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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산행기
5시 30분경 잠이 깨었다. 서울건축사등산동호회 10월 산행지인 영남알프스를 오르기 위해 어제 오후 8시 30분에 이 곳 숙소에 들어와 하룻밤을 묵었다. 오래전 낙동정맥을 단독종주 할 때는 오후 10시경 막차를 타고 들머리에 가까운 고장으로 내려와 찜질방 등에서 잠깐 눈을 붙인 후 새벽 3시경부터 산행을 시작했었다. 이번 산행은 그 때를 추억하려는 생각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그 때와 비교하니 이번엔 너무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어제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김석일, 김상현 건축사와 함께 복층1(215호)로 방 배정을 받았다. 숙소 구조가 특이했다. 1층에 객실별로 주차장이 나뉘어 있고 그 위로 복층구조로 된 객실이 놓여 있었다. 출입도 주차장을 통해 하게 되어 있었다.
여러 가지 물품을 챙기다 7시 10분 숙소 밖으로 나왔다.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 앞에 보이는 큰 산세와 흰 비늘구름이 멋지게 어우러져 보였다. 7시 20분 버스에 올라 산행 들머리인 배내고개를 향했다. 가는 도중 언양시내를 지났다. 도시가 많이 커진 것 같았다.
이동하는 차창 너머로 누렇게 익은 벼가 보였다. 벼를 벤 곳도 있었다. 멀리 영남알프스 능선이 장엄하게 펼쳐보였다. 전에 낙동정맥을 종주할 때는 오늘처럼 멀리서 보이는 옆모습을 보지 못했다.
황금 들녘
김석환
멀리
장막을 두르며
에둘러 지나는 산줄기
들녘 가득 일렁이는
황금빛 물결
서걱대는
벼 이삭 위로
쏟아지는 오후 햇살
풍요의 예감 끝에
찾아드는
마음의 평온
들녘 따라 번지는
농부의 흐뭇한 미소
(20231014)
8시 20분 들머리 배내고개에 도착했다. 횡으로 지나는 69번 국도 상에 위치했다. 종 방향으로는 낙동정맥이 지나는 곳이다.
0.3km 후방에는 능동산이 있다. 2010년 9월 18일에 낙동정맥 종주 때 이곳을 지났다. 그 날 새벽 4시 45분에 석남고개에서 시작해 능동산, 배내고개, 배내봉,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경부고속도로 건너의 정족산을 거쳐 오후 8시 15분 안적고개에서 마쳤다. 이곳을 지나갈 때는 아직 날이 다 밝지 않은 새벽이었다.
그날은 다른 때보다 구간 거리가 짧았는데 영남 알프스를 지나며 사진을 많이 찍느라 시간은 비슷하게 걸렸다. 이전 구간에서는 단석산·고헌산·가지산을 지나왔다. 그 때는 높다란 가지산(1240m)을 앞두고 해질 무렵 10여km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가지산에 올랐을 때는 돌풍까지 불어 난감한 처지가 되었다. 이 구간 이후 두 구간을 더 진행해 부산 몰운대에서 낙동정맥 종주를 마쳤다. 구간별로 하루에 40km정도씩을 걸었다.
태백산에서 낙동정맥을 걸어 내려올 때 당진-영덕 고속도로 위쪽으로는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도로가 없었다. 그야말로 깊고 험준한 산지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 아래쪽으로는 도로가 많아서 원래 산길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
8시 20분 버스가 배내고개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고개 양쪽 풍광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주변에 큰 산세가 펼쳐져 있었다. 배낭점검과 간단한 준비 운동을 하고 산행을 준비했다. 아침 기온이 12도였다. 산지여서 기온이 더 낮았다. 들머리 입구에 지나갈 산들을 표시한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었다.
8시 38분 배내고개를 출발해 산행을 시작했다. 배내봉까지 1.4km 이었다. 앞서 가다가 그림을 그리며 일행을 기다리려고 빠른 걸음으로 올랐다. 10분 후 아람약수터에서 물을 마시고 계속 오름길을 걸었다. 군데군데 목재계단이 놓여 있었다. 길옆에 시절 한창인 보랏빛 꿀꽈배기 꽃이 드문드문 보였다.
8시 58분 능선에 올라섰다. 아까 배내고개에서 먼저 출발한 일행이 잠시 멈춰 쉬고 있었다. 거기서 배내봉이 매우 가깝게 보였다. 거리가 400m 남아 있고 길도 완만해 보였다.
10시 4분 배내봉(966m)에 도착했다. 진행 방향으로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주능선이 장엄하게 펼쳐보였다. 그곳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고 그 광경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지나는 분들이 구경거리를 만난 듯 보면서 인사를 하고 갔다. 잠시 후 일행이 올라와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앞서 출발했다.
스케치를 마치고 간월산 쪽으로 향했다. 간월산까지의 거리는 2.6km였다. 그곳으로 가는 사이 주변에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보였다. 시내쪽 평지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보였다. 산길 옆에는 들국화가 피어 있었다. 우측 너머에도 계속해서 큰 산세가 바라보였다. 능선부근 숲길을 가다보니 앞에 간월산이 훤히 트여 보였다. 아까 배내봉에서 멀리 보이던 산세가 시야에 가까이 다가왔다.
배내봉과 간월산 사이 안부로 내려서서 다시 오름길에 접어들었다. 그 안부는 예전에 언양쪽에서 물건을 팔려는 아낙내들이 밀양쪽으로 넘어가는 길목으로 ‘선짐이질등’으로 불렸다.
그 말은 등짐을 진 채로 쉰다는 뜻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밀양 배내골 아낙들이 언양장을 오갈 때 이 재를 넘었다고 한다. 배내골 주민들은 “일흔아홉 고개인 선짐이질등을 오르면 하늘이 노랗더라”며 해발 900m의 이 재를 골병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낙들은 첫 새벽에 호롱불을 들고 올라와 선짐이질등에서 아침밥을 먹으며 일출을 감상했다 한다.
배내고개에서 영축산까지 능선길은 달오름길로 불린다. 영남알프스의 본래 지명인 천화(穿火)는 ‘막힌 하늘을 불로 뚫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산과 골짜기에는 많은 이야기가 서려 있다. 들어가는 사람은 보았어도 나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는 ’저승골‘. 협곡을 건너 뛰는 표범이 살았다는 ’범골‘. 높이가 천길이나 된다는 ’천길바위‘ 등이 있다.
오름길을 한동안 올라 10시 42분 간월산(1069m)에 도착했다. 정상석 옆에 서니 진행방향으로 신불산이 보이고 우측 멀리 영남알프스에 속하는 천황산 등이 보였다. 영남알프스는 유렵 알프스에 견줄만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럽 알프스 산맥은 남서쪽 지중해의 제노바 만에서 북동쪽의 빈까지 활 모양으로 뻗어 있다. 프랑스·스위스·이태리·독일·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헝가리 국경지대에 위치하며 세계의 지붕으로 불린다. 최고봉은 4807m의 몽블랑이며 대부분 급경사지이고 고산지대 만년설이 덥혀 있다. 대서양·지중해·흑해의 분수령을 이루기도 한다. 프랑스의 그로노블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 이탈리아의 볼차노 등의 도시가 인접해 있다.
한국의 영남 알프스는 해발 1000m가 넘는 산군이 능선으로 이어진 가지산(1,241m), 간월산(1,069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천황산(1,189m), 재약산(1,108m), 고헌산(1,034m)의 7개산을 지칭하나, 운문산(1,188m), 문복산(1,015m)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 중 신불산, 가지산, 재약산, 운문산은 100대 명산에 꼽힌다. 일부가 낙동정맥 구간과 겹치는데 선잠재에서 영남알프스와 조우한다. 특히 억새 군락이 유명하며 억새가 절정인 10월 중순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영남알프스 전체를 이어 걷는 태극종주는 도상 궤적이 태극형상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석골사-운문산-가지산-능동산-천황산-재약산-영축산-신불산-간월산-배내봉-배내고개를 연결하는 54km이다. 따로 떨어진 고헌산, 문복산은 이 코스에서 벗어나 있다.
영남 알프스
김석환
꽃송이처럼 펼쳐진
거대한 산군에
가을정취가 익어간다
큰 산굽이 너머
드넓게 펼쳐진
억새 군락이
산길 낭만을 부른다
여기저기서
모여든 사람들이
한마음 되어
저절로
산 축제가 펼쳐진다
산바람에 소슬대는
억새 꽃술들이
자꾸만
걸음을 붙든다
오르내리는 먼 길을 두고
기울어가는 해가
걸음을 재촉한다
(20231014)
일본에도 북알프스로 불리는 곳이 있다. 나가노 도야마, 기후 3개현에 걸쳐 있고 표고 3000m 이상의 고봉이 12봉이나 있으며, 일본 제 3위의 표고를 자랑하는 호다케다카, 일본의 마터호른이라 불리우는 야리가다케, 북 알프스에서 제일 자연 경관이 뛰어난 경승지인, 가마고지 등 일본근대 등산의 발상지답게 만년설, 빙하의 침식으로 생성된 계곡, 고산식물등 다양한 매력적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다테시마, 사로우마다케 등도 북알프스 산계에 속한다. 2010년 7월 29일부터 8월 1일 사이 서울건축사등산동호회에서 단체로 그 곳을 다녀왔었다. 첫 날 숙박을 한 산장에서 일찍 일어나 혼자서 야리가다케(3180m)를 다녀오기도 했었다.
어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한 회원이 유럽알프스 트래킹을 다녀온 영상을 보여주었다. 다른 분은 산티아고를 다녀올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내가 속한 한 학회에서 내년 초 이집트 건축답사 공지를 했다. 그런 소식을 접하다 보면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런 곳을 가려면 건강과 시간 경제적 여력이 있어야 한다. 아직 건강하기는 하지만 그럴만한 여력이 없다. 나이가 많아지고 노쇠해지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꼭 가야할 곳의 목록을 정해야 될 것 같다.
간월산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렸다. 진행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이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겹쳐 정상석 앞에서 촬영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다시 우리 일행이 도착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일행이 먼저 출발한 후 한동안 그림을 그리다 마치고 간월재로 향했다.
간월재로 내려서다 보니 규화석 안내표지판이 보였다. 바닥에 원형으로 턱을 둘러쳐 만든 보호시설이 눈에 띠었다. 옆 사람이 친절하게 그 안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규화석은 나무 화석이다. 생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매몰·보존된 현지성 화석으로 한반도 및 울산의 중생대 식물상과 고환경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계속해 내려서는 길옆과 저 아래 보이는 간월재 주변에 너른 억새 풍광이 펼쳐보였다. 오가며 그 풍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설레어 보였다. 억새 숲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는 연인과 부부도 있었다.
10여 년 전 이 곳을 지날 때는 9월 말경이라 산이 모두 녹음에 덮여 있었다. 그런데 10월 중순에 접어드는 시기가 되다 보니 억새가 황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지금이 가장 절정인 시기일 것 같았다. 이때에 맞춰 오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았다. 이번 산행 구간에서 억새 군락이 가장 장관인 곳은 간월재와 신불재이다.
11시 53분 간월재(900m)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많고 광장에서 쉬면서 식사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간월재 휴게소 앞에는 컵라면을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마치 축제의 광장 같았다. 광장 서측에는 전시관이 있다.
간월재에는 밀양쪽에서 올라오는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동측으로 넘어가면 언양과 울산지역으로 나간다. 옛날에는 울산, 언양 등지에서 소금이나 소를 팔러 이 재를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어젯밤 일행에게 나눠준 전투식량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먼저 덥힐 물로 허드렛물을 바깥 봉지에 붓은 후 다시 쌀이 담긴 팩 안에 식수를 넣고 그 봉지에 넣어 밀봉한 다음 10분을 기다려야 했다. 한 곳에 멈춰 있자니 약간 쌀쌀한 기운이 느껴져 웃옷을 입었다. 옆에서 이용주 건축사가 막걸리를 한잔 따라주었다. 가급적 술을 마시지 않으려 하지만 산행 때는 한잔 술이 반갑다.
간월재 돌무지탑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오니 10분으로 설정한 알람이 울렸다. 전투식량 봉지를 열고 양념과 참기름을 넣어 비벼 먹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분 중에 아까 지나오며 그림을 그릴 때 뵌 분도 있어서 다시 인사를 했다. 그 일행이 반찬을 권했다. 돌무지 앞에서 젊은 여성분들이 10년 연속 영남알프스를 찾는다는 기념표지를 만들어 펼치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쳐 주었다.
12시 28분 신불산을 향해 먼저 출발했다. 다녀본 길이라 부담이 없었다. 간월산과 신불산의 거리는 2.1km이다. 간월재 가까이에 억새 평원이 형성되어 있다. 억새 수술들이 가을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억새 사이로 난 나무계단을 올랐다. 위쪽까지 계단길이 이어졌다.
오름길을 올라 신불산 정상 500m전 데크에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바로 앞에 보이는 신불산이 크고 원만해 보였다. 원만하고 부드러운 형상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우측에는 신불산과 하나의 능선으로 이어진 영축산이 보였다.
데크 한 쪽에 화구를 펼치고 신불산과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스케치 했다. 지나던 분이 진지하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자신도 사진을 남기겠다며 본인 핸드폰으로 다시 찍은 후 간월재쪽으로 내려섰다. 스케치에 몰두하다보니 우리 일행이 올라와 주변 풍광을 돌아보다 신불산으로 향했다. 그 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그림 그리는 모습에 관심을 갖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나는 산에 갈 때마다 그림을 그려왔다. 지난 20년 가까이 북한산 등 서울의 입지를 체계적으로 그려왔다. 작년에 서울의 산하전을 할 때 곽시인이 한국의 산하전도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리 해보겠다고 했다. 백두대간 종주와 낙동정맥 단독 종주때는 작은 스케치북에 그렸는데 지금은 큰 크기로 그리려고 화판과 화구를 휴대하고 오른다. 단체로 지방 산에 갈 때는 일행과 함께 그 날 일정을 마치고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그릴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 앞서 가서 그림을 그리다 일행이 지나가고 다시 그 일행을 만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뒤쫓아가기를 반복하게 된다. 결국 빠른 걸음으로 그릴 시간을 확보하는 샘이니 힘이 들 수 밖에 없다.
스케치를 마치고 신불산 정상쪽으로 향했다. 길은 완만한데 바위가 칼날처럼 날이 선 곳이 많아서 디디기 불편했다. 오늘 지나는 구간의 암석이 편마암 계열이었다. 잠시 후 신불산(1159m)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도 기다려 기념사진을 찍었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다 신불재 쪽으로 향했다. 조금 아래쪽에 다시 자연석으로 된 신불산 정상석이 보였다. 거기서 내려보이는 신불재 주변도 억새가 장관이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멈춰 서서 일행끼리 번갈아 사진을 찍어주었다. 신불재로 내려서다 보니 우리 일행이 보였다. 잠시 후 그 곳에 도착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번 산행은 거기서 하산하는 일정으로 되어 있었다. 전에 지났던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다 걷고 싶었지만 아무리 빨리 걷는다해도 다 걷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았다. 내가 앞쪽 위로 보이는 능선까지만 다녀오겠다고 하고 급히 그 쪽으로 걸어갔다. 거기에 올라 뒤돌아보니 신불재와 산불산이 한눈에 바라보였다. 시선을 하늘로 돌리니 억새 수술위로 파란하늘에 따가는 뭉게구름이 어우러져 보였다.
조금 더 가도 앞서 간 일행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영축산쪽으로 갈대 숲길을 걸어갔다. 영축산이 점차 가깝게 보였다. 다 가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억재하며 중간지점까지 가다 되돌아섰다.
신불재로 되돌아온 후 가천 저수지 방향으로 내려섰다. 영축산까지 다 갖다오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내리막길 입구에서 멀리 언양쪽 시내가 내려보였다. 한참 숲길을 내려가다 다시 일행을 만났다. 그 아래로 내려가다 보니 좌측으로 공룡능선이 솟아 보였다. 기암봉우리가 솟아 암릉미가 느껴져 잠시 멈춰 스케치를 했다.
3시 47분 건암사로 내려섰다. 경내를 보려고 마당 쪽으로 가니 마당에 있던 두 여자 분이 어떤 일이냐고 물었다. 그냥 절 구경을 하려고 한다 하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당우가 한 채였다. 그 분들이 명상하는 곳이라고 했다. 평상에 있던 삶은 고구마와 귤, 삶은 땅콩 등을 권했다. 음식을 먹으며 오늘 그린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그곳을 지나 가천저수지쪽으로 내려왔다.
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삼거리 지점에서 우측 영남알프스 둘레길로 들어섰다. 다시 산길이었다. 산길을 벗어나는 곳에 낚시터와 저수지가 있었다. 거기서 공단3거리로 가니 버스가 보였다.
오전에 산행을 시작할 때는 배내고개 해발이 높아서 실제 오르는 높이가 낮았는데 내려오는 길은 높이차가 커서 거리가 멀었다. 도착 예정시간이 3시 30분이었는데 차에 오르고 보니 1시간이 더 지나 있었다. 이득우 건축사가 다른 지점으로 내려가서 기다리다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했다. 떨어진 거리가 1.6km 나 되어 걱정이었다.
한참후 그가 당도해 버스에 올랐다. 모두 박수를 쳐 주었다. 함께 뒤풀이 식당으로 이동해 삼겹살 메뉴로 저녁식사를 했다. 큰 산을 다녀온 후라 식단이 준비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음식을 먹었다. 가족으로 보이는 주인들이 모두 친절히 대해주었다. 반찬 채소를 할머니가 직접 가꾸었다고 했다. 6시 30분 귀경길에 올라 10시 30분 양재역에 내려 귀가했다.
(2023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