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아시는 대로, 고려사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卷二 > 世家 卷第二 > 光宗 9年 > 5월 >
戊午九年[958년] 夏五月 始置科擧, 命翰林學士雙冀, 取進士.
丙申[5.16] 御威鳳樓, 放枋, 賜崔暹等及第.
권73 > 지 권제27 > 선거1(選擧 一) > 과목 1 > 과거장 >
광종(光宗) 9년(958) 5월 한림학사(翰林學士) 쌍기(雙冀)가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진사(進士)를 뽑았는데, 갑과(甲科) 최섬(崔暹) 등 2명, 명경업(明經業) 3명, 복업(卜業) 2명에게 급제(及第)를 내려주었다.
光宗九年五月 翰林學士雙冀知貢擧, 取進士, 賜甲科崔暹等二人, 明經三人, 卜業二人及第.
이로써 보면 진사에 급제한 사람은 최섬 외 1인인데 그 이름은 보이지 않습니다.
나머지 1인은 묘지명에 보이는 진긍입니다.
1186년 작성된 진광인묘지명(晉光仁墓誌銘)에 의하면,
故儒林郞檢校禮賔卿行試尙書兵部侍郞」 賜紫金魚袋晋公墓誌銘」
公之先赴自帶方鼻祖晋兢應鄕貢進士擧於光宗朝顯德五年擢甲第春官位至光文院少監..
공의 선조는 대방(帶方)으로부터 나왔는데, 비조(鼻祖) 진긍(晉兢)은 향공진사(鄕貢進士)에 응시하여 합격하고, 광종(光宗)대인 현덕(顯德) 5년(광종 9, 958 )의 과거[春官]에 갑제(甲第)로 뽑혔는데, 벼슬이 광문원소감(光文院少監)에 이르렀다.
이라 하여, 진광인(晋光仁 : 1126~1185)의 비조는 958년 과거에 합격한 진긍입니다.
고려사 등에 보면, 이 해(958년) 실시한 최초의 과거중 甲科에 최섬(崔暹) 등 2인이 선발되어 있다고 되어 있을 뿐이어서 나머지 한명은 미상이었는 데 이 묘지명으로 그 이름이 晉兢임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로써 보면, 최초의 과거 합격자 2인(갑과)는 최섬과 진긍이 됩니다.
그런데 의문점이 있습니다.
진긍은 일체의 고려사에 그 이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과거 합격자라면 관직에 진출했을 만도 한데 그러면 중용되어 아마 요직을 거쳤을 것이고 당연히 이름이 나와야 합니다.
최섬은 약간의 이름이 나오기는 합니다.
고려사 卷九十三 > 列傳 卷第六 > 諸臣 > 김심언 >
金審言, 靜州靈光縣人, 初從常侍崔暹學. 暹坐寐夢, 審言頂上出火, 氣屬于天心, 異之, 妻以女.
김심언(金審言. 미상-1018년)은 정주(靜州) 영광현(靈光縣) 사람으로, 처음에 상시(常侍) 최섬(崔暹)에게서 배웠다. 최섬이 앉아 졸다 꿈을 꾸었는데, 김심언의 정수리 위에서 불이 나오다가 그 기운이 하늘 한 가운데로 붙으니, 이를 이상하게 여겨 〈자신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었다.
※ 常侍는 정3품의 중서문하성 관직.


그런데 규장각의 登科錄에는 이와 배치되는 기록이 보입니다.
光宗朝 戊午年[9년] 급제자 명단으로,
進士 崔暹
趙昱 史作翌 父瞻 學士平章 橫城人 이라 적고 있습니다.
최섬은 동일하지만 진긍 대신 조욱이 보입니다.
조욱은 인터넷에 찾아보면, 횡성 조씨(橫城 趙氏)의 시조이고,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조첨(趙瞻)의 아들이다. 조욱은 965년958년(광종 9) 고려에서 처음 실시한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이르렀다. 품행이 깨끗하고 덕이 높았으며 광종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고, 횡성군(橫城君)에 봉해졌다.
=> [965년이 아니라 958년임]. 여기서는 과거에 장원급제했다 되어 있지만 장원급제자는 최섬이므로(고려사 기록에 최섬의 이름만 보이는 이유이다) 이거는 과장이지만 어쨌든 최초 과거 합격자로 조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조욱은 고려사에 조익으로 보이는 데,
고려사 권73 > 지 권제27 > 선거1(選擧 一) > 과목 1 > 과거장 >
〈광종(光宗)〉 15년(964) 3월 한림학사(翰林學士) 조익(趙翌)이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진사(進士)를 뽑았는데, 김책(金策) 및 명경업(明經業), 복업(卜業) 각 1명에게 급제(及第)를 내려주었다.
十五年三月 翰林學士趙翌知貢擧, 取進士, 賜金策及明經·卜業各一人及第.
이로써 보면, 조익은 964년 이전에 급제하였다고 볼 수 있고,
고려사-지-選場에, 광종 9년,11년,12년의 과거 급제자 명단에는 조익은 보이지 않지만[장원이 아니었으므로].
-광종 9년(958) 5월. 한림학사(翰林學士) 쌍기(雙冀)를 지공거(知貢擧)2)로 임명해 진사를 뽑게 하고, 갑과(甲科) 최섬(崔暹) 등 2명, 명경(明經) 3명 및 복업(卜業) 2명을 급제시켰다.
-11년 3월. 쌍기를 지공거로 임명해 진사를 뽑게 하고 갑과 최광범(崔光範) 등 7명, 명경 1명, 의업(醫業) 3명을 급제시켰다.
-12년 4월. 쌍기를 지공거로 임명해 진사를 뽑게 하고 왕거(王擧) 등 7명과 명경 1명을 급제시켰다.
-15년 3월. 한림학사 조익(趙翌)을 지공거로 임명해 진사를 뽑게 하고 김책(金策)과 더불어 명경업·복업에서 각 1명을 급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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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과록에는 11년 3월의 합격자 이름으로 최광범외 徐熙도 보입니다. 나머지는 고려사와 동일하게 장원 이름만 보이죠.
조욱(조익)이 진긍이 아닌 이상, 고려 최초의 과거 합격자 2인중 최섬 외 1명은 누구란 말일까요??
첫댓글 등원록이라는 책이 오류가 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오히려, 진긍과 조익이 아닌 제3의 인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최섬과 함께 등재한 인물은 모종의 이유로 고려사에 기록이 될 수 없는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그 빈자리에 각 가문의 시조들을 대입하여 본 가문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등과록이라는 책을 잘 몰라서 그런데, 서희와 최광범도 합격자로서 기록되어 있다면 조익은 합격자로서 그 이름이 기록된 것은 아닐지 궁금합니다.
@가라모리스 그렇다면 모든 가문의 시조 기록에 저마다 급제자로 나와야겠지요...근거가 부실합니다..
@가라모리스 최초 과거 진사과 급제자가 2명이라 되어 있고, 그중 한 명이 최섬이라고 고려사에 나와 있는 데, 등과록에는 해당 과거 급제자가 최섬, 조욱이라 되어 있습니다(위 본문 글 참조바랍니다)
흠~~상당히 재밌는 주제 같습니다. ^^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