 지어 그뢰닝게 미술관으로 정식 개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에 네덜란드 황금기 미술이 있다고 한다면, 벨기에에는 플랑드르 미술이 있었다. 중세 시대 플랑드르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브뤼헤에는 당연이 이곳 출신 또는 이곳에서 활동한 미술가들이 많았다. 이들의 작품들이
그뢰닝게 미술관의 주된 컬렉션이다.
이 미술관의 컬렉션중에는 약탈품으로 파리에 다녀온 작품들로, 얀 반 에이크의 성직자 요리스 판 데르 펠레와 성모, 한스 멤링의 모릴 세폭제단화, 제라르 다비드의 캄비세스의 재판 등이 있다. 이외에도 히에로니무스 보스,
히호 반 데르 후스, 제라르 다비드 등의 플랑드르 고전 거장들의 작품이 있다. 아카데미에서 모은 근현대 작품
중에는 조셉-베누아 수비, 장 두비비에, 에드몽 반 호브, 페르낭 크노프, 에밀 클라우스, 콩스탕스 페르메케, 레옹
드 스메트, 귀스타브 반 데 부스테인, 르네 마그리트 등의 작품들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모여있는 작가들과 작품들은 일부 아닐 경우도 있지만, 벨기에를 넘어서면 잘 알기가 어려운 화가와
그림들이 많다. 어쩌면 브뤼헤를 넘어서는 벨기에에서도 잘 모르는 화가들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지역
미술관은 지역 화가들을 후원해야 하는 법이다. 아니면 누가 그들을 후원하고, 알리겠는가?
#Jan_van_Eyck #얀반에이크 Madonna with Cannon Joris van der Paele, 성직자 요리스 판 데르 펠레와
성모, 1434~36, 1430년대, 유화, 160x125cm
#Jan_van_Eyck #얀반에이크 Margareta van Eyck, 화가의 아내 마가레타 반 에이크, 1439, 1430년대, 유화, 26x33cm
#Hugo_van_der_Goes #히호반데르후스 Death of the Virgin, 성모의 죽음, 1472~80, 1470년대, 유화, 123x148cm
#Hans_Memling #한스멤링 Moreel Triptych, 모릴 세폭제단화, 1484, 1480년대, 유화, (87+174+87)x141cm
#Gerard_David #제라르다비드 Judgement of Cambyses, 캄비세스의 재판 두폭 제단화, 1498, 1490년대, 319x182cm
#Hieronymus_Bosch #Jheronimus_Bosch #히에로니무스보스 #보스 Last Judgement, 최후의 심판 세폭 제단화, 1495-1505, 1490년대, 1500년대, 유화, (29+61+29)x99cm
#Jan_Provoost #얀프로보스트 Crucifixion, 십자가에 못박힘, 1501~05, 1500년대, 유화, 171x117cm
#Pieter_Brueghel_the_Younger #피터브뤼겔2세 #브뢰헬 #브뤼헐 John the Baptist Preaching, 설교하는 세례요한, 1601-1620, 1600년대, 1610년대, 168x119cm
#Joseph_Denis_Odevaere #조셉드니즈오데베레 Lord Byron on his Death-bed, 임종시의 바이론경, 1826, 1820년대, 235x166cm
#Fernand_Khnopff #페르낭크노프 #크노프 Secret-Reflection, 비밀-반영, 1902 1900년대, 파스텔, 50x50+49x28cm
#Rene_Magritte #르네마그리트 L'Attentat, 위해 또는 테러, 1932, 1930년대, 유화, 100x70cm
위 명화는 Naver에는 등재 되어 있으나, Daum은 청소년 유해물로 볼 것 같아 그림을 삭제했다.
옮겨온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