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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벤 스피커 평론가는 이번 작품에 대해 “작가의 전기와 연결된 일련의 2차원 기호와 문자인 옥상에 설치된 작품은 작가의 자화상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우리가 자신의 자화상을 그릴 때, 우리의 손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얼굴, 즉 우리 자신의 윤곽을 그리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는 것을 볼 수 없다고 했다. 맹목적인 그림”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관객이 보는 것은 작품 그 자체가 아니다. 작품 사이 뚫린 공간에서 맨해튼 도시를, 센트럴 파크를, 그리고 하늘을 마주한다.
낙서가 새겨진 책상은 ‘낙서’라는 컨텐츠 때문이 아니라 수십년의 세월을 거치며 그 존재 자체로 역사를 증명하고 가치가 있는 것처럼, 옥상 정원도 작품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약간 다른 시선의 ‘뉴욕’을 만날 수 있어서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경비원의 코멘트가 다시 떠오른 이유다.
새로운 커미션 작품을 만나고자 옥상 정원부터 올라왔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미술관이다. 영국에 대영박물관이 있고, 프랑스에 루브르가 있다면 미국엔 메트로폴리탄이 있다. 개관은 1870년 4월, 영국(1753년)이나 프랑스(1793년)에 비하면 100년이나 뒤쳐졌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만큼 미술관도 빠르게 성장했다. 배경엔 슈퍼 컬렉터들의 기부가 있었다. 석유, 철강, 철도 산업에서 탄생한 재벌들이 공들여 모았던 컬렉션들이 결국 모인 곳은 메트로폴리탄이었다. 지금은 소장품만 200만 점이 넘고, 그 가치는 계산이 불가한 수준이다. 2023년 기준 방문객은 520만 명에 이른다.
캐서린 울프, 제이콥 로저, 루이진 해브마이어, 로버트 리먼 등 재벌 컬렉터들이 미술관 초기시절 작품을 기증하고 기금을 마련하는 등 미술관의 기초를 다졌다면 폭발적 성장은 모건 스탠리의 J.P. 모건의 기부 아래 이뤄졌다. 금융재벌이었던 그는 미술작품뿐만 아니라 보석, 고서, 가구에도 관심이 많아 방대한 컬렉션을 이뤘다.
사망 당시 모건의 컬렉션 평가액은 약 5,000만 달러(현재 가치로는 13억 달러, 한화 약 1조 7,200억 원), 개인 자산은 6,800만 달러(현재가치 18억 달러)였다. 금융자산만큼이나 컬렉션에 진심이었던 것. 그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인 모건 주니어는 대부분의 컬렉션을 메트로폴리탄에 기증했다. 모건의 업적은 단순히 기부에만 있지 않다. 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하며 유능한 큐레이터를 초대하는 등 미술관의 질적 성장을 이끌었다. 해외 작품 대여와 교류도 장려하면서 폭넓은 컬렉션이 가능하도록 한 것도 그의 주요 업적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컬렉션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방대하다’는 표현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이집트 덴드루 신전, 미이라와 석관,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조각, 라파엘의 ‘성모와 아이’,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렘브란트 ‘자화상’,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 앤디워홀의 ‘마오’ 등 서양미술사를 집대성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외에도 오세아니아, 아시아 미술 컬렉션도 있다. 한국 컬렉션은 따로 작은 방이 존재한다.
이렇게 거대한 미술관에 오면 가장 궁금해지는 것이 과연 이들이 관심을 끈 동시대 미술작가는 누구인가다. 미술사를 집대성한 미술관이 선택한 작가라면 어떤 지점이 다를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다. 답을 알고 싶다면 메자닌 층에 위치한 컨템포러리 아트 전시실에 들러야 한다. 전시 기획에 따라 작품이 바뀌긴 하지만, 거장들의 작품 사이사이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루이진 해브 마이어가 1900년대에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대거 사들이고, 이를 메트로폴리탄에 기증했다. 드가와 모네 작품의 상당수가 해브 마이어의 기증품이다. 오늘 이 전시장에 걸려 있는 작품이 반세기가 지난 뒤, 제2의 드가와 모네가 될 수 있을까? 결코 그 답은 알 수 없다. 동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몫은 그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직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