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왜 추리소설이라는 문학장르를 읽고 쓰는가...
여기 대해 한번 생각할 기회가 있어서....물론 깊게 생각하진 못했지만요.
생각나는 몇몇 작품과 제가 좋아하는 인용문들을 소개합니다...
루 아처 시리즈로 미국 사립탐정소설(소위 하드보일드)의 해미트-챈틀러의
정통적 계승자라는 로스 맥도날드가 한 말입니다..
"추리소설은 인생을, 특히 마음 속의 인생을 비쳐내기 때문에 흥미가 끝이
없다. 나 자신에 관련되는 일상적인 일이나 죄가 추리소설의 소재인
것이다"
느낌이 좋았던 소설로는 P.D.제임스의 '죽음의 맛'이나...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인간의 증명', 스페인 작가 M.바스케스 몬탈반의
'남쪽바다'...
전에도 말씀 드렸던 일본 여작가(이름이 아직도 기억이 안납니다...
낼 도서관 가서 확인해야 겠습니다...)의 '석양에 빛나는 감'..
아이라 레빈의 '죽음의 키스',
너무나도 낭만적이었던 윌리엄 아이뤼시의 '새벽의 데드라인',
조르쥬 시므농의 '타인의 목', 로랜스 샌더스의 '제1의 대죄'나,
루스 랜델의 '내 눈에 비친 악마'나 '유니스의 비밀'도 언급할 만한 것
같습니다...
시적이고 동화적인 묘사라면...
체스터튼의 단편들이 좋겠지요...
특히 '브라운 신부의 지혜'에 나오는 '존블노워의 진기한 범죄'의
한 구절 "나로서는 잘 분석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저 의자에 앉아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나는 토요일의 국민학교 학생처럼 행복했습니다. 안전감이라고
할까, 영원감이라고 할까, 어떻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손에는 엽권련이
있고 성냥도 손닿는 곳에 놓여있지요......이야기 속에 나오는 그 피투성이
손가락이 네번이나 연거푸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마음의 편안함만이
아닙니다. 완전한 충족감이지요..."
물론 이 말은 왜 우리가 추리소설을 읽느냐에 대한 한 대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 추리문학의 개척자 김래성선생이 쓰신 '추리소설의 본질적 요건'이라는
글에서 (이글은 일본 '월간탐정' 1936년 4월호에 실린 것으로 계간 추리문학
1988년 창간호에 실린 글입니다.)추리문학의 본질적 요건이자 절대적 요건으로
"그렇다면 탐정소설의 실질적 요건은 무엇인가? 그 불가결적 요건이야 말로
기이한 것에 기인하는 충동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탐정소설은 예술이다...그러나 모든 예술의 사명의 본질은 충동이다. 다만
그것이 바탕하고 성립되는 바인 토대가 저마다 서로 달라져 있는 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큰 충동이 주어지면 주어질 수록 평범한 것에 대한 반항, 기이한 것에
대한 동경, 현실로부터 끊입없이 비약하려고 하는 우리의 그지없는 낭만성에
대한 자극이고 충동인 것이다. ....."
위에서 보듯....제가 보는 추리소설의 예술성..이랄까요..그러한 것은
두가지 측면..인간본성의 탐구...와 낭만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스파이 소설의 걸작이라는 존 르 카레의 '추운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처럼
냉철할 것 같은 스파이 소설에서 조차도...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앞에 넘어가던 베를린 장벽위에 멈추어 서고야 마는..
그리고...아가사 크리스티 여사의 '오리엔트 특급살인'이나 딕슨 카의 '모자
수집광사건'에서 처럼...어쩔 수 없이 살인한 인간적으로 보면 너무나 동정
이 가는 범인을 슬그머니 놓아주기도 하는...
그러한 낭만을 지닌 것이 추리소설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의 행간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 그리고
로스 맥도널드나 조르쥬 시므농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사회와 인간본성에 대한
조용하면서도 깊이있는 통찰...
바스케스 몬탈반의 작품이나 '석양에 빛나는 감'에 나타나는 삶과 존재,예술에
대한 치열한 고뇌...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루스 랜델의 작품들과 로랜스 샌더스의 작품
속의 비뚤어지고 분열된 비정상적 인간심리의 탐구..
이러한 것들이 적어도 저를 미스테리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이유들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