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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시절부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후원해온 현직 교사가 있다기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올해 교직 생활 6년 차로 경북 상주에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고 계신 김효근 선생님이다. 2017년 첫 발령 후 1년 근무 뒤,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상주의 초등학교로 돌아왔다. 인터뷰 장소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북카페, 김효근 선생님은 오늘 첫 방문이 아니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은희(이하 이) : 안녕하세요? 두 번째 방문이라고 하셨는데.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인연이 궁금하네요.
김효근(이하 김) : 1년 동안 교직 생활을 하다 군대에 갔는데 그때 당시 저는 실패감, 낭패감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제 학창 시절의 선생님께서는 늘 학생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셨기 때문에 저도 좋은 교사가 되고 싶어서 교대에 갔어요. 근데, 막상 교사가 되고 보니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이: 선생님의 기대와 현실이 많이 달랐나요?
김: 나쁜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 같았어요. 저희 반에 학교에 안 오고 싶어하는 학생이 한 명 있었어요.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는 아이였는데, 그 아이랑 마주하고 뭔가를 가르치려는 것 자체가 폭력 같았어요. 이제 막 초임 교사였던 제게는 너무 힘들었죠.
이: 아무래도 교사 발령 받고 첫 해라 더 힘드셨겠어요.
김: 네, 그 아이도 저도 어떻게든 버티며 1년을 지냈어요. 그러다 군대에 갔는데 ‘교직을 포기할까? 그래도 내가 교사가 되겠다고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는데 몇 년 더 해볼까?’ 그런 갈등이 심했어요. 만약 일을 계속한다면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까 고민하면서 여러 책을 읽었는데 우연히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나온 책을 읽게 됐어요.
이: 어떤 책이었나요?
김: <행복한 진로학교>, <하고 싶은 일 해, 굶지 않아> 같은 책인데요. 책을 읽다 보니 교직 생활을 좀 더 계속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붙잡고 해결하려는 단체가 있구나. 저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말고는 이 문제에 뛰어든 단체를 본 적이 없어요. 대한민국 입시교육은 너무 거대한 영역이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데 이 문제와 씨름하는 단체를 보면서 ‘나도 여기에 같이하면서 살아 봐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생겼어요.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 꼭 다녀야 하나요?
이: 저는 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인데 아이가 학교 다니기 싫어해서 걱정이에요. 코로나를 겪고 난 뒤에 달라진 태도 같기도 해요. 어떤 날은 집을 나섰다가 도저히 학교에 못 가겠다고 되돌아온 적도 있어요. 이렇게 싫어하는데 굳이 학교를 보내야 할까? 예전에는 개근상이 근면 성실의 상징이었잖아요. 지금은 다양한 방법으로도 교육이 가능한데요. 그런데도 학교를 꼭 다녀야 하나요?
김 : 사실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부만 생각하면 학교보다 학원이 더 나을 수 있겠죠. 인터넷 강의도 너무 잘 되어 있고 체계적으로 잘 가르치니까요. 몰랐던 부분을 다시 들을 수도 있고 질문을 올리면 상세하게 답변도 달아줍니다.
지식을 가르치는 역할만 생각했을 때 학교의 시대는 이제 끝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하지만, 사회성을 기르는 일은 학교가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성은 진짜 중요해요.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들, 그러니까 내 친구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내 친구의 즐거움이 내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거죠.
보통 가정의 부모님들은 다 맞벌이에요. 외동도 많죠. 부모가 출근하면 아이가 혼자 남잖아요. 그럼 그 아이와 함께할 곳이 학교 외에 대안이 있나요? 그런 의미에서 학교는 여전히 존재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학교를 다닌다고 친구 관계가 다 좋은 게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육체적, 정신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아이도 있고요. 친구가 없는 아이도 학교를 다녀야 할까요?
김: 친구 없는 그 심정을 저는 잘 알 거 같아요. 저도 대학교 때 경험했거든요.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학교 안 다니고 싶죠. 진짜 학교를 자퇴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지금 돌아보면 꿋꿋이 버티고 대학 다니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1학년 마지막 즈음에 한두 명의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그 친구들이 지금도 연락하는 단짝 친구가 됐어요. 그때 대학을 그만뒀다면 이런 친구들도 사귀지 못했을 거예요. 물론 대학을 안 다녔다 하더라도 저에게 다른 길이 열렸겠죠.
너무 성급하게 결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비슷한 고민 하시는 학부모님께 제가 드릴 말씀은 ‘눈물로, 기도로 기른 자식은 망하는 법이 없다’는 거예요. 기도를 하면 정답이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고민하는 어른의 뒷모습을 아이가 지켜 보지 않을까요? 그런 아이들이 망할 수 있을까요? 관심을 갖고 항상 사랑으로 바라보면 결국 아이들은 바른 길로 간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저 또한 제 아버지 등을 보고 자랐으니까요.
나를 키워준 길은 뒤에 있다
이 : 친구와 관계가 나빠지는 것 중에 하나가 지나친 경쟁 같아요. 만약 학교에서 경쟁에 치여 친구 관계가 좋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반 공교육이 아닌 대안 학교가 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 : 저도 대안 학교에는 답이 있을까 싶어서 관련 책도 읽고 여러 대안학교를 방문해 봤어요. 이상향을 꿈꾸고 갔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엄청나게 주고 아이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겠지? 하는 기대로 어느 대안학교를 방문했는데 제가 그곳에서 목격한 첫 장면은 한 아이가 자퇴하겠다고 선생님과 상담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때 ‘이곳이라고 답이 있는 건 아니다. 어디에 가나 고민은 늘 있겠다’ 싶었어요.
차이가 있다면 대안 교육이라고 다 좋은 교육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고민하는 교육’ 같아요. 강요가 아닌 설득하는 교육, 그런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죠. 현재 공교육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학생을 설득하기 어렵거든요. 학교에 '당위'가 있기는 쉬워요. 학생이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는 강요가 있죠. 문제는 학생이 선택권을 갖기 어려워요. 모든 학생들이 공부 잘해야 하고, 정답을 맞혀야 하는 게 지금 공교육의 대세예요. 물론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꾸리는 교사들도 있지만, 개별학교, 교사 단위가 아니라 국가 정책에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이: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뭔가요?
김: 우리나라 교육 제도는 ‘길이 앞에 있다’고만 얘기하는 것 같아요. 목적지를 정해놓고 그 방향만을 향해서 달려가는 제도죠. 현재 교육의 목적지는 좋은 직장이고요. 그래서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고, 중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야 되고, 탄탄대로를 달리기 위해 목적지를 앞에 두고 계속 달리고 있어요.
근데 제가 살면서 깨달은 건 길이 오히려 뒤에 있다는 거예요. 계속 걷다 보면 지나온 풍경이 바뀌고요. 걸어온 길이 뒤에 있으니 그 결과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을 텐데, 교사나 학생, 학부모, 어쩌면 이 사회 전체가 너무 빨리 답을 내린 채 달리고만 있어요. 아이들에게 학교가 정말 힘들 거 같아요.
이: ‘길은 뒤에 있다. 그러니 학교 역시 다닐만한 곳이다’라는 말씀이시네요.
김: 제 경험에 비춰보면 힘든 일을 한 번쯤 버티고 다녀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다른 길도 있겠지만 힘들어도 다녀본다면 또 어떻게 달라질 수도 있고요. 힘들었던 과거를 뒤돌아봤을 때 그게 다 경험으로 쌓일 건데 그걸 굳이 회피해서 빨리 포기하거나 다른 길부터 찾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친구 사귀기 어렵다고 대학교를 그만 두었다면 친구 사귀는 방법을 어디에서 배울 수 있었을까요? 친구에게 마음을 열어보고, 도움을 받아보고, 상처도 받으면서 배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아닌 다른 곳에서 배울 수도 있겠고, 학교에서 받은 상처가 너무 크다면 다른 곳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요. 이 역시 선택에 책임을 개인만 지는게 아니라 사회에서 함께 지원하는 구조라면 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거예요. 국가 차원에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지원을 늘리거나 서울의 오딧세이학교 같은 갭이어 프로그램에 지원을 늘린다면 학생 입장에서 선택지가 더 넓어지지 않을까요?
너무 어려운 교육과정, 다 배워야 하나요?
이: 우리나라 학교교육을 생각하면 또 다른 의문이 있어요. ‘교육 과정이 정말 괜찮은가?’라는 질문인데요. 제 아이의 경우 4학년 때부터 자기가 ‘수포자’라고 하더라고요. 비단 제 아이뿐 아니라 초등학생 다수가 ‘수포자’라는 말을 한다는데 선생님 보시기에 어떠세요? 아이들이 혼자 복습하면 시험 볼 수준의 교육과정인가요?
김: 진짜 너무 어려운 질문이네요. 물론 특수하게 공부 잘하고 못하는 아이들 사이의 격차는 있지만 그냥 보통의 아이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아이들이 열심히 해 볼 만한 수준이라고 여겨져요. 설명하면 바로바로 알아듣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에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있거든요.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학년이 오를 때마다 누적이 되겠죠. 그 아이들은 나중에 공부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고요. 제가 교육과정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교육과정이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이것은 개별 학생의 문제입니다.’라고 말씀드리기 힘들지만요.
수학 문제를 좀 어려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삶의 태도라는 게 있잖아요. 어려운 수학 문제를 받아들이는 태도요. 미리 겁을 먹고 그냥 포기할 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 한 번 열심히 해보자 라는 태도를 가질 수도 있잖아요. 저는 태도를 기르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보라고 얘기해요. 그러니까 따라잡고 따라잡지 못하고는 나중 문제고, 그걸 대하는 태도를 얘기하고 싶어요.
이: 좋은 말씀이네요. 공부를 하면서 ‘태도’를 기를 수 있다는 말씀이오.
김: 제가 요즘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모든 교육과정에는 ‘이 정도가 성취기준이다’라고 정해 놓은 게 있어요. 이 정도는 알아야 교과 과정을 성취한 거라고 인정하는 기준인데 그게 어떤 경우엔 말장난일 수 있는 거죠.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각각 개별적인 존재인데 그 기준을 못 맞출 수도 있잖아요. 국어 영역에서 특출한 아이가 미술 영역에서 조금 못할 수도 있고요. 그런 개별성을 봐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요.
부모는 아이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까
이: 사교육 걱정 없이 진짜 살 수 있을까요? 사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관심 갖고 있는 분들은 좋은 대학 보내려는 엄마들하고 다르긴 해요. 성적 잘 받아서 좋은 대학 진학을 바라는 그런 목적이 아니거든요. 아이가 좋아하는 걸 찾다 보니 교육운동 단체를 만나게 됐는데, 사실 공교육을 받으면서 힘든 점이 많아요.
김: 저도 처음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이름만 들었을 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바른말 하는 단체, 근데 이 바른말이 미운 시누이처럼 느껴질 수 있잖아요. 우리 아이 인생 책임질 수 있냐, 지금의 교육을 비유하면 ‘달리기’잖아요. ‘잠깐 쉬어도 돼’라고 얘기했을 때 내가 쉬면 옆 친구가 달리고 있어요. 그 친구들이 이미 먼저 가 버리고 나는 후발 주자인데 그러면 내가 쉰만큼 나중에 더 열심히 달려야 된다 생각하죠. 학부모님께서 제일 힘들어하는 말 중에 ‘왜 그때 나를 내버려 뒀느냐?’라고 해요. 그런 원망 들으면 가슴이 찢어질 거예요. 되돌릴 수도 없고요. 그래서 이 운동에 동참하려는 마음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함께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거 같아요.
이: 아이를 학원에 안 보낸다고 하면 주변에서 ‘너 전쟁터에 총알 없이 내보낸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를 죽일 셈이야? 그런 생각이면 공교육이라는 전쟁터에 내보내지 말고 차라리 대안 학교나 홈스쿨링 시켜야지.’ 이런 이야기도 들었어요. 저도 아이를 트랙 밖으로 빼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달리기 싫다는 아이를 트랙에 둘 필요가 있을까? 고민이에요.
김: 근데 저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트랙 안에서 걸어도 된다고 말하는 단체라고 이해했어요. 걸어도 된다. 트랙 밖으로 안 나가도 되고 안 뛰어도 되고 걸어도 된다! 등대지기학교 같은 학부모교육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교육정책 토론회나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기자회견도 엄청 많이 하잖아요. 학생들의 삶을 획일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아이를 중심에 두고 교육적인 방향을 추구한다고 느꼈어요. 달리기를 시키는 것도 사랑일 수도 있고 트랙에서 완전히 빼는 것도 사랑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랑도 분명히 있어요. 이 사랑은 스쳐 지나가는 한마디가 아니라 '걸어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는 사랑이에요. 부모들과 소통하고,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법을 만드는 노력들이 마치 '투쟁 같은 사랑'이랄까요? 진짜 노력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 봐 왔어요.
사교육 과열 지역에 가서 이런 말하면 욕 먹겠죠. 아이 인생 책임질 수 있냐는 말에 입 다물게 될 수도 있지만 저는 그 말을 하는 부모님도 아이의 인생을 책임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아이의 인생을 ‘평생’ 책임질 수 없는데 너무 빨리 결정 내리고 책임지려는 게 아닐까요?
트랙에서 억지로 빼내려고 서두를 필요 없다는 말씀이 조급했던 내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상처받지 않고 성장하는 아이가 어디 있으랴. 선생님 말씀처럼 ‘길은 뒤에 있으니 한 번쯤 힘든 것도 견뎌보는 경험’이 우리 아이에게도 필요하리라. 아이의 한 발짝 뒤에서 기다려 주는 것이 지금의 내 역할 아닐까. 언젠가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 서툴지만 아이에게도 이 세상은 처음이니까. 여전히 첫 마음을 지닌 김효근 선생님에게 깊은 응원을 보낸다.
이은희
첫댓글 관심을 갖고 항상 사랑으로 바라보고~♡
이 글을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네요~
길은 뒤에 있으니 힌번쯤 힘든 것도 견뎌보는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