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하고는 아예 담을 쌓고 돌아보지 않을 심산으로
해운과 관련된 일이라며 눈길도 주지 않으려 했는데
배운 도둑질은 그래도 어쩌지 못해 배를 움직이는 입장이 아니라
客의 위치에서 이래저래 배를 타는 손님으로 몇 번의 기회가 겹치더니
끝내는 딸과 손주와 함께 짧지만은 않은 크루즈 문화를 경험하는 기회가 올 줄이야~~~
크루즈의 어원이야 어찌 되었건
뭔가를 찾기 위한 어슬렁거림이 숨어있다며
군사적 용어로 사용되건 10대들의 반항적인 용어로 둔갑을 하던
바탕에 깔린 숨은 뜻은 변함이 없겠고
그것이 장사 속과 어울려 바다를 떠돈다 한들 누가 어쩌겠는가?
Vancouver항의 Lion Gate Bridge(사자문교)를 빠져나오며
바다는 거짓말처럼 호면같이 잔잔히 이어지지만
덩실덩실 나비춤이나 껑충껑충 어깨춤을 출 분위기는 아직은 이르다.
장바구니를 들고 어깨 너머로 눈 요량했던 잘못 전달된 캬바레 문화가 정신을 차리고
장중한 음률을 타고
어깨가 구부러진 노부부가 인생의 막장을 신나게 도는 춤 문화가 있는가 하며
인생의 한판을 몽땅 던지기라도 할 듯이
내리 깔은 눈으로 로또를 꿈꾸며 구겨진 얼굴로 인생을 걸어보는 카지노 인생도 보이고
똘똘 감은 담요로 찬바람을 이기며
독서삼매경에 빠진 한량한 중년여성도 간간히 보이기도 하는데
여름한철 황금기를 이용한 가족단위 여행이 주를 이루고 있다.
<Vancouver항을 빠져 나오며 돌아본 Lion Gate Bridge>
거기엔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열심히 돌보는 엄마 아닌 아빠가 있고
유모차에 매달려도
꾸준히 끼니를 챙기는 보기에도 조금은 안된 노부부의 마지막(?) 여행도 보인다.
그런가 하며 그 많던 일본 관광객을 대신한
요란스런 중국인과 한국인의 가족여행도 적지 않게 빈자리를 차지하는가 하면
까다로운 Dress Code가 귀찮아
시간과 복장이 자유롭고 일본인이 사라진 스시 코너로
제법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양인과 서양인이 점점 늘어나는 색다른 풍경도 엿보인다.
아무튼, 캄캄해야 할 밤하늘이
밤 9시가 훨씬 넘었는데도 석양은 지칠 줄도 모르고 넘실대는 파도를 타고 반짝거리면서
여름 한철을 전세라도 낸 듯이 신나게 만지작거리며 잠들 줄 모르는 백야와 다정한 이웃이 되고
물살을 가르는 배는 순항속도를 잘도 유지하며 너무 조용해서 탈이라도 날판이다.
크루즈 문화도 제대로 알고 타야지
재래시장에서 콩나물 가격 흥정하듯 돈 앞에 벌벌 떨며
아무래도 진면목을 볼 수 없을 것 같은데 몸에 배인 버릇은 어쩔 수 없나보다.
한때는 동해를 거슬러 홋가이도와 혼슈 사이의 쓰가루 해협을 빠져나와
유빙이 둥둥 떠내려 오는 파도밭을 헤치며 배링해협을 제집 드나들듯 하면서
비료원료인 암모니아를 케나이(Kenai)에서
부지런히 울산과 여수로 실어 나르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데
오늘은 대접 받는 손님으로 입장이 바뀌어서 그 옛날을 더듬고 있다.
꼬박 하루를 바다와 해안선만을 바라보며 달려오더니
그새 육지가 그리워졌는지 번호표를 받고도 목을 빼고 상륙을 기다리는 표정들이다.
3시에 상륙하여 밤10시까지 느긋하게 시간을 주는 것도 다 白夜때문이리라.
역시 서양의 젊음인가?
수상비행기를 예약하고 Speed Boat를 타고
zip line에 매달려 순식간에 내리 꽂는 ZipRider에 머뭇거림 없이 올라타는 것은~~~
아프니까 청춘이라더니 이것도 한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우리가족은 그저 환전이 안 된다는 핑계와 손주의 유모차를 이유로
Icy Straight Point 시내라도 둘러볼 기회를 아예 포기하고
크루즈선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위치에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ZipRider를 타고 쏜살같이 내려오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저녁시간에 맞추어 귀선을 서두르고 만다.
<준비한 이유식으로 크르즈선의 귀염둥이가 된 외손주 Hi!>
<Celebrity Infinity호에서 바라본 ZipRider & 구조정이 오간 선착장>
다시 내해를 따라 북쪽으로 아주 조용한 항진을 하는 바다 날씨가 싸늘하다 못해 차갑고
겨울옷 하나 제대로 못 챙기고 바람막이 겉옷하나 달랑 준비하는 허술함을 늦게사 후회하는데
11층 높이를 승강기 4대가 부지런히 오가며 상륙한 승객을 제자리로 열심히 실어 나르고 있다.
잠시 오수에 잠겼다 헐레벌떡 깨어나 둥둥 떠다니는 빙산 아닌 얼음조각을 보며
지구 온난화로 녹아내린 빙원이
앞으로 몰아칠 종말의 원인이 되지나 않을까 괜한 걱정도 해보다가
곤하 잠든 동반자의 얼굴에서 새삼 세월의 흔적을 발견하곤 흠칫 놀라는데
바다는 얼음조각을 빼곤 쥐죽은 듯 고요하다 못해 평화롭기까지 하여
쌀짝 허바드 빙하(Hubbard Glacier)를 다녀간 흔적만을 남기며
뱃머리를 알라스카의 州都인 주노(Juneau)로 돌린다.
<얼음조각 하나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첫댓글 발데즈 하고 체리 포인트 하고 탱카 타고 댕기메 일하러 갔던 데를 다시 보네..
내 타던 배가 이름이 MT Kenai 였다.. 감회가 좀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