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아우구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혼잡한 로마를 완전히 세롭게 바꿔 놓을 계획을 세웠지만,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시를 대대적으로 바꾸는 것보다는 로마의 도시행정을 효율화하는데 더욱 역점을 두면서 율리우수 카이사르가 죽은 뒤 30년 동안 그가 완성하지 못한 공공 건축을 마무리 하고, 또 수많은 신전을 복원하여 로마의 인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런데 그는 로마의 모습을 품위 있게 만든 주징공이었지만 자신이 사는 곳만큼은 아주 소박했다. 그는 로마 교외 벨레트리에 있는 옥타비우스 가문의 빌라에서 태어났다. 유럽에서 빌라라고 하면 으레 화려한 별장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그의 집은 보통 시골 사람들의 집처럼 매우 평범했으며, 그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방은 창고라고 할 정도로 좁고 허름했다고 한다. 로마에서 그는 포로 로마노 가까이 있는 보석 세공업자협회 건물 위층에 살다가 팔라티노 언덕위에 있던 호르텐시우스의 집을 사서 적당히 증축하여 살았는데, 그곳에는 귀족들의 저책에서 흔히 불 수 있는 값비싼 대리석이나 모자이크 등의 장식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수에노티우스에 의하면 아우구스투스는 이 집에서 40년 동안 한 바에서 살았으며, 그의 침대와 이부도 서민들이 사용하던 것과 다를 바 없었고 그의 옷은 황비 리비아나, 그의 누이 옵타비아 또는 그의 딸 율리아가 손수 짠 천으로 만들었다고 하며, 기분전환하고 싶을 때는 잘 아는 해방 노예의 집이나. 당시 외무부 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테나스의 집에서 며칠 묵곤 했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기전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를 제압하고 난 다음 팔라티노 언덕 위에 아폴로 신전을 세웠다. 그런데 그가 변호사 호르텐시우스의 집을 매입하고 굳이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산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이 집은 내부 통로로 아폴로 신전과도 연결되었고, 또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의 집으로 전해지던 지점에서 불과 10m정도 거리에 위치해 자기가 로물루스를 계승한 로마의 재창자임을 상징할수 있었으며, 또 시와 음악의 신 아폴로를 수호신으로 삼음으로써 아폴로 신의 가호로 펴화가 도래했다는 것을 만방에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아우구스투스의 영묘]-아우구스투스의 영묘는 테베레강과 비아 플라미니아 사이이며, 캄푸스 마르티우스의 북쪽 끝에 있다. 이 지역은 옛날 로마왕들의 묘소들이 있었고, 경관도 매우 좋았기 때문에 자신의 정치력을 선전하기에 매우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대 소박하게 살던 그가 죽은 후에는 거대한 영묘에 안장되었다. 이러한 대규모의 영묘를 마우솔레움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소아시아카리아 왕 마우솔로스의 무덤에서 유래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로마의 어느 통치자도 생각하지 못한 로마 역사상 가장 최초의 대규모 영묘였다. 그렇다면 아우구스투스의 생활신조는 '살때는 검소하게, 죽어서는 화려하게'였을까? 매사를 은밀하고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하던 그는 어떤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