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장 물거품이 된 시드기야의 외교력(37장)
BC 588년 여름에 애굽의 26왕조 제4대 왕 아프리에스(호브라)가 바벨론 군대를 치려고 출병했다. 아마도 BC 592년 시드기야가 바로 왕 프삼티크 2세(Psamtik 2)와 체결한 조약에 근거해 원조를 요청했을 것이다. 라기스 서신에는 유다군 지휘관이 애굽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애굽 편에서는 바벨론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드기야의 기대와 달리 바벨론 군대가 승리했고, 그는 다급한 나머지 예레미야에게 특사들을 보내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했다. 그러나 시드기야가 들은 예언은 바벨론에 의한 비참한 멸망이었다(7~10, 17절).
38장 바르게 결단하지 못한 시드기야(38장)
시드기야는 여호야긴이 바벨론의 포로로 붙잡혀 가고 난 후 느부갓네살에 의해 왕위에 오른 허수아비 왕이었다. 백성은 여호야긴을 정통성 있는 왕으로 여겨 그가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28:4).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반역죄로 고소하는 고관들에게 예레미야를 넘겨줘서 진흙구덩이에 빠뜨리기도 하고(4~6절), 구스(에티오피아)인 내시 에벳멜리의 조언을 듣고 예레미야의 목숨을 건져 주기도 했다(7~13절).
또한 그는 고관들 몰래 예레미야를 비밀장소로 불러내서 하나님의 뜻을 듣기도 했다. 시드기야는 반바벨론 정치를 펴면서도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시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물이었다. 예레미야가 던져진 메마른 구멍이는 당시 지속된 가뭄과 바벨론의 포위로 인한 물 부족 현상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39장 예언대로 된 이스라엘의 비극적 최후(39장)
39~45장은 예루살렘 함락과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준다. BC 588년 1월에 시작된 바벨론의 공격과 포위는 586년 7월까지 18개월간 계속되었다. 마침내 BC 586년 8월 중순에 예루살렘 성전이 함락되었고, 시드기야 왕은 군사들과 함께 남쪽으로 난 문으로 도망했으나 바벨론 군대에 잡혀 느부갓네살에게 비참한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생명을 구해 주었던 에벳멜렉(38:7~13)은 재난 가운데서도 보호받는다. 하나님께 신실하며, 가난하고 불쌍한 자를 돌본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보호를 받는다(잠 14:31: 마 1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