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거리는 오후』
박완서 글 | 세계사 출판
서로를 아끼며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성규•서진 |
온라인 초대장을 받았다. 멀쩡해 보이는 청년만 보면 어떻게든 이어주고 엮어주고 싶던 그녀가 드디어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내온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녀석일까? 언니가 어린 여동생 신랑감을 따져 묻듯 깐깐하게 청년에 대해 알아보고 싶지만 일단 볼 수 있는 건 여섯 장의 웨딩 촬영 사진뿐이다.
혼자, 둘이 나란히, 앉아서, 서서, 껴안고.
요모조모 뜯어보니 훤칠하니 잘생겼다. 길에서 이런 청년을 보았으면 분명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을 것이다. 지금 둘은 어지간히도 좋겠지. 흥, 그렇지만 두고 봐. 그녀도 조만간 이 결혼을 후회하겠지. 둘만 서로 사랑하면 될 줄 알겠지만, 시댁 친정 살펴야 할 일은 얼마나 많을 것이며 사소한 걱정들과 갈등은 또 어떻고. 그나저나 그녀는 청년의 뭘 보고 결혼하는 걸까? 조건인가 사랑인가 외모인가 궁금해진다. 박완서의 『휘청거리는 오후』를 읽은 후라 더욱더 그렇다.
『휘청거리는 오후』는 고 박완서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1976년 1월 1일부터 12월 30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작품으로 박완서라는 작가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했다. 이 소설은 주인공 허성 씨가 세 딸을 결혼시키는 이야기다. 70년대 중산층 가정의 가족관계, 결혼풍습, 여성의 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왜 여자들을 더 불행하게 하느냐는 독자들의 간섭을 받으면서도 작가는 그 시대의 정직한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이렇다.
주인공 허성은 소년 직공 대여섯 명을 데리고 작은 전기공업사를 운영하는 영세한 공장의 사장이다. 그는 한때 교사였으나 교직원 월급만으로 생활을 감당할 수 없어 기술을 배워 공장을 차렸다. 절단기에 손가락을 잘려가며 성실하고 양심적으로 일해 겨우 서울 변두리 신흥 주택가에 반듯한 양옥집을 마련했다. 세 딸을 공주처럼 키워 대학 교육도 시켰다. 자랑할 돈과 명예는 없지만 우아하게 늙을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다르다. 여전히 지지리 궁상인 것 같고 딸들만은 부잣집에 시집보내고 싶다.
아내 민 여사는 첫째 딸을 어마어마한(?) 집안 아들에게 선을 보인다. 상류사회 사람들 사돈이 되려면 혼수도 그들의 풍속과 유행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성 씨는 빚을 내어 돈을 구해주지만 중소기업 사장이라고 속인 사실이 드러나고 결국 파혼을 당한다. 결국 첫째는 돈을 좇아 아이가 둘 있고 아내를 사별한 부유한 남자와 결혼한다. 마음껏 쇼핑도 하고 돌아다닐 수도 있지만, 그녀는 그저 아름다운 가구처럼 안방을 지킨다. 아무런 의욕도 재미도 없다. 하루 종일 누워 있다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되면 화장을 하고, 밤이면 남편의 섹스 파트너가 된다. 그녀는 자신의 무력함으로부터 도망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안정제를 먹게 되고, 약물중독자가 된다.
둘째 딸은 돈보다는 사랑을 택했지만 가난한 집안의 장남과의 결혼생활은 만만치 않다. 노골적으로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친정집에 전셋집을 요구하고, 시도 때도 없이 며느리를 불러 종 부리듯 일을 시킨다.
셋째 딸은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었던 두 언니의 결혼을 보며 자신은 독립적으로 결혼하고 사랑할 것을 자신한다. 그래서 자신의 조건만을 따지는 남자와 헤어지고 사람 자체로도 좋고 집안도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결심한다. 허성 씨가 보기에도 둘은 어울리고 아름다웠다. 사위의 아버지는 혼수는 필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자식들의 미국 유학 여비와 생활비는 각자 집안에서 부담하자고 한다. 허성 씨는 셋째 딸 유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이제껏 지켜온 신용을 버리고 부실 공사를 하게 되고, 어떤 것도 돌이킬 수 없는 경제 상황이 된다. 결국 그는 막내딸 결혼식 날 저녁, 첫째 딸이 먹던 알약을 삼키고 자살하게 된다.
결혼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여자와 남자, 자유연애를 외치며 경제적으로는 의존적인 젊은이들, 30년 전의 결혼 풍속을 담은 이야기인데 그때와 생활 모습은 변했지만 결혼에 대한 남녀의 생각은 별 차이를 모르겠다. 결혼으로 신분 상승을 꾀하거나 이를 위해 스펙을 세탁하고 온몸을 성형하기도 한다. 현실은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그럼 작가는 독자를 향해 어떻게 결혼하라는 걸까? 결혼하려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독립적이지 않다면 사랑도 결혼도 말라는 건가?
어쨌든 그녀는 결혼한다.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경제적으로도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둘이 알아서 잘 살겠지 한다. 그렇게 생각해도 걱정이 다 가시지는 않는다. 어쨌든 조만간 그녀는 결혼을 후회할 것이다. 무슨 일로든 상대에게 실망하는 날이 올 테니까. 좋아 보였던 그의 모든 것들이 시시해지는 날이 올 테니까.
남들보다 조금 늦게 결혼하는 그녀가 정말로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나는 당부하는 수밖에 없다. 잘 살아야 한다고. 그리고 25년 결혼생활을 했으니 행복하고 맛나게 사는 비법 하나 정도는 전수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 것은 아니지만 소설가 박민규의 글을 그녀에게 살짝 찔러준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 -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정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