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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음악 스크랩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서지월
지중해 추천 0 조회 35 13.04.23 22:45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서지월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달뜨는 마을을 달려와 내가 먼저 손 내밀면

너는 수줍어 은쟁반같은 얼굴로

나뭇가지 뒤에 숨어버리고

너와 나의 살을 건드리는 남풍의 하늘은

속절없이 빤히 내려다보고만 있으니

 

바둑이는 어디 갔느냐

엄마따라 방앗간에 밀 빻으러 갔는가

내 어릴적 검정고무신의

피라미떼들은 큰 강물따라 흘러갔는가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타는 아지랑이 풀밭에 주저앉아

삐삐 뽑으며 숨찬 나를 불러내어

이 언덕위에 세워놓고서

저만치 눈웃음 흘리며 사라진 세월....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남풍도 선머슴애처럼 보채고 있으니

휘드러진 꽃가지도 손 내밀고 있으니

 

- 월간 <심상> 2007년 3월호

..............................................

 

 서지월 시인은 1955년 5월 5일 단오에 태어나 연개소문과 음력생일이 같음을 ‘자부심’으로 삼고 있는 대구의 ‘대표적’ 전업시인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고향의 산비탈에서 ‘시산방’을 지키며 시 쓰고 가르치는 일 말고는 아무데도 기웃거리지 않은 시인이다. 그러다보니 ‘경제’에는 조금 어눌하여 촌집에 각종 공과금 고지서 날아드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나도 순수한 의미의 ‘전업’은 아니지만 그 심정 이해가 간다. 하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며 납세의 의무 또한 마땅한 도리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복사꽃이 활짝 폈다. 봄 언덕을 온통 분홍으로 휘감는 복사꽃은 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는 꽃이다. 꽃은 스스로 꽃인 사실을 자랑할 때 그 가치가 극대화된다. 기본적으로 모든 꽃은 제 소신껏 제 자태 제 깜냥으로 피는 것이기에 다 아름답다. 하지만 복사꽃이 더 좋은 이유는 비슷한 시기 숨어 피는 다른 꽃에 비해 제 화사하고 선명한 자태를 한껏 드러내기 때문이다. 지금 청도 가는 길목의 가창에서부터 청도까지 사방천지가 복사꽃으로 물들어 몸을 가누기 힘들 지경이다. 그 황홀함이 조각난 영혼을 전율케 한다. 환장하겠다.

 

 사람 사는 근처에 피어야 더 아름다운 꽃이 복사꽃이어서 ‘나의 살던 고향’은 모두 복숭아꽃 피는 마을 아닌가. 복사꽃 잎 잎에 묻은 겹겹의 세월들. 옛 추억 속 못 잊을 그리움에 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저 독 묻은 칼날 같은 꽃향기들.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는 ‘꽃싸움에서는 이길 자 없다’는 옛 말과 함께 그 향기에 조심하라는 경적소리처럼 들린다. 옛 추억을 불러오는 풍경을 만나면 잊고 있던 기억들이 그 옛날 언저리에서 빗장을 풀고 쏟아져 나온다. ‘바둑이’가 나오고 ‘어릴적 검정고무신’이 나오고 ‘피라미떼’도 나온다.

 

 ‘저만치 눈웃음 흘리며 사라진 세월’들이다. 서럽지 않아도 서러운 사랑이고 몸 뒤척이게 하는 복사꽃 계절이다. 세상은 늘 고통이자 겨우 살만한 곳이다. 나만 그런지 모르지만 또렷하게 환희였던 적은 사실 별로 없다. 가슴 한 쪽이 통점으로 짓눌러대는가 싶다가도 문득 꽃잎 떨어진 그 자리가 파스를 붙인 것처럼 욱신대면서 이내 통증이 가셔지곤 한다. 마음도 어느새 복사꽃처럼 환해진다. ‘저만치 눈웃음 흘리며 사라진 세월’이 복사꽃의 저토록 화려한 절정과 맞물려 고통을 끌어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보현산 다녀오는 길에 복숭아 재배면적으로 전국1위의 고장인 영천은 거쳤는데, 올해 청도와 영덕의 무릉도원에는 아직 들지 못했다. 조만간 무릉에 배저어갈 참인데, 간밤에 불던 바람 만정도화 다 진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권순진

 


Rare Bird - Sympa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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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4.24 08:49

    첫댓글 감사합니다.

  • 13.04.24 19:57

    sumpathy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감사합니다. 지중해님~

  • 13.04.25 09:44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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