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시아버지가 주신 연하편지
2013년을 보내는 마지막 날 12월31일 아침 우편물을 받았다. 4년째 매일 이른 아침에 오는 요양 보호사가 아파트 우편물 함에서 가져 온 연하카드와 편지 등을 내놓았다. 보호사는 맨 위 연하편지봉투를 들어 내 눈앞에 보이며 보낸 사람의 이름을 읽어주었다. 임 아무개.
이름을 듣는 순간 소식이 궁금했던 청주에 사는 후배 임 아무개가 떠올랐다. 그러나 보내온 사람의 주소는 후배 주소와는 다른 영동. 그러고 보니 임 아무개란 한글 이름 석 자중 성과 끝 자는 같지만 가운데는 받침이 달라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야?’할 때 요양보호사가 보낸 이의 주소를 확인하고는 ‘영동이네요!’라며 알아냈다는 듯이 좋아했다.
영동에 사는 사람이 생각나느냐는 말에 보호사는 ‘그 할아버지 있잖아요? 아파트 같은 라인 바로 위층에 사는 아들집을 찾아오셨던 할아버지 말예요’. 말을 듣고 보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편지 봉투를 뜯어 볼펜으로 꼭꼭 눌러쓴 편지를 읽어가니 할아버지의 뜻이 전해지며 할아버지가 메모해 주었던 글자체와 꼭 같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지지난 2012년 12월15일 오후 5시께 아들이 사는 아파트를 찾아왔다. 우리는 아들이 사는 바로 아래층에 산다. 이날 마리아는 한해가 다 가기 전에 성당 교우인 위층 마리아에게 꽃다발이라도 하나 전하겠다며 위층을 찾았던 것이다. 찾아간 아파트 현관 문 앞에는 처음 보는 할아버지 한 분이 서계셨다. 마리아는 자신은 바로 아래층에 산다며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는 반기며 자신은 아들 집을 찾아왔는데 아무도 없다고 하시며 아들이나 며느리가 들어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며 덜덜 떠셨다.
현관문 비밀 번호 끝자리를 모르신다는 할아버지는 양 겨드랑이에 긴 지팡이를 짚은 지체장애가 아주 심한 상태.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연락을 하고자 핸드폰 전화번호를 물어 보았으나 기억이 잘 나지 않으시다는 것이다. 아내는 할아버지에게 아들과 며느리가 들어올 때까지 우리 집에 내려가셔서 몸을 녹이시며 기다리자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지금처럼 기다리시겠다더니 내려오셨다. 우선 몸을 녹일 따끈한 차와 허기를 메울 빵 등 먹을거리를 드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리시라고 했다.
마리아는 자신의 전화번호 수첩에서 며느리-마리아의 번호를 찾아 며느리와 통화에 성공했다. 모처럼 가족이 외식 중인데 곧 들어오겠다는 것이다. 30여분이 지났을까. 기다리던 아드님이 우리 아파트로 들어왔다. 응접실로 들어오는 아들을 본 할아버지는 ‘야, 너를 보니 참 반갑다!’고 어린이처럼 좋아 하셨다.‘성탄카드래도 보내고 싶다’며 주소를 확인하고는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씩 하시고는 메모를 남기고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올라가셨다.
할아버지는 고향-영동에서 할머니와 사시다가 심한 지체장애로 그곳에 있는 한 요양원에서 요양 중이신데 유성온천에 와서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나면 몸이 가벼워진다는 생각만 하고 혼자 오셔서 온천목욕을 하시고는 아무 사전 연락 없이 아들집을 찾아 오셨던 것이다.
바로 그 할아버지(86)가 연말을 맞아 한 해도 넘긴 저지난해의 일을 기억하시며 감사의 인사가 늦었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육필로 ‘축 성탄’과 ‘근하신년’연하의 편지를 써서 ‘영동 요한 임 아무개’라 밝히며 보내오신 것이다.
첫댓글 참 이웃 사랑이 꽃 폈구려. 베푼이와 받은 이와 그 가족이 금년에 행복이 충만하길 기원하오. 수영
가장 값진 연하장의 뿌리는 따뜻한 이웃 사랑을 펼치는 마리아의 예수님 마음에서 시작되었구려..
86세나 되는 노령에 고마움을 잊지 않고 인사를 챙기는 정도라면 보톧 분이 아니군. 우리도 그렇게 멀쩡하게 늙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