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뒤안은 작은 언덕으로 이어지고 그 언덕에는 대밭이 있었다. 대밭은 풀들이 어느 날 하늘 높이 자라버린 일종의 소인국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 풀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아득하였다. 대숲 사이에 팽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태어날 무렵 이미 마을에서 가장 큰 거목이었다고 한다. 그 나무는 밤이면 무한을 묵상하는 거대한 우주수(宇宙樹)가 되었다. 그 대밭 사이에서 나는 흔히 길을 잃었다. 아니 애초에 길 같은 건 없었다. 대나무들이 서 있었고 바람은 숲의 머리 위로 불었고 햇볕은 숲 바닥에 고여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찾아 푸른 어둠 속을 헤맸던 것일까. 대밭의 끄트머리에서 내가 발견한 건 오래된 동백나무 한 그루였다. 동백나무는 눈에 덮혀 있었고 눈은 햇볕에 눈부시게 녹고 있었다. 그러나 눈을 녹이는 건 햇볕만이 아니라 동백의 더운 가슴, 붉은 눈매였는지도 모른다. 그 동백나무를 지나면 언덕배기에 이르렀고 그 곳에 서면 멀리 바다가 보였다. 그 바다는 이미 옥빛의 봄을 품고 있었다. 지금 타지에서 고향을 그리워 하고 있는 나는 다시 소인이 되고 싶다. 소인들이 살던 숲과 언덕과 바다를, 그 동백나무와 팽나무를 찾아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