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토, 4~5 양일간 충북 단양과 경북 안동에서 열린 민속축제들을 관람하러 다녀왔습니다.
전에 한 번 책 교정한 거 나왔다고 소개해 드렸을때, 그 <한국무용통사>의 저자이신 용인대 이병옥 명예교수님을 따라서요.^^
원래 3~4일엔 충북 단양에서 제 20회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가 개최되고, 거기에 이어서
제 54회 한국민속예술축제가 열리는 일정이었습니다. 이 두 행사는 각 지방 민속예술단체가 참여하는 경연대회이고요
(대통령상까지 수여되는, 매해 도 단위로 개최지를 바꿔가며 열리는) 아주 큰 행사입니다.
금요일 점심 때쯤 도착하니 청소년민속예술제의 경연이 끝나가고 있었답니다.
마지막 팀인 부산문화여고에서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 2호인 '수영농청놀이'를 선보이고 있네요.
조직과 규율 속에서 농사일을 하는 과정, 그 작업 내용을 순서대로 쭈욱 보여줍니다.
노래부르며 모를 찌고, 김매고 타작하고 등등...나중에는 소싸움도 곁들여 흥을 돋우고 춤도 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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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소의 탈(?,껍데기? ㅎㅎ)도 제작비가 수백만원이랍니다(수요가 워낙 적으니 ㅜㅜ).
암튼 여고생들이 들어가서 논밭을 가는 소 역할도 잘 하고, 때론 얌전히 앉아 풀 먹는 시늉도 척척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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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들 참 귀엽지요? 사실 입시 때문에 이런 거 연습시키는 것도 선생님들에겐 이만저만 고충이 아니랍니다.
그래서 참가하는 학교들도 실업계 학교들이 대부분인데,
어떤 곳은 여학생들이 머리도 묶지 않고 다 풀어 헤친채 나오기도 하고(심사위원들에겐 감점대상 ㅎ),
농요를 부르는데 유행가처럼 콧소리 섞어가며 나름의 스피릿, 쏘울을 담는 것이 웃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라져 가는 우리 민속예술을 그렇게라도 해주는 것에 일단은 무조건 이쁘게 보이지요.
오후엔 잠시 짬이 나서, 단양 팔경 중의 하나인 도담삼봉을 구경하고 왔어요.
저 아름다운 바위에 얽힌 사연은 왜 또 그리 서글픈지...
가운데가 남편 바위, 오른쪽이 처 바위, 맨 왼쪽 작은게 첩 바위.
아들 못낳는 처를 버리고 첩에게 아들을 본 남편을 본처가 등지고 있는 모양이라는데, 그렇게 보이시나요?^^
그래도 저 멋진 정자를 본처에게 선물하는 것 같은 모양새이니
역시 조강지처가 최고라고 혼자 생각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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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타고 돌고서도 시간이 남아서 온달세트장까지 갔는데, 가보려던 온달산성과 동굴 등등
다 돌아보려면 저녁 공연 시간에 못 맞출 것 같아서 이렇게 입구의 인공 구조물에 '찜'만 하고 사진만 찍고 왔습니다. 하하.
저 중간에 대뜸 올라온 정자도 귀엽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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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부터 열리는 한국민속예술축제는 경연대회인 만큼, 전날 저녁엔 명인들의 축하공연이 열렸습니다.
<땅끝에서 땅끝으로>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땅에서 나서 땅으로 돌아가는 만큼
그 땅의 소중함을 되새겨보자는 취지에서 구성된 공연이었습니다.
중간에 목포시립무용단이 부채춤, 오고춤 등을 추었는데
확실히 수도권에서 보는 춤보다 남도는 옷맵시부터 춤맵시까지 야무지고 '때깔'이 다릅니다.^^
목표시립무용단은 사진을 못찍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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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전남무형문화재 제 17호 호남우도농악이수자인 박이식님이 열두발놀음을 선보인 무대입니다.
저 허공을 가르는 태극의 궤적은 언제 보아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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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의 이상휴 할아버님, 경북 무형문화재 제 84-2호 예천통명농요 예능보유자이십니다.
아주 자그마한 할아버지가 나오셔서 쩌렁하고 맑은 목소리로 <아부레이수나>를 부르시고
뒤에서 젊은이들은 그것에 맞춰 모심는 흉내를 내고 있어요.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전, 그야말로 우연히 '발굴'되어 문화재로 선정된 이력을 가지신 분인데
우리 조상님들이 힘든 농사일 속에서도 단합하고 흥을 돋웠던 분위기가 어떠한 것인지
이 노래를 들으며 콧날이 시큰해지더군요. 정말, 이런 것들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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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최창주 교수님이 말뚝이로 출연한 봉산탈춤 사자춤입니다.
북청사자놀음 사자는 누렁색이고 봉산탈춤의 사자는 이렇게 흰색이랍니다.
건장한 청년들이 앞뒤로 들어가서 호흡맞춰 뛰니 사자의 탈도 몸체도 힘차게 출렁출렁~!
맨 마지막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무등태워 사자가 곧추서서 포효하는 동작을 선보이는데
아쉽게 그때 배터리가 나가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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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보니 저 성벽 모양 세트 위 노란 것은 연주할 때 쓰는 북입니다.
꼭 달처럼 보이지요?^^ 일부러 그렇게 연출한 것 같아요.
마지막에 다 나와서 판굿을 하며 무동놀이할 때 저렇게 삼단으로 올라가는데,
맨위에 올라간 꼬마는 어찌나 스스럼없이 장단을 타며 즐기고, 상모를 돌리는지
신통방통해서 옆에 앉은 선생님과 엄청 웃었습니다.
이튿날 토요일엔 안동에서 열리는 국제탈춤페스티벌을 보러가기로 해서,
단양에서 넘어가는 중간에 있는 영주 부석사에 들렀습니다.
실은, 제가 영주 부석사에 오래전부터 그렇게 가고 싶었는데 갈 기회가 없었던 것을 아는 선생님께서
일부러 코스에 넣어주셔서, 소원을 이뤘지요.ㅜㅜ
십수년전 의상대사와 선묘낭자 이야기를 들은 후, 그런 크고 깊은 사랑을 꿈꾸는 제게
이 부석사는 그야말로 꼭 한 번 가야할 마음 속의 성지 같은 곳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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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부석사 은행나무 숲길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지만
이렇게 은행이 주렁주렁 열렸더군요. 올라가는 길에 빨간 사과가 촘촘히 매달린 사과밭도 장관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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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구름을 보면서 그림들에 나오는 봉황 꼬리 같다고 혼잣말을 했어요.
아닌게 아니라 의상대사가 절을 지으려는데 산적들이 나타나 괴롭힐때 선묘룡이 나타나 돌을 들어 올리고
그때 봉황도 나타나서 산 이름이 봉황산이더군요.
하늘에 좌라락 펼쳐진 부드러운 깃털 같은 구름을 보면서 선묘낭자의 숨결을 느꼈던 것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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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창건설화의 주인공 선묘낭자를 모신 누각은 유명한 무량수전 뒤꼍에 이렇게 다소곳이 있습니다.
부석사 이름의 유래와 설화를 알려주는 부석 앞의 안내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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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와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꿈결 같은 부석사에서의 한때를 뒤로 하고
안동 탈춤공원으로 갔습니다.
이병옥 교수님께서 송파산대놀이 보존회 회원으로 벌써 수십년째 공연을 해오고 계신데,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 송파산대놀이가 초청되었거든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세계 여러 나라의 단체들을 초청하는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진행되어와서
외국인들에게도 알려진, 제법 규모 있는 행사인데
행사장 부지에 나들이 온 가족들도 엄청 많고, 정말 정신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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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하여 '노린내'나는 중을 놓고 놀리는 장면,
그 중이 각시들을 유혹하는 장면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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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모자쓴 취발이가 산대놀이 후반부의 주인공인 셈인데,
중이 떠나고 저 각시 중의 한 사람하고 부부가 되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애기가 들어서고(ㅎㅎ)
저 배가 남산만한 해산할멈이 엉덩이를 씰룩씰룩하며
애 낳는 것을 도와주러 등장할 때, 저는 저 때가 젤로 재밌어요. ㅋㅋㅋ
일부러 저런 사람을 골라서 시킨다니, 해산할멈 역을 맡은 분은 임무완수를 위해선 다이어트는 꿈도 못 꾸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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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발이의 미니미인 마당쇠가 태어나자(실은 누워있는 각시 치맛자락에서 쓰윽 꺼냄 ㅎ)
취발이가 좋아서 들고 사방에 자랑하러 다니는 장면입니다.
이 송파산대놀이를 연희하는 보존회 회원분들은 모두 전문 춤꾼이 아니라
현직 의사, 선생님, 교수님 등 그냥 보통 사람들인데 워낙에 이수할 사람이 없다보니
대학때 송파산대놀이를 배운 것을 인연으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우리 전통민속예술들을 접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정겹고 훈훈한 멋과 맛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계속되어야 할텐데요.
가까운데서 만나면 꼭 응원하고 관심가져주세요.^^
첫댓글 우리만 보기엔 참 아까운 글입니다.
중학생때 참가했던 농악(대회명 생각안 남) 대회장에 가 있는 느낌입니다.
우리 전통 농요도 그렇고 봉산탈춤도 그렇고 그 명맥이 쭉 이어져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
저도 혼자만 보기엔 너무 아까워서 간략하게나마 올렸어요.^^ 민속예술들은 예술 자체를 위해 만들어진 장르가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노동의 피로를 풀며 흥을 돋우고 함께하는 대동의 의미가 있어 더 감동적입니다.
이렇게 나마 명맥을 이어간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네요.
송파산대놀이를 제대로 볼 기회가 쉽지 않더라구요.
잠실에 있는 서울놀이마당에서는 꽤 정기적으로 하는 편이긴 합니다만, 지방에선 접하기 쉽지 않으시죠.. ㅜㅜ 예전에 짤막하게 찍어둔 동영상이 있긴 한데 아이폰으로 찍은 거라 올라갈지 모르겠어요. 밤에 한번 해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