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實尾島)
글/하상
실미도를 건너온 바람
해변 솔밭 스쳐가며 울고
억새밭을 지나도 운다
울음 우는 내력
철썩거리는 파도도 알고
산새랑 저 갈매기도 다 알건만
에둘러 가는 나그네여
저 울음소리 들으려는가
무엇을 보려 함인가
시절을 잘 못 만나니
매운 갯바람으로 흔들리다가
스러져간 영혼이여
미친 광대의 놀음에
광대처럼 살다가
산산이 흩어진 슬픈 영혼이여
그대들의 험한 일생
그저 한판 꾸던 꿈이었다. 여기고
평화로운 안식 이루시라.
20121023廈象
*역사의 흐름 속에서 희생한 불쌍한 넋을 위로하는 위령탑이라도 세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백과사전에서의 정의
실미도사건[實尾島事件]
1971년 8월 23일 인천 중구 실미도에 있던 북파부대원들이 기간병들을 살해하고 탈출해 청와대로 향하던 중 자폭한 사건.
언제 : 1971년 8월 23일
어디서 :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누가 : 실미도 북파부대원들(684부대원들)
무엇을 : 자폭(自爆)을
어떻게 : 실미도에서 기간병들을 살해하고 인천에서 버스를 탈취한 뒤, 서울로 진입해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수류탄을 터뜨려
왜 : 국제적인 긴장완화와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북파부대원들의 존재가 유명무실해지자 이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실미도는 인천광역시 중구 용유동(龍游洞)에 딸린 무인도로, 섬 대부분이 해발고도 80m 이하의 야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미도사건은 1971년 8월 23일 이 섬에 있던 북파부대원들이 자신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은 기간병들을 살해하고 탈출하여 인천에서 버스를 탈취한 뒤, 서울로 진입해 청와대로 향하던 중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한 사건을 말한다.
이 부대는 1968년 4월 창설되었고, 일명 '684부대'로 불린다. 같은 해 1월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군부대 소속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해 많은 인명피해를 냈던 1·21사태에 대한 보복을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창설 목적은 북한에 잠입해 김일성(金日成)을 죽이는 것이다.
창설 이후 이들은 실전과 똑같은 훈련과 철저한 인민군식 훈련을 받으며 단 3개월 만에 북파가 가능한 인간병기로 탈바꿈하였다. 그 뒤 3년 4개월 동안 출동명령만을 기다리던 중 1970년대 초 국제적인 긴장완화와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이들의 존재가 불필요해지자 정부는 기간병들에게 이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인간병기로 길들여진 훈련병들 앞에서 기간병들은 손 쓸 틈도 없이 전체 24명 가운데 18명이 희생당하고 6명만이 살아 남았다. 이것이 1971년 8월 23일 6시경의 일이다. 기간병들을 살해한 북파부대원 24명(나머지 7명은 훈련 기간 중 사망)은 12시 20분경 인천 독배부리 해안에 상륙한 뒤, 버스를 빼앗아 서울로 향하였다. 이어 인천에서 육군과 총격전을 벌인 뒤, 두 번째 버스를 탈취해 14시 15분경 영등포구 대방동 유한양행 건물 앞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마지막 총격전을 벌이다 스스로 수류탄을 터뜨려 부대원 대부분이 죽고, 4명만이 살아 남았다. 생존자 4명은 1972년 3월 10일 사형당하였다.
정부는 이 사건을 '실미도 난동사건'으로 규정하였는데, 이후 이 사건의 진상은 갖가지 의문점을 간직한 채 30여 년 간 베일에 싸여 있었다. 684부대의 훈련병들이 겪은 3년 4개월 동안의 실상을 파헤친 백동호의 소설 《실미도》(1999)와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강우석(康祐碩) 감독의 동명영화(2003년 12월 개봉)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2004년 초에는 1968년 3월 충청북도 옥천군의 한 마을에서 실종된 7명의 청년이 684부대원이었다는 사실이 국방부에 의해 확인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684부대의 구성원들이 범죄자들이었는지, 아니면 민간인들이었는지를 비롯해 많은 점들이 아직도 의문에 싸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