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인간(人間)으로 오다 ◑ ②
The Big Dipper came to the Earth as a human being
http://cafe.daum.net/dos1130 黃汝一 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 정도령
http://cafe.daum.net/dkdehd63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s://blog.daum.net/e-one8899 해월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s://cafe.naver.com/pinkpknbt黃汝一 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 정도령
내용을 더 알고 싶으시면 연락주세요.
해월유록 구매 : 010-6275-1750
카페지기에게 문자 : 010-8487-1869
◈ 대순전경
제4장 천지운로(天地運路) 개조공사(改造公事) 16∼18절에 ◈,
『丙午년(1906년) 二月에 큰 公事(공사)를 行(행)하시려고 漢城(한성)으로 떠나실 때
가라사대
'戰艦(전함)을 淳昌으로 돌려 대리니
亨烈(형렬)은 地方(지방)을 잘 지키라' 하시고
여덟 사람 弟子(제자)에게 命(명)하사
各自(각자)의 所願(소원)을 記錄(기록)하라 하사,
그 종이로 眼鏡(안경)을 싸 넣으신 뒤에
鄭南基(정남기), 鄭成伯(정성백), 金甲七(김갑칠), 金光贊(김광찬), 金炳善(김병선)을 데리고
群山(군산)으로 가서 輪船(윤선)을 타기로 하시고
참고 : 또한 안경(眼鏡)이 바로, 사람의 소원(所願)을 들어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인 아기의 조화(造化)의 안경(眼鏡)인 것을 밝히는 상징적(象徵的)인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辛元一과 그 外(외) 네 사람은 大田(대전)으로 가서 汽車(기차)를 타라고 命(명)하시며
가라사대 '
이는 水陸竝進(수륙병진)이니라'
또 元一(원일)에게 命(명)하여 가라사대
'너는 먼저 서울에 들어가서 天子浮海上(천자부해상) 이라 써서
남대문(南大門)에 붙이라'
元一(원일)이 命(명)을 받고 一行(일행)을 거느리고 大田(대전)으로 떠나니라.
上帝(상제) 一行(일행)을 거느리고 群山(군산)으로 떠나실 때,
炳善(병선)을 命(명)하사
〈永世華長乾坤位(영세화장건곤위)
大明日月艮兌宮(대명일월간태궁)〉을 외우라 하시고
群山(군산)에 이르사
弟子(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바람을 걷우고 감이 옳으냐 불리고 감이 옳으냐'
光贊(광찬)이 대하여 가로대
'불리고 감이 옳으니이다'
이에 弟子들로 하여금 烏梅(오매) 다섯개씩 準備(준비)하라 하시고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크게 일어나고 배가 甚(심)히 흔들려서 모두 멀미를 하거늘
各自(각자) 烏梅(오매)를 입에 물어 安定(안정)케 하시고
이 날 밤에 甲七(갑칠)에게 命(명)하사
여덟 사람의 所願(소원)을 적은 종이로 싼 眼鏡(안경)을 北方(북방)으로
向(향)하여 바닷물에 던지라 하시니,
갑칠이 甲板(갑판)위에 올라가서 方向(방향)을 分別(분별)하지 못하여 머뭇거리거늘
다시 불러들여 물어 가라사대
'왜 빨리 던지지 아니하느냐'
대하여 가로대
'方向(방향)을 分別(분별)치 못하겠나이다'
가라사대
'번개치는 곳으로 던지라'
甲七(갑칠)이 다시 甲板(갑판)위에 올라가 살피니,
문득 번개가 치거늘 이에 그 方向(방향)으로 던지니라.
이튿날 仁川(인천)에 내리시어 곧 기차를 바꾸어 타고 한성에 이르사
各自(각자)에게 담배를 끊으라 하시고
광찬의 引導(인도)로 황교에 사는 그의 從弟(종제) 金永善(김영선)의 집에 드시니
元一(원일)의 一行(일행)은 먼저 當到(당도) 하였더라.
元一(원일)은 當到(당도)하는 卽時(즉시)로
天子浮海上(천자부해상)이라는 글을 써서 南大門(남대문)에 붙이니
온 長安(장안)이 크게 騷動(소동)하여 人心(인심)이 들끓음으로 조정에서는 嚴重(엄중)하게 警戒(경계)하더라.
長安(장안)에서 十餘日(십여일) 동안 머무르시며 여러가지로 公事(공사)를 보시고
霹靂表(벽력표)를 묻으신 뒤에
弟子(제자)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모두 흩어져서 돌아가라. 十年(십년)이 지나야 다시 만나리라.』
『 십년도 십년이요 이십년도 십년이요 삼십년도 십년이리라
어떤 사람이 여쭈어 가로대
사십년은 십년이 아니나이까
가라사대
사십년도 십년이야 되지만은 넘지는 아니하리라 』
위의 글에서
天子浮海上(천자부해상)이라고 했다.
바로 천자(天子) 즉 하나님의 아들이, 바다 위에 떠 있다고했다.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것도 증산(甑山) 상제께서 남대문(南大門)에 붙이라 하여 붙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바다 위에 떠 있다는 말은 참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이 말은 천신(天神)이신 정도령이, 천자(天子)라는 말인 것이다.
천자(天子)란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하여 태어난 사람을 의미한다.
예언서(豫言書)에서 말한 천자(天子)란,
단순히 중국의 황제들이 스스로 천자(天子)라 칭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명실 그대로 천자(天子) 즉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대순전경 제4장 천지운로(天地運路) 개조공사(改造公事) 54절에 이르기를,
『그믐날 저녁에 天動(천동)과 번개가 크게 일어나거늘
上帝(상제) 가라사대
‘이는 西洋(서양)에서 天子神(천자신)이 넘어 옴이라.
이제 天子神(천자신)은 넘어 왔으나,
너희들이 血心(혈심)을 갖이지 못하였으므로
將相神(장상신)이 應(응)하지 아니하도다’ 하시니라 』
◈ 격암(格菴) 선생의 마상록(馬上錄), 논리(論理) ◈편에 ~
『 非不勝(비불승) 治世耶(치세야)
승(勝)인 정도령이 세상을 잘 다스리지(治世) 못할 사람이 아니니
拜北黃, 海(降) 上帝門 』
북두칠성인 황(黃)에게, 경배하라(拜 北黃)
바다(海)가, 강림(降)한 상제의 가문(上帝門)이다 -
이 글에서 우리는 앞서 말한 내용보다 일보진전(一步進展)하여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팔괘(八卦)에서 진괘(震卦)인 번개(벽력표)
즉 장자(長子)가, 바다(海上 : 평해황씨 가문)에서 인천(仁川)으로,
인천(仁川)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입성(入城)하게 된다는 것을, 상징적(象徵的)인 의미로 드러낸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라고 명산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한 사람이 질문을 하였다.
◈ " 그렇다면 성경(聖經) ◈에는,
또한 어떠한 내용이 있습니까? " 라고 질문을 하자
명산 선생님의 대답은 계속되었다.
" 성경의 이사야 9장 6절을 보면 ",
『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政事)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奇妙者)라, 모사(謀士)라,
전능(全能)하신 하나님이라, 영존(永存)하시는 아버지라,
평강(平康)의 왕(王)이라 할 것임이라 』
" 성경의 요한계시록 12장 5절을 보면 ",
『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將次) 철장(鐵杖)으로 만국(萬國)을 다스릴 남자(男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寶座) 앞으로 올려가더라 』
" 요한계시록 2장 17절을 보면 "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白石)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 요한계시록 21절 7절을 보면 ",
『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遺業)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
이처럼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 보좌(寶座)에 함께 앉게 하며,
해인을 전해주며 만국(萬國)을 다스리게 된다고 하신 것이다.
성경에서는 아들을 두고, 영존하는 아버지라고 하였다.
◈ 또한 격암(格菴) 선생의 마상록(馬上錄) ◈에서도
「 궁위 인시조(弓爲 人始祖) 」라고 하여
궁(弓) 즉 정도령이, 인간의 시조(始祖)라고 하였다.
또한 조화의 아이 즉 정도령이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사람 뿐만 아니라 , 모든 만물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不但戱人 亦戱物)."
라고 명산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그러니까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에서 나오는 아이(重, 童, 小)란 말의 뜻은,
바로 조화(造化)의 아이(兒)를 의미하는 말로 보면 되는군요.
그런데 다섯번째 절의 ,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손잡이(柄)를, 훔쳤다(竊其柄)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라고 하자
명산 선생님의 대답이 이어졌다.
"자루 병(柄)자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손잡이, 근본(根本), 권세(權勢), 권력(權力), 손잡이, 자루, 두병(斗柄)이 가리키는 곳
등이다.
병(柄) 즉 손잡이란,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제5성(星)부터 7성(星)까지를 말하는 것이다.
북두칠성에 대하여는 이미 자세히 밝혔지만, 기억을 되살리는 의미에서 다시 말하겠다.
◈ 중화도교대사전(中華道敎大辭典)의 두병(斗柄) ◈란을 보면,
두병(斗柄)이란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자루(柄)을 말하며,
5∼7번째 별을 말하며 또한 천강(天罡)이라고도 한다.
단가(丹家)에서는,
이 두병(斗柄)을 진정(眞情)이라고 하며, 일명(一名) 금공(金公)이라고도 한다.
바로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인 금단(金丹)이라는 것이다.
또한 인원(人元)의 대단(大丹)인 두병(斗柄)을 청룡검(靑龍劍)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천강(天罡)란을 보면,
근본적으로 북두칠성(北斗七星)의 7번째 별을 의미하는 말인데,
단가(丹家)에서는 이를 사람에 비유하여, 이 북두를 사람의 마음(人之心)으로 본다.
유일명(劉一明)의
≪수진후변(修眞后辨)의 천강소식(天罡消息)≫ 란을 보면,
『人得天地之正氣而生(인득천지지정기이생)
사람은 천지(天地)의 정기(正氣)를 가져야 사는데,
亦具此天罡之氣(역구차천강지기)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이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정기(正氣)이다.
主宰生死(주재생사) 掌握性命(장악성명)
이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생사(生死)를 주관하고, 성명(性命)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其動天上之斗罡無異(기동천상지두강무이)
그 마음의 움직임(動)이, 천상(天上)의 북두칠성(北斗七星)과 다르지 아니한데,
知此者生(지차자생) 昧此者死(매차자사) 』
이 북두(北斗)를 아는 자는 살고, 모르는 자는 죽는다 라고 하였다.
또한 ≪천심(天心)≫란을 보면,
유화양(柳華陽)의 금선증론서련단제일(金仙證論序鍊丹第一)에,
『 天心(천심) 名曰中黃(명왈중황)
천심(天心)이란 한가운데, 중앙(中)인, 황(黃)을 말하는데,
居于天之正中(거우천지정중) 一名天罡(일명천강)
하늘의 한가운데에 거(居)하는 것을, 일명 천강(天罡)이라 하고,
一名斗杓(일명두표)
또는 두병(斗柄), 두표(斗杓), 즉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손잡이라고 한다.
在天爲天心(재천위천심) 在人爲眞意(재인위진의)
하늘에게는 천심(天心)이 되고, 사람에게는 진의(眞意)가 되니,
中宮若失眞意(중궁약실진의)
만약에 사람의 마음이 그 진의(眞意)를 잃으면,
猶如臣失君主矣(유여신실군주의) 』
마치 신하가 그 임금을 잃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해월(海月) 선생의 집이 있는 이 곳이,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손잡이(柄)를,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니,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손잡이(柄)를 잡았다면, 이제는 무엇을 잡았다는 이야기인지
여러분들은 대충은 알았을 것이다.
그러면 좀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 중화경(中和經) 제81장 미륵출세(彌勒出世)편에 ◈,
『 巳亥(사해)는 天地之門戶(천지지문호)요,
사(巳)와 해(亥)는 천문(天門)과 지호(地戶),
즉 하늘과 땅을 출입(出入)하는 관문(關門)이며,
七星(칠성)은 天之樞機(천지추기)로 斗柄(두병)이라.
칠성(七星)은, 하늘의 중추(樞機)로 두병(斗柄)이며
星辰(성진)은 七星(칠성)이 主張(주장)하여
칠성(七星)이 모든 별들을 주장하며,
七星經(칠성경)하니 爲政以德(위정이덕)이
칠성(七星)이 다스리는데, 덕(德)으로 다스리니,
譬如北辰所居(비여북진소거)에
비유하건대, 북진(北辰)이 있는 곳에,
衆星(중성)이 拱之(공지)하여 所居(소거)에 至靜(지정)으로
뭇 별들이 받들어 모시며, 거(居)하는 곳에 고요히 움직이지 않으면서도(至靜),
能制動(능제동)하며 所務(소무)에
능히 뭇 별 등을 통제하고(制動), 일을 하면서도,
至寡(지과)로 能服衆(능복중)하느니라.
홀로 능히 뭇 별들을, 복종시키는 것과 같음이라.
德者(덕자)는 本(본)이오. 財者(재자)는 末(말)이니
덕(德)이 근본(本)이요, 재물(財)은 끝(末)이니,
德行於道(덕행어도)하고
도(道)로써 덕(德)을 행하고,
道得於心則有日新之功(도득어심즉유일신지공)하고
마음의 도(道)가 있으면 날로 새로운(日新) 공덕(功)이 쌓이리니
所行(소행)이 昭著(소저)하야
그가 행(行)하는 일이, 밝게 나타나서,
萬古明鑑(만고명감)하리라.
만고(萬古)에 빛나는 거울(明鑑)이 되는 것이니라. -
◈ 중화경(中和經) 제28장 천인소위각자유분(天人所爲各自有分)편에◈,
『學者(학자)는 觸物而求之(촉물이구지)하면
- 학자(學者)는, 물(物)을 만져 보고 구하라(觸物而求之)
衆物之中(중물지중)에 各有衆像(각유중상)하니
만물(衆物) 가운데(中)에는, 각자 많은 상(像)이 있으니
可執之物(가집지물)이 爲柄(위병)이니
가히 잡을 수 있는 물(物)이, 자루(柄)인데,
柄者(병자)는 生物之權(생물지권)이라.
자루(柄)라는 것은, 만물(萬物)을 살리는(生) 권세(權)이다.
地有形而(지유형이) 可執故(가집고)로 爲柄(위병)이니라. 』
땅(地)은 형상(形)이 있으므로, 가히 잡을(執)수 있으니, 자루(柄)인 것이다. -
증산(甑山) 상제께서
자루(柄)에 대해, 자루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는 글을 남겨 둔 것이다.
자루(柄)인 북두칠성(北斗七星)이란,
하늘의 중앙에 위치하여 뭇 별을 다스리는 별이며,
인간의 수명(壽命)과, 화복(禍福)을 관장(管掌)한다고 하였다.
또한 북두칠성(北斗七星)은, 만물(萬物)을 살릴 수 있는 권세(權勢)를 가진 별이며,
만고의 밝은 거울(萬古明鑑 만고명감)인데,
북두칠성(北斗七星)을 뜻하는 병(柄)을, 또한 물(物)이라 하였다.
여기서 물(物)이란 사람을 뜻하는 말이니,
만져 보고 찾아볼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땅(地)은 형상(象)이 있으므로, 가히 잡을 수가 있다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아들인 북두칠성(北斗七星)이, 하늘 한가운데 자루로 있을 때
즉 신(神)으로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잡을 수가 없지만,
이제는 땅(地)의 정기(精氣)를 받고, 인간(人間)으로 화현(化現)하였으니,
누구든지 손으로 잡아 보고, 만져 보고, 확인하고, 따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루(柄) 즉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잡아서, 몰래 훔쳐(竊其柄 절기병)간 곳이,
바로 해월(海月) 선생의 가문(家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장기비수무인경(藏奇秘秀無人境)」이란 구절에서,
기이하고, 신묘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수(秀)를, 감추어둔 곳이라 한 것이다.
수(秀)자는
재지(才智)가 걸출(傑出)한 사람을 뜻하는 선비(士), 수재(秀才),
결혼하지 않은 남자, 꽃(花), 벼(稻), 이삭,
동사로는 빼어나다, 뛰어나다, 벼가 피다, 꽃 피우다, 자라다 등의 뜻이 있다.
이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정기(精氣)를 받아서 태어나는 사람을,
선비이자, 꽃이자, 벼
또는 결혼하지 않은 남자를 뜻하는 말로, 바로 청림도사(靑林道士)이며,
도하지(稻下止)의 정도령으로, 하늘이 숨겨 둔(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예언서(預言書)에서는 그 선비(士)이며, 꽃(花)이며 벼(稻) 결혼하지 않은 남자이며,
벼(稻)인 그 수(秀)라는 말을, 어떻게 설명(說明)하였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 황우동자비결(黃牛童子秘訣)과
정감록집성(鄭鑑錄集成)의 감인록(鑑寅錄) ⓟ643 ~ ◈을 보면,
『道詵曰(도선왈)
- 도선국사가 이르기를,
※ 도선국사(道詵國師) : 827(신라 제42대 흥덕왕 2년)~ 898(신라 제52대 효공왕 2년)
惟我衆生(유아중생) 歸于太白山下(귀우태백산하)
오직 우리 중생(衆生)들은 태백산 아래로(太白山下) 귀의(歸依),
즉 돌아가 의지하여야 하는데,
其言(기언) 深遠矣(심원의)
그 말이 매우 심원(深遠)하다고 하였으며,
回潛窮理則(회잠궁리즉)
돌이켜 깊이(回潛) 그 이치(理致)를 궁구(窮理)해 본즉
檀君之靈氣(단군지령기) 彌滿(미만)…
단군(檀君)의 신령한 기(靈氣)가 가득하다고(彌滿 미만)하였다.
靈將秀出於世矣(영장수출어세의) 』
영장(靈將), 즉 신령(神靈)한 장수(將帥)인 수(秀)가,
세상에 나올 것이라고 하였다(靈將秀出於世). -
즉
신인(神人)인 장수(將帥)를, 수(秀)라고 하였는데,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천년(千年) 전에 그 장수(將帥)가, 세상에 나타날 것이라고 밝힌 말이다.
◈ 격암(格菴)선생의 격암유록(格菴遺錄) ◈에서도
『무용출세 지장(無用出世 智將) 』
지혜로운 장수(智將)가, 출세(出世) 할 것이라고 하였다.
◈ 최수운(崔水雲)선생의 탄도유심급(嘆道儒心急)의
제목 뒤에 있는 제목 없는 글인데 ◈
『苦待春消息(고대춘소식) 春光終不來(춘광종불래)
애타게 춘소식(春消息)을 기다려도, 봄볕(春光)은 끝내 오지 않는구나.
非無春光好(비무춘광호) 不來卽非時(불래즉비시)
춘광(春光)이란 좋은 조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춘(春)이 오지 않으니, 때가 아닌데,
玆到當來節(자도당래절) 不待自然來(불대자연래)
여기에 마땅히 올 때가 되면, 기다리지 않아도 춘(春)은 절로 온다.
春風吹去夜(춘풍취거야) 萬木一時知(만목일시지)
춘풍(春風)이 불고 간밤에,
모든 나무(萬木)가 일시(一時)에 춘(春)이 온 때(時)를 아는구나.
一日一花開(일일일화개) 二日二花開(이일이화개)
하루(一日)에 한 꽃이 피고, 이틀(二日)에 두 꽃이 피고
三百六十日(삼백육십일) 三百六十日開(삼백육십일개)
삼백 예순 날에 삼백 예순이 피어
一身皆是花(일신개시화) 一家都是春(일가도시춘) 』
한 몸(一身)이 다 꽃(火)이고, 일가(一家)가 모두 봄(春)이로구나.
즉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봄(春)이,
바로 하나(一)인 사람(身)을, 꽃(一身皆是花)이라고 하였다.
하나(一) 즉 태을(太乙)인 사람을, 꽃이라 하였다 -
◈ 또한 격암(格菴) 선생의 마상록(馬上錄), 일심총론(一心摠論) ◈에 ~
【 일일신유 선경전(一日身有 善慶傳 ) 】
-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고,
옛부터 전해오는 말이있는데
이말의 본뜻이, 하나(一 : 태을)이고, 태양(日)이신 분(身)이,
덕을 많이쌓은 가문에서 나온다(有)는 뜻이다 " 라고했다 -
이는 주역(周易)의 문언전(文言傳)에 ,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는 말이 있는데 ,
이 의미는 착한일을 많이 쌓는 집안은, 반드시 넘치는 경사가 있을것이라고, 전하는 말인데
격암(格菴) 선생의 마상록(馬上錄)에서
태양(日)이고, 태을(太乙)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착한일을 많이 쌓은 가문에서, 태어난다는 의미라고 말하고있다
◈ 동학가사(東學歌詞) 중의 사십구년설법가(四十九年說法歌)에 ◈,
『春化之德(춘화지덕) 그 가운데 萬物化生(만물화생)
그 理致(이치)로 意思漸漸(의사점점) 廣大(광대)하야
一花二花(일화이화) 三花開(삼화개)로 三百六十(삼백육십) 花開(화개)하니
一身花(일신화)
일신화(一身花) 즉 하나(一)인 사람의 몸인 꽃(花)이,
一家春(일가춘)이 三十六宮(삼십육궁) 春(춘)이 되여
萬國花開(만국화개) 太平春(태평춘)을 弓乙花(궁을화)인줄 뉘가알꼬
만국(萬國)을 꽃이 피게 하는, 태평춘(太平春)인 궁을화(弓乙花)
즉 궁을꽃인 줄, 누가 알겠느냐고 하였다.
花字理致(화자이치) 알고보면 二七火(이칠화)가 花(화)가 되니 火化光德(화화광덕) 뉘가알꼬
꽃 화(花)자의 이치(理致)를 알고 보면,
이칠화(二七火) 즉 태양(太陽)이라고 하였다.
바로 불(火)이 화한 빛의 덕(光德)인 것을, 누가 알겠느냐고 하였다.
三八木(삼팔목) 피는 꽃은 二七火(이칠화)가 德(덕)이로다
삼팔목(三八木)에 피는 꽃은, 이칠화(二七火: 태양)의 덕(德)인데,
德門(덕문)열고 바라보니 鷄鳴山川(계명산천) 밝아온다
덕문(德門: 덕행이 높은 집안)을 열고 바라보니
닭이 울어 산천(山川)이 밝아오는데,
때를 아는 四九金鷄(사구금계) 日出消息(일출소식) 傳(전)해주니
때를 아는 사구금계(四九金鷄) 즉 금닭이 우니,
해가 떠오르는 소식을 전해 주는 때가
寅卯末(인묘말) 辰巳初(진사초)에 奉出金盤(봉출금반) 뉘가알꼬 』
인묘말(寅卯末)과 진사초(辰巳初)인데
이 때에 뱓들어 모셔야할 금반(金盤 : 금 쟁반 = 태양)이, 나타나니
누가 알겠느냐고 하였다. -
여기서 꽃이란 들에 피는 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一) 즉 태을(太乙)인 궁을(弓乙)의 몸을 태양 또는 꽃이라고 하였다.
궁을(弓乙)인 그가 나타나는 때가
인묘(寅卯)년 말(末)과 진사(辰巳)년 초(初)라고 하였는데,
이를 누가 알겠느냐고 하였다.
그가 나타나는 때를 가르쳐 주는 것이, 사구금계(四九金鷄 : 庚辛 - 2011)라고 하였다.
사구금계(四九金鷄) 즉 금닭이란 무엇을 두고 이르는 말인가 하면,
◈ 동학가사(東學歌詞)의 궁을전전가(弓乙田田歌)에 ◈,
『네曲調(곡조)가 좋다해도 鳳凰聲(봉황성)을 當(당)할소냐
金鷄鳳凰(금계봉황) 맑은曲調(곡조) 高低長短(고저장단)
早白(조백)있어 五八音(오팔음)이 영령하니
금닭(金鷄)이 운다는 말은, 봉황(鳳凰)이 운다는 말이라고 하였다.
봉황(鳳凰)이 우는때가 신묘(辛卯)년 이라한다.
또한 덕문(德門), 즉 덕행(德行)이 높은 가문(家門)을 열고 바라보니,
금닭(金鷄)인 봉황(鳳凰)이 운다고 하였는데,
바로 해월(海月) 선생의 가문(家門)을 뜻하는 말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六十三之(육십삼지) 律呂聲(율려성)을 烏鵲(오작)이야 어찌알꼬
이봉황의 소리(鳳凰聲)를 육십삼(六十三)의 율려성(律呂聲)이라고 하는데
까마귀나 까치들이, 이봉황의 율려성(律呂聲)을, 어찌 알겠느냐고 하였다
朝陽萬邦(조양만방) 되고 보니
또한 봉황(鳳凰)이 울자, 아침에 태양(太陽)은 만방에 떠오르고(朝陽萬邦)
乾坤配合(건곤배합) 太極(태극) 되여
건곤(乾坤)이 배합(配合)하여 태극(太極)이 되어,
五萬年之(오만년지) 無窮(무궁)일세
오만년(五萬年)의 무궁(無窮)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한 그러하나 弓乙成道(궁을성도) 들어보소
乾弓坤乙(건궁곤을) 兩白(양백)되여 人之弓乙(인지궁을) 다시나니
건곤궁을(乾坤弓乙)인 양백(兩白)이 인간궁을(人之弓乙)로 다시 나니
弓乙通靈(궁을통령)하는 聖人(성인) 어찌해서 없단말가 』
천지(天地)를 통하는 궁을성인(弓乙聖人)이, 어찌해서 없겠느냐고 하였다."
라고 설명하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 " 그렇다면 8번째 구절
「사지천추 부득령(使之千秋 不得逞)」의,
천추(千秋)에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룬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
라고 한 사람이 묻자
명산 선생님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오랜 옛날부터 평해황씨(平海黃氏)의 가문(家門)에서는
'아가 천년 태사'라는 말이 전설(傳說)로 내려왔던 것이다."
특히 고려조(高麗朝)에 첨의평리(僉議評理)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충절공(忠節公: 忠節公派의 시조)이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正明里)로 이주(移住)하여, 터를 잡고 세거(世居)하였는데,
지금은 대해(大海) 황응청(黃應淸: 海月 선생의 仲父) 선생의 종손(宗孫)이 살고 있는 종택(宗宅) 뒷산을
'아가 천년 태사봉'이라고 이름하며 전(傳)해 왔지만, 어느 누구도, 정확(正確)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다만 '태사봉 아래에 아가 천년이 이루어 질 것' 이라는 말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전설(傳說)의 내용(內容)을 보면,
평해황씨(平海黃氏)의 가문(家門)에서, 태사(太師: 太士) 즉 큰선비,
또는 큰 스승인 아가 즉 아기장수가 태어난다는 말인데,
이 아기가 바로 조화(造化)의 아이(兒)인 것을 해월(海月) 선생은 밝혔지만,
정확(正確)히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북두칠성(北斗七星)의 화신(化身)인 정도령을,
해월(海月) 선생이 선생의 손안에 넣게 되었음을, 정확(正確)하고 분명하게 밝힌 것이 바로 이 시(詩)인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은 겸손(謙遜)하게 선생의 집이,
이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손잡이를 훔친 자리(竊其柄)라고 표현(表現)하였지만,
이러한 일이 누가 훔치려 한다고, 훔칠 수가 있는 것이겠는가? "
라고 명산 선생님이 말씀하시자,
주위의 사람들은 그래서 해월(海月) 선생이 선생의 고향을 특히 선생의 집을,
선경(仙境)이니, 호중계(壺中界)니, 비인경(非人境)이니
라는 말들을 하였던, 그 뜻을 알겠다고들 하였다.
그러자 명산 선생님은 다시 앞에서 하던 말을 계속 이어 갔다.
"이 조화(造化)의 아이 즉 태사(太師)에 대하여
류겸암(柳謙菴) 선생께서는 무엇이라고 설명을 하였는지 알아보자.
◈ 정감록 중 겸암서애문답(謙菴西崖問答)을 보면 ◈
『相國曰(상국왈) 神明(신명) 知之乎(지지호),
先生喟然嘆曰(선생위연탄왈) 天耶地耶(천야지야)
이글은 류성룡(柳成龍) 대감이 묻고,
류성룡의 형님인 류운룡(柳雲龍) 선생이 대답한 말로,
一國有三君(일국유삼군)
말세에 하나의 나라가, 세 사람에 의해서 나누어지며,
禮之滅則(예지멸즉) 形刑(형형) 起置(기치)
예의(禮儀)가 무너진즉 형벌이 성해질 때,
胡師三年然後(호사삼년연후)
큰 스승(胡師)이 세상에 드러나서, 삼년(三年)이 지난후에,
鷄龍(계룡) 可見(가견) 』
계룡(鷄龍)의 나라를, 가히 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
이 글을 통해서
호사(胡師) 즉 큰 스승이란,
진인(眞人) 정도령을 두고 이르는 말인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천년(千年) 동안 숨겨 두었다고 하는데,
또한 숨겨 두었던 사람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 최수운(崔水雲)선생의 탄도유심급(嘆道儒心急) ◈
이라는 제목의 글 뒤에 제목 없이 실려 있는 글인데,
『甁中有仙酒(병중유선주)
병속(甁中)에는, 신선의 술(仙酒)이 있어
可活百萬人(가활백만인)
가히 백만인(百萬人)을 살릴 수 있는데,
釀出千年前(양출천년전)
천년전(千年前)에 빚어 내어 쓸 곳을 위해
藏之備用(장지비용) 處無然一開封(처무연일개봉)
숨겨 두었는데(藏之備 장지비) 부질없이 그 봉(封)한 것을
臭散味亦薄(취산미역박)
한 번 열면 냄새가 흩어지며, 맛도 약해진다.
今我爲道者(금아위도자)
지금 우리가 도(道)를 위한다면
守口如此甁(수구여차병) 』
입을 삼가하기를, 이 술병(甁) 같이 하여야 한다.
즉
천년(千年) 전에, 신선의 술(仙酒)을 술병에 숨겨 두었는데,
이 술은,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술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또한 입조심을 하라고 하였으며,
바로 숨겨 둔 사람이
도(道)요,
술(酒)이요,
춘(春)이요,
결혼하지 않은 남자요,
꽃(花)이요,
선비(士)라는 말인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은
그 당시에, 이러한 비밀(秘密)을, 누구나 알 수 있게 털어 놓지는 못했지만,
북두칠성(北斗七星)에 대해서는 은연중(隱然中)에 언뜻 언급했다는 것은,
상촌(象村) 신흠(申欽) 선생이, 해월(海月) 선생에게 준 시(詩)에서도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이를 알아보고는,
봉황(鳳凰)과 북두칠성(北斗七星)에 대한 시(詩)를 써서 해월(海月) 선생에게 주었다.
그러면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시(詩)를 보자.
증 황진사(贈 黃進士)
천산기남자(天産奇男子)
하늘에서 기묘한남자(奇男子)를 낳으니,
사문부등한(斯文不等閑)
이 글을 소홀히(等閑) 하지 마오.
흉중요우주(胸中堯宇宙)
흉중(胸中)에는, 우주(宇宙)를 높이고,
필하우강산(筆下禹江山)
붓을 대면, 강산(江山)이 늘어서는구나.
노야린초지(魯野獜初至)
산동성 지역(魯野)에, 개 짖는 소리가 비로소 이르고,
기양봉역환(岐陽鳳亦還)
기양(岐陽: 섬서성의 기산현)에, 봉황(鳳凰)이, 또한 돌아오니,
방가응결망(邦家應結網)
우리 나라에서(邦家), 응당 사로잡아야 하겠는데,
성두야광한(星斗夜光寒)
북두칠성(星斗)이 한밤에, 맑고 밝게 빛나는구려.
" 당대(當代)에, 정통 관료(官僚)로서,주역과 천문(天文),지리(地理),인사(人事)에 대가로 ,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약포(藥圃) 정탁(鄭琢) 선생께서는, 해월(海月) 선생에 대하여 남기신 어떤 말이 없었습니까? "
라고 묻자
명산 선생님의 대답이 이어졌다.
〔 ※ 정탁(鄭琢, 1520 ∼ 1605, 중종 21 ∼ 선조 38) 선생은 본관(本貫)이 청주(淸州)이며,
호(號)는 약포(藥圃)이고,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의 문인(門人)이다.
155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72(선조 5)년 이조좌랑이 되고,
이어 도승지, 대사성, 강원도 관찰사가 되고,
1583년 대사헌이 되었으며, 예조, 형조,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좌찬성으로, 왕을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경사(經史)는 물론, 천문지리(天文地理), 상수(象數), 병가(兵家) 등에 이르기까지 정통(正統)하였으며,
1594년 곽재우(郭再祐: 홍의장군), 김덕령(金德齡) 등의 명장(名將)을 천거(薦擧)하여 공을 세우게 하였다.
이듬해에 우의정(右議政)이 되었고,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났을 때, 이 해 3월 옥중(獄中)의 이순신(李舜臣)을 극력 신구(伸救)하여,
죽음을 면하게 하였으며, 수륙병진협공책(水陸倂進挾攻策)을 건의(建議)하였다.
1600년 좌의정(左議政)으로 승진(昇進)되고, 판중추부사를 거쳐
1603년 영중추부사에 오르고, 서원부원군(西源府院君)으로 봉해졌으며,
광해군(光海君) 5년(1613) 위성공신(衛聖功臣) 1등(一等)에 녹(祿)하고, 영의정(領議政)에 증직(贈職)
시호(諡號)는 정간(貞簡)이며, 예천의 도정(道正)서원에 제향되었다. 〕
" 약포(藥圃) 정탁(鄭琢) 선생의, 해월헌(海月軒)에 대한 시(詩)를 보도록 하자.
◈ 약포(藥圃) 정탁(鄭琢) 선생의 해월헌(題 海月軒)에 대한 시(詩)를 보면, ◈
수진아명계(水盡阿明界)
물이 다한(水盡) 물가에는, 밝은 경계(明界)가 드러나며,
천개기목허(天開祈木墟)
하늘이 서서히, 질박한 언덕(木墟)을 여니,
소헌전해월(小軒專海月)
조그마한 정자(小軒)가, 바다와 달을, 독차지하고 있고(專海月).
일기혼청허(一氣混淸虛)
맑고 깨끗한 언덕(淸虛)에는, 일기(一氣)가 흐르는데(混),
옥토약장도(玉兎藥長搗)
옥토끼(玉兎)가 불사약을 만들기 위해, 방아를 찧어도(長搗),
금단술미소(金丹術未疎)
아직은, 금단술(金丹術)이 통하지는 않는구나.
응지우의객(應知羽衣客)
그러나, 우의객(羽衣客: 신선)과 사귀는 것을 알겠는데
백일하련거(白日下聯裾)
한 낮에 소매를 나란히 하며, 동행(聯裾)을 하는구나! -
문설정림해(聞說亭臨海)
듣자니, 정자가 바닷가에 있다는데,
헌고북두허(軒高北斗墟)
북두칠성의 터(北斗墟)에는, 해월헌(海月軒)이 높이 서있고,
빙지대요곽(憑知大寥廓)
가득한 것이(憑), 크게 천지의 기가, 아직 분화하지 않은 상태(大寥廓)인 것을 알겠는데,
본시일청허(本是一淸虛)
본시(本是) 일기(一氣)란, 맑고 깨끗한 것이로다(淸虛).
해월망미원(海月望彌遠)
해월(海月)이, 멀리 미륵(彌: 아이)을 사모하며 기다리지만(望),
천성간경소(天星看更疎)
하늘의 별은, 드문드문 보이는데,
수인인선려(誰因引仙侶)
어떤 인연(誰因)으로, 신선을 불러들여 벗하는가(引仙侶)?
일상탕진거(一上蕩塵裾)
일상(一上: 一인 上帝, 한 번 오르니)이, 옷자락의 티끌을 씻어주는구나. -
『 주인이해월편헌(主人以海月扁軒) 기무의호(豈無意乎)
주인(主人: 해월)이 정자의 현판을, 해월(海月)이라고 하였는데,
어찌 아무런 의도(意圖)가 없겠는가?
양가관어왕양(量可觀於汪洋) 심가찰어휴영(心可察於虧盈)
일헌관물(一軒觀物) 무비진수지자(無非進修之資)
가히 하나의 정자에서, 넓고넓은 바다(汪洋)와, 또한 차면, 기우는 달을 보고,
관물(觀物)하여, 헤아려 보니(量心),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 주지 않음이 없으나,
주인독락이득자기(主人獨樂而得者其) 가량야(可量耶)
자용별운오언율이편(玆用別韻五言律二篇) 이위주인증(以爲主人贈)
주인면호재(主人勉乎哉) 』
주인 홀(主人獨)로 즐기면서, 차지한 것(得者其: 바다와 달)을, 가히 헤아릴 수가 있구나.
이에 주인을 위하여 ,특별히 오언율시 2편(五言律二篇)을 지어서 보내니
주인(主人: 해월)은, 힘쓸지어다(勉乎哉)라고 하였다. -
◈ 그러면 다시 약포(藥圃) 정탁(鄭琢)선생의 해월헌(海月軒)에 대한 다른 시(詩)를 보면 ◈,
『 월용창명간옥계(月湧滄溟看玉界)…… 일헌만상쟁귀장(一軒萬象爭歸掌)…… 』
- 해월헌(海月軒)이, 만상(萬象) 즉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다투어, 돌아와 받드는 곳(爭歸掌)이라고 하였으며
또한 옥계(玉界)라고 한 것이다. -
라고 명산 선생님이 풀어 설명하시자 ,
주위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말하였다.
"해월헌(海月軒)이 있는, 해월(海月) 선생의 집 터가 바로 북두칠성의 터(北斗墟)이며 언덕인데,
그 북두칠성의 터에는 일기(一氣)가 흐르며,
또한 해월(海月) 선생께서, 정자(軒) 이름을 왜 해월(海月)이라고 하였는지, 그 의도(意圖)를 안다고 하면서,
해월(海月) 선생 홀로, 바다와 달(海, 月) 즉 북두칠성(北斗七星)인 하나님의 아들을 손에 넣은 분이며,
하나님과 동행(同行)하는 사실등과, 하늘의 깊은 뜻을 깨달아 알고 즐거워 하는 해월(海月) 선생의 의도를
알아보고, 약포(藥圃) 선생은 자신의 시(詩)에다 밝혔습니다.
더욱이, 해인(海印)이라는 말을, 불교(佛敎)에서는,
바다의 풍랑이 잔잔해져서, 만상(萬象)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뜻으로
부처님의 슬기를 이르는 말이라고 하였는데,
약포(藥圃) 선생께서, 해월헌(海月軒)이 있는 곳이 바로 옥계(玉界)이고,
더하여, 만상(萬象 : 삼라만상)이, 다투어 돌아와 받드는 곳(爭歸掌)이라고 하여
숨겨져있는 해인(海印)의 의미를, 한층 더 분명히, 알수 있게 밝혔습니다.
또한 위의 시(詩)내용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정도령이 일기(一氣)로서
재생신(再生身)하여, 인간으로 오신 분을, 삼풍해인(三豊海印)이라고 밝힌 격암(格菴) 선생의 말씀과
일치(一致)하는 것 , 또한 명확히 알 수 있겠습니다." 라고 하자
다시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미 앞서 설명한,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선생의 사동기(沙銅記)와 해월헌기(海月軒記)에서 밝힌 내용보다,
정탁(鄭琢) 선생은, 좀 더 직설적(直說的)으로 밝히셨는데, 두 분 모두, 하늘이 숨겨놓은 깊은 내용을,
단 번에 알아보고는, 알아봤다는 의미로 해월(海月) 선생에게 힘을 쓰라고, 충고(忠告)를 하였군요" 하면서
서로들 말을 주고 받았다.
조용히 그러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던 명산 선생의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선생께서도
해월헌(題 海月軒)에 대하여 남긴 시(詩)가 있는데 , 그 중에서 한 구절을 보면 ◈,
〔 ※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1564 (명종 19 ) ∼ 1635 (인조 13 ) ]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月沙). 추애(秋崖).
조선 중기, 한문 사대가(漢文 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대제학, 병조판서, 예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지냄 , 시호는 문충(文忠). 〕
『 기압영오굴(氣壓靈鰲窟) 심유대봉허(心遊大鳳墟) 』
- 일기(氣)가, 신령한 거북의 굴(靈鰲窟: 삼신산-해월헌)을, 누르고 있으며,
근원이 되는 도(心, 북두칠성)가, 대(大) 봉황의 터(鳳墟)에서 노니는구나 ! -
라고 하여,
해월헌(海月軒)이 있는 해월 선생의 집을
신령한 거북의 굴(靈鰲窟 : 삼신산 - 해월헌)이요
또한 대봉황의 터(大鳳墟)라고, 설명하고 있다.
◈ 또한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선생은 다른 시(詩)에서도 ◈
『 명구태백허(名區太白墟)
이름난(名區), 태백의 터(太白墟)로,
고인선업정(高人仙業靜) 』
고인(高人: 뜻이 높고 덕이 있는 사람)의,
신선의 과업(仙業)이, 따르는 곳이라고 하였으며,
◈ 이조판서(判書)를 지낸, 식암(息庵) 황섬(黃暹) 1544(중종 39)∼1616(광해군 8)
〔 ※ 조선 중기의 문신, 창원 황씨로 자는 경명(景明), 호는 식암(息庵). 돈암(遯庵),
정탁(鄭琢)의 문인 , 이조와 호조의 참의, 도승지 등을 역임 호조, 이조,예조의 참판을 거쳐,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대사간(大司諫), 사헌부 대사헌(大司憲)
등을 지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는 정익(貞翼) 〕
선생도 그의 시(詩) "근차해월헌운(謹次 海月軒韻)"에서 ◈,
『 수개석실경요굴(誰開石室瓊瑤窟)……
해월(海月) 선생의 집터를,
경요굴(瓊瑤窟 : 북두자루의 굴)이라고 하였고,
천저북두허(天低北斗墟)……
또한 하늘 아래(天低)의 북두칠성 터(北斗墟)라고 하였으며,
수획일흔허(水畫一痕虛) 』
일기(一氣)의 자취가 있는 터(一痕虛)라고 하였다. -
◈ 또한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 1556년 ~ 1615년) 선생도
그의 시(詩) "제 해월헌(題 海月軒)"에서 ◈,
『 대지혼성은세계(大地渾成銀世界) 소산진작옥화궁(小山眞作玉華宮) 』
해월(海月) 선생의 집터를, 옥화궁(玉華宮)이라고 하였으며, -
◈ 좌의정를 지낸 오창(梧窓) 박동양(朴東亮 1569년 ∼ 1635년) 선생께서는,
〔 ※ 조선의 문신. 자는 자룡(子龍), 호는 오창(梧窓), 1596년 이조참판(吏曹 參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도승지(都承旨)를 지내고.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으로 금계군(錦溪君)에 봉해지고,
호조판서(戶曹判書) ,형조 판서(刑曹判書)를 지낸 뒤 ,
1611년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가 되었다.
좌의정에 추증(追贈), 시호는 충익(忠翼). 〕
"차 해월헌 운(次 海月軒 韻)"에서 ◈
『 벽해함명월(碧海涵明月) 혼성백옥허(渾成白玉墟) 』
- 해월(海月) 선생의 집터를,
백옥의 터(白玉墟)라고 하였으며, -
◈ 성오당(省吾堂) 이개립(李介立:1546년(명종 1) ~ 1625년(인조 3)) 선생께서는
※ 본관:경주(慶州), 자:대중(大仲), 호:성오당(省吾堂) ,출생지:용궁현(龍宮縣) 대죽리(大竹里)
출신지:영천(榮川), 분묘지:영천군(榮川郡) 서석(西石), 입사경로:천거(1586)
관직:산음 현감(山陰縣監), 증직: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 병조 참판(兵曹參判) ◈,
『 아영두옥청산하(我營斗屋靑山下) 군유고정벽해두(君有高亭碧海頭) 』
- 해월(海月) 선생의 집터를,
청산 아래(靑山下)에 있는, 북두칠성의 집(斗屋)이라고 하였다. -
라고 계속 명산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이제 그만 하면 해월헌(海月軒)이 있은 해월(海月) 선생의 집터가 있는 언덕이
북두칠성(北斗七星)의 터인 것을 분명히 알겠다고 하자,
앞에 있던 사람이 질문하였다.
"백사(白沙)라는 호(號)보다는 오히려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으로 봉군(封君)되어
오성(鰲城)대감으로 더 유명한 이항복(李恒福) 선생과,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선생과의 우정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절친한 사이였고,
또한 백사(白沙, 이항복) 선생과 해월(海月) 선생과도 아주 돈독한 사이였는데,
한음(漢陰) 선생도 해월(海月) 선생에 대한 어떤 기록을 남기지 않았겠습니까?" 라고 하자
명산 선생님은 웃으면서 다음의 말씀을 이으셨다.
〔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선생(1561∼1613, 명종 16∼광해 5)은
조선 선조(宣祖) 광해군(光海君) 때의 명신(名臣)으로 시호(諡號)는 문익(文翼),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한음으로 광주(廣州)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비범하고 침착했으며, 문학에 통달하여 어린 나이로 봉래 양사언(楊士彦)과 사귀었고,
1580(선조 13)년에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의 관원이 되었으며,
1588년에 이조정랑이 되었고,
1590년에 동부승지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중국의 명(明)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청해오는 등 국가를 위해(保國) 큰 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울산 순천 등지에서 작전을 돕고,
1591(선조 24년) 31세에 대제학(大提學)이 되었다.
1602(선조 35년)에 영의정(領議政)에 올랐으며,
1613(광해군 5년)에 이이첨의 사주를 받은 삼사(三司)에서 영창(永昌) 대군의 처형과 폐모론(廢母論)을
들고 나오자, 이항복과 함께 이를 극력 반대하였다.
이에, 삼사(三司)가 모두 그를 모함하여 처형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광해군은 관직을 삭탈하였다.
포천의 용연서원(龍淵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 한음문고(漢陰 文稿)가 있다. 〕
◈ 그러면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선생의, 해월(海月) 선생에 대한 시(詩) ◈를 보면,
간악남회종숙정(艮嶽南回鍾淑精)
간방의 산(艮嶽: 조선의 산)이, 남쪽으로 돌아와서(南回), 맑고 깨끗한 정기를 모으니(鍾淑精),
군영배출진천앵(群英輩出盡遷鶯)
많은 영웅(群英)이 배출(輩出)되어, 나아가 높이 벼슬에 오르지만(遷鶯),
청운기업군능최(靑雲器業君能最)
학덕이 높고 명망이 뛰어나고(靑雲), 기량과 기예(器業)에 있어서 그대의 재능이 으뜸이며(君能最),
황갑재명자숙쟁(黃甲才名子孰爭)
황(黃: 해월)이, 가장 지혜가 빼어난 사람(甲才)으로 이름이 나 있는데, 어느 누가 그대와 겨루겠는가!
한원금문삼협도(翰苑擒文三峽倒)
예문관(翰苑)에서, (그대의) 사로잡는 문장(擒文)은 삼협(峽倒: 양자강 중류의 커다란 세 협곡)을 무너지게 하고,
오대아치백요경(烏臺峨豸百僚驚)
사헌부(烏臺)의 위의가 당당한 관리(峨豸)로서, 모든 벼슬아치들이 두려워 하도다(百僚驚).
라고 하였는데
이만 하면 당시에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선생께서 해월(海月) 선생을 어떻게 보았는지 알 것이다.
해월헌 관련 현판
해월헌(海月軒) 130x40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 친필
만귀헌(晩歸軒) 181x82 한호 석봉(韓濩 石峯) 친필
차 해월헌 운(次 海月軒 韻) 48x30 지봉 이수광(芝峰 李晬光)
제 해월헌(題 海月軒) 94.5x30.8 약포 정탁(藥圃 鄭琢)
근차해월헌운(謹次海月軒韻) 72x30.5 식암 황섬(息庵 黃暹)
차 해월헌 운(次 海月軒 韻) 54.6x31 오창 박동량(梧窓 朴東亮)
제 해월헌 제납량대(題 海月軒 題納凉臺) 67.5x31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
해월헌기(海月軒記) 105.7x32.2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
제해월헌(題海月軒) 53.2x27.9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
용청강운기제 해월헌(用淸江韻寄題 海月軒) 51.5x21.5 필운 이항복(弼雲 李恒福)
차운(次韻) 52.6x26.4 대해 황응청(大海 黃應淸)
제해월헌(題海月軒) 53x26.4 오산 차천로(五山 車天輅)
차청강운운기제황사군 해월정(次淸江韻韻寄題黃使君 海月亭) 48.5x30.7 상촌 신흠(象村 申欽)
제해월헌(題海月軒) 54.5x26.9 구사 오정일(龜沙 吳挺一)
차해월헌운(次海月軒韻) 47.5x37.7 규오 유인길(葵烏 柳寅吉)
차봉판상운(次奉板上韻) 53.3x32.4 다산 목대흠(茶山 睦大欽)
근차 해월헌운(謹次 海月軒韻) 54.7x22.3 사계 이영발(沙溪 李英發)
근차해월헌 판상운(謹次海月軒 板上韻) 65x30 황진규(黃鎭奎)
모고와(暮古窩) 61.7x23 정침(正寢) 사랑채 현판
죽와기(竹窩記) 71.7x33 김준영(金駿永) 친필
해월(海月) 선생이 교류한 명사들을 보면
소시에는, 양봉래(楊蓬萊), 이아계(李鵝溪), 김주은(金酒隱) 제공들이 모두 외우(畏友)로 칭하셨고
윤월정(尹月汀), 유서애(柳西厓), 이한음(李漢陰), 김학봉(金鶴峯), 신상촌(申象村), 김동강(金東岡),
정약포(鄭藥圃), 서약봉(徐藥峯), 정한강(鄭寒岡), 한유천(韓柳川), 이월사(李月沙), 장여헌(張旅軒),
홍만전(洪晩全), 송호봉(宋壺峯), 홍모당(洪慕堂), 이지봉(李芝峯), 이백사(李白沙), 신열도(申悅道),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 난재(懶齋), 권율(權慄), 박성(朴惺), 등 여러 명사들이 서로 더불어 연원을
강구하며 시를 주고받았고 혹은 편지들이 오고 갔다.
|