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을 품은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맑다. 들깨 꽃이 한없이 쏟아진다. 누런 들깻잎들이 들깨 알을 열심히 모으고 있다. 가을 산을 막 들어가면 산 들깨가 보인다. 자그마한 꽃이 잘 보이는 데에는 눈물처럼 줄줄이 달아 놓았기 때문이다. 한참 가다 보면 산등성이에도 서러운 사랑이 가을 햇빛에 반짝인다. 굽이 돌아가는 강줄기에 내 마음을 실어 흐른다. 가을 햇빛 따라 피는 꽃들은 씨앗들을 이야기한다. 생명을 잉태하고 가을로 가는 길은 설렘도 있지만 서러운 눈물도 섞여 있다. 아침나절에 가슴을 활짝 펴고 가을빛을 노래하는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빈 공간에 홀로 선 마음일 땐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줄줄이 달아놓았다.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꽃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랑과 그리움이 있기에 가을꽃을 쓸쓸히 바라본다. 풀벌레 소리도 점점 희미해진다. 그러나 밤새 생각하는 그리움은 점점 밀려온다. 최고치와 최저치를 켜는 첼로 음표는 마음이다. 삼차함수의 기울기는 순간의 속도다. 첼로를 켜는 활대의 기울기가 그 공간을 켜는 순간의 음표다. 자잘한 점들이 모여 아름다운 선율을 만든다. 최고치와 최저치를 오르내리면서 가을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산들깨는 깨알처럼 꽃이 핀다. 무수히 많은 깨알이 쏟아지면 넉넉한 가을로 채워진다. 산들깨를 산박하라고 부른다. 꿀풀과에 속하고 여러해살이 풀이다. 장독대 옆에 피는 박하는 냄새가 많이 난다. 매운 박하 냄새 때문에 장독대에 벌레들이 달려들지 않는다. 박하차와 박하사탕으로 우리 생활에 접하고 있다. 그런데 산박하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 대신 꽃이 우리 눈에 쏙 들어온다. 깨끗한 공간으로 채워진 가을빛으로 보랏빛 꽃잎이 선명하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순간순간 느끼는 것이다. 깨알 같은 꽃잎이 보이는 데에는 느리게 걷는 순간이다. 우리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쪼개는 순간에서 아름다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문득 느낌이 오는 순간이 나 스스로 놀라울 수밖에 없다. 이른 봄에 목련꽃이 크게 피었다가 가을에 산박하가 아주 작게 핀다. 꽃이 작지만 생각하는 그리움은 크다. 순간의 최댓값에서 내려가는 시점이 가을의 소리다. 가을을 켜는 가을 소리는 마음의 중량일 것이다. 서로 다른 느낌이 그 마음의 질량이다. 이 마음이 어디에 가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서러운 눈물이다. 저녁나절 언덕에 앉아 해질녘을 바라보면서 희미해진 풀벌레 소리가 간신히 내 마음의 소리를 잡고 있다. 초롱초롱한 꽃잎이 줄줄이 눈물을 달아놓았다. 한순간 따뜻한 햇빛을 담았다가 저녁에 저 언덕 넘어 그리운 눈빛이 수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