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니 소금사막은 천의 얼굴을 갖고 있다.
한낮에는 지평 선을 중심으로 소금사막과 하늘이 대칭되는 데칼코마니 자체다. 해질 무렵 우유니는 핏빛 노을로 덮였고 새벽은 별천 지다. 이 풍경은 우기가 끝나가는 3월의 우유니고, 건기의 우유니는 물기라고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소금밭이다. 익히 알고 있는 우유니는 3월 대낮에 가깝지만 누구는 건기 의 우유니를 추천한다. 지프차를 타고 소금사막의 중심부 로 끝도 없이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유니 도심은 허허벌판 한가운데 세워진 서부개척시대 마을 같다. 마을 입구 쪽에는 전세계 언어의 간판으로 여행 객을 맞는 여행사 일색이다. 한국인도 꽤나 가는지 한국어 간판도 군데군데 보인다. 소금사막으로 가는 기념품 마을에는 소금공장이 있다. 전통 방식으로 우유니의 소금을 정제해 비닐봉지에 넣어 팔고 있다.
▲ 우유니 원조 소금호텔이 소금사막 한가운데서 여행객을 반기고 있다. 지프차를 타고 30, 40분 달리면 말로만 듣던 소금사막이 눈앞에 펼쳐진다. 소금물 속에 잠겨 있었으니 소금호수라 고 하는 것이 어울리겠지만 깊이는 발목 정도인 20㎝ 안팎 이어서 웅덩이가 더 어울린다. 지프차는 느린 속도로 정해진 코스로 달렸다. 갑자기 밑으로 푹 꺼지는 웅덩이도 있어 평소 확인된 길로만 다니는 것이었다. 히말라야에만 크레바스가 있는 것이 아니다. 지프차는 인적이 드문 곳에 섰다.
워낙 여행객이 많다 보니 지프차마다 한적한 곳을 찾느라 경쟁을 하고 있었다. 수십명 단체도 있었다.
우유니는 역시 사진 천국이었다.
하늘이 반사되어 비치는 소금웅덩이 위에서 인생샷을 무한대로 건질 수 있는 곳이었다. 원시인부터 현대인까지 인간의 변천 과정을 담는‘ 진화’, 공룡 인형을 앞에 놓고 사람을 뒤에 적절히 배치해 공룡이 사람을 밟는 것 같은‘ 착시’, 의자를 놓고 일행들과 인간 띠를 만드는‘ 손에 손 잡고’ 등 사진 테마는 끝도 없었다.
▲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이 지평선을 중심으로 데칼코 마니를 연출하고 있다.
양껏 사진을 찍고 지프차는 원조 소금호텔로 달렸다. 우유니 소금사막이 처음 알려졌을 때 호텔로 쓰던 곳이다. 지프차들로 포위된 이곳은 더 깊숙한 소금사막에 있었다. 호텔 바깥 한쪽에는 전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들이 바람에 펄 럭이고 있었다. 태극기가 없을리가 없었다.
단층의 소금호텔 은 이제 음식과 음료수를 파는 여행자 쉼터로 탈바꿈했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우리가 타고 온 지프차만 보일뿐 다 른 여행객 대부분은 숙소로 돌아가고 없었다.
새파란 하늘 과 흰 구름으로 뒤덮였던 우유니는 점차 석양을 받아 붉게 물들다 마침내 핏빛으로 변해 버렸다.
더 이상 하늘과 땅의 대칭은 없었다.
둘로 갈라진 우유니는 어둠 속으로 묻히고 있었다.
▲ 우유니 소금을 채취해 정제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지각변동으로 솟아 올랐던 바다가 2 만년전 빙하기를 거쳐 녹으면서 만들어졌다.
비가 적고 건 조한 기후로 물은 증발하고 소금 결정만 남은 것이었다.
1만 2,000㎢ 면적에 두께 1~120m로 쌓여 있는 소금은 100억톤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곳은 해발3,650여m 고산지역이다.
중국 티베트 라싸와 비슷한 높이. 고산병에대비해야 한다. 멀쩡했던 일행들은 두 통이 심하다며 아예 방문을 나서지도 않는다.
변수가 심한 곳이다. 지프차는 어둠을 뚫고 우유니 소금사막 한 곳에 섰다. 하 늘에는 별이 수도 없이 반짝였고 은하수도 뿌연 길을 만들 고 있었다. 새벽의 우유니는 추웠다. 밖에 나왔다 차 안에 들어갔다를 반 복했다. 삼각대를 세우고 우유니의 밤하늘을 휴먼 메모리가 넘칠 때까지 눈과 가슴에 담았다.
▲ 해가 지는 우유니 소금사막에 노을이 물들고 있다.
몽골 초원과 차마고도의 중도객잔, 마추픽추를 오가는 잉카레일, 히말라야 중국과 네팔의 국경마을, 아스완에서 룩소르로 가는 나일강 배위 에서 보는 밤하늘과는 또 다른 느낌 이었다.
어둠과 소금으로 모든 것이 정화된 우유니의 밤하늘이었다.
첫댓글 와우!
멋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