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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이 연출하는 첫 체홉 드라마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반사실주의적 극작 연출가로 이름난 이윤택이 처음으로 연출한 사실주의의 대가 체홉의 <세자매>는 작가가 늘 추구했었던 일상성의 희극으로서 충실히 연출되었다. 그간 한국무대에서의 낭만비극적 체홉 작품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당황할 만큼 파격적인 희극성이 비극적 현실 위에 뒤덮이며 관객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듯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지는 블랙코메디, 한편으로 이윤택 특유의 ‘그래,삶이다.’ 라는 한국적 정서가 결합된 우울한 희극으로 표현되어 지난 4월 공연 당시 전회매진사례를 이루어냈다.
<세자매>는 <갈매기>, <바냐 아저씨>, <벚꽃 동산>에 이어 쓰여진 체홉의 마지막 대표작이다. 메마른 자작나무 가지가 눈보라에 흔들리는 러시아 남부 변방 군주둔지에 머물며 낭만 없이 순환되는 현실에 찌들어 사는 <세자매> -올가, 마샤, 이리나-의 꿈을 향한 투쟁이며 그리고 진실한 사랑을 느끼려 하고, 진실한 존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드라마가 뒤섞인다. 세자매는 그들의 유일한 남매인 안드레이가 교수가 되면 모스크바로 떠나길 기대했으나 그는 아내가 된 나타샤의 기세에 눌려 꿈을 포기하고, 이리나와의 미래를 약속한 뚜젠바흐의 죽음과 마샤의 절망을 함께했던 베르쉬닌과의 작별을 감내해야만 했던 세자매는 과연 모스크바로의 발걸음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 체홉의 전형적인 4막 구조
● 제 1 막 - 도착
뽀로조로프가의 저택, 밝고 상쾌한 날.
세 자매에겐 아버지의 기일이자 막내 이리나의 생일날이다.
맏이인 올가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지금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과거의 기억 속
모스크바에 대한 열망을 말한다. 이리나 역시 과거의 기억 속 모스크바에 대한 동경과 함
께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 지루한 일상 속에 모스크바에서 온 낯선 한 남자, 베르쉬닌이 방문한다..
● 제 2 막 - 만남
1년 6개월 후, 저녁.
지방의회 임시서기가 된 안드레이와 그의 부인인 된 나타샤, 그리고 마샤와 베르쉬닌의 연애.
이리나는 뚜젠바흐와 솔료니이의 사랑 고백을 받는다. 나타샤가 교묘하게 집 공간을 장악
하는 가운데 이리나는 모스크바에 대한 갈망을 터뜨린다.
● 제 3 막 - 충돌
마을에 난 큰 불로 인해 화재 경보가 울리는 새벽.
올가와 나타샤는 집안의 주도권을 두고 말다툼을 벌이며, 투숙객 체브뜨이긴은 술에 취해
자신의 괴로움을 토해낸다. 마샤와 베르쉬닌의 관계를 알게 된 끌르이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감정을 숨긴다.
마샤는 결국 올가와 이리나에게 베르쉬닌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안드레이 또한 누이들에게 비참한 자기 심정을 고백을 한 후 도망치듯 나가버린다.
이리나는 올가에게 뚜젠바흐와 결혼하겠다고 말하지만, 모스크바에 대한 열망은 강해져만 간다.
● 제 4 막 – 이별 혹은 새로운 출발
군대가 철수하는 날.
페도찌그와 뚜젠바흐, 이리나는 이별의 아쉬움을 달랜다. 평소와는 다른 뚜젠바흐와, 어디에선가 들리는 불길한 함성은 이리나를 왠지 불안하게 한다..
마샤는 베르쉬닌과의 이별을 못내 아쉬워하며 집착하고, 뚜젠바흐는 솔료니이와의 결투를 앞두고 이리나에게 안녕을 고한다. 교장이 된 올가는 오랜만에 저택을 찾아오고, 베르쉬닌과의 이별에 아파하는 마샤를 달래준다. 불안한 한 발의 총성이 들린다. 집안의 주도권을 가진 나타샤는 낡은 집을 개조할 계획을 털어 놓고, 체브뜨이긴이 뚜젠바흐의 죽음을 전한다.
세 자매는 절망 속에서도 그들에게 다시 찾아올 미래의 삶을 준비한다.
체홉의 일상성이 충실히 구현된 <세자매> 앵콜공연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모두 우리극연구소 15기 연기자훈련과정 및 재훈련과정을 마치고 발표무대와 1차 공연을 거치며 좋은 인상을 남긴 배우들로 구성되었다. 현재 대학로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오동식(베르쉬닌), 박유밀(나타샤), 연보라(올가) 등의 현역배우들과 하지은 /표영주(마샤), 정운선 /박민지(이리나) 등의 젊은 배우들이 훌륭한 앙상블을 이룬다.
첫 체홉 드라마 연출 작업에 대한 언급
이 윤 택
이미 연극사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고전 텍스트를 연출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충실한 해석적 관점을 중심으로 하는 객관적 입장, 텍스트를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동시대 새로운 공연양식으로 제시하는 입장 등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연출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2006년 연출한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은 해체되고 재구성된 브레히트극이었고, 이번 <세자매>는 텍스트에 충실하고 연출방식까지 객관적인 입장을 선택했다. 사실주의 극에 대한 이해 혹은 오해를 풀고, 체홉의 극구조와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양식을 우리 방식으로 표현해 보자는 의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실 연출가가 연출방식을 선택하는 기준은 역시 텍스트에서 찾는다. 연출가가 표현해 낼 수 있는 공연양식은 결국 한 텍스트에 한 가지일 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텍스트에 가장 적절한 공연양식을 찾는 것이 연출가의 역할이고, 그 점에서 백 편을 연출한다는 것은 백 가지의 표현양식을 찾아 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 점에서 연출가의 이미지를 고정화시키는 유파나 경향은 근본적으로 존재할 이유가 없다. 자신이 연출해야 할 텍스트가 동시대 관객들에게 온전하게 이해되기 힘들다는 판단이 들 때는 동시대적 끌어내림이 필요한 것이고, 문화적 독자성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될 때는 텍스트의 재구성이 필연적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도 보편적인 정서로 이해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설 때는 텍스트 그 자체에 충실하게 접근해 보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다. 체홉은 내게 그런 유혹을 제공하는 극작가임에 틀림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출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기질이 다르므로 백 사람의 연출가가 표현하는 백 편의 <세자매>는 서로 다른 편재특성을 드러낸다. 나는 이번 작업을 통해 텍스트에 충실하면서도 나의 연출가적 관점과 공연양식이 은연중 어떻게 표현될 것인가 궁금했고, 이런 객관적 입장을 유지해 보는 연출 작업에 흥미를 느꼈다. 사실 이것이 직업 연출가에게는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드라마트루기
<세자매>를 위한 구조적 언급
하워드 블레닝
미국 옥스퍼드 마이애미 대학 연극과 교수
극 작/ 구조적드라마트루거,세익스피어 희랍극전공
연출작/ <드림플레이><안티고네><한 여름 밤의 꿈>
<뜻대로 하세요><사랑을 찾아서><해오라기와 솔뫼>외 다수
분석 텍스트: 컨스탄스 가넷 번역판
안 던건과 줄리어스 웨스트의 번역판(러시아어->영어)
제 작 조 건: 게릴라 극장.
360도 회전 무대, 사이드 세트들(테이블, 앉는 자리, 유모차를 미는 길 등...)
A. 체홉, 모스크바 예술 극장, 스타니슬랍스키에 대한 노트
1. 음식:
체홉은 음식의 중요성을 많이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의 연극 대부분에서 우리는 음식이나 마실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벚꽃동산 같은 몇몇 경우는 음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음식을 자주 먹는 것은 배우의 심각한 대사를 가볍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이 체홉이 의도했던 결과라고 생각 됩니다.
2. 환경:
페테르부르크에서의 실패했던 초창기 프러덕션을 제외하면, 체홉의 모든 작품은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스타니슬랍스키의 연출 하에 제작되었습니다. 즉 체홉의 작품들은 아주 전문적인 세팅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실 세자매는 모스크바 예술 극장 배우들을 위해 특별히 써진 것인데, 이 중에는 나중에 체홉의 부인이 되는 마샤 역의 올가 크니퍼도 이 중 하나입니다.
구성적으로 보았을 때 이 정보는 잠재적이나마 중요한 정보일 수 있습니다. 체홉이 사실 그렇게 구성적으로 정교한 작가가 아니었다는-입센과 비교할 때-는 이윤택 연출의 언급은 정확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느슨한 구조가 우리가 생각하는 체홉스러운 자연주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입센의 초창기 연극 작업 당시의 상황도 고려해야 합니다. 입센은 전문적으로 뛰어난 배우들을 쓸 수 없었습니다. 반면 체홉은 전문적이며 작가와 서로 잘 알고 있는 배우들과 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은 셰익스피어처럼, 체홉이 대사나 디렉션을 쓸 때 배우가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표현할 것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린 이미 대사를 칠 배우를 알고 있으니까요. 그의 영원한 연출가였던 스타니슬랍스키와 결부해서 보더라도 그 둘이, 배우들에게서 세 자매의 캐릭터를 찾아냈다는 가설이 가능합니다. 현재 연출가들에게, 이것은 아마 배우들이 그들 자신에게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와 조금이라도 닮은 부분을 찾으려고 애쓴다는 것을 상기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나타샤에 대한 언급을 보세요.
B. 전반적인 구조와 주제
이 연극에서 한 가지 혼란스러운 것은 이 극이 안피샤, 나타샤, 페라폰트, (아마도) 끌르이긴과 새 선생님(이리나)을 얻게 된 마을을 빼고는 너무나 불행한 연극이라는 것입니다.
이윤택 연출의 스타니슬랍스키에 대한 언급과 결부하여, 그리고 게릴라 극장의 친밀한 공연 공간을 생각하여, 난 어쩌면 약간은 모순적인 구성적 목적을 제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세부적이고 정교한 사실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세부적이고 정교한 주제적 결론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배우와 연출가와의 관계가 아주 친밀하며 전문적인 집단에서만 가능합니다.
어떤 이는 이 연극의 전반적인 디렉션은 우리가 가진 떠남에의 욕구(모스크바로 가는)라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어쩌면 우리가 하려고 하는 방향과는 그렇게 맞지 않는 방향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도 모스크바에 가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전반적인 주제가 아주 다양한 주제 속에 들어가 있어서, 그것을 하나로 좁혀서 말하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또한 아마도, 그 주제들은 그렇게 좁혀져서 말해선 안될지도 모릅니다.
이 연극의 주된 대변자는 올가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연극의 또 다른 대변자는 나타샤입니다. 만약에 이 연극의 모든 중심 캐릭터들- 올가, 이리나, 마샤, 나타샤, 베르쉬닌, 끌르이긴, 투젠바흐-가 모두 각각이 주요 대변자로 보여진다면 결과는 아마 비빔밥과 비슷할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훌륭하지만 자세히 설명하기는 불가능하지요.
●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 당시 <세자매> 캐스팅
올가 | M.G. Savitskaia | (사바츠카이아) |
마샤 | Olga Knipper | (올가 크니퍼- 후에 체홉의 부인) |
이리나 | M.F. Andreeva | (안드리바) |
안드레이 | V.V. Luzhski | (루쯔스끼) |
베르쉬닌 | Konstantin Stanislavski | (스타니슬라브스키: 연출가 본인) |
투젠바흐 | V.e. Meyerhold | (메이어홀드: 흥미롭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메이어홀드가 가진 특별한 매력일지도. 그는 공연 둘째날에 카차로프로부터 이 역할을 넘겨받았습니다.) |
솔료니이 | M.A. Gromov | (그로모프) |
끌르이긴 | A.L. Vishnevski | (비쉬네쁘스키: 흥미롭습니다! 체홉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하나로 바냐 아저씨에서 바냐를 연기한 배우지요.) |
체브뜨이긴 | A.R. Artem | (암템: 흥미로운 주석: 로렌스 올리버가 영화 <세자매>에서 했던 역할이 체브뜨이긴입니다.) |
나타샤 | M.P. Lilina | (릴리나: 스타니슬라브스킨의 부인) |
로드 | L.F. Moskvin | (모스크핀) |
페도찌크 | L.A. Tikhomirov | |
페라폰트 | V.F. Gribunin | (그리부닌) |
안피샤 | M.A. Samarova | (사마로바) |
Ⅰ. 설 립 목 적
우리극연구소는 서구연극의 변방연극성을 극복하고 우리민족의 전통에 입각한 독자적인 현대극양식을 구축하고자 1994년 이윤택, 윤광진, 이병훈에 의해 설립되었다. 즉, 연구와 실험 그리고 이론화 작업을 통해 우리연극의 원형성을 탐구하고 단절된 우리전통을 <지금, 이곳, 우리의 극양식>으로 재창조하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아울러 해외극의 한국적 수용 작업 또한 우리극연구소의 중요한 작업과제가 되고 있다.
Ⅱ. 작업 / 연구방식
극작, 연출, 무대술, 배우술, 전과정의 관련 이론가들이 실제 작업에 참여하는 종합적인 실험제작 작업방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극연구소는 연구 기능과 제작 기능을 겸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이러한 제작방식은 <연구, 이론화작업>과 <공연 작업>의 연대를 통해 지속적인 실험과 공연 평가가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Ⅲ. 주요활동내역
가. 우리극연구소 연기훈련과정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과정을 통해 신진연기자들의 연기력을 배양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연기론에 대한 연구를 하게된다. 이 교육과정은 연구동인들의 추천이나, 혹은 일정기일에 오디션을 거쳐 선발하며, 교육이 끝나면 연구실험공연을 위한 연습과 공연과정으로 이어진다.
나. 신예작가·연출가 발굴(신작 초연무대) 신예작가, 연출가를 위한 신작공연 무대를 마련, 연구동인들을 중심으로 극작, 연출, 연기, 스텝 전분야에 참여하여 신작공연을 올리게 된다. 이 신작초연무대를 통하여 한국연극의 새로운 세대를 책임질 작가, 연출가, 배우, 무대기술인력이 배출될 것이다
<우리극연구소 새작가 새무대>
1. <허탕> -1997 (장진 作/演出) - 제1회 젊은 작가를 찾아서
2. <세속 도시에서의 사랑> -1998 (송종헌 作/ 조태준,안선경 演出)
3. <열애기> -1998 (장우재 작/ 김광보 연출) - 새작가 새무대
4. <봄날은 간다> -2001 (최창근 작/ 김경익 연출) - 새작가 새무대
5. <잠들 수 없다> -2003 (김도원 작/ 남미정 연출) - 새작가 새무대
체홉은 <세자매>가 명백히 희극으로 받아들여지길 희망했다.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세자매>를 처음 강독했을 때, 배우들이 이를 비극으로 해석하고 눈물을 흘리자 체홉은 큰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 무대에서 <세자매>는 종종 비극적으로 그려져왔다. 사실 <세자매>는 종막에 이르러 인물들의 삶의 조건이 더욱 악화되기 때문에 이런 가운데서 희극성을 표출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윤택이 연출한 우리극연구소의 <세자매>는 명백한 희극, 일종의 ‘블랙코미디’가 되었다. 너무나 슬프고 지쳐서 때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물들이 희극적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할 뿐,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아 동문서답하는 상황 역시 희극적이다. 또 괜히 시비를 걸고 싸우거나 갑자기 신경질을 부리는 돌출 행위들도 희극적이다. 여기에 몰래 해야 할 사랑마저 노골적으로 드러나 희화화된다. 아내의 불륜에 화를 내야 마땅할 처지에 아내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남편들의 자괴감 또한 얼마나 희극적인가. 그런 우스꽝스런 모습들은 고스란히 관객에게 반사되어 우리 자신의 삶에 냉소를 던지게 된다.
이윤택은 작품에 내재된 희극성을 최대한 낚아 올리면서 때때로 더 과장된 희극성을 부여했다. 마샤와 베르쉬닌이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은 단순한 키스를 넘어서 곧바로 마샤가 속옷을 벗어던지며 섹스로 돌입하는 저돌성을 보여준다. 잠깐의 암전 후, 엉덩이를 드러낸 베르쉬닌은 이리나와 함께 들어선 뚜젠바흐에게 목격되고 야 만다. 베르쉬닌이 마샤와 이별하는 장면에서도 마샤는 그의 등에 올라타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처절하도록 결사적인 마샤의 매달림은 너무나 솔직하여 관객들에게 웃음거리가 된다.
이윤택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에 희극성을 부여했는데 올가 (연보라 분) 와 나타샤 (박유밀 분) 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올드미스 여교사에서 교장으로 승진하는 올가는 세 자매 중 가장 딱딱해보이는 인물일 수밖에 없는데 희극에 강한 배우 특유의 유머러스한 재치들이 의외의 희극성을 빚어냈다. 유일한 악역으로 꼽히는 나타샤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무리한 행위들을 너무나 도도하고 당당한 태도로 수행함으로써 어이없는 웃음을 자아냈다. 아니, 이번 공연에서 나타샤는 심지어 악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새로운 안주인으로서 자기 방식으로 집안 분위기를 쇄신하려 했고, 시누이의 방을 빼앗을 만큼 끔찍이도 아이들을 사랑할 뿐이다. 나타샤는 폭력적이면서도 섹시하며 그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안드레이는 더욱 바보스러워진다. 안드레이가 유모차를 끌고 나타났을 때, 그 아이가 쁘로또뽀뽀프의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너무나도 강력하여 안드레이에 대한 비웃음은 최고조에 달한다.
흔히 체홉의 작품에는 특정한 주인공이 없으며 때문에 모든 인물들에 무게중심이 놓인다고 말하지만 공연상에서 그렇게 표현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윤택은 놀랍게도 모든 인물을 제각기 생동감 넘치게 각인시켰으며, 심지어 가장 하찮은 역할인 유모 안피샤와 하인 뻬라폰트까지도 의미심장하게 부각시켰다. 좁은 게릴라 극장에 자작나무가 심어진 회전무대를 설치하여 러시아 특유의 서정성을 살리면서 장면마다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 무대장치도 돋보였다. <세자매>가 1901년에 초연되었을 때 베르쉬닌 역은 스타니슬랍스키, 뚜젠바흐는 메이어홀드, 마샤는 체홉의 약혼녀인 크니페르, 나타샤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부인인 릴리나가 맡았었다. 그만큼 배우 하나하나가 자신의 몫을 다하지 못하면 제 아무리 연출가가 뛰고 날아도 호연을 이룰 수 없는 작품이다. 우리극연구소의 15기 신인배우들이 주축을 이룬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세자매>는 이 땅에서 공연된 가장 훌륭한 체홉극 중 하나였다고 단언할 수 있다. 특히 노련한 연기력을 보여준 베르쉬닌 역의 오동식이 돋보였고, 이리나 역을 슬픔의 과잉 없이 차분하게 소화한 정운선의 앞날이 촉망된다.
연극평론가 김미도
<세자매 연극평>
* 아무 생각없이 읽었던 체홉의 단편선을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 - clara671님
* 무료한 일상에 찌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주며 친절한 악수를 건네는 공연이었다. - 박혜림님
* 추상적인 느낌을 주었던 기존 공연들에 비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 이은영님
* 가족, 주변 사람들,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 박진영님
* 유머러스한 현대물은 순간 재미있지만 남는 건 별로 없다. 연극 세자매는 나에게 강한 여운으로 남았다. - simderella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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