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에계속-
누구든지 할 수 있는 대로 신조의 참뜻을 알아내는 데 필요한 신학자의 정확하고 날카로운 예지를 갖추도록 힘써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교인은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자기의 신앙을 깊이 알아듣도록 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사람은 전통의 맑은 대기를 호흡해야 하며, 자기의 신앙을 올바른 말마디로, 순수한 사상을 담은 말마디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성의 노력만 가지고 참 명상에 이르기는 아직 멀었다. 이와 반대로, 신학자의 할 일인 기술적 세목의 숲 속에 뛰어들었다가는 길을 잃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진실한 신학자에게는 겸손된 굶주림을 주셔서, 공식이나 논증 따위로 만족하지 않고 유비가 갖다 주는 것보다 하느님께 보다 더 가까운 무엇을 찾게 하신다.
이 찬란한 정신의 굶주림은 한마디의 거죽을 뚫고 신비에 대한 인간의 해결을 뛰어넘어, 침묵으로 굴하는 지적 고독과 내적 가난으로써, 말마디가 참되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초자연적으로 알아들으려 힘쓴다. 이 굶주림은 논증의 수고 너머 신앙에서 쉽을 발견하고, 시끄러운 토론 아래 진리를 알아듣는다. 분명하고 뚜렷한 정의로써가 아니라, 한 직관(直觀)의 맑은 어둠으로 알아듣는 것이니, 이 어둠은 모든 신조를 하나의 단순한 빛-피조물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 상징이나 언어나 그 밖에 어떠한 물질적인 간섭도 받지 않고 하느님께로부터 직접 영혼에 비치는 빛과 합일시킨다. 진리는 하나다. 우리는 이 진리를 알고 소유할 뿐 아니라, 이 진리한테 알려지고 소유된다. 이제 신학은 추상을 엮어 놓은 것이 아니고, 하느님 자신이신 산 실재가 된다. 우리생명을 모조리 임께 바쳐 드릴 때에 임은 우리에게 당신을 열어 보이신다. 진리의 빛은 우리의 지성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모든 정신과 천사가 임을 위하여 임 안에 있다. 우리가 언어와 신학자들의 개별적 개념을 초월하기까지는 신학이 될 수 없다. 그 때문에 성 토마스께서 신학 강요를 쓰시다 말고 지쳐서 밀쳐 두고 탄식하셨다. "모두 지푸라기”라고. 그렇지만 명상가가 단순한 하느님의 체험을 다른 사람과 통하고자 할 때에는 별수없이 한 번 더 신학자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의 말마디는 유구한 가톨릭 전통의 흐름을 이어온 명백성, 판이성, 엄밀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스콜라 신학을 조금도 읽어 보지 않고 모두 지푸라기라고 말하는 명상가를 조심하라.
* 동아일보|오피니언 입력 2020-03-26 03:00
[김도연 칼럼]코로나가 바꾼 대학 풍경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바이러스가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 두 획으로 쓰는 상형문자 인(人)에서 알 수 있듯, 사람은 의지하고 받쳐주며 사는 존재인데 이제 서로 기대는 것은 금기가 됐다. 그리고 여기에 ‘사이 간(間)’이 함께한 것이 인간(人間)이다. 삶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의미인데, 그 사이가 단절됐다. 서기 원년(元年)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BC(Before Christ)는 그리스도 탄생 이전이고, AD(Anno Domini)는 라틴어로 그리스도의 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제 BC와 AD는 각각 ‘코로나 이전’, 즉 ‘Before Corona’와 질병 이후란 뜻의 ‘After Disease’가 될지도 모르겠다. 사회는 그렇게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예측이다. 우선 급작스럽게 맞이한 큰 변화는 현실에서 멀어진 인간관계가 사이버 세계에서 오히려 더 긴밀해진 것이다. 재택근무나 온라인 쇼핑이 매우 활발해졌고 원격 의료까지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바이러스는 교육계에도 큰 충격을 미쳤다. 전통적인 교육은 정해진 시간에 같은 또래 학생들을 한곳에 모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모임이 불가능하니, 교육 담당자 모두가 크게 당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인터넷을 이용한 비대면 교육은 세계적으로 이미 상당한 궤도에 올라 있는데, 우리 교육계가 그동안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쉬운 일이다. 특히 세계 유수 대학에서는 무크(MOOC·Massive Online Open Course), 즉 대규모 온라인 공개강좌를 위해 많은 교수들이 강의를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 기반을 둔 코세라(Coursera)에도 4000여 강좌가 올라 있으니, 결국 대학 교과목이 거의 다 있는 셈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런 강좌들이 이제는 단순하고 일방적인 강의 동영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생과 교수 간의 상호 토론 그리고 학생 간의 대화도 가능해졌다. 그리고 강의 중 수시로 퀴즈 및 중간고사를 시행하면서, 이에 대한 교수의 즉각적인 피드백으로 교육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는 물론 인공지능 등을 이용하는 소위 에듀텍(EduTech·교육기술)이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그리고 이런 인터넷 강의만으로 정식 학위를 수여하는 대학도 이미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애리조나주립대는 모두 90여 전공의 학사학위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다. 등록금은 전통적인 오프라인 과정의 30% 정도인데 여기에 3만 명이 넘는 학생이 등록하고 있다. 결국 한국에 살면서도 애리조나주립대의 정규 학생과 똑같은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온라인 교육의 질적(質的) 수준을 대학이 그만큼 보장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와 더불어 대학의 일반적인 강의에서도 온라인을 이용하는 일은 상당히 활발하다. 2001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칼 와이먼은 빼어난 연구와 더불어 학생 교육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스탠퍼드대 물리학 및 교육학 교수다. 그는 2011년에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대규모 학생을 위한 효율적 물리 강의’란 제목의 논문에서, 강의자료를 미리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그 후 해당 내용을 학생들과 토론하는 경우가 전통적인 강의에 비해 교육 효과가 훨씬 두드러짐을 밝혔다.
이때에 미리 제공하는 자료로 가장 좋은 것은 강의 동영상이다. 이는 결국 학생들이 강의는 온라인으로 집에서 듣고 토론이나 과제 풀이는 학교에서 하는 학습 방식이다. 즉 전통적 학습과 위치가 반대이므로 이를 역진행 학습, 혹은 ‘플립트 러닝(Flipped Learning)’이라 부른다. 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함께 이용하는 혼합형 학습, 즉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이기도 하다. 이런 교육 방법은 언급한 바와 같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크게 향상시키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므로, 우리도 이를 적극 수용해야 할 것이다.
전통적 대면 강의가 완전히 불가능해진 이번 사태를 계기 삼아, 우리 대학들도 온라인 시대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면 좋겠다. 효율적인 지식 전달을 위해서는 새롭고 힘든 노력이 많이 요구되겠지만, 그러나 결국은 가야 할 길이다. 그런데 우리 대학들은 아직도 온라인 강의가 20%를 넘으면 안 된다는 규제에 묶여 있다. 바이러스는 물론이고 이런 규제들도 빠르게 퇴치해야 할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