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저명한 범죄학자 도나토 카리시의 작가 데뷔작 《속삭이는 자》는 초판 인쇄가 끝나기도 전에 유럽 전역에서 출판 계약을 마치며 주목을 받았다. 이는 영미권 대형작가에게는 종종 있는 일이지만, 출간도 되지 않은 이탈리아 소설의 판권을 스릴러소설 강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20여 개의 국가에서 경쟁적으로 사들인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속삭이는 자》는 출간 즉시 유럽 각국의 종합 베스트셀러 수위를 차지하였으며, 이탈리아에서만 250만 부, 세계적으로 6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또한 이탈리아의 가장 유력한 문학상인 프레미오 반카렐라 상(Premio Bancarella: 1953년 1회 수상자는 《노인과 바다》의 헤밍웨이로, 1989년 36회에는 움베르토 에코가《푸코의 진자》로, 그 외 존 그리샴(1994년, 42회), 마이클 코넬리(2000년 48회)도 이 상을 받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최고의 작품에 수여하는 상이다)을 비롯하여 총 4개의 문학상을 수상, 흥행성은 물론 작품성까지 인정받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국내에서의 반응 역시 다르지 않았는데, ‘데뷔작이라니 믿을 수 없다’, ‘새로운 유형의 사이코패스를 제시한 소설’, ‘절대악의 실체를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정신없이 읽다 보니 어느새 종장에 이르렀다’ 등 독자들의 찬사와 추천이 끊이지 않았다.
독자들의 끊임없는 기대와 요구에도 불구하고 카리시 작품의 영상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았는데, 이는 충격적인 반전을 영상으로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와 고민이 컸던 탓이다. 그러던 중 그는 하루에도 수백 건 이상 벌어지는 범죄 중 어떤 사건이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아 범국민적 이슈가 되고, 동시에 어떻게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하는지를 다룬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고, 이를 미리 읽은 주변인들의 설득에 소설로 재집필하여 신작 장편소설 《안개 속 소녀》를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이름 없는 자: 속삭이는 자 두 번째 이야기》를 비롯한 자신의 작품에서, 그리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범죄의 피해자보다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대중의 역설적인 호기심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는 카리시는 본작을 통해 범죄를 사람이 관계된 사건이 아닌 막대한 수익이 창출되는 또 다른 리얼리티 쇼로 소비하는 현대인의 민낯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전작과 궤를 달리하는 스탠드얼론 《안개 속 소녀》는 지나치게 잔혹한 묘사를 배제하고 호흡은 더 빨라져 어느 작품보다 몰입도가 높은 한편, 범인이 밝혀지기까지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마는 연이은 반전들은 여전히 충격적이고 날카롭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개 속 소녀》는 이탈리아의 국민배우 토니 세르빌로와 우리에게는 영화 <레옹>으로 친숙한 장 르노가 주연을 맡아 현재 영화 촬영 중으로 2017년 11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에서 동시 개봉될 예정이다.
“사건의 진실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막대한 수입을 거둬들이는 범죄쇼
순종적이고 성실한 10대 소녀 애나 루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사라진다. 알프스 산골에 위치한 다소 폐쇄적이고 정적인 마을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젊은이들이 종종 벌이는 가출로 여기는 지역 경찰과 달리, 가족 모두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부모의 생각은 다르다. 전국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신문 1면을 장식하는 대형 사건이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는 스타 형사 포겔 또한 단순한 가출이 아님을 직감하고 사건을 맡는다. 과거 증거조작으로 무고한 사람을 연쇄살인범으로 몰고 간 일이 밝혀지면서 형사 이력에 큰 오점을 남겼던 포겔. 그는 실종사건이 일어난 이 작은 산악마을이 자신의 화려한 재기를 위한 최고의 무대임을 확신한다. 포겔은 치밀한 탐문과 경험을 통한 직감 등 형사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용의자를 찾아내지만 검사는 증거불충분을 근거로 체포영장 발부를 거부한다. 포겔은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검사를 압박할 요량으로 언론 플레이에 능한 기자에게 용의자에 관한 정보를 흘린다. 그리고 다음 날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던 한 남자의 집 앞에 천둥번개를 연상케 하는 기자들과 이웃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터진다.
《안개 속 소녀》는 도나토 카리시가 어린 시절에 겪은 어떤 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공원에서 마주친 한 남자가 잠시 부모와 떨어져 있는 그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며 다가왔다.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는 주의를 수차례 받았던 그지만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지 등 다정한 질문을 하는 남자에게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다가갔고, 다행히 자신을 부르는 부모의 목소리가 들리자 남자는 그곳을 떠났다고 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실제 겪거나 혹은 행동과학 범죄학자로서 범죄분석과 자문을 통해 알게 된 사건을 기반으로 집필하기 시작한 《안개 속 소녀》는 맑은 거울처럼 우리의 현실을 비춘다. 무엇보다 작가 스스로 ‘두려움’이라는 주제에 집중했다고 밝힌 이 소설은, 현실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어떤 작품보다 무섭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전작에 비해 가볍다고 생각했는데 결말에 이르자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도 그 공포가 쉬 가시질 않는다’라며 두 번 이상 읽게 된다는 감상을 남겼다. 언론과 대중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건 수사와 흥행을 위해 점점 더 괴물화되는 범인, 그런 와중에 소외되는 피해자. 사건의 진실보다는 자극적인 범죄 리얼리티 쇼에 집중하던 중, 이 모든 일의 근원인 진짜 악의 실체가 밝혀질 때 독자는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 곳곳에 숨은 함정과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까지, 여타 작품에서 결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소재와 시선으로 무장한 작가는 본작으로 유럽을 대표하는 스릴러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음을 다시금 증명하였다.
내용소개
우리 모두에겐 괴물이 필요하다
내가 남보다 낫다고 여길 괴물이……
독실한 성(聖)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10대 소녀 애나 루가 성탄전야에 사라진다. 평화롭지만 다소 폐쇄적인 산악마을에서 종종 일어나는 단순 가출로 여겼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범죄의 가능성이 커진다. 스타 형사 포겔이 사건을 맡게 되고, 과거 증거조작으로 무고한 사람을 연쇄살인범으로 몰았던 일로 불명예를 겪었던 그는 이 일이 재기를 위한 발판임을 확신한다. 그러던 중 애나 루의 곁을 맴돌던 차량이 발견되지만 검사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체포영장 발부를 거부한다. 수많은 미디어와 경찰들의 기대를 의식한 포겔은 언론에 용의자의 정보를 흘려 대중을 선동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