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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4월 18일 토요일
[(백) 부활 제2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사도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 식탁 봉사를 맡기고,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기로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두려워한다(복음).
제1독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았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6,1-7
1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2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3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4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5 이 말에 온 공동체가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테파노,
그리고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또 유다교로 개종한 안티오키아 출신 니콜라오스를 뽑아,
6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7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21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의 16 제자들은 호수로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떠났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가지 않으셨다.
18 그때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다.
19 그들이 배를 스물다섯이나 서른 스타디온쯤 저어 갔을 때,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2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1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던 제자들은 큰 바람을 만납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병행 구절을 보면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썼다.”(마르 6,48)라고 나옵니다. 역풍을 만난 배는 뜻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돕니다. 지친 몸, 어둠, 멈추지 않는 역풍, 보이지 않는 예수님 ……. 제자들의 마음은 불안과 공포에 점점 짓눌립니다.
제자들에게 닥친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역풍이 불고는 합니다. 언제나 상승할 것만 같다가도 롤러코스터를 타듯 한순간에 갑자기 뚝 떨어지는 때가 찾아옵니다. 신앙생활에도 깊고 어두운 밤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오늘 복음을 떠올려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역풍에 시달리던 제자들을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았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호수 위를 걸어 그들 가까이 오시고, 그분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멎습니다.
고통의 바다인 이 세상을 건너가며 갖은 역풍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오늘 복음은 큰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험난한 파도와 어둠이 우리를 끊임없이 뒤흔드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상처받고, 마음이 굳어지며, 받은 은총을 잊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풍랑과 어둠을 뚫고 우리에게 걸어오십니다. 우리가 외면하거나 침묵한다 해도, 그분의 사랑은 멈추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미시는 그분께서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에게 같은 말씀을 건네실 것입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6,20).
삶에서 뜻하지 않은 역풍을 겪을 때마다, 고통으로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기억합시다. 예수님께서는 변함없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인생의 배 안으로 언제든지 다가오실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평화가 성체성사의 표징이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그분께서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 (요한 6,20-21)
찬미 예수님!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오늘 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라는 거대한 '양식의 표징'과, 다음 주부터 이어질 '생명의 양식'에 관한 심오한 담화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 같은 사건을 전해줍니다. 제자들은 풍랑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고,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오시며 "나다(Ego Emi)"라고 선포하십니다.
오늘 제가 나누고 싶은 핵심 통찰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모시는 성체성사가 내 안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정직한 '영적 리트머스 시험지'는 바로 우리의 '감정'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도 요한은 훗날 그의 서간에서 명확히 선포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1요한 4,18). 내 안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왔다면, 그것이 곧 내가 성체와 한 몸이 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표징입니다.
우리는 흔히 상황이 나빠서 두려운 줄 압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두려움은 '하느님이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무의식적 확신에서 오는 독극물입니다. 이 감정에 사로잡히면 인간은 이성을 잃고 짐승의 본성으로 퇴행합니다.
프랑스 화가 제리코의 걸작 '메두사호의 뗏목' 배경이 된 실제 사건입니다. 1816년 세네갈로 향하던 군함 메두사호가 난파되자, 고위층은 구명보트를 타고 도망갔고 150명의 선원은 급조한 뗏목에 버려졌습니다. 13일간의 표류 동안 그들을 죽인 것은 굶주림보다 '두려움'이었습니다.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존재의 빽)을 잃어버린 순간, 사람들은 광기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의 감정은 즉시 지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죽여 인육을 먹는 끔찍한 괴물로 변해갔습니다. 결국 15명만이 살아남았는데, 구조선이 나타났을 때 그들의 눈빛에는 공포 외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이라는 성체적 평화가 없는 영혼이 마주하게 될 감정의 종착역은 이처럼 처참한 짐승의 상태입니다. (출처: 조나단 마일스, 『메두사: 난파선과 지옥의 기록』)
두려움은 우리를 현실보다 더 큰 공포의 환영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조차 우리를 죽이는 창칼이 되게 만듭니다.
이제 오늘 복음의 제자들을 봅시다. 그들은 풍랑 속에서 예수님을 봅니다. 처음에는 '유령'인 줄 알고 더 큰 두려움에 빠집니다. 왜일까요? 주님을 사랑의 주권자가 아닌, 내 삶을 위협하는 낯선 타자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냉담자 방문을 할 때 어떤 분들의 시선도 그랬습니다. 저를 보지 않기 위해 문을 빨리 닫았고, 빨리 가라고 문을 두드리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다(Ego Eimi). 두려워하지 마라." (요한 6,20).
여기서 "나다"라는 말씀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느님의 신성 선포입니다. 이 목소리가 들리고 제자들이 그분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 하자, 배는 어느새 가려던 곳에 가 닿아 있었습니다. 성체성사는 바로 이 예수님을 내 인생의 배 안으로 모셔 들이는 행위입니다. 그분을 모시는 순간, 풍랑이 멈추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풍랑 한복판에서도 내 감정이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진짜 기적입니다.
비종교적인 영역에서도 '위대한 존재의 현존'을 느끼는 감정은 죽음의 공포를 이기게 합니다. 영화 ‘127시간’에서도 돌에 손이 눌려 빠져나가지 못할 때 자신의 손을 자를 용기는 바로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평화는 단순히 의지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체 안에 계신 주님과 내가 '한 몸'이 되었다는 실재적인 믿음에서 옵니다.
'개미 마을의 마리아'라 불리는 가톨릭 복자 후보 기타하라 사토코(Satoko Kitahara)의 사례입니다. 명문가 출신의 미모와 지성을 갖춘 그녀는 일본의 가장 비참한 빈민가인 '개미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오물과 악취, 질병과 범죄가 들끓는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금방 두려움과 혐오감에 질려 도망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토코는 그곳에서 평생 본 적 없는 가장 밝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미사에서 모시는 성체를 통해 "예수님이 지금 내 손을 잡고 이 가난한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녀가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평화로운 감정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주치의는 고백했습니다. "그녀의 병실에 들어가면 죽음의 냄새가 아니라 하느님의 평화가 느껴졌다. 그녀의 감정 자체가 그녀가 믿는 신의 존재 증명이었다." 사토코의 평화는 그녀가 성체와 온전히 일치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눈부신 표징이었습니다. (출처: 마쓰이 토오루, 『기타하라 사토코: 개미 마을의 천사』)
성당을 나서면서도 여전히 세상 걱정에 가슴이 답답하다면, 우리는 아직 성체를 '음식'으로만 먹었을 뿐 '생명'으로 합일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함께 하면 죄도 사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선택하지 말고 평화를 선택합시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St. Francis Xavier)의 고백을 우리 삶의 지표로 삼읍시다. 그는 1544년 1월 15일, 인도 코친에서 사프란스(Saffrans) 섬으로 향하는 거친 바다 위에서 폭풍우를 만나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바다는 사납게 울부짖었고 배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말할 수 없는 큰 기쁨과 내적인 위로를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하느님께서 저를 지켜보고 계시며, 저의 모든 고난이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신데, 바다가 나를 어쩌겠습니까? 저는 제 자신의 생명보다 하느님의 평화를 더 크게 맛보았습니다." (출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서간집』, 1544년 1월 서한 재구성)
그가 인도와 일본의 낯선 땅,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곳으로 기쁘게 나갈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성체를 통한 '감정의 정복'이었습니다. 교부 성 암브로시오는 『성사론』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그대가 모시는 성체는 단순히 빵이 아니라, 폭풍우 치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구원의 방주다. 풍랑이 일어날 때 배 바깥을 보지 말고, 그대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라. 그분께서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그대의 심장은 고요한 항구가 될 것이다. 감정의 평화가 곧 그리스도께서 그대 안에 사신다는 가장 고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St. Ambrose, De Sacramentis, 4, 4).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의 감정이 평화로울 때, 여러분은 이미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목적지에 도착해 있을 것입니다. 아멘.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교집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두 개의 원이 겹치면 그 가운데에 공통되는 부분이 생깁니다.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만나서 하나가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그런 교집합을 보았습니다. 킬린(Killeen)의 한인 공동체를 다녀왔습니다. 그 공동체에는 10년 동안 한국인 사제가 없었습니다. 한국어 미사도 없었고, 한국어 고백성사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어로 신앙을 나누는 사순 특강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교우들이 오후 1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함께했습니다. 고백성사를 보고, 미사를 봉헌하고, 사순 특강을 들었습니다. 다섯 시간이 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에는 신앙에 대한 갈망과 정성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중용’ 23장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작은 것에 정성을 다하면 참됨이 생긴다. 참됨이 드러나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을 움직이면 변화가 일어나며 마침내 세상이 변화된다.” 신앙은 결국 정성에서 시작됩니다. 본당에서도 특강이 있었습니다. 보통 특강은 한 시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신부님은 묵주기도, 강의, 성시간을 함께 하셨습니다. 네 시간이 넘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성체 강복을 해 주시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안수해 주셨습니다. 바쁜 현대 사회는 빠른 것을 좋아합니다. 신앙에도 ‘빨리빨리’가 있습니다. 짧은 기도, 짧은 강의, 짧은 미사. 편리하고 좋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깊은 울림이 부족합니다.
이번 특강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정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중요한 결정을 합니다. 공동체가 커지면서 해야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나누는 일, 재산을 관리하는 일, 공동체를 돌보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이렇게 해서 부제들이 선발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교회의 첫 번째 협력 사목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것을 농담처럼 ‘땜빵 사목’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교회의 지혜였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집중하고 다른 이들은 공동체를 돌보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고 제자들의 수가 많이 늘어났다.” 교회는 이렇게 성장해 왔습니다. 교구는 공동체를 조직하고 이끌어 왔고, 수도회는 교구가 미처 돌보지 못하는 영적인 갈망을 채워 주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수도회에는 재속회가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영적으로 목마른 사람들이 모여 함께 기도하고 신앙을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생각해 보면 교회의 역사는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의 역사였습니다. 정성을 다해 기도하는 사람 정성을 다해 미사를 봉헌하는 사람 정성을 다해 신앙을 나누는 사람 그 정성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바다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신앙은 빠른 속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깊은 만남에서 옵니다. 정성스럽게 드리는 기도, 정성스럽게 드리는 미사, 정성스럽게 나누는 신앙, 그곳에서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고 그 음성은 우리의 삶을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변화시킵니다. 중용의 말처럼 정성은 사람을 움직이고 사람이 움직이면 세상이 변화됩니다. 오늘 우리의 작은 정성이 우리 가정과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마침내 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한 곳으로 만들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정성 위에 은총을 더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이기에>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6,20)
멈추지 않는
나를 향한
믿음이
때론 오히려
두렵기 그지없으나
그 믿음
바로
당신의
믿음이기에
두려움 없이
같은 믿음으로
당신과 함께하렵니다
바래지 않는
나를 향한
희망이
때론 오히려
두렵기 그지없으나
그 희망
바로
당신의
희망이기에
두려움 없이
같은 희망으로
당신과 함께하렵니다
마르지 않는
나를 향한
사랑이
때론 오히려
두렵기 그지없으나
그 사랑
바로
당신의
사랑이기에
두려움 없이
같은 사랑으로
당신과 함께하렵니다
오늘의 성인
성녀 안티아 (Anthia)
활동년도 : +117-138년
신분 : 과부,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안띠아, 안시아, 안씨아
성 엘레우테리우스(Eleutherius)는 로마인이며 과부이던 성녀 안티아의 아들로서 디나미우스(Dynamius)란 어느 주교로부터 교육을 받고 18세에 사제가 되었으며, 20세에 달마티아(Dalmatia) 지방 일리리아(Illyria)의 주교로 축성되었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궁중 관리를 여러 명 개종시킨 죄목으로 하드리아누스 황제 앞에 끌려갔다. 황제는 벌겋게 달군 철 침대 위에 수족을 묶어 두는 형벌을 가한 뒤에 아예 큰 석쇠 위에 그를 올려놓고 구워 죽이려 하였다.
이렇듯 이 젊은 주교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여 순교의 영광을 받았는데, 황제의 모진 고문에도 그가 결코 죽지 않자 야생말들이 끄는 수레 뒤에 그를 묶고는 산 위로 말을 쫓았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사냥꾼들의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성 엘레우테리우스를 황제군에게 넘겨 다시금 사자 우리에 던져졌다고 한다. 이때 그는 어머니인 성녀 안티아를 비롯하여 11명의 동료 신자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성녀 안티아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칼로체로 (Calocerus)
활동년도 : +연대미상
신분 : 장군, 순교자
지역 : 브레시아(Brescia)
같은 이름 : 갈로체로, 갈로체루스, 칼로체루스, 칼로케로, 칼로케루스
성 칼로케루스(또는 칼로체로)의 행전은 그를 성 파우스티누스(Faustinus, 2월 15일)와 성 요비타(Jovita, 2월 15일) 형제와 연관시키고 있다. 그는 아마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브레시아에 주둔한 하드리아누스 황제군의 사령관이었을 것이다.
성 아폴로니오 (Apollonius)
활동년도 : +185년경
신분 : 원로원의원, 순교자, 호교론자
지역 : 로마(Roma)
같은 이름 : 아뽈로니오, 아뽈로니우스, 아폴로니우스
로마 원로원 의원이던 성 아폴로니우스(또는 아폴로니오)는 그리스도인이 된 후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자기의 종 가운데 한 사람을 집정관 페렌니스(Perennis)에게 넘겨 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 종이 그를 그리스도인으로 고발하고, 종은 밀고자로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을 때 페렌니스는 아폴로니우스에게 신앙을 포기하도록 요구하였다. 그가 이를 거절하자 페렌니스는 이 사건을 원로원에 제소하게 되었고, 페렌니스와 아폴로니우스 간의 유명한 설전이 시작되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신앙을 옹호하였다. 그러나 그의 웅변적인 방어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참수되었다.
복녀 마리아(강생의)(Mary of the Incarnation)
신분 : 과부
활동연도 : 1566-1618년
같은이름 : 메리, 미리암
바르바라 오리오(Barbara Aurillot)는 정부 고위관리인 니콜라스 오리오(Nicholas Aurillot)의 딸로서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그녀의 아주머니가 있는 롱샴(Longchamps)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고 종교적인 생활을 원했지만 16세 때에 재정 관리인 피에르 아카리(Pierre Acarie)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신심이 깊고 또 애덕을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바르바라 오리오는 모두 6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셋은 카르멜회 회원이 되었고, 한 명은 사제가 되었다.
그러던 그녀의 집안에 큰 재앙이 다가왔다. 그녀의 남편은 앙리 4세(Henri IV)에 대항하는 가톨릭 연합의 후원자였다. 그래서 앙리 4세가 왕으로 즉위하자마자 피에르 아카리는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일종의 모반 혐의로 파리에서 추방되었다.
바르바라 오리오는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아빌라(Avila)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5일)의 저작에 심취하고 애덕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녀의 이 모든 선한 일들은 결국 앙리 왕의 감탄과 지원을 이끌어냈다. 그녀는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맨발의 카르멜회를 프랑스로 불러왔고, 1604년부터 1609년 사이에 5개의 수녀원을 세웠다.
1613년 47세의 나이로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아미앵(Amiens)에 있는 카르멜회에 입회를 청하여 허락을 받고 강생의 마리아(Maria)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곳은 그녀의 큰딸이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의 영적인 제자로 비록 만 4년밖에 수도자로서 살지 못했지만 기혼자로서 뛰어난 성덕의 소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녀는 “주님, 제가 저지른 온갖 나쁜 표양을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말씀을 남기고 4월 18일 퐁투아즈(Pontoise)에서 선종하였다. 그녀는 1791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시복되었다.
복자 안드레아 이베르논(Andrew Hibernon)
활동년도 : +1602년
신분 : 수사
지역
같은 이름 :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히베르논
에스파냐의 귀족 가문의 일원인 안드레아 이베르논(Andreas Hibernon)은 무르시아(Murcia) 교외 알칸타릴라(Alcantarilla)에서 태어났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삼촌 집에 얹혀살았다고 한다.
그는 열심히 일하여 누나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오던 중 강도를 만나 모든 돈을 빼앗겼다. 허탈감에 빠진 그는 세상 재물의 헛됨을 뼈저리게 느끼고 천상에 보화를 쌓아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 길로 그는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의 평수사로 입회하였다. 그는 겸손과 기도 그리고 관상에 뛰어났으며 숨은 생활을 즐겼다. 그는 무엇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지를 늘 지켜보고 행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 결과 예언과 기적의 은혜까지 받았다. 성 안드레아는 자신이 세상을 떠날 날을 예고하였으며, 간디아(Gandia)에서 수도원 개혁을 돕던 중 68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성 파스칼 바일론(Paschalis Bailon, 5월 17일)과 성 베드로 데 리베라(Joannes de Ribera, 1월 6일)는 성 안드레아의 이름을 널리 전하는데 크게 앞장섰다. 그는 1791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첫댓글 2026년 4월 18일 입니다~~
퍼온거라 수정이 안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