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누군가가 이런 주장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국민에게 ‘독재에 대해서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고 물었더니 찬성 29.4%, 반대 66.0% 가 나왔다. 그런데 이 질문을 바꿔서 ‘임기를 3선으로 제한하고, 집권 동안 경제 성장률을 매년 10% 이상 오르게 하고 그 이익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다면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고 물었더니 찬성 64.2%, 반대 28.9%로 찬성이 압도적이었다. 따라서 국민은 독재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실로 황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자 조선일보 사설이 이런 류의 주장을 하고 있다. 보시라.
“MBC 시사프로그램 ‘2580’이 학부모에게 기여입학제 찬반을 물었더니 찬성 29.4%, 반대 66.0%가 나왔다. 그러나 기여입학 인원은 정원外외로 하고 거기서 나온 재정은 장학금을 비롯해 학생을 위해서만 쓴다는 것을 조건으로 설문에 부쳤더니 찬성 64.2%, 반대 28.9%로 찬성이 압도적이었다.”
관련하여 이런 주장도 한다.
“미국 명문 사립대는 성적이 일정수준 이내에 올라 있는 학생 가운데 부모나 할아버지 代대에서 대학 발전에 오래 기여해 온 경우에 한해 정원外외 입학 특전을 준다. 하버드대는 그런 기부금을 종자돈 삼아 적립기금을 26조 원으로 키워 놓았다. 예일대는 15조 원이다. 그 덕에 미국 사립대생의 87%가 장학금을 받는다. 국내 사립대생 중 장학금 받는 학생은 28%밖에 안 된다. 이런 속사정을 알고 나면 기여입학제는 가난한 학생의 대학 다닐 기회를 빼앗는 제도가 아니라 그들이 등록금 걱정 없이 공부해서 上昇상승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가난을 벗고 가슴 펴고 살길을 넓혀주는 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미국의 예를 들고 있는데, 미국의 사립학교들이 우리의 사학들처럼 비리로 얼룩져 있을까? 살펴보자. 우리 사학비리의 일단이다.
“최근 5년간 22개 대학의 재단비리가 적발 (분명히 하자, 적발이다. 이것은 전체 사학을 조사해서 나온 수치가 아니고 너무 문제가 돼서 적발된 경우다) 되었는데, 이사회 부정 176건, 인사부정 84건, 회계부정 176건, 시설관리부정 62건 등 총 498건의 부정비리가 발생했다. 횡령, 부당집행, 리베이트 수수, 유용 등 회계부정 총액이 1조 1천7백96억 원으로 2004년 한해 손실액만 해도 811억 원에 달한다. 대학의 사학비리와 관련한 피해 학생 수는 11만 2천713명이고 교원은 3천481명이다.”
비리사학들이 수법도 기가 막힐 정도다. 부동산 매매사기, 허위 이사회 개최, 국고보조금 횡령, 공사비 부풀리기, 기자재 구입 실험실습비 비품 및 소모품 허위 구입 및 금액 부풀리기, 인사채용 비리, 학교설립 출연금 빼돌리기, 주인 없는 기존학교 집어삼키기, 업무추진비 사적으로 마음대로 사용 등등..... 가히 무슨 조폭 조직에서나 있을만한 수법들이다.
이런 사학재단들에 기여입학제까지 열어 놓으면, 그들이 그 돈을 가난한 학생들에게 쓸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우리 사학재단들이 기여입학제를 미국의 사립학교들처럼 긍정적인 용도로 쓸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사설을 아무리 살펴봐도 그 근거는 없다.
조선일보는 계속 주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문제를 놓고 理性的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부잣집 아이’ ‘강남’ ‘특목고’ 등 특정 집단에 대한 거부감에 불을 질러 정치적으로 得득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잘 길러낼 수 있느냐는 교육의 논의를 정치적으로 써먹어 자기들의 패거리를 불리겠다는 사람들 때문에 교육발전을 위한 개방적 논의의 길이 막혀 버린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교육을 내세워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학부모와 학생들이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있는 비리 사학들을 옹호하며 정치적 이득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교육의 논의를 정치적으로 써먹어 패거리를 불리겠다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바로 조선일보 자신들과 한나라당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기여입학제의 긍정적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기여입학제를 주장하려면 사학의 비리를 근절할 수 있는 대책부터 확실히 세우고 나서 주장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비리사학에 대한 최소한의 장치인 개정사학법마저 재개정하자고 주장하면서 도리어 기여입학제를 도입하자고 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송두리째 맡기자는 어이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는 사학비리로 인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탄식과 눈물이 얼마나 더 필요하단 말인가?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 기득권 세력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래를 보시라.
방우영 조선일보 전 회장, 연세대 재단 이사장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숭문중·고 이사장
방용훈 코리아나 호텔, 사장 숭문중·고 이사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한림대 이사
고학용 조선일보 전 논설위원, 성덕여상·여중 이사
권문한 조선일보 방일영문화재단 사무국장, 경기여상 이사
강우정 조선일보 전 기자, 한국성서대 이사
김병관 동아일보 전 회장, 고려대 이사장 및 서울중앙고 이사장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 고려대 이사
김재호 동아일보 부사장, 고려대 이사
권오기 동아일보 전 사장, 국민대 이사 및 울산대 이사
윤세영 SBS 회장, 추계예대 전 이사
조승제 스포츠 투데이 전 사장, 한세대 이사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 경희대 이사
윤형섭 서울신문 전 사장, 연세대 이사
현소환 연합뉴스 전 사장, 국민대 이사
곽정환 세계일보 전 사장, 선문대 이사
이채락 경향신문 전 사장, 한북대 이사
서동구 KBS 전 사장, 한성대 이사
권오현 부산일보 전 사장 경성대 이사
송정제 부산일보 전 사장, 동서대 이사장
김남곤 전북일보 전무이사, 우석대 이사장
김상훈 부산일보 사장, 대구 대원고 이사장
신우식 서울신문 전 사장, 광주 광덕중·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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