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의 앤' ...앤 볼린의 처형
헨리 8세의 종교개혁과 여섯명의 부인들
아라곤의 캐서린: 왕은 너도 싫증내실 것이다.
앤 볼린: …만약 안그러시면요?
아라곤의 캐서린이 맞았습니다. 헨리는 앤 볼린도 싫증내고 말았습니다.
연애할 때는 매력적이었던 성격이 왕비로서는 부적합
헨리는 평민 출신의 앤 볼린을 왕비에 걸맞은 귀족 계급인 펨브로크의 후작으로 임명하고 웨일즈 지역의 넓은 땅을 선물했고, 앤의 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도 백작 등의 직위로 승직시키고 여러 혜택을 주었습니다.
이러니 처음부터 이 일을 계획하고 앤을 왕 앞에 나타나게 했고, 왕이 보내는 편지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앤의 다음 행동을 조작했던 ‘골드 디거(gold digger)’ 볼린 집안은 만족감에 뿌듯해 했습니다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헨리와 앤, 그 난리를 치고 결혼하더니 행복하지 않다네요. 연애할 때는 매력적이었던 앤의 화려함과 강한 성격, 진보적인 태도와 정치적 식견은 당시 형식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았던 왕비로서는 부적합했습니다. 모두에게 완전 복종을 원했던 헨리는 앤의 순종적이지 않고 신경질적이며 난폭한 성미와 거친 입에 질려만 갔습니다. ‘앤 볼린의 허락 없이는 영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며 외국 대사들이 혀를 내둘렀을 정도로 앤의 정치적인 영향력은 대단했고, 신교 사상에 동조했던 앤은 종교개혁의 동기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잠시 후에 나올 수도원 해산까지의 진행 과정에 주요 역할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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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영화 <천일의 스캔들>에서 앤 볼린을 연기하는 나탈리 포트만 |
엘리자베스가 태어난 이후로도 두 번의 유산이 있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을 자신에 대한 배신으로 여겼던 헨리는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매달리는 앤을 ‘이제는 하나님이 내게 아들을 주시지 않을 것임을 알겠다. 네가 나를 속이고 마법으로 유혹한 거지? 너의 아버지와 가족들이 짜고 네가 내 앞에 나타나게 한 것 맞지? 너는 내가 첫 남자도 아니었지?’ 라며 뿌리쳤습니다. 앤은 운명은 거의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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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런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 첫 번째 부인 아라곤의 캐서린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요?
이혼이 성사된 후에 캐서린은 ‘영국의 왕비(Queen of England)’에서 ‘죽은 왕세자의 과부(Dowager Princess of Wales)’ 로 호칭이 격하되었고, 딸 메리는 사생아가 되었습니다.
케임브리지의 킴벌튼 성으로 추방된 캐서린은 우울증에 빠져 한 방에서만 생활하고 미사에 가기 위해서만 집을 나섰으며, 항상 고행자가 입는 옷을 입고 끊임없이 금식하며 지냈습니다. 딸과 만나지 못하고 편지를 주고받는 것도 허용되지 않아 엄마와 딸은 항상 서로를 그리워하며 지냈습니다. 헨리가 ‘내가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고 앤 볼린이 합법적인 왕비인 것을 인정하면 만나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엄마와 딸 둘 다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캐서린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왕의 합법적인 부인이자 영국의 진정한 왕비라고 생각했으며, 그녀의 시중을 들었던 신하들도 그녀를 왕비라 불렀고, 국민들의 대부분도 캐서린을 동정하며 지지했다고 합니다.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느낀 캐서린은 조카인 신성로마제국의 찰스 5세에게 딸을 부탁하고, 헨리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습니다.
가장 경애하는 국왕이자 남편에게...(My most dear lord, King and husband….) 나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세속적인 욕구로 인해 내게 많은 재앙이 닥쳤지만, 모든 것을 용서하고 하나님께도 당신을 용서해 달라고 빌겠습니다. 우리의 딸 메리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주시고,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신하들을 돌보아 주십시오. 나의 눈은 이 세상 다른 모든 것보다 당신을 소망합니다.
왕비 캐서린.
남겨진 딸에게 해가 가지 않게 하려는 엄마의 배려였을까요? 캐서린은 아직도 헨리를 사랑하고 있었을 수도 있을까요?
헨리는 캐서린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메리도 참석하지 못하게 했는데, 운명의 장난일까요. 앤 볼린은 캐서린의 장례식 날 아들을 유산하고 말았습니다.
캐서린의 장례식 날에 아들을 유산한 앤
마상창시합 도중 말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은 헨리의 목숨이 위태로워 보였을 때 받은 충격 때문에 앤은 캐서린의 장례식 날 4개월 동안이나 배 속에서 키우던 아들을 유산했습니다.
사실 이때 헨리의 관심은 이미 캐서린과 앤의 궁녀였던 제인 시모어(Jane Seymore)에게 가 있었고, 앤과 앤의 가족에게 보여졌던 호의도 제인과 그녀의 가족에게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앤이 유산한 이유가, 헨리의 무릎에 앉아있는 제인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애정이 떨어진 여자는 어떻게든 없애야 하는 헨리…. 정치적인 문제들로 자주 자기와 다투는 앤 볼린이 점점 눈엣가시였던 크롬웰…. 우리는 크롬웰의 창의성과 추진력을 보았습니다. 신하들의 말에 약한 헨리의 줏대 없음과 그의 잔인한 면모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크롬웰은 아프다고 꾀병을 부려 왕실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앤을 없앨 계획을 짰고, 곧 앤 볼린은 반역(high treason), 근친상간(incest)과 마녀의 마법행위(witchcraft)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왕비가 왕실에서 안 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플랑드르의 음악가와 세 명의 귀족들, 그 중 한 명과는 결혼해 같이 왕을 몰아낼 계획이었고, 친동생인 조지 볼린과도 아이를 가지려는 목적으로 잠자리를 같이 했다고 했습니다. 왕비의 간통은 왕위 계승권 문제 때문에 반역죄가 됩니다.
앤의 혐의에 대한 증거가 미약했고, 앤이 실제로 이런 행동들을 했을 확률도 지극히 낮았습니다. 앤이 대주교 크랜머에게 결백을 고해했지만,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명의 남자와만 관계를 맺었다고 해도 되었을텐데, 왜 그렇게 많은 남자들을 죄인으로 몰고, 동생까지 연관시켰을까요? 한 명이면 그 사람이 너무 부각되어 왕의 동급으로 비교될 수 있고, 또 왕비를 구제할 수 없는 부도덕한 여자로 모는 데는 여러 남자가 있었다는 것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남동생까지 연루시킨 이유는 상대자가 동생이면 아이를 낳아도 다른 남자를 닮지 않아 의심받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었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편을 증오했던 조지 볼린의 부인도 앤과 조지를 모함하는 데 한몫했습니다.
런던 타워로 끌려갔을 때 ‘나의 아버지와 동생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무엇을 했습니까? (Where is my father, where is my brother? What have I done?)’ 라 물으며 쓰러졌던 앤과 불륜의 관계를 맺었다는 남동생을 포함한 다섯 명의 남자들은 교수대에서 처형되었고, 앤도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제 일이 다시 언급되면 가장 좋은 결론을 내려주십시오’
사형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앤은 인생을 마감할 준비가 다 된 사람처럼 평안해 보이기도 했고, 갑작스런 히스테리와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쓴〈죽음이여 나를 재워주소서(Death Rock Me Asleep)〉란 글에는 죽음이 어서 자신의 고통을 중단시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나타나 있습니다. 목을 도끼로 치지 않고 칼로 깨끗하게 자르기 위해 프랑스에서 특별히 칼 쓰는 사람을 불러왔다는 말을 들었을때 앤은 ‘사형집행인이 칼을 잘 쓰는 사람이라죠, 하지만 제 목은 참 작은데요 (I heard the executioner is very good, but I only have a little neck)’ 라며 자신의 목을 두 손으로 두르고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헨리가 자신의 궁녀인 제인 시모어와 키스하는 모습을 목격했고, 자신 때문에 동생이 단두대로 끌려가는 모습을 창문 밖으로 지켜보았으니 제정신일 수 없었겠지요.
사형 날짜가 다가와 앤은 런던 타워의 단두대에 올랐습니다. 혹시 헨리가 찾아오지 않을까 희망해 보았지만, 헨리는 이미 마음에서 떠난 여자에게는 작별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선한 그리스도 형제자매들이여, 나는 오늘 여기에 죽음을 맞으러 왔습니다. 법에 의해 내게 사형의 판결이 내려졌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무도 책망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전례 없이 자비롭고 온화하신 왕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당신들을 다스리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저에게 항상 선하신 최상의 왕이셨습니다. 앞으로 제 일에 대해 누가 다시 언급하기라도 한다면, 가장 좋은 결론을 내려 주십시오. 이제 세상과 당신들을 떠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하나님께 제 영혼을 드립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한때 왕과 나라를 흔들었던 앤 볼린은 무릎을 꿇었고, 토머스 크롬웰, 런던 시장, 구의원, 주장관과 길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남아 있는 딸과 가족들에게 해가 가지 않도록 헨리를 비판하는 것을 피했지만, 죽기 전 그녀의 말에서 은근히 자신의 결백을 드러내고 싶었던 마음이 엿보입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앤 볼린이 한 일을 하고 나이 들어 죽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라고…. 1533년 5월부터 1536년 5월까지 3년, 약 천 일 동안 왕비였다고 해서 앤 볼린을 ‘천일의 앤’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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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드라마〈튜더스The Tudors〉_앤 볼린 처형 장면 |
목이 잘린 후에도 눈으로 관중들을 둘러보며 입술로 계속 기도했던 앤을 위한 아무런 장례식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런던 타워에서 일하는 사람이 나중에 앤의 머리와 몸을 빈 나무 상자에 담아 세인트 피터 애드 빈큘라(St. Peter ad Vincula) 예배당 아래 묻었습니다. 헨리가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했을 때 국민들은 왕의 경솔함을 비웃었고, 토머스 모어와 존 피셔의 사형 이후에는 ‘왕의 창녀’라고 부르며 앤을 증오했지만, 그녀의 어이없는 사형 이후에는 증오가 동정으로 바뀌었고, 헨리에 대한 반감만 늘어났습니다.
앤이 사형되고 11일 후에 헨리는 제인 시모어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캐서린과 앤, 둘 다 죽었으니 이번에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