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 | 송미선
멀미 외
직박구리가 창문을 흔듭니다 새 소리를 손바닥으로 비벼 마른 세수를 하면 낯선 하루가 열립니다 일어나자마자 마시면 좋다는 한 잔의 물 대신 밤새 끙끙거렸던 경전을 펼칩니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문장이 되지 못한 파편들이 떠다닙니다 빗장뼈가 문을 걸어 잠그기 전에 가슴을 복대로 동여맵니다 익숙한 길은 언제나 불편합니다 돌아서는 방법을 몰라 허둥거렸지만 바닥은 태연합니다 저물어가는 당신에게 성냥을 긋습니다 실험실은 언제나 깜깜했습니다 제자리걸음만 연구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쳇바퀴처럼 돌며 멀미를 즐겼습니다 그건 폭력의 다른 이름입니다 인형뽑기 집게로 하루를 집습니다 복대를 푸는 손끝 힘이 빠집니다 해독되지 못할 경전을 덮으며 당신을 또 미뤄봅니다
모닝콜은 여전히 한밤중입니다
---------------------------------------------------
휘어진다는 말은
무릎을 꿇는 일
뜨거운 김 빠져나간 물을
빈 페트병에 붓는다
잠시 돌아선 사이
일그러진 페트병
어깨와 허리가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
부리나케 얼음물을 한가득 부어도
어제를 잊은 채 요지부동
단단히 묶은 운동화 끈이 풀릴 때까지 달린다
왼쪽 매듭이 느슨해지는 것을 보며
팔을 더 빨리 흔든다
점점 헐거워지는 신발
실수라고,
운동화 끈을 밟은 건 오른발의 실수라고 우기며
넘어지는 연습을 한다
지구본의 기울기만큼
오늘이 휘어진다
송미선 | 경남 김해 출생으로 2011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다정하지 않은 하루』 , 『그림자를 함께 사용했다』 , 『이따금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